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은행 별곡 - 혼돈의 시대
차현진 지음 / 인물과사상사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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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대한민국의 중앙은행은 현재 한국은행이다. 이 책은 한국은행의 역사 중 일부를 다루고 있다. 그 시기는 1897년 대한제국 선포에서 1950년 한국은행 설립까지다. 실제 대한민국의 독립적인 한국은행은 이 시기 이후다. 원래는 1997년까지 다루려고 했다고 한다. 저자는 일제강점기의 조선은행도 현재의 한국은행과 연관성이 있다고 말한다. 은밀히 따지면 이 둘은 성격이 다르다. 책에도 나오듯이 일제강점기 조선은행은 식민지 조선을 통치, 운용하기 위해 세워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시기의 조선은행을 공부하는 것은 근대, 현대 중앙은행의 변천사를 알 수 있게 만든다.

 

중앙은행 역사를 다루고 있어 경제학에 대한 기본 지식이 없으면 이해하기 쉽지 않다. 요즘 한국은행이 금리를 낮추고, 동결시키는 이유를 저자는 설명하지 않는다. 사실 이 책에서 이런 부분이 나오길 조금은 기대했는데 현재 한국은행 직원인 것을 간과했다. 낮아진 금리가 대출자들에게는 아주 좋은 소식이지만 그것이 결국 부동산 대출로 이어지면서 부동산 거품과 엄청나게 거대한 개인 부채로 이어진 부분은 경제에 엄청난 부담이다. 이를 둘러싼 수많은 비평과 비난이 있지만 금리는 하향세를 유지하고 있다. 제1은행권에서는 대출금리가 확실한 담보 능력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낮아졌지만 신용이 좋지 못한 사람들은 변화가 없거나 더 올라갔다. 대부업이 성행하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이런 거시경제정책을 조금은 직접적으로 다루어주었으면 했는데 생략되어 아쉽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조선은행을 한국 중앙은행의 한 단계로 생각하는 것 같다. 일제강점기에 이 땅에 살고 있던 선조들의 삶과 관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책에서도 중점적으로 다루듯이 이 시대 조선은행은 일제의 목적에 따라 은행이 운영되면서 독립성이나 조선의 경제 안정과는 아무른 연관성이 없었다. 일제의 만주 침략과 중국 본토 침공을 위한 하나의 도구로 전락한 모양세다. 또 이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경제 용어인 금본위제와 은본위제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없어 초보자들에게는 더욱 어렵게 다가온다. 하지만 단순히 조선은행의 역사만 다루지 않고, 그 시대의 세계 경제와 각 나라의 중앙은행을 같이 다루면서 세계의 중앙은행 변천사도 같이 들여다본다.

 

중앙은행은 정권과 독립적으로 존재해야 한다. 물론 그 나라의 경제나 경제정책과 동떨어져 있을 수는 없다. 하지만 정권의 목적에 봉사하면 그 존립 이유가 위태로워진다. 저자는 일본은행과 조선은행의 역사를 다루면서 이 부분을 아주 잘 표현해주고 있다. 한 나라의 화폐가 군대에서 발행하는 군표와 다름없다는 표현이 나올 정도다. 중앙은행이 통화량 조절에 실패하면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겪은 나라들 사례를 들려줄 때 이것이 결코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님을 안다. 저자가 일제의 패망이 없었다면 통화정책의 실패로 인한 엄청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말할 때 순간 서늘한 기분이 들었다.

 

<중앙SUNDAY>에 연재한 글을 낸 책이다. 연재할 때부터 각 장의 첫 부분에 주제, 시대배경 등과 같은 것을 요약했는지 모르겠지만 어느 순간 이 부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각 장은 현재 이야기로 시작하여 그 시절 세계와 일본과 조선의 중앙은행에 대한 정보를 쏟아낸다. 흥미로운 정보의 조각들을 엮어 재미난 이야기로 만든 것도 많다. 조선은행의 폐지를 둘러싸고 대장성과 군부가 대립한 것도 새로운 사실이다. 군부가 만주로 진출하고, 세계 대전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면서 조선은행은 실질적으로 중앙은행의 역할을 상실했다. 이 부분을 시대순으로 조목조목 짚어가는데 상당히 새롭고 놀라웠다. 경제학과 통화정책 관련 수업 교재로 사용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다.

