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운 미식가 - 외로울 때 꺼내먹는 한 끼 에세이
윤시윤 지음 / 답(도서출판) / 2016년 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방송 예능 작가 18년차이지만 검색을 하니 연기자 윤시윤만 나온다. 현재는 <라디오 스타> 방송 작가라고 한다. 그 외 몇 편의 작품을 제외하면 그녀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쉽지 않다. 작가에 대한 정보가 없다 보니 글만 가지고 평가를 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처음 이 책을 선택했던 이유와 너무 동떨어져 있다. 외로운 미식가란 제목과 간단하게 본 책 내용으로 음식에 대한 에세이 정도로 생각했다. 그런데 아니다. 각 장의 제목은 단맛, 신맛, 쓴맛, 매운맛, 감칠맛, 짠맛 등으로 구분되어 있지만 실제 담긴 이야기는 그녀의 삶과 사랑 이야기가 대부분이다. 예능 방속 작가의 느낌이 곳곳에 살아 있지만 전체적으로 무겁고 처지는 느낌이다.

 

얼마 전에도 감성에 젖은 책을 읽었다. 그런데 며칠 되지 않아 또 읽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더 심하다. 더 많은 나이와 경험이 말랑말랑한 글로 표현되어 있다. 라디오에서 한두 번 정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고 공감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계속 읽으면 지친다. 그녀의 넋두리와 감상에 공감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니 나 자신도 이런 이야기를 너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아쉬움, 두려움, 설렘, 외로움 등의 감정들은 단편적으로 흘러나올 때 그 순간은 나쁘지 않지만 계속 이어지면 공감 너머의 감정만 남게 된다. 그래서 좋고 감각적이고 순간 공감할 수 있는 글도 감정의 소모를 부채질한다. 아마 이 책을 내가 이십 대나 삼십 대 초반에 읽었다면 또 달랐을 것이다.

 

작가도 책 속에 말하지만 음식이나 맛집에 대한 정보는 없다. 혹시 제목에서 풍기는 음식과 맛집에 대한 정보를 기대했다면 실망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상에 심어진 감정의 파편들을 맛보고 싶다면, 그 감성을 즐긴다면 딱 맞는 책이다. 이런 점에서 호불호가 생길 수 있다. 맛집에 대한 정보가 없다고 음식에 대한 추억마저 없는 것은 아니다. 이 음식에 대한 기억들이 사람들마다 다르겠지만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공감하는 부분이 많을 것이다. 사실 이 부분이 방송 예능 작가의 매력이 가장 잘 나타나는 부분이기도 하다. 그리고 몇 가지 편견도 같이.

 

외로울 때 꺼내 먹는 한 끼 에세이란 부제가 있다. 정말 이 책은 그렇게 읽어야 한다. 단숨에 읽으면 나처럼 지칠 수 있다. 하지만 자신의 현재 기분이 달달하다면 단맛을 읽고, 인생의 쓴맛을 보았다면 쓴맛을 읽으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맛들은 시간이 지나면 누구나 한 번씩 맛보는 것이다. 그래서 취향을 타는 책이 된다. 헤어짐과 그리움, 사랑과 엇갈림, 작은 오해가 쌓여 만들어내는 사연 등은 시간 속에서 누구나 한 번 이상 경험한 것이다. 사랑이 왜 익숙해지지 않을까? 하는 질문에 대한 흔한 대답은 그 뻔함에도 고개를 끄덕인다.

 

