시스터 케이스릴러
이두온 지음 / 고즈넉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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케이 스릴러 시리즈 중 한 권이다. 이 시리즈는 한국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브랜드다. 미스터리 장르가 척박한 한국의 현실을 생각할 때 절로 관심이 가는 시리즈다. 최근에 황금가지 등에서 한국 장르 소설이 꾸준히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 수가 충분하지는 않다. 그리고 대부분의 미스터리 소설이 범작 수준에 머물고 있다. 흥미로운 작품들이 나오는 경우도 있지만 그 수가 아직은 많이 부족하다. 물론 여기에는 영미권과 일본 등의 뛰어난 작품들을 선별, 번역한 소설로 눈이 놓아진 것도 무시할 수 없다. 어쩌면 더 많은 수작들이 번역 출간되면서 눈만 더 높아진 것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이국적인 모습과 너무 한국적인 현실 사이의 괴리가 어색함을 만드는지도 모르겠다.

 

시스터. 제목대로 자매가 등장한다. 언니 선이가 동생 장이를 찾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사건과 과거를 되짚으면서 다양한 이야기 거리를 만든다. 그 시작점은 과거의 한 순간 있었던 인기를 잊지 못하는 부모에게 있다. 아버지는 힘겹게 연결한 인연으로 <밀리언달러 키즈>라는 방송에 출연한다. 이 프로그램에 대한 설명을 간략하게 들으면서 <아빠! 어디가!>가 자연스레 떠올랐다. 처음 이 방송 출연은 언니 선이였다. 하지만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장이로 바뀌었다. 그런데 이 방송이 소위 말하는 대박이 난다. 장이는 스타가 된다. 장이의 팬클럽도 생긴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할까? 아니면 부모의 욕심이 만들어낸 환상 때문일까? 한순간에 무너진다. 장이의 너무나도 영악하고 가식적인 행동 때문이다. 그리고 가족도 무너진다.

 

무너진 가족은 쉽게 세워지지 않는다. 엄마가 죽고 외조부모가 와서 두 아이 중 한 명을 데리고 간다고 했을 때 선이가 손을 내민다. 이것으로 두 자매의 인생은 갈린다. 선이가 행복하게 자랐다는 의미는 아니지만 장이처럼 내팽개쳐지지는 않았다. 10년이란 시간이 흐른 후 선이는 교정직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다. 하지만 면접 중 기절한다. 이때 한 여형사가 다가온다. 장이의 행방을 묻는다. 10년 동안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으니 당연히 어디 있는지 모른다. 옛집으로 찾아간다. 과거의 시간 속에 집은 멈춰 있다. 그러다 집 곳곳에 있는 카메라를 발견한다. 동생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왜 열일곱 살 소녀는 살인 용의자가 되었을까? 언니 선이는 장이를 찾기 시작한다.

 

선이가 동생을 찾는 와중에 한 남자를 만난다. 해순이다. 장이가 죽였다고 하는 윤재의 아버지다. 둘이 만나게 되는 것도 장이와 윤재가 등장하는 동영상 때문이다. 이 동영상을 찍었던 무리 중 한 명을 쫓는 과정에 만난다. 이 만남은 사건의 핵심에 점점 더 다가가게 만든다. 그리고 이 동영상을 찍었던 학생이 시체로 발견된다. 누가 죽였을까? 사리진 장이는 어디에 있을까? 그녀의 집에 설치된 카메라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 아버지가 사라진 집에 어린 장이가 살 수 있게 만든 사람은 누굴까? 수많은 의문들이 흘러나오고, 이 의문은 하나씩 풀려나간다. 제대로 된 보호자 없이 자란 한 어린 소녀가 살기에는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고 잔혹하다.

 

전체적으로 잘 읽히는 편이다. 가독성은 나쁘지 않으나 너무 많은 이야기를 넣으면서 균형감과 긴장감을 잃었다. 아이의 내면을 깊숙하게 파고드는 것도 아니고, 선이의 죄책감을 아주 민감하게 건드리는 것도 아니다. 누가 살인자인가 하는 의혹을 극대화시키면서 회색 뇌세포를 혹사시키지도 않는다. 단편으로 쪼개진 이야기들이 하나로 모이는 과정도 왠지 어색하다. 밀도 있는 구성과 이야기가 아쉽다. 몇 가지 이야기나 설정을 뺀 후 가볍고 깊게 파고들었다면 더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작품들이 더 나오길 바란다. 늘 이런 종류의 한국 스릴러에는 이 말이 달린다. 나도 더 많이 읽어야 하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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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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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그래픽노블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애니와 다큐의 결합된 형태라고 하는데 이곳저곳에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의 기억은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책소개를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실수를 한다. 집중력이 책으로 볼 때보다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래도 책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읽으면 그 깊이가 조금은 더 달라진다.