 

중앙은행에 대한 새로운 정보가 가득한 속에서 현대 한국은행 탄생과 관련된 이야기는 흥미롭다. 재무부와의 대결은 현재 진행형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리고 태생적으로 조선은행 직원들이 한국은행 설립에 관여할 수밖에 없었다. 일제강점기에 조선인이라는 이유 하나로 승진이 되지 않았던 인물들에게 해방은 새로운 기회였다. 그리고 새로운 중앙은행 이론은 열정적인 직원들의 학습 효과를 극대화했다. 이 부분은 그 열정에 살짝 감화되었다. 하지만 그 당시 조선은행 직원에서 한국은행 직원으로 신분세탁했다는 사실도 지적한다. 진짜 한국은행 이야기는 이제부터인데 책은 여기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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뼈의 소리 - 이와아키 히토시 단편집
이와아키 히토시 지음 / 애니북스 / 200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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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생수>를 처음 만화방에서 봤을 때 그림을 참 못 그린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 내가 좋아하는 그림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읽고 있는 것을 봤지만 읽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그러다 읽을 만한 만화도 없고, 이 만화에 대한 좋은 평을 읽으면서 손에 들고 읽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정신없이 끝까지 읽었다. <기생수>가 담고 있는 세계관이니 하는 것은 모르겠고 아주 재미있었다. 그 이후 이 만화는 일본 만화를 말할 때면 늘 나의 머릿속에 머물렀다. 그런데 정작 작가 이름은 기억하지 못한다. 발음하기 힘들고, 작가의 다른 만화를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이 단편집을 받고 한참 지났다. 몇 번이나 펼쳤다가 놓았다. 겨우 여섯 편이 실려 있는데 손이 쉽게 나가지 않았다. 마침 다른 책 한 권을 다 읽고 시간이 비어 손에 들고 읽었다. 역시 단숨에 읽었다. 이전에 그냥 들쳐보던 것과 다른 내용들이 나에게 다가왔다. 다른 작품들도 흥미로웠지만 강한 인상을 준 것은 <미완>, <와다야마>, <뼈의 소리> 등 세 편이다. 특히 표제작 <뼈의 소리>의 몇몇 장면은 <기생수>의 한 장면을 연상시켰다. 자신의 눈앞에서 남자 친구가 자살한 여자를 사랑하는 남자의 열정은 한순간 광기를 발산했다. 사랑의 위대함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열정의 아드레날린 폭주라고 해야 하나. 눈물의 따뜻함을 말하는 장면은 잃어버린 감정을 되찾는 순간이기도 하다.

 

<미완>은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여자와 조형과 조수의 이야기다. 누드 그림이 나와 조금 놀랐지만 여주인공을 모델로 조형물을 만들고, 그녀로 인해 아파하는 남자의 질투 등을 엮어 이야기를 만들었다. 하지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정으로 조각하던 돌이 단단하다고 말하고, 돌에 기대앉은 후 표정이다. <와다야마>는 오랜만에 모인 고등학교 동창회에서 벌어진 낙서 사건을 미스터리하게 풀어간다. 동창생들 얼굴에 기묘한 낙서가 그려지는데 누구도 그 인물을 보지 못했다. 그런데 이런 짓을 할 사람은 한 명밖에 없다. 와다야마다. 그에게 모임 연락도 하지 않았다. 한 명씩 기묘하게 얼굴에 낙서한 모습을 보여주고, 이것을 피해 달아나는 동창생의 모습이 무섭기보다는 코믹하다. 마지막 장면에서 본 와다야마의 모습은 약간 의외였다.