흔히 마흔이란 나이를 불혹이라고 하지만 실제 삶에서 그런 위치까지 간 사람은 몇 명 없다. 쉽다면 이런 표현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고,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해결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더 나이가 들어도 마찬가지다. 삶의 다양한 굴곡과 맛들은 결국 ‘인생은 맛있다’란 긍정으로 마무리된다. 지금 내 상태에 따라 이 말에 긍정할 수도, 부정할 수도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자신이 살아온 시간을 되돌아보면서 하나씩 그 맛을 떠올린다면 조금은 더 긍정하게 될 것이다. 누가 젊은 시절 가슴 찢어지는 듯한 사랑의 아픔을 한두 번 맛보지 않았겠는가. 시간이 지나면 그 맵고 쓰고 짠 그 맛이 추억이란 조미료에 의해 달거나 감칠 맛이 나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콩고양이 3 - 야!야!야!
네코마키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반갑게도 3권이 2권과 같이 나왔다. 그리고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새로운 캐릭터가 더 등장했다. 이번에는 참새와 비둘기 부부다. 지붕에서 떨어진 아기 참새에서 시작한 이야기는 비둘기 부부 이야기로 끝난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한 만큼 기존 사람들의 비중이 많이 떨어진다. 특히 할아버지. 하지만 첫 이야기에 등장하여 참새들의 서식지와 동물을 사랑하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잘 보여준다. 전편에서 아주 위태위태한 모습을 보여줬던 것을 생각하면 아주 반가운 모습이다.

 

이전까지 이야기에서 큰 비중이 없었던 고양이 주인의 오빠인 안경남이 이번 참새 이야기에서 상당히 많이 등장한다. 애니 덕후의 모습도 잠시 보여주지만 밀웜과 관련된 몇몇 에피소드는 일반 사람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냉장고에 둔 밀웜과 새끼 참새에게 먹이를 주다 고양이들이 덮쳐 쏟은 후 참새들이 회식을 하는 장면 등은 실제 내 주변에서 일어난다면 아주 깜짝 놀랄 일이다. 거미애호가들에게 가장 일반적인 먹이라고 하지만 생긴 것이 구더기와 비슷하니 그냥 무덤덤하게 보기는 힘들 것 같다. 나중에 애칭까지 붙여준 장면은 짧지만 강렬했다.

 

새끼 참새가 떠난 자리를 금방 비둘기 부부가 채운다. 이 부부는 원래 닭이 살던 곳을 차지해서 새끼까지 낳고 산다. 우리의 귀엽고 겁 많은 콩고양이들은 이번에도 이들에게 밀린다. 작가가 고양이들의 눈을 통해 비둘기의 먹이주는 장면을 그려낼 때 예전에 본 다큐의 한 장면이 떠올랐다. 그리고 마지막 장에서 콩알이 팥알이 엄마 장면이 잠시 나와 애틋한 느낌을 주었다. 물론 그 전에 자신들이 자라 고양이 인간처럼 변한 모습을 상상하는 장면이 나와 입가에 절로 미소를 짓게 만든다.

 

마담 북슬은 이번에도 강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집에 서식하는 말벌을 단숨에 처리하고, 고양이의 애교에도 꼼짝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마담 북슬을 흔드는 일이 생긴다. 그것은 옆동네 고양이가 텔레비전에 나와 인기 얻는 것을 보고 질투한 것이다. 고양이가 개처럼 개인기를 보여주면서 인기를 얻었는데 콩알과 팥알이도 훈련을 통해 이런 모습을 보여줄 것이라고 기대한 것이다. 고양이들을 간식으로 유혹해서 훈련을 시키려고 하지만 자기 꾀에 자기가 넘어진 모습만 보여준다. 하지만 이 장면을 보면서 항상 강한 모습만 보여줬던 마담 북슬의 새로운 모습이 드러났다. 다음에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된다.

 

시리즈가 진행되면서 이야기는 더 재미있어진다. 새로운 캐릭터가 등장하고, 기존 캐릭터들은 여전히 그 매력을 뽐내기 때문이다. 고양이들은 자신들의 놀이에 열중하고, 새로운 캐릭터의 등장은 꼼꼼하게 관찰할 대상이 된다. 이 만화의 매력 중 하나라면 간결한 그림체지만 디테일이 살아 있는 동물들 관찰이다. 참새나 비둘기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집안 식구들이 간간히 등장하여 존재감을 드러낸다. 등장 빈도에 비해 나의 시선을 끄는 존재는 역시 아빠다. 이 시대 아버지의 한 면이 잘 녹아 있어 더욱 공감하게 된다. 현재 5권까지 나올 예정이라고 한다. 더 나올 수도 있고. 다음에는 어떤 캐릭터가 등장하여 콩알이와 팥알이의 생활을 모험으로 이끌고, 재미를 줄지 기대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오늘 하루, 낯설게
이힘찬 지음 / 경향미디어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끔 무거운 책이나 장르 소설을 읽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이런 말랑말랑한 책을 읽으면 조금 느슨해진다. 감상적인 글과 사진들로 가득한 이 책을 읽으면서 나의 청춘 한 자락이 잠시 떠올랐다. 재기발랄한 글도 보이고, 그리움과 사랑으로 가득한 글도 눈에 들어왔다. 서울이란 공간을 같이 살다보니 겹치는 공간도 있다. 공간이 겹친다고 그와 내가 보는 곳이나 감상까지 같지는 않다. 그래서 내가 가본 곳은 조금 낯설게 보이고, 가보고 싶었지만 가보지 못한 곳은 아쉬움과 설렘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속에 담긴 그와 그녀의 사랑 흔적도 같이.