 

2006년 1월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친구 보아즈가 스물여섯 마리의 개가 등장하는 꿈을 20년 동안 꾸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는 레바논과 살육현장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 그 기억의 단편이 떠오른다. 이제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기 시작한다. 현재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지식과 정보고, 과거는 친구와 그 시절을 같이 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이 기억은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라 방어기제의 작동으로 잊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1982년의 끔찍했던 레바논 전쟁 속으로 조금씩 빠져들어간다.

 

제목에 나오는 바시르는 주인공 이름이 아니다. 레바논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폭탄 테러로 사망한 바시르 제마엘을 말한다. 그는 기독교 민병대(팔랑헤당)의 지도자고, 친이스라엘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려는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과 팔랑헤당의 분노를 불러왔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는 명분 아래 난민촌에 진입한다. 이때는 이미 테러리스트들이 떠난 후다. 하지만 피의 복수를 원했던 그들은 최대 3000명까지 추정되는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다. 문제가 더 되는 것은 이 현장을 보았음에도 이스라엘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조명탄을 계속 쏘아 그들의 학살을 도와주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다룬 것이 이 영화다.

 

영화를 통해 보는 전쟁은 스릴 넘치고 재미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함이 있다. 전쟁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은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경험을 다룬 수많은 작품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시대의 고통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말로만 명령을 내린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한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어떻게, 왜라는 질문에 그냥 하라고 하는 장면이다. 흔히 군대에서 하는 말로 ‘까라면 까’와 닮아 있다. 늘 해왔다는 표현 속에 이성은 마비되고, 감정은 메말라 간다. 뇌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기억을 묻어버린다. 이 작품은 그 기억을 캐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예상한 것보다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자극적인 장면을 자제한 것도 이유지만 이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레바논 전쟁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간단하게 말하고 지나간 것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나처럼 외국인이고 중동 정세에 무지한 사람들은 잔혹한 학살이 있었던 그 밤의 장면만 남는다. 그리고 이 장면을 오랫동안 다루지도, 잔혹하게 그려내지도 않았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쉽게 알 수 없다. 그래서 관련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책 속 정보들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여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빠져 있다.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이다. 잠깐 등장하지만 그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샤론이 이스라엘 총리가 된 이스라엘과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된 한국을 비교하면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 거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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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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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할머니다. <오베라는 남자>가 자살을 꿈꾸는 할아버지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은 조금 있으면 여덟 살이 되는 일곱 살 꼬마 소녀 엘사다. 한국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인 이 소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하나의 강박증 증세가 있는데 그것은 맞춤법이 틀리면 빨간 펜으로 고치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똑똑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위키피디아를 검색하여 학습한다. 버릇없고 잘난 척 하는 꼬마로 보일지 모르지만 엘사에게는 최고의 후원자가 있다. 바로 할머니다. 그녀의 특이함을 인정하고 이것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늘 노력한다. 이런 멋진 할머니가 암으로 죽는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한다.

 

엘사의 집안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할머니는 외과의사였다. 그 시절에 여자가 외과의사가 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사회의 편견과 싸웠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필요한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나 달려갔다. 전쟁터, 지진이 난 곳, 쓰나미가 몰려온 곳 등이다. 하지만 이 활동이 딸에게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엘사의 엄마 울리카가 그런 경우다. 가장 필요했던 순간 엄마는 곁에 없었다.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그리고 엄마는 완벽주의자이고 병원의 경영자로 늘 휴대전화를 들고 산다. 왠지 그녀의 엄마와 닮았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있다.

 

이 할머니 특이하고 괴팍하다. 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한밤중에 동물원에 침입할 정도다. 엄마의 동거남 있는 곳에서 나체로 다니기도 한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주변사람들과 투닥투닥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냥 보면 ‘뭐 이런 노인네가 있나’ 할 정도다. 하지만 할머니가 죽고 그녀가 남긴 편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그녀의 삶과 공동주택 거주자들의 삶이 하나씩 풀려나온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삶이 말이다. 이 삶은 그녀가 손녀인 엘사에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만들어 들려준 동화는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엘사가 편지를 하나씩 전달할 때마다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현실과 이어진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말한 편지를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하나의 미션 게임처럼 다가온다. 하나의 편지를 찾을 때마다 동화가 현실과 연결되면서 할머니의 삶과 그 사람들의 삶이 풀어져 나온다. 이 과정은 꽁꽁 얼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늘 하나의 선입견 속에 묻어두었던 이웃의 인상을, 삶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과정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아니 풀어가는 과정은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유쾌하지만 그 사연이 드러날 때 숙연해지고 슬프다. 그들의 아픔이 올올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아픔과 고통이 그들의 삶을 왜곡하고 뒤틀고 달아나게 만든다. 이런 이들을 현실 속에 다시 나타나고, 함께 어울리고,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게 하는 역할을 엘사가 맡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게는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 꼬마가.

