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수고 스트레스클리닉 소설Blue 4
김근우 지음 / 나무옆의자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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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근우가 작년에 세계문학상을 받은 후 처음으로 낸 청소년 소설이다. 수상작인 <고양이를 잡아먹은 오리>와는 다른 방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낸다. 어쩌면 이전에 판타지 소설을 쓰던 시절과 조금 더 닮았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능력이나 이야기 구성이 그렇게 느껴졌다. 주인공 오자서가 보여준 싸움 능력과 마지막 싸움에서 보여준 잔혹한 장면은 일반적인 청소년 소설에서는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판타지의 주인공처럼 무적은 아니다. 그 당시 공부한 듯한 싸움 장면들이 자연스럽게 묘사되어 있어 더욱 그렇게 생각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스트레스클리닉. 알기 쉬운 이름이다. 여기에 우수고란 학교 이름이 붙었다. 학교에 스트레스를 치료하는 곳이 있단 말인가? 그냥 이름만 놓고 보면 좋은 학교처럼 보인다. 하지만 아니다. 우수고에 대한 설명부터 나오는데 상상을 초월한 이야기들이 나온다. 막장 드라마의 한 장면 같은 일들이 평범하게 벌어지는 학교다. 작가의 표현을 빌리면 똥통 학교다. 이런 학교에 오자서는 전학을 왔다. 이전 학교에서 사고를 쳤기 때문이다. 이 사고는 인터넷을 통해 전국에 알려졌다. 교사 폭행이다. 잘 알지 못하면 ‘이런 패륜이 있나?’하고 분노할 이야기다. 이전에 다녔던 학교가 최고의 외고였던 것을 감안하면 그의 추락은 더 깊다.

 

보통의 소설이라면 순간적으로 분노를 참지 못한 학생의 추락을 다루었을 것이다. 하지만 김근우는 똥덩어리들과의 이야기를 선택했다. 액션을 넣었다. 로맨스도 넣었다고 하는데 그렇게 강하게 와 닿지는 않는다. 첫 장면은 학교에 늘 있는 양아치 무리가 그에게 끝없는 굴종을 요구한다. 이때 한 소녀가 등장한다. 소피아다. 아름답다. 빵 셔틀 정도는 그냥 넘어가려고 했는데 소피아의 멱살을 잡으면서 바뀐다. 간단한 무술 동작으로 세 명의 학생들을 제압한다. 보통 이런 양아치는 그냥 넘어가지 않는다. 더 많은 인원이 모여 그를 괴롭히려고 한다. 옥상에서 싸움이 벌어지려고 하는 순간 한 무리의 학생들이 나타난다. OHSC 멤버들이다.

 

OHSC는 우수고 스트레스클리닉의 약자다. 겉으로는 문학부 동아리 모임이다. 이 모임은 오자서의 입부를 강력하게 권한다. 이전에 저지른 일과 자괴감 등이 교차하면서 이 이상한 무리에 가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는다. 소피아도 이 동아리 일원이다. 이들은 오자서의 가입을 위해 온갖 수단을 다 사용한다. 성 희롱까지 연출한다. 오자서의 반응은 ‘그럼 신고하세요’ 다. 이런 김새는 일이 있나. 담임까지 가세하여 그의 입부를 권유한다. 사실 여 담임이 이 모임의 담당 교사다. 이들이 보여주는 행동과 대사는 전혀 학생의 긴장감도 없고 멍청해 보인다. 대화는 또 얼마나 유치한가. 그런데 재미있다. 늙은 꼰대라서 그런가?

 

평범하지 않을 것이 뻔한 학교생활에 문제가 생긴다. 그의 자전거가 사라진 것이다. 첫 장면의 양아치 정범석이 가져갔다. 그를 데리고 자신들의 아지트로 간다. 그곳에는 이전에 우수고를 다니다가 퇴학당한 도끼라는 양아치가 있다. 도끼는 조폭을 꿈꾼다. 이전에 다녔던 학교 후배를 모아 조직을 만들려고 하는데 쉽지 않다. 이런 때 오자서의 사건이 터진 것이다. 이 현장에 또 다른 한 명이 같이 갔다. 소피아다. 그냥 무릎 꿇고, 몇 대 맞는 것으로 상황을 벗어나려고 하는데 꼬인다. 칼이 등장하고, 이 칼로 오자서의 손을 찌르라고 하면서부터다. 이때 정범석에게서 놀라운 말이 나온다. 평범한 삶을 꿈꾸는 말이다. 도끼는 폭발하고, 오자서는 분노하면서 달아난다. 다시 싸움이 벌어지고, 상처를 입지만 이긴다. 팔에 칼이 찔린 것 때문에 병원에 가야 하나 이를 거부한다. 둘은 오자서의 할아버지가 그에게 물려준 집으로 간다. 여기서 소피아의 이야기가 나온다. 아직 오자서의 사연은 숨겨져 있다.