 

일상이 여행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이 책에서 말한다. 그리고 글과 사진으로 그것을 보여준다. “이 안에 여행 정보 같은 것은 없다. 나만이 알고 있는 예쁜 길이라든가, 너무 특별해서 잊을 수 없는 만남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소소한 이야기, 누구나 갈 수 있는 곳, 누구나 얻을 수 있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로 채웠다.”라고 미리 말한다. 그의 말처럼 열두 곳은 누구나 갈 수 있고, 실제 갔던 곳들로 가득하다. 하지만 어떻게 보면 평범한 듯한 사진 한 장과 그곳과 관련된 기억과 추억을 풀어낼 때 또 다른 감성으로 그곳들이 다가온다.

 

열두 곳 중 딱 반이 가본 곳이다. 우리 동네 포함해서 그렇다. 물론 나와 그가 사는 동네는 다르다. 이 책을 선택할 때 목차 속에 나온 몇 곳이 나의 시선을 끌었다. 그 중에서 특히 선유도와 하늘공원과 당산역 4번 출구가 그랬다. 선유도와 하늘공원은 늘 가본다 가본다 하면서 아직 가보지 못했기에 그곳의 풍경은 어떨까 하는 기대가 있었고, 당산역 4번 출구는 그곳에 무엇이 있길래 하는 호기심이 생겼기 때문이다. 처음 예상한 것과 다른 사진과 이야기가 흘러나와 낯설었지만 그의 감상과 감성에 조금씩 젖어들면서 빠르게, 때로는 느리게 책을 넘기게 되었다.

 

사실 이런 감성적인 글을 읽으면 처음에는 참 좋다. 하지만 끝으로 가게 되면 조금은 감정이 가라앉게 된다. 아마도 짧은 시간 동안 읽다 보니 그 감성을 녹여낼 시간이 부족했는지 모르겠다. 며칠의 시간을 두고 다른 책도 보면서 짬짬이 본다면 더 많은 것을 느끼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아니면 그의 글들이 낯익은 감상으로 다가온 탓인지도 모르겠다. 앞에서 말한 청춘의 한 자락을 떠올려주는 문장들 때문인지도 모른다. 이제 이런 감정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점점 옅어지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키워드로 나열된 단어는 혼자, 여행, 사랑, 그리움 등이다. 짧은 시간 동안 다니면서 찍은 사진과 글을 편집한 것이 아니다. 긴 시간 동안 이곳저곳을 다니고 그때 한 사랑과 이제 끝난 사랑에 대한 감정을 녹여내었다. 그의 여행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다른 도시로 다른 나라로 가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곳으로 낯설게 다가가는 것이다. 늘 반복적으로 가는 곳일지라도 어느 날 낯설게 다가올 때가 있다. 잘 안다고 생각한 곳이 다른 모습을 보여줄 때도 있다. 목적지를 향해 그냥 걸어갈 때는 몰랐지만 잠시 숨을 고르고 주변을 둘러보면 이런 경험을 자주 하게 된다. 그리고 그 곳에 쌓여 있는 추억과 기억들이 많다면 더 많은 이야기가 흘러나올 것이다.