 

첫 작품 <쓰레기의 바다>의 마지막 장면이 얼마전에 있었던 추락사고와 연결되었다. 비현실적인 마무리다. 약간 어설픈 듯한 구성이다. <살인자의 꿈>은 연쇄살인마가 살인하는 장면을 꿈에서 보는 남자 이야기다. 초현실적인 설정인데 그의 곁에는 이런 상황을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있다. 평범한 꿈과 살인의 연결인데 예상하지 못한 전개와 마무리로 재미있었다. <반지의 날>도 그렇게 특별한 이야기는 아니다. 언니의 약혼반지를 끼고 나갔다가 하천에 빠진 개를 구해주면서 잃어버리고, 이것을 찾는 과정을 그렸다. 뻔한 전개와 마무리지만 주인공의 주저하는 모습이 귀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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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터로 간 책들 - 진중문고의 탄생
몰리 굽틸 매닝 지음, 이종인 옮김 / 책과함께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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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문고. 한자를 같이 표기했다면 금방 그 뜻을 알았겠지만 한글로만 표기되어 있다. 한글만으로 표기되었을 때 그 뜻을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번이 그렇다. 조금 불친절한 편집이다. 물론 이 책을 선택했을 때 어느 정도 그 의미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그리고 나의 시선을 끈 것은 사상전이었는데 책 내용은 그 부분을 강조하지 않는다. 진중문고에 어떤 책들이 포함되었고, 이 책이 얼마나 많은 군인들이 바라는 것인지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물론 이 책을 만들기까지의 과정과 어려움도 같이.

 

나치의 책 태우기부터 시작한다. 아주아주 옛날 진시황이 그 유명한 분서갱유를 펼치지 않았는가. 역사 속에서 점령자들이 책을 태운 것은 한두 번이 아니다. 그것의 현대판이 1933년 5월 10일 독일 베를린 베벨 광장에서 벌어졌다. 나치의 정치적 목적에 맞지 않은 책들을 공개적으로 태운 것이다. 이런 행동은 2차 대전이 펼쳐지는 와중에 점령지에서도 펼쳐졌다. 예상하는 추정 숫자는 1억 권이 넘는다고 한다. 엄청난 숫자다. 그런데 2차 대전 당시 미군이 발간한 진중문고의 숫자는 이것을 넘어선다. 1억 2300만 권 정도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 숫자가 아니다. 이 책들이 전쟁터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가 더 중요하다.

 

신입사원으로 회사에 처음 들어가면 하는 일도 없는데 피곤하다. 주어진 일도 없으니 멍하니 시간만 보낸다. 이때의 무력감과 피곤함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다. 이 무료한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방법으로 독서가 있는데 회사에서 신입사원이 책을 꺼내 읽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용납되지 않는다. 하지만 전쟁터라면 어떨까? 늘 죽음의 공포와 마주하는 곳에 머물고 있다면? 다음 전투까지 그냥 무료하고 무력하게 시간을 죽이고 있다면 어떨까? 이때 그들에게 전달된 책들은 사막의 오아시스 같을 것이다. 책을 좋아했다면 더 좋아할 것이고, 이전까지 제대로 책을 읽지 않는 군인이라면 그 시간을 즐겁고 재밌게 보낼 수 있는 좋은 도구가 생긴 것이다.

 

이 책 이전에 단 한 번도 진중문고를 생각해본 적이 없다. 총알이 날아다니고, 바로 옆에서 앞에서 뒤에서 죽음이 보이는 곳에서 책을 읽었을 것이란 생각을 못했다. 영화나 드라마 등에서 다음 전투를 위해 쉴 때 가끔 책을 읽는 군인들이 있었지만 보통은 다른 방식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2차 대전 당시는 달랐던 모양이다. 병원의 환자라면 그 무료함을 보낼 책이 좋은 선물일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보통의 부대라면 글쎄다. 수많은 에피소드 중 재밌고 놀라운 것은 벙크에 빠진 군인이 포탄이 날아오는 와중에 그 속에서 책을 읽었다는 것이다. 다친 몸을 이끌고 다른 곳으로 이동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설명하지만 놀라운 장면이다. 아마 영화 등에서 이 모습을 보았다면 아주 비현실적이라고 욕했을 것이다.