 

이 이후 이어지는 이야기는 양아치들로부터 오자서를 보호하려는 OHSC 멤버들의 이상한 동행과 협력과 마지막 대결이다. 그리고 왜 그 좋은 학교에서 교사를 폭행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사연까지. 이 장면을 읽으면서 자연스럽게 작가에게 눈길을 돌렸다. 어디까지 자신의 경험담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우리는 어느 순간인가부터 화를 내야 하는데 그 화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냥 그대로 받아들이고, 화 내는 사람을 이상하게 쳐다본다. 건강하지 못한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오자서란 이름을 아버지가 왜 지어주었고, 이 이름에 걸맞은 행동을 보여준 그의 다음 행동은 누구나 예상할 수 있다. 그래서 책을 덮은 후 오자서의 다음 학교생활이 궁금해졌다. 1년에 한 권 정도 시리즈로 내주면 좋을 텐데. 아니면 영화나 미니시리즈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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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들의 탐정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69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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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라 료의 유일한 단편집이다. 유일하다고 했지만 실제 그가 낸 책은 모두 여섯 권에 불과하다. 이 중 한 권은 에세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일본 하드보일드 작가 중 가장 좋아하는데 내놓은 작품이 너무 적다. 아주 불만이다. 이 여섯 권의 출간물 중에 번역된 것도 네 권뿐이다. 이 또한 불만이다. 한 편으로는 아직 읽지 않은 작품이 있다는 사실에 괜히 흐뭇해지기는 한다. 그래서 하라 료의 책이 나온다고 하면 눈이 평소보다 더 오랫동안 머문다. 하드보일드 소설에 그렇게 빠진 적이 없는데 이 작가는 나를 사로잡았다.

 

모두 여섯 편의 단편이 실려 있다. 이 책이 출간된 것도 1997년으로 나온다. 실제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시기는 80년대다. 이제는 아련한 기억 속의 시대다. 작가는 한국인을 등장시켜 한국 역사에 있었던 중요한 사건 하나를 소재로 사용한다. 바로 그 유명한 김대중 납치사건이다. 그리고 88 서울 올림픽도 나온다. 이 사건들이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다. 단지 배경 이야기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시대와 인물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라고 해야 할까. 내가 알고 있는 사건들이 나올 경우는 이처럼 흥미롭겠지만 모르는 사건이라면 그냥 지나갈 수밖에 없다. 어떻게 보면 불친절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 단편집엔 공통적인 부분이 하나 있다. 십대 소년 소녀들이다. 사와자키가 이들의 탐정이 되는 것도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다. 의뢰가 들어오고, 조사를 하다 보니 그들과 이어진다. 그렇다고 이 십대들의 이야기를 사회문제와 깊숙하게 연관시켜 풀어내는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시대의 모습 중 일부를 간결하면서 강렬하게 표현했을 뿐이다. 물론 나의 무지 때문인지 모르지만 첫 단편은 약간 의외의 내용이다. 은행 강도가 나오기 때문이다. 일본에 은행 강도가 많았다고 말하는데 쉽게 납득이 되지 않는다. 작가가 그냥 적은 것인지 사실인지. 물론 아주 큰 은행 강도 사건들이 있었다는 것은 알고 있다.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사건이라는 부분이 어색하게 다가올 뿐이다.

 

<소년이 본 남자>는 한 초등학생의 의뢰가 예상하지 못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처음에는 하룻 동안의 보디가드 역할이었는데 은행 강도 사건으로 바뀐 것이다. 이 현장을 직접 경험한 사와자키는 이 사건의 뒤에 감추어져 있던 진실을 파헤친다. 간결하면서도 묵직하다. <자식을 잃은 남자>는 미스터리 요소보다 한국인이 등장하고 그와 연결된 사건들 때문에 시선을 끌었다. 앞에 적은 그 사건들 말이다. 한 뺑소니 사건이 과거를 불러와 예상하지 못한 이야기들을 널어놓게 한다. <240호실의 남자>는 하나의 의뢰가 끝난 후 그 의뢰자의 죽음으로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 자신이 살인자라고 주장하는 속에 진실은 미묘하게 숨겨져 있다. 그가 말하는 징크스에 괜히 한 번 더 눈길을 준다.