 

내가 가본 곳과 겹치는 공간도 그의 눈으로 사진으로 본 곳은 달랐다. 분명 같은 길을 걸었을 텐데 말이다. 이런 낯선 시선이 좋다. 내가 자주 간 곳이라면 더욱 그렇다. 집에서 가까운 서울숲만 해도 늘 가는 곳만 돌아다니지 더 깊은 곳 새로운 곳으로 들어가지 않는다. 아니 입구조차도 가고 싶은 곳으로 가는 통로로 생각하는데 그는 그곳에 카메라를 들여다 대고 이야기를 풀어낸다. 이때 연쇄적으로 기억의 문이 열리고, 그 장소와 관련된 추억들이 떠오른다. 낯선 곳에 대한 이야기보다 가본 곳의 이야기가 더 좋은 경우가 바로 이때다. 내가 같은 나라, 도시, 지역을 좋아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잠시 무거운 것을 내려놓고 추억 속으로, 일상의 여행 속으로 빠져드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밤의 파수꾼
켄 브루언 지음, 최필원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낯선 듯 낯익은 이름이다. 저자 이력에 재미있게 읽은 책 한 권이 보인다. <런던 대로>다. 간결한 문체와 빠르고 파괴적인 이야기로 나를 사로잡은 작품이다. 개성 강한 캐릭터가 돋보였는데 이번에도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이 등장한다. 바로 잭 테일러다. 아일랜드 경찰 가르다 출신인데 술과 사고 이후 짤렸다. 가르다가 해고당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하는데 그는 목적을 이루었다. 그리고 무허가 사설탐정이 되었다. 그것도 알코올중독자로. 하지만 그의 저렴한 수수료는 의뢰인들을 만족시켰다. 여기에 좋은 실적이 덧붙여졌다.

 

바에 앉아 있는데 한 여자가 그의 이름을 부른다. 삼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다. 앤 앤더슨이 바라는 것은 딸 새라가 자살하지 않았다는 것을 밝혀달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앤 익사했어’란 전화 한 통. 앤은 딸과 함께 여행하려던 돈을 의뢰비로 지출하고 떠난다. 술주정뱅이 탐정인 잭은 얼떨결에 사건을 맡는다. 한때 동료를 찾아가 사건 파일을 보여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한다. 인터넷으로 정보를 조사하니 새라 외에도 자살한 아이들이 몇 명 더 있다. 한 가지 공통점도 있다. 세 명의 아이들이 에드워드 스퀘어란 곳에서 파트타임으로 일했다. 그가 파일을 부탁했던 클랜시 총경도 이곳 오너 플랜터와 골퍼를 친다. 수상하다.

 

일반적이 하드보일드는 탐정물이라면 이 단서를 가지고 깊게 파고들어서 한두 차례 위기를 겪은 후 진실을 밝혀낼 것이다. 하지만 이 소설은 그런 진행이 아니다. 사건 해결을 위해 노력하지만 그 정도가 다르다. 경찰이었고 알코올의존증이 있는 그지만 책은 손에서 놓지 않는다. 그래서 책 곳곳에 다른 작품이나 시가 인용된다. 빠르고 강렬한 흐름이 아니라 약간 느슨한 가운데 사건이 발생하고 해결되는 방식이다. 사건 자체보다 잭과 그 주변 사람들의 관계에 더 많은 비중을 둔다. 그렇다고 완전히 이 사건을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이 관계는 알게 모르게 사건과 이어지고, 새로운 사건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간결한 문장은 건조하고, 사건은 그렇게 강렬하지 않다. 아니 당사자에게 아주 강하겠지만 표현이 그렇다. 잭에게는 친구가 한 명 있다. 서튼이다. 그리고 그가 좋아하는 술집 주인 숀이 있다. 이 둘은 술에 절어 사는 그에게 없어서는 안될 사람들이다. 서튼은 친구고, 숀은 그에게 안식처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화가이기도 한 서튼은 그와 함께 새라의 사건을 조사한다. 이때 사고가 생긴다. 이 사고가 둘 사이에 조그만 균열을 만든다. 언제나 그렇듯이 이 균열은 점점 더 자란다. 불안이 영혼을 잠식하듯이. 이 둘 사이를 이어주는 것은 역시 술이다. 술이 점점 그의 정신과 육신을 갉아먹는다.