 

진중문고 이전에는 승리도서란 것이 있었다. 각 가정에 있던 책들이 군대로 보내졌다. 하지만 하드커브 책들은 무겁고 두껍고 휴대하기 불편하다. 하지만 이 책들은 군인들의 열렬한 환대를 받았다. 지치고 무기력한 군인들을 즐겁게 만들어줄 무언가가 필요했는데 이 역할을 책이 맡은 것이다. 결과는 대성공이다. 처음에 보내졌던 기증도서와 달리 군에 의해 제작된 진중문고는 훨씬 가볍고 휴대하기 편하다. 군인의 상의나 하의 속에 접어서 넣을 수 있을 정도다. 언제 어디서나 주머니에서 꺼내 읽을 수 있다. 이런 모양이 책을 처음에는 단순히 이전에 나온 페이퍼백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것과는 달랐다. 이 책 속에 사진이 없는 것은 조금 아쉽다.

 

진중문고의 탄생과 운영을 보면서 한국 군대의 금서 사건이 떠올랐다. 군의 사기를 위해 전쟁 중에 좋은 책들을 선정해서 군인들에게 나눠주었는데 한국은 어떠했는가? 물론 미국에서도 진중문고의 운영을 둘러싼 잡음과 문제가 있었다. 하지만 이것은 진중문고에 대한 열렬한 지지와 환호 속에 사라졌다. 싸게 만들면서 생긴 문제도 있었지만 더 많은 책을 공급하기 위한 노력들은 보는 나로 하여금 단순한 책 한 권의 의미를 넘어섰다. 수많은 진중문고 중에서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는 것은 <위대한 개츠비>다. 다른 작품들이 미국에서 어떻게 읽히는지는 잘 모르지만. 그리고 이 책도 양장본이 아니다. 페이퍼백으로 더 싸게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머릿속에서 뒷주머니에 진중문고를 꽂고 행군하는 군인의 이미지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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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세상에서 커글린 가문 3부작
데니스 루헤인 지음, 조영학 옮김 / 황금가지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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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글린 3부작의 마지막 작품이다. 1부인 <운명의 날>과 2부 <리브 바이 나이트 : 밤에 살다>는 다른 주인공이다. 1부가 형이라면 2부부터 동생 조가 주인공이다. <운명의 날>도 재미있었지만 2부가 개인적으로 더 좋았다. 1부가 역사 소설의 성격이 더 강했다면 2부부터는 스릴러의 장점을 잘 보여주었다. 개인적으로 이 시리즈 중 2부가 최고다. 3부는 제목과 함께 어느 정도 조의 결말을 알고 읽다 보니 긴장감은 조금 떨어졌다. 하지만 역시 변함없는 것이 하나 있다. 속도감과 재미다. 결말을 아는 것과 그 과정을 재밌게 따라가는 것은 또 다른 즐거움이다.

 

전편에서 위기를 탈출한 후 템파에 정착한 조 커글린 이야기다. 시대는 1943년, 한참 전쟁이 전 세계에서 벌어지고 있던 때다. 조는 템파의 유명인이 되었고, 암흑가의 보스 중 한 명이 되었다. 하지만 아일랜드계라는 사실이 그가 마피아의 정점에 서는 것을 방해한다. 보스 자리를 친구 디온에게 물려주고 마피아 커미션의 일원으로 활약한다. 그의 탁월한 사업 능력은 마피아의 자산을 불려준다. 소위 말하는 황금알을 낳는 거위와 같다. 이런 그에게 이상한 정보가 하나 도착한다. 누군가가 그를 죽이려고 한다는 것이다. 남편의 폭력을 참지 못해 그를 죽인 테레사가 감옥에서 보낸 정보다.