 

<이니셜이 ‘M'인 남자>는 한 통의 잘못 걸려온 전화로 시작한다. 자살하겠다는 전화다. 보통 소녀가 아닌 여자 가수다. 아마 연예인이 아니었다면 제대로 알지도 못했을 사건이다. 자신이 하나의 알리바이가 된 사건이지만 사와자키의 촉은 그 뒤에 숨겨진 진실에 좀 더 다가간다. 십대의 불안과 충동은 예상하지 못한 결과로 이어진다. <육교의 남자>는 손자를 찾는 할머니 이야기다. 하지만 할머니도 손자도 이야기의 중심은 아니다. 이 조사를 한 탐정이 육교에서 굴러 떨어진 사건에서 의문이 생긴다. 범인은 누굴까 하고. 그런데 나의 호기심은 그 손자가 저지른 사건들이 무엇이기에 그렇게 숨길까 하는 의문으로 이어졌다. 잔혹한 십대 범죄의 총합 같다. 거대한 재산은 바쁜 소식과 불안 등과 엮이면서 다른 사건을 부른다.

 

<선택받은 남자>는 한 소년의 전화가 어머니를 불안하게 만들고, 이것이 사와자키의 의뢰로 이어진다. 재미난 점은 사와자키와 함께 소년의 찾는 시의원 출마자 구사나기다. 나의 삐딱한 시선은 구사나기의 반전을 끝없이 기대했다. 그러나 이것은 미스터리를 오랫동안 읽은 탓에 벌어진 나쁜 상상일 뿐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집중을 못했는데 권말에 나온 <탐정을 지망하는 남자>와 이어지면서 나를 즐겁게 만들었다. 이 간단한 단편은 사와자키가 어떻게 탐정이 되었는지, 십대들이 흔히 상상하는 세계가 얼마나 허황된 환상인지 적나라하게 말해준다. 책으로 엮지 않았다면 나오지 않았을 단편이라 더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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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윤후명 소설전집 1
윤후명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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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후명의 소설을 오랜만에 읽었다. 처음에 윤후명 소설전집 1권이라고 해서 옛날 작품들만 실려 있다고 착각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한 편을 제외하고 모두 신작이다. 그 한 편은 신춘문예 당선작품인 <산역>이다. 마지막에 나오는데 앞에 나온 아홉 편과 분명히 다른 이야기와 구성이다. 작가와의 사전 인터뷰를 보면 이 소설전집이 하나의 소설이 되기를 바랐고, <산역>이 강릉을 배경으로 한 작품이라 같이 실었다고 한다. 재미있는 시도이자 편집이다.

 

작가의 말에서 이 단편집을 ‘강릉 호랑이에 대한 소설’이라고 말한다. 모르고 읽었을 때 왜 자꾸 강릉 호랑이와 처녀 머리가 나올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강릉이란 단어와 더불어 가장 의미있는 단어가 바로 강릉 호랑이, 처녀 머리, 헌화가, 바다, 시, 어머니 등이기 때문이다. 연작소설이란 이름을 붙여도 전혀 어색함이 없지 않을까 생각한다. 다양한 나라, 인물, 상황, 시간 등을 배경으로 쓴 소설이지만 공통적인 부분이 계속해서 나오기 때문이다.

 

작가의 시와 소설을 모두 읽은 것도 아니고 몇 편이라도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상태라 소설 속에 인용된 시나 단편들이 실제 작품들과 얼마나 연결되어 있는지 모른다. 이 긴 문장을 쓴 것은 각 단편 속에 나오는 시들과 단편들 때문이다. 어떤 작품에서는 아예 노골적으로 자신의 이름이 나와 사실과 허구 사이의 경계를 무너트리기도 했다. 재미있는 것은 작가의 작품은 그대로 적어 놓고 이름은 같이 표기하지 않은 것이다. 덕분에 저질 기억력을 탓하며 인터넷으로 정확한 이름을 검색해야만 했다.