 

손녀에게 들려준 동화가 현실과 연결되는 구성이다. 그 속에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등장시켜 잠시도 조용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 일곱 살 아이가 상상하는 일도 다루지만 그 꼬마 아가씨가 던지는 질문은 놀랍고도 직설적이다. 이때 꼬인 상황을 단숨에 파악하게 만든다. 평범하지 못한 아이는 보통의 학교에서 배척당한다. 이 때문에 열심히 달려야 한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또한 재미있다. 물론 늘 재미있지는 않다. 다른 학생들에게 쫓기는 모습이 결코 재미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사가 이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은 당당하다. 이 당당함이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반면 아이의 한계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잘 넘어가는 소설이고, 중반보다 후반부가 더 강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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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
마리아피아 벨라디아노 지음, 윤병언 옮김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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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생긴 여자 레베카에 대한 이야기다. 그녀는 태어날 때부터 부모에게 외면 받을 정도로 못생겼다. 그래도 자기 자식인데 이렇게까지 반응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인 레베카는 다른 사람들이 혐오를 느낄 정도로 못생겼다. 이렇게 못생겼다는 말로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나의 상상력의 한계다. 그녀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때 한 에피소드는 그녀가 얼마나 못생겼는지 알려준다. 하지만 이런 그녀에게도 친구가 있다. 수다쟁이 루칠라다. 물론 그녀가 살아남게 된 데는 가족들의 도움이 있었다. 처음에는 고모였다. 엄마는 그녀에게 그 어떤 도움의 손길을 내밀지 않는다. 그리고 그녀의 삶에 가장 큰 도움이 된 마달레나가 있다.

 

마달레나가 그녀의 집으로 온 것은 레베카의 아버지가 받은 쌍둥이가 남편과 함께 죽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볼에서는 항상 눈물이 흐른다. 엄마가 제정신이 아니다 보니 고모가 집을 들락거리면서 가정부에 대한 면접을 본다. 깐깐하다. 얼마 버티지 못하고 나간다. 하지만 마달레나는 다르다. 마달레나는 레베카의 행동이나 동작만 보고 감정의 변화를 눈치챌 수 있다. 모두가 레베카를 배척하는 집에서 어쩌면 유일한 지원군인지 모른다. 그녀의 혐오를 주는 외모에 관계없이 세상 밖으로 나갈 수 있게 도움을 주는 인물이기도 하다. 물론 그녀의 고모가 한 번 정도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려고 하다 엄마의 반대로 무산된 적은 있다.

 

레베카의 부모님은 둘 다 미남 미녀다. 이런 부부에게서 어떻게 이런 흉측한 아이가 나왔을까 하는 의문이 있다. 가장 먼저 들려주는 이야기는 모계 쪽의 문제다. 이 문제가 엄마를 급속하게 늙고 집안에 틀어박히게 만들었다. 한 아이의 미래는 전혀 생각하지 않고, 자신들의 체면을 위해서. 물론 여기에는 아이를 걱정하는 마음도 있다. 하지만 그들의 선택은 아이보다 자기들 우선이다. 이런 그녀에게 변화가 오는 것은 역시 피아니스트인 에르미니아 고모다. 그녀는 세상과 떨어진 아이에게 세상의 한 면을 보게 만들었고, 그녀의 손가락을 보고 피아니스트 가능성을 발견했다. 이 조그만 발견이 그녀가 세상으로 나가게 만드는 하나의 열쇠가 된다.

 

루칠라. 유일한 친구. 그녀를 외모로 평가하지 않는 유일한 또래. 그녀에 비해 훨씬 작은 집에 살고, 늘 웃음을 잃지 않는 뚱뚱하지만 멋진 소녀다. 루칠라의 가정도 평탄하지 않다. 그녀의 아버지가 제자와 함께 도망친 것이다. 집에 있는 모든 재산을 들고. 그렇지만 그녀와 엄마는 유쾌함을 잃지 않는다. 아이의 못생긴 외모 때문에 자신의 삶을 스스로 파괴한 레베카의 엄마와 너무나도 대비되는 모습이다. 이 둘이 함께 있는 순간들은 읽는 내내 훈훈하고 따뜻한 기분을 느낄 수 있었다. 마지막 장에 와서 나에게 강하고 진한 울림을 준 것도 루칠라와의 에피소드다. 그 향수의 냄새가 나쁜 기억을 모두 날려버린다.

