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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평점 :
전미 미스터리 상 7개를 수상한 작품이다. 몇 개는 잘 아는 상이고, 몇 개는 낯설다. 잘 아는 상 하나만 받아도 엄청난 광고를 하면서 책을 내는데 무려 7개나 받았다. 이런 수상 경력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해외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수상작은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화려한 수상 작품일수록 더 많은 기대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느낀 것은 과연 이 작품이 미스터리인가 하는 의문과 상을 7개나 받을 만 했는가, 였다. 단순히 미스터리만 놓고 본다면 예상한 결과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강렬한 전개가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 전체를 보면 한 소년의 성장이 가슴 속으로 조용히 파고들면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소설은 1961년 미네소타 주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여름의 기억을 다룬다. 주인공은 열세 살 소년 프랭크 드럼이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다. 2차 대전 당시 장교로 복무했고, 그때 경험한 것 때문에 변호사를 포기하고 목사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작가는 그 당시 있었던 일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쟁 당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보았다. 추측은 가능하다. 1녀 2남 중 둘째인 그는 동생 제이크와 함께 돌아다닌다. 이 여름의 모험도 제이크와 함께였다. 이 모험은 다섯 명의 죽음과 관계있다.
첫 번째 죽음은 친구다. 두 번째 죽음은 떠돌이 부랑자다. 세 번째 죽음은 친 누나다. 네 번째 죽음은 누나의 남자 친구다. 다섯 번째 죽음은 마을 건달이다. 이 죽음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만 연쇄살인이 아니다. 만약에 화려한 수상 이력이 연쇄살인에 의한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포기해라. 누나와 그녀의 남자 친구의 죽음을 제외하면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한참 자라고 있는 소년에게는 다르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의 죽음을 볼 수 있지만 그 사이에 자신의 누나가 끼어져 있다면 다르다. 그것이 사고가 아닌 타살일 경우라면 더욱 더.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적인 부분은 바로 이 죽음에서 비롯한다. 비록 이야기의 흐름 상 금방 혹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소년은 부모가 가지 말라고 한 곳을 그냥 돌아다닌다. 첫 번째 죽음이 있었던 철로에 가고, 다시 부랑자의 죽음을 본다. 이 철로는 나중에 그가 누나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른 죽음들은 이곳과 관계가 없다. 관계가 없다고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아픈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추억 또한 가득하다. 이 기억과 추억은 모자 사이에서 공유되기도 한다. 이때 진한 감정이 가슴 한 곳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이렇게 이 소설은 슬쩍슬쩍 감정을 건드린다. 어떤 때는 즐겁지만 어느 순간은 가슴이 시리다. 부모가 가지는 한계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소년은 이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한다. 이 성장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이다. 아주 직설적이다.
제이크. 이 아이는 말을 더듬는다. 이 때문에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형 프랭크는 제이크의 가장 좋은 친구다. 둘이 돌아다니면서 죽음을 발견한다. 프랭크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온갖 일에 끼어든다면 제이크는 조용한 관찰자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제이크의 관찰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남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었던 소년이 그 존재를 드러낼 때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래도 제이크가 어린 아이인 것은 변함없다. 늘 형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존재감을 드러내었다면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원제는 종교적 색채 가득한 ‘Ordinary Grace'다. ’철로 된 강물처럼‘은 소설 앞부분에 한 부랑자, 사실은 아메리칸 원주민의 말을 통해서 나온다. 처음에 이 한국 제목을 읽고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대목을 읽고 바뀌었다. 그리고 종교적인 색채가 소설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강요된 믿음을 다루지 않고, 고민하고 고뇌하는 목사와 그 가족과 친구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드럼 목사가 보여준 행동과 말 때문이다. 오해와 소문을 배척하고 진실을 마주하려는 그의 노력은 감정을 폭발하려는 아내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 여기도 오해가 끼어있다. 이것을 풀어주는 존재가 바로 두 아들이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잘 읽힌다. 어느 부분에서는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 눈시울을 붉히고, 어떤 대목에서는 저 놈이 범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런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한 소년의 경험과 성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성장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동생 제이크도 함께 한다.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제이크가 있다. 그리고 목사인 아버지가 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 성장은 완전히 다르게 펼쳐졌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에도 신에 대한 믿음과 이성을 잃지 않는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다. 하지만 그 슬픔마저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또 다른 여운으로 가슴 한 곳에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