 

소설 속에서도 나오지만 작가는 강릉의 문화작은도서관 명예관장이다. 이 제안이 이 작품집을 쓰게 된 계기라고 한다. 여덟 살에 떠나 일흔 살이 되어 돌아왔다고 하는데 이 말 그대로 믿기는 어렵다. 상징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강릉이라는 지명으로 한정한 듯하지만 실제 그 지역은 강원도 전역이라고 해도 그렇게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물론 내륙지방은 조금 제외해야 할 것이다. 지금은 잘 다니지 않는 대관령이 계속해서 나오지만 검색하니 평창과 강릉의 경계에 있는 고개라고 한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이번에도 윤후명의 소설은 나의 가슴 깊은 곳으로 파고들지 못했다. 한두 편 정도는 관심을 끌고, 흥미로웠지만 이어지는 이야기들이 나의 호기심을 조금씩 차단했다. 강릉 호랑이와 처녀 머리가 반복되면서 더욱 그랬는지 모른다. 개인적으로 가장 재미있었던 작품은 <알타이족장께 드리는 편지>다. 편지란 형식을 빌려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고대사와 엮은 부분은 조금 생각이 갈렸지만 ‘아름답다’란 말에 대한 집착이 시선을 끌었다. <바위 위의 발자국>은 몽환적인 부분이 있는데 하일지의 소설을 읽는 듯한 느낌도 살짝 들었다.

 

<핀란드 역의 소녀>는 그림에 대한 감상이 엇갈리지만 탈북자에 대한 이야기가 조용히 가슴속으로 파고들었다. 과거의 이야기 속에 다른 이야기를 넣어 조금 복잡하게 만드는데 이 부분에 제대로 적응을 하면 큰 재미를 느끼지만 왠지 이 단편집에서는 그렇게 강하게 느끼지 못했다. 현실과 추억과 환상과 기억들이 시와 뒤섞이면서 살짝 집중력을 깨트린 것이다. 더 집중해서 읽었다면 문장의 호흡과 시를 많이 즐겼을지 모르지만 아직 작가와의 궁합이 맞지 않는 모양이다. 예전에 멋모르고 시집을 읽었을 때와 비슷한 느낌이랄까. 다음에 다른 소설집을 다시 읽고, 구성에 적응한다면 집에 사놓고 묵혀놓은 소설의 먼지를 털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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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개
무라야마 유카 지음, 김난주 옮김 / 예문사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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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한국에서만 자란 나에게 한국인이란 정체성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어릴 때 미국에서 자랐고, 아버지의 자살 이후 일본에서 자랐다면 어떨까? 일본에서 자라는 동안 다른 일본 사람들과 동화되지 못하고 있다면. 자신이 미국인이라고 생각하고 뉴욕에서 살지만 그녀를 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미국인이라기보다 오히려 일본인이다. 생김새는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백인이 아닌 사람이 미국에서 살게 되면 늘 겪게 되는 이야기가 이 소설에 실려 있다. 미국에 대한 환상을 지우고, 자신의 과거와 마주하면서 현실을 긍정하는 과정을 다룬다. 미국 국적의 일본인 마후유와 백인과 나바호 족의 혼혈인 브루스가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마후유는 불행한 과거를 가지고 있다. 공금횡령을 한 아빠가 총기 자살을 하는데 바로 죽지 않았다. 문제는 이 죽어가는 과정을 마후유가 본 것이다. 아빠의 죽음 후 일본에 돌아왔는데 엄마는 이상한 종교에 빠졌다. 그리고 아이를 학대한다. 사랑이라고 부르면서 폭력을 가하고, 아이의 존재가 주변 사람들에게 불행을 가져다준다고 말한다. 이 주문은 마후유가 평생 껴안고 살아야 하는 저주가 된다. 이 소설의 시작도 바로 이 과거를 정신과 의사에게 일부 말하면서다. 이 의사는 그녀의 남자 친구 랠리가 소개했다. 둘은 친구다. 이 상담을 통해 마후유의 과거를 알게 된다.

 

불행은 언제나 몰래 다가온다. 마후유에게 최악의 사건은 이제 랠리의 죽음이다. 그것도 결혼식 당일 마트 강도의 총을 맞고 죽었다. 이 죽음을 읽고 처음에는 뭐지?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당연히 랠리가 마후유를 돌봐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진짜 이야기는 이때부터다. 장례식을 치르기 위해 승용차를 타고 루트 66을 달리면서 시작한다. 뉴욕의 이야기가 도입부라면 루트 66부터는 본격적으로 마후유와 브루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리고 마후유와 랠리의 아들 팀이 랠리 가족들과 함께 머문다. 숨겨진 가족 이야기가 조금씩 나온다. 예상하지 못한 관계가 나오면서 복잡한 가족 관계와 감정이 뒤섞인다.