 

못생긴 여자의 엄청난 반전이 펼쳐지거나 자기비하의 극단으로 치닫는 소설이 아니다. 자신이 못생긴 것을 인정하고, 이것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을 다룬 것도 아니다. 그냥 그녀의 삶을 보여준다. 자극적인 묘사보다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하지만 이 담담한 이야기가 몇 개의 비밀을 통해 긴장감을 고조시킨다. 그렇다고 장르소설처럼 강하게 표현하지 않는다. 레베카의 출생을 둘러싼 진실은 아들의 출생 비밀을 숨긴 데 렐리스 할머니의 사연과 연결된다. 엄마가 남긴 일기는 그녀에게 다른 진실을 들여다보게 한다.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멋진 순간은 역시 레베카가 자신의 목소리를 낼 때다. 지금 머릿속에 수많은 이야기가 회오리친다. 그렇게 두툼한 책은 아니지만 많은 이야기 거리를 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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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와후와 비채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선 10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권남희 옮김, 안자이 미즈마루 그림 / 비채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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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받았을 때 두 가지 느낌이 먼저 들었다. 하나는 표지가 폭신폭신하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키가 동화책을 썼구나 하는 것이다. 촉감은 맞지만 시각적으로 느낀 것은 나만의 착각이었다. 읽으면서 동화책이 아닌데 하는 생각이 들어 장르를 나중에 검색하니 에세이다. 그것도 그림 에세이. 다 읽은 후 분량이 너무 적어 그 감상을 표현하기가 쉽지 않았다. 며칠을 묵혀둔 채로 있다가 다시 시간을 내어 한 번 더 읽었다. 그때 무심코 지나간 문장들 몇 개가 눈에 들어온다.

 

많지 않은 분량이라 단숨에 읽었다. 솔직히 말해 그림체는 그렇게 좋아하는 것이 아니다. 간결하게 표현되어 있는데 자꾸 보니 괜히 정감이 생긴다. 특징을 잘 표현했다. 아쉬운 점도 있다. 꼬마 하루키와 늙고 커다란 암코양이가 함께 있는 그림이 없다는 것이다. 혹시 있는지 다시 찾아보지만 없다. 고양이 전체를 그린 그림이 없어 여기저기 뒤적였는데 앞모습은 제일 앞장에, 뒷모습은 마지막 장에 그려져 있다. 그림보다 글에 먼저 눈이 가면서 많은 것을 놓친 모양이다. 다음에 또 한 번 읽게 되면 또 뭔가를 발견하지 않을까?

 

후와후와란 단어에 대한 설명은 앞에 나온다. ‘구름이 가볍게 둥실 떠 있는 모습이라든지, 소파가 폭신하게 부풀어 있는 모습이라든지, 커튼이 살랑이는 모습이라든지, 고양이털처럼 보드랍고 가벼운 상태를 표현하는 말’이다. 이 설명을 보면서 대부분이 모습을 표현하고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촉감과 관련된 느낌은 고양이털을 제외하면 없다. 너무 오래전에 고양이를 만져보았기에 지금은 이 느낌을 잘 모르겠다. 언제 들고양이라도 만나면 이 감촉을 한 번 느껴봐야겠다.

 

늙고 커다란 암코양이 단쓰에 대한 추억을 담고 있다. 짧은 에세이다. 여기에 안자이 미즈마루의 그림이 곁들여져 한 권의 책이 되었다. 에세이만 놓고 보면 아이들이 보기에 쉽지 않지만 그림만 놓고 보면 아이들에게 재밌는 그림책이 될 것 같다. 이렇게 적고 보니 어른과 아이를 동시에 만족시키는 책처럼 보인다. 이 부분은 내가 당장 확인할 수 없으니 생략. 길지 않은 분량의 글을 읽으면서 최근에 고양이를 키우고 있는 여직원들이 떠올랐고, 한때 집에서 키웠던 고양이가 생각났다. 물론 그때는 집안에서 고양이를 키우던 시절이 아니다. 그리고 그 고양이가 쥐약을 먹고 죽었던 나쁜 기억이 났다. 아마도 그 이후 고양이는 항상 이 죽음의 트라우마를 나에게 지웠다. 가끔, 불연 듯이 이 기억이 난다. 많이 희석되었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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