 

프롤로그 다음에 바로 테레사 이야기가 나온다. 이 소설을 끌고 가는 가장 중요한 사건 하나를 풀어놓기 위해서다. 테레사의 진짜 직업은 청부살인자다. 남편 살해로 감옥에 간 그녀는 죽음의 위험 아래 놓여 있다. 조의 암살 정보를 가지고 자신의 목숨을 구하려고 한다. 재의 수요일에 암살자가 조를 죽이려고 한다는 첩보다. 이 정보의 대가로 테레사가 원하는 바를 이루어준다. 가장 힘든 것은 테레사를 죽이려고 한다는 인물 킹 루시어스를 만나 협상하는 것이다. 루시어스의 부대가 가진 엄청난 악명을 생각하면 쉬운 일이 아니다. 뛰어난 협상가인 그는 킹을 만나 일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킹이 얼마나 잔혹한 인물인지 알려주는 한 장면을 보여준다.

 

소설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 조를 누가 죽이려고 하는가? 라는 의문으로 이어진다. 이 사이사이에 조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의 유령을 본다. 하나의 암시다. 여기에 흑인 지역에 들어가 이 지역 보스인 먼투스를 죽이려다 실패한 사건이 있었다. 패밀리의 일원이 프레디가 시킨 일이다. 동생 리코 덕분에 한 자리를 차지한 그는 생각하는 능력이 결여되어 있다. 마피아에게는 누가 먼저 공격했는가 보다 백인 두 명이 죽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하다. 복수를 결의한다. 조가 보기에는 멍청한 짓이지만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먼투스가 죽으려고 집밖으로 나오게 하는 것이다.

 

조의 암살을 이미 정해진 사실처럼 계속 진행하다가 하나의 파탄이 드러난다. 이때부터 이야기에 가속도가 붙는다. 이전에도 조의 탁월한 살인 능력이 나오지만 이때는 더욱 빛을 발한다. 물론 자신도 알지 못하는 공포로 실수도 한다. 파국으로 달려가는 조의 삶을 표현하는 하나의 장치다. 적의 의도를 파악하고 그것을 막아내지만 일시적인 것이다. 그가 거부할 수 없는 조직의 힘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어떤 반격을 가할지 궁금해진다. 뒤로 가면서 무너진 세상 속에서 발버둥치는 조가 본 유령의 정체가 드러난다. 이런 유령을 보는 사람이 그 혼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의 죄의식이 만들어낸 환상이자 현실이다.

 

전편에서 아내가 죽은 후 아들 토마스와 행복하게 살고 있다. 시장 아내를 정부를 두고 잘 지낸다. 템파의 암흑가를 완전히 휘어잡았다. 하지만 보스의 자리를 물려 준 후 배후자의 일원으로 살아갈 뿐이다. 출생의 한계 때문이다. 이것이 결국 그의 발목을 잡는다. 인간의 욕심이 끝없이 자란다. 평화로워야 하는 조직에 균열이 생긴다. 뛰어난 살인자인 조이지만 언제나 암살자의 손길을 피해 다닐 수 없다. 이 부분이 이 소설을 읽으면서 가장 가슴 아픈 부분이었다. 한계와 우정을 아주 잘 엮어 놓았기 때문이다. 마지막에 가까워지면서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 중 하나는 토머스가 새로운 조직을 만들어 복수한다는 이야기다. 3부작 중 가장 애잔하다는 평에 완전히 동의하면서 조의 마지막을 떠올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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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주의 가족
그레구아르 들라쿠르 지음, 이선민 옮김 / 문학테라피 / 201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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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에 나왔듯이 가족에 대한 이야기다. 그런데 이 가족이 우리가 흔히 텔레비전이나 한국 소설에서 보는 것과 다르다. 이 다르다는 말이 가족 사이에 애정이 없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들이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 다르다는 의미다. 세 장으로 구성된 이야기 속에 ‘가족이라는 짐’이 들어가 있는 것은 가족의 부정적인 한 단면을 잘 드러내준다. 마지막 장이 제목인 ‘개인주의 가족’인데 현대의 핵가족 현상을 극단적으로 보여준다.