 

마후유는 자신을 머피로 불러달라고 한다. 마후유가 진짜 겨울을 의미하고, 이 이름 때문에 일본에서 많은 놀림을 받았기 때문이다. 아빠의 자살과 엄마의 학대는 그녀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막는다. 랠리의 사건은 이것을 더 심화시킨다. 이 기억은 랠리의 아들 팀이 아동 성애자에게 학대되는 것을 보고 더 강해진다. 하지만 자신과 팀은 다르다. 그는 방치되고 학대받았지만 팀은 머피를 비롯한 다른 가족들의 관심과 사랑을 받는다. 팀은 백인인 랠리와 인디언 엄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이다. 브루스처럼. 이 점은 둘이 쉽게 친해지는데 중요한 열쇠가 된다.

 

브루스의 나바호 족 이름은 이글하트다. 그의 인디언 할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이다. 하지만 대외적으로 그는 브루스로 불린다. 인디언들이 아니면 이글하트로 불러주는 사람이 없다. 브루스는 냉담하고 냉소적인 것처럼 보이는데 여기에는 불행한 과거와 이유가 있다. 이 과거가 드러날 때 이야기는 또 바뀐다. 브루스를 통해 현재 인디언이 처해 있는 상황을 적나라하게 들여다본다. 관광 상품으로 변한 인디언들과 알코올 중독자가 된 인디언들 말이다. 그리고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머피와 동일한 고민을 가지고 있다. 비록 머피보다 훨씬 잘 벗어났지만 또 다른 굴레가 그를 덧씌우고 있다.

 

일본 작가가 썼지만 읽으면서 등장인물과 소재들 때문에 일본 소설처럼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중간에 이것을 되돌리는 단어나 표현이 등장하지만. 과거와 현재 이야기가 나오고, 서로의 이익이 엮이면서 만들어내는 이야기는 빠르게 읽히면서도 묵직하다. 첫 장에서 정신과 의사가 등장하여 마후유의 과거를 보여준다면 그 다음부터는 인디언 영매가 이 과거에 매몰된 채 살아가고 있는 그녀를 일깨운다. 물론 이것이 쉽게 될 리가 없다. 현실을 그대로 본다는 것은 아주 힘들다. 그것이 무서워 도망했을 때는 더욱. 그런 점에서 마후유가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앞으로 한 발 나아가기로 한 결정은 이 소설이 보여주고자 한 부분이다. 마지막 장면들이 보여주는 현실은 그래서 더욱 강한 여운을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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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로 된 강물처럼
윌리엄 켄트 크루거 지음, 한정아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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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미 미스터리 상 7개를 수상한 작품이다. 몇 개는 잘 아는 상이고, 몇 개는 낯설다. 잘 아는 상 하나만 받아도 엄청난 광고를 하면서 책을 내는데 무려 7개나 받았다. 이런 수상 경력은 늘 관심의 대상이다. 해외 작품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런 수상작은 하나의 기준점이 된다. 화려한 수상 작품일수록 더 많은 기대를 하는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 소설을 읽어 나가면서 느낀 것은 과연 이 작품이 미스터리인가 하는 의문과 상을 7개나 받을 만 했는가, 였다. 단순히 미스터리만 놓고 본다면 예상한 결과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렇게 강렬한 전개가 아니었다. 그러나 소설 전체를 보면 한 소년의 성장이 가슴 속으로 조용히 파고들면서 진한 여운을 남긴다.

 

소설은 1961년 미네소타 주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여름의 기억을 다룬다. 주인공은 열세 살 소년 프랭크 드럼이다. 그의 아버지는 목사다. 2차 대전 당시 장교로 복무했고, 그때 경험한 것 때문에 변호사를 포기하고 목사가 되었다. 무슨 일이 있었을까 하는 호기심이 생겼지만 작가는 그 당시 있었던 일을 제대로 설명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그 전쟁 당시 있었던 수많은 일들을 다른 작품들을 통해서 보았다. 추측은 가능하다. 1녀 2남 중 둘째인 그는 동생 제이크와 함께 돌아다닌다. 이 여름의 모험도 제이크와 함께였다. 이 모험은 다섯 명의 죽음과 관계있다.