 

<런던 대로>의 강한 액션을 기억하는 나에게 이 작품은 조금 심심했다. 한 번에 휘몰아치는 방식이 아니다 보니 다음에 뭔가 더 큰 일이 일어날 것이란 기대를 하게 된다. 하지만 없다. 치밀하게 짜여진 살인이나 트릭도 없다. 정말 조금만 신경을 쓰고, 노력을 한다면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사건들이다. 물론 그 이면은 다르다. 그의 일상을 따라가다 보면 진한 외로움을 만난다. 그 외로움은 자신이 제어할 수 없는 것이다. 술은 잠시 끊었지만 상황이 그로 하여금 마시게 만든다. 다행이라면 도박으로 엄청난 배당을 받아 자신이 바라는 바를 이룰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정도랄까. 하지만 그의 곁에 사람이 없으니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빠른 진행이나 강한 액션에 중독되어 있다면 이 소설은 심심할 것이다. 잘 짜인 구성 속에서 미스터리를 풀어내고자 하는 사람에게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차갑고 어두운 밤과 진한 술 한 잔과 더불어 가슴 끝까지 파고드는 외로움을 느끼고 싶다면 추천하고 싶다. 건조하고 간결한 문장 속에서 피어나는 블랙유머도. 아직 잭의 중요한 과거가 나오지 않았다. 과연 어떤 과거가 있길래 그는 술에 빠졌을까? 시리즈 다음은 어느 곳에서 일어난 사건일까? 여러 가지로 다음 이야기가 궁금해진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제시 램의 선택
제인 로저스 지음, 이진 옮김 / 비채 / 2016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가까운 미래 인류는 엄청난 재앙을 만난다. 그 재앙은 인간에 의해 탄생한 바이러스다. 그 바이러스의 이름은 모체사망증후군(MDS)이다. 이 바이러스는 생화학 테러리스트가 만들었다. 이 바이러스는 일반적인 사람들에게는 안전하지만 임산부를 공격하여 죽게 만든다. 전 인류가 이 바이러스에 걸렸다. 백신이 만들어지거나 다른 방법이 없다면 현재까지 태어난 아이들이 죽게 되면 인류는 지구상에서 사라지게 된다. 이런 끔찍한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영국의 한 도시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야기를 다룬다. 그 중심에는 제시 램이 있다.

 

열여섯 소녀인 제시 램은 소위 말하는 진보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다. 환경운동을 생활 속에서 실천하고자 하고, 몇 가지 급진적인 단체에 동의한다. 이 시대 가임 여성들은 피임 도구를 몸에 넣은 채 살아간다. 어느 날 누군가가 임신했다는 소식이 떠돌면 곧바로 그녀의 죽음 소식이 따라온다. 아내가 임신 후 이 바이러스 때문에 죽으면서 절망에 빠진 남편들이 자살을 하거나 이제 아이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사실에 그 어떤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여자들이 등장한다. 제시의 이모인 맨디 이모가 후자다. 그녀가 바라는 것은 아기다. 이제는 그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

 

시한부 종말을 앞두고 있다는 점에서 같지만 다른 종말 소설과 다른 방향을 가진다. 좀비나 다른 행성의 충돌을 기다리는 상황을 다룬 소설은 있지만 이처럼 더 이상 새로운 생명이 태어날 수 없는 종말은 처음 본다. 이 독특한 설정 속에서 작가는 열여섯 소녀의 감성과 현실 속에 이 상황을 풀어내기 위한 과학적 정치적 윤리적 문제를 뒤섞는다. 그래서 어떤 부분은 SF소설로, 또 어떤 부분은 성장소설로 읽힌다. 이 다층적인 의미 속에서 나를 사로잡은 부분은 바로 SF적인 설정이 아닌 제목처럼 제시 램이 선택한 결정이다. 그리고 이 결정에 관련된 아빠와 딸의 대립이다.