 

일곱 살 아이가 시를 한 편 썼다. 문학적 소질을 인정받았다. 이것이 전부다. 그런데 가족들은 그에게서 작가를 보고, 소설 등을 쓰길 바란다. 아이의 소질은 더 이상 발전하지 못한다. 오히려 퇴보한 것 같다. 부모의 선택은 기숙학교다. 아홉 살에 신경쇠약에 걸렸고, 열 살에는 집을 떠나야했다. 이것이 주인공 에두아르의 유년기 이야기다. 소년은 어른이 되기 전부터 어른들이 바라는 삶을 강요받았다. 이것보다 더한 현실이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으니 낯설지는 않다. 소년의 세계는 축소되고, 대입시험은 겨우 통과한다. 아직도 부모는 소설가에 대한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에두아르는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지 않았다. 여자 친구의 지원 아래 첫 소설을 썼지만 출간되지 못했다. 그녀와 결혼했지만 그녀를 사랑한 것은 아니다.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해야 하나. 아내와 가족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생계는 유지해야 한다. 그래서 선택한 직업이 카피라이터다. 기존 광고를 자신의 감각적 언어로 표현해서 프로필을 돌린다. 브뤼셀의 광고 회사에 취직한다. 언어유희에 재능이 있던 그는 성공한다. 이 성공이 삶을 경제적으로 윤택하게 만들지만 내면은 점점 피폐해진다. 아내와 불화가 생기고, 직장 동료와 섹스를 한다. 성공적인 광고인이 되지만 아내와 딸을 위해 프랑스로 돌아간다.

 

외국의 경력이 그를 바로 채용해줄 정도는 아니다. 하지만 실력이 있다면 언제쯤 빛을 발한다. 그는 광고를 성공시키고, 많은 스카우트 요청을 받는다. 연봉도 올라간다. 백만 프랑이나 된다. 이 돈에 가장 신난 것은 아내 모니크다. 자신이 사고 싶은 물건들을 마구 산다. 멋진 집도 사고 싶어 한다. 이런 일이 있기 전 정신병원에 있던 그의 동생이 추락사한다. 이 사건은 한 번 더 그의 내면을 뒤흔든다. 여동생은 임신한 것을 알린 날 남친에게 버림을 받았다. 홀로 애를 낳는다. 엄마가 돌본다. 하지만 여동생의 삶은 점점 메말라간다. 자신의 삶이 사라졌다. 읽으면서 90년대 프랑스가 이랬나? 하는 의문이 들 정도다.

 

아빠는 덤보로 불린다. 우울증을 앓았고, 나중에는 정신을 놓았다. 에두아르 가족은 산산조각난 것처럼 보인다. 그는 모니크와 딸들과도 헤어졌다. 그가 첫 직장 여성을 사랑했지만 모니크를 사랑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모니크도 마찬가지인 듯하지만 이 사실에 깊은 상처를 받는다. 고액 연봉자의 아내가 되어 부유한 삶을 누리지만 남편 복은 그렇게 없다. 대신 멋진 전 남친이 있다. 불안하고 겉도는 가족이다. 그가 떠날 수밖에 없는 현실이다. 혹시 딸들도 실제 그의 딸들이 아닌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해본다. 작가는 이에 대한 어떤 단서로 보여주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그가 에이즈 음성 판정을 받은 장면이다. 그 시절에 에이즈 양성 판정은 곧 죽음을 의미한다. 그와 함께 한 여성들에게 병을 전염시켰을 수도 있다. 불안감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와중에 눈물이 자연스레 흐른다. 당연하다. 자신의 삶과 타인의 삶도 지켰다. 그리고 크리스마스이브에 호텔에서 함께 누워 진한 키스만 하는 장면이 있다. 삶의 찌들고, 그 무게에 눌린 사람들이 깊은 위로를 나눈 순간이다. 이것은 에두아르가 수많은 여성과 섹스를 해도 얻을 수 없는 것이다. 공감, 위로, 연대, 사랑 등이 필요하다. 조각난 가족 속에서도 그가 발견한 것은 사랑이다. 유별나고 특이한 가족들을 다루지 않지만 가족의 다양한 모습을 본다. 에두아르가 느꼈을 깊은 공허감이 가슴 한 곳으로 살짝 스며든다. 희망과 사랑이 이를 물리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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