 

첫 번째 죽음은 친구다. 두 번째 죽음은 떠돌이 부랑자다. 세 번째 죽음은 친 누나다. 네 번째 죽음은 누나의 남자 친구다. 다섯 번째 죽음은 마을 건달이다. 이 죽음은 순차적으로 일어나지만 연쇄살인이 아니다. 만약에 화려한 수상 이력이 연쇄살인에 의한 것이라고 기대했다면 포기해라. 누나와 그녀의 남자 친구의 죽음을 제외하면 아무 관계가 없다. 하지만 한참 자라고 있는 소년에게는 다르다. 삶을 살아가는 동안 몇 번의 죽음을 볼 수 있지만 그 사이에 자신의 누나가 끼어져 있다면 다르다. 그것이 사고가 아닌 타살일 경우라면 더욱 더. 이 소설에서 미스터리적인 부분은 바로 이 죽음에서 비롯한다. 비록 이야기의 흐름 상 금방 혹은 자연스럽게 알게 되지만.

 

호기심이 왕성한 소년은 부모가 가지 말라고 한 곳을 그냥 돌아다닌다. 첫 번째 죽음이 있었던 철로에 가고, 다시 부랑자의 죽음을 본다. 이 철로는 나중에 그가 누나의 시체를 발견하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다른 죽음들은 이곳과 관계가 없다. 관계가 없다고 그 중요성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곳은 아픈 기억이 존재하는 곳이지만 추억 또한 가득하다. 이 기억과 추억은 모자 사이에서 공유되기도 한다. 이때 진한 감정이 가슴 한 곳에 조용히 스며들었다. 이렇게 이 소설은 슬쩍슬쩍 감정을 건드린다. 어떤 때는 즐겁지만 어느 순간은 가슴이 시리다. 부모가 가지는 한계도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소년은 이 과정을 통해 조금씩 성장한다. 이 성장은 내가 전혀 예상하지 못한 방식이다. 아주 직설적이다.

 

제이크. 이 아이는 말을 더듬는다. 이 때문에 동네 아이들에게 놀림을 받는다. 형 프랭크는 제이크의 가장 좋은 친구다. 둘이 돌아다니면서 죽음을 발견한다. 프랭크가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온갖 일에 끼어든다면 제이크는 조용한 관찰자다. 처음에는 이 부분이 부각되지 않는다. 하지만 뒤로 가면서 제이크의 관찰은 아주 큰 비중을 차지한다. 남들에게 놀림의 대상이었던 소년이 그 존재를 드러낼 때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그래도 제이크가 어린 아이인 것은 변함없다. 늘 형의 뒤를 따라 다니면서 많은 것을 보고 듣고 경험하기 때문이다. 만약 처음부터 존재감을 드러내었다면 완전히 다른 소설이 되었을 것이다.

 

원제는 종교적 색채 가득한 ‘Ordinary Grace'다. ’철로 된 강물처럼‘은 소설 앞부분에 한 부랑자, 사실은 아메리칸 원주민의 말을 통해서 나온다. 처음에 이 한국 제목을 읽고 뭐야! 하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대목을 읽고 바뀌었다. 그리고 종교적인 색채가 소설 곳곳에 녹아 있다. 그런데 그렇게 불편하지 않다. 강요된 믿음을 다루지 않고, 고민하고 고뇌하는 목사와 그 가족과 친구들이 나오기 때문이다. 드럼 목사가 보여준 행동과 말 때문이다. 오해와 소문을 배척하고 진실을 마주하려는 그의 노력은 감정을 폭발하려는 아내에게 오히려 독이 된다. 여기도 오해가 끼어있다. 이것을 풀어주는 존재가 바로 두 아들이다.

 

다루고 있는 주제가 결코 가볍지 않지만 잘 읽힌다. 어느 부분에서는 감정이입이 심하게 되어 눈시울을 붉히고, 어떤 대목에서는 저 놈이 범인이 아닐까 추측한다. 이런 일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흐려지고 한 소년의 경험과 성장이 눈에 들어온다. 그 성장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다. 동생 제이크도 함께 한다. 중요한 순간에는 항상 제이크가 있다. 그리고 목사인 아버지가 있다. 만약 그가 없었다면 이 성장은 완전히 다르게 펼쳐졌을 것이다. 사랑하는 딸의 죽음에도 신에 대한 믿음과 이성을 잃지 않는 그는 진정한 신앙인이다. 하지만 그 슬픔마저 완전히 없앤 것은 아니다. 그가 흘린 눈물은 또 다른 여운으로 가슴 한 곳에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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