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6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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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할머니다. <오베라는 남자>가 자살을 꿈꾸는 할아버지였다면 말이다. 하지만 소설을 이끌어 나가는 주인공은 조금 있으면 여덟 살이 되는 일곱 살 꼬마 소녀 엘사다. 한국으로 따지면 초등학교 2학년 정도인 이 소녀는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하나의 강박증 증세가 있는데 그것은 맞춤법이 틀리면 빨간 펜으로 고치는 것이다. 그리고 상당히 똑똑하다. 모르는 단어가 나오면 위키피디아를 검색하여 학습한다. 버릇없고 잘난 척 하는 꼬마로 보일지 모르지만 엘사에게는 최고의 후원자가 있다. 바로 할머니다. 그녀의 특이함을 인정하고 이것을 그대로 인정받을 수 있도록 늘 노력한다. 이런 멋진 할머니가 암으로 죽는다. 본격적인 이야기는 이때부터 시작한다.

 

엘사의 집안도 결코 평범하지 않다. 할머니는 외과의사였다. 그 시절에 여자가 외과의사가 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일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사회의 편견과 싸웠고 자신이 바라는 바를 성취했다. 그리고 자신의 능력이 필요한 곳이라면 세계 어느 곳이나 달려갔다. 전쟁터, 지진이 난 곳, 쓰나미가 몰려온 곳 등이다. 하지만 이 활동이 딸에게는 좋은 엄마가 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했다. 엘사의 엄마 울리카가 그런 경우다. 가장 필요했던 순간 엄마는 곁에 없었다. 마음의 상처로 남아 있다. 그리고 엄마는 완벽주의자이고 병원의 경영자로 늘 휴대전화를 들고 산다. 왠지 그녀의 엄마와 닮았다. 그렇지만 할머니가 있다.

 

이 할머니 특이하고 괴팍하다. 손녀를 위해서라면 무엇이든지 한다. 한밤중에 동물원에 침입할 정도다. 엄마의 동거남 있는 곳에서 나체로 다니기도 한다. 공공장소에서 담배를 피우는 것은 일도 아니다. 주변사람들과 투닥투닥 싸우는 것을 멈추지 않는다. 그냥 보면 ‘뭐 이런 노인네가 있나’ 할 정도다. 하지만 할머니가 죽고 그녀가 남긴 편지를 사람들에게 전달하면서 그녀의 삶과 공동주택 거주자들의 삶이 하나씩 풀려나온다. 결코 평범하지 않은 그들의 삶이 말이다. 이 삶은 그녀가 손녀인 엘사에게 들려준 이야기 속에 녹아 있었다. 만들어 들려준 동화는 현실에 바탕을 둔 것이기 때문이다. 엘사가 편지를 하나씩 전달할 때마다 동화 속 등장인물들이 현실과 이어진다.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말한 편지를 하나씩 찾아가는 과정이 하나의 미션 게임처럼 다가온다. 하나의 편지를 찾을 때마다 동화가 현실과 연결되면서 할머니의 삶과 그 사람들의 삶이 풀어져 나온다. 이 과정은 꽁꽁 얼어 있던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가 늘 하나의 선입견 속에 묻어두었던 이웃의 인상을, 삶을 새롭게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과정은 결코 유쾌하지 않다. 아니 풀어가는 과정은 웃음을 자아낼 정도로 유쾌하지만 그 사연이 드러날 때 숙연해지고 슬프다. 그들의 아픔이 올올히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아픔과 고통이 그들의 삶을 왜곡하고 뒤틀고 달아나게 만든다. 이런 이들을 현실 속에 다시 나타나고, 함께 어울리고, 자신의 감정을 토해내게 하는 역할을 엘사가 맡고 있다. 세상의 모든 일곱 살짜리에게는 슈퍼 히어로가 있어야 한다고 말하는 그 꼬마가.

 

손녀에게 들려준 동화가 현실과 연결되는 구성이다. 그 속에 강한 개성을 가진 인물들을 등장시켜 잠시도 조용히 있지 못하게 만든다. 일곱 살 아이가 상상하는 일도 다루지만 그 꼬마 아가씨가 던지는 질문은 놀랍고도 직설적이다. 이때 꼬인 상황을 단숨에 파악하게 만든다. 평범하지 못한 아이는 보통의 학교에서 배척당한다. 이 때문에 열심히 달려야 한다. 이와 관련된 에피소드 또한 재미있다. 물론 늘 재미있지는 않다. 다른 학생들에게 쫓기는 모습이 결코 재미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엘사가 이를 극복해나가는 모습은 당당하다. 이 당당함이 재미와 즐거움을 주는 반면 아이의 한계도 분명하게 보여준다. 이전에도 그랬지만 잘 넘어가는 소설이고, 중반보다 후반부가 더 강한 재미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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