 

예전에 에이즈가 전 세계적으로 퍼졌을 때 종말이 곧 일어날 것처럼 언론은 떠들었다. 하지만 피임기구와 환자들의 격리와 의학 검사 등을 통해 전염의 속도를 늦추었다. 의학은 이 병을 처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비록 완전히 사라지게 하지는 못했지만 에이즈로 인한 사망을 늦출 수 있게 만들었다. 단 치료약을 먹어야 한다. 이 약을 먹지 못하면 죽음에 이른다. 아프리카의 수많은 아기들이 에이즈에 걸린 채 태어나지만 그 약값이 없어 죽는다. 선진국은 난치병으로 바뀌었는데 말이다. 이런 기억이 책을 읽으면서 먼저 들었다. 이 바이러스도 곧 백신이 나오거나, 아니면 과학이 다른 방법으로 인류의 종말을 막을 것이라고. 실제 일어났다. 그런데 그 방법이 너무 잔혹하다.

 

현재까지 유일한 방법은 ‘잠자는 숲속의 미녀’라고 부르는 방법이다. 뇌가 썩어 임산부는 죽지만 태아는 임산부 뱃속에서 살아남는다. 기존의 바이러스 감염자는 치료할 수 없지만 바이러스 발생 전 냉동 보관한 난자에 백신을 놓은 후 인공 수정하고, 대리모의 몸을 통해 태아를 성장시키는 방법이다. 이 과정에서 대리모는 죽게 된다. 동물을 이용해 인공자궁을 만들거나 다른 의학적 방법을 사용해서 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지만 현재까지는 유일한 방법이다. 참으로 잔혹한 방법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과학에 동참하려는 지원자들이 많다는 것이다. 그 중 한 명이 바로 제시 램이다.

 

이 소설은 제시 램이 화자가 되어 자신이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된 원인 중 하나는 과학자인 아빠의 의견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실제 당사자가 된 아빠는 이 선택을 절대로 용인할 수 없다. 딸을 납치해서 가둔다. 여기서 이야기는 시작하고, 과거로 돌아가서 왜 이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솔직히 말해 그녀의 선택이 아주 이성적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녀가 이런 선택을 하게 만든 사회적 과학적 분위기를 보면서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바로 ‘인신공양’이다. 인류의 생존을 위한다는 거대한 대의를 여성들에게 강요하고 있다. 이에 반대하는 단체가 등장하는 것도 당연하다.

 

남의 일일 때 인류와 과학을 말하며 유일한 대안인 것처럼 말하던 아빠가 자신의 딸이 인신공양의 대상이 되었을 때 변하는 모습을 보고 과학자의 논리와 이성이 얼마나 허구적인지 알게 된다. 하지만 그 아빠의 의견에 동의한다. 이 실험을 주도하는 과학자가 몇 번의 단계를 거쳐 중간에 그만둘 수 있게 만들었지만 그의 본심이 실제 드러나는 대목을 보면 그 자신이 얼마나 잔혹한지 알 수 있다. 이런 부분을 감안하고 읽게 되면 종말과 인신공양이란 두 주제가 연결된다. 아무리 발단한 문명이라고 종말이란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얼마나 잔혹해질 수 있는지 알 수 있다. 물론 이에 저항하는 수많은 시민단체가 등장하지만 현재의 법체계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제한적이다. 과학자는 그 법의 허점을 이용한다.

 

읽는 내내 불편했다. 제시의 선택에 동의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종말을 앞둔 상황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먼저 챙기는 수많은 조직과 사람들이 나와 현실의 높은 벽을 느끼게 만들었다. 그리고 아직 인류에게 시간이 남아 있는데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왜 제시가 하게 되었는지 의문이다. 이런 선택을 하게 되는 과정을 성장이라고 부를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제시가 아빠와 한 이야기 속에 고대인들의 인신공양이 나오는데 이 희생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지 모르겠다. 자신을 하나의 영웅으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생물학적으로 그녀가 한 것은 자궁을 제공한 것밖에 없다. 생명을 바쳤지만 그 태아를 키운 것은 과학자와 의료기계들이다. 이렇게까지 다른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인류가 생존해야 한다면, 그것이 한두 사람이 아니라면 인류의 존재 자체에 큰 의미를 부여하기 힘들 것 같다. 이렇게 이 한 편의 소설을 통해 인류와 과학 등의 다양한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7)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