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시르와 왈츠를 - 대량학살된 팔레스타인들을 위하여, 다른만화시리즈 02 다른만화 시리즈 2
데이비드 폴론스키, 아리 폴먼 지음, 김한청 옮김 / 다른 / 2009년 2월
평점 :
품절


영화를 그래픽노블로 만든 작품이다. 영화는 아직 보지 못했다. 애니와 다큐의 결합된 형태라고 하는데 이곳저곳에서 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이 책을 펼치기 전까지 나의 기억은 순서가 뒤바뀌었다.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가 만들어진 것으로 착각한 것이다. 모니터를 통해 책소개를 읽다 보면 가끔 이런 실수를 한다. 집중력이 책으로 볼 때보다 많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실수가 예상하지 못한 즐거움을 주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그래도 책에 대한 정보를 제대로 알고 읽으면 그 깊이가 조금은 더 달라진다.

 

2006년 1월에서 이야기가 시작한다. 친구 보아즈가 스물여섯 마리의 개가 등장하는 꿈을 20년 동안 꾸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다. 그는 레바논과 살육현장에 대해 말한다. 하지만 ‘나’는 기억하지 못한다. 그러다 그 기억의 단편이 떠오른다. 이제 이야기는 현재와 과거를 교차하기 시작한다. 현재는 자신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지식과 정보고, 과거는 친구와 그 시절을 같이 했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되살아난다. 이 기억은 너무나도 끔찍한 것이라 방어기제의 작동으로 잊고 있던 것이다. 그리고 1982년의 끔찍했던 레바논 전쟁 속으로 조금씩 빠져들어간다.

 

제목에 나오는 바시르는 주인공 이름이 아니다. 레바논 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폭탄 테러로 사망한 바시르 제마엘을 말한다. 그는 기독교 민병대(팔랑헤당)의 지도자고, 친이스라엘 꼭두각시 정권을 세우려는 인물이었다. 그의 죽음은 이스라엘과 팔랑헤당의 분노를 불러왔다.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를 잡는다는 명분 아래 난민촌에 진입한다. 이때는 이미 테러리스트들이 떠난 후다. 하지만 피의 복수를 원했던 그들은 최대 3000명까지 추정되는 무고한 사람들을 학살한다. 문제가 더 되는 것은 이 현장을 보았음에도 이스라엘은 어떠한 행동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조명탄을 계속 쏘아 그들의 학살을 도와주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을 다룬 것이 이 영화다.

 

영화를 통해 보는 전쟁은 스릴 넘치고 재미있다. 하지만 현실은 참혹하다. 상상을 초월하는 참혹함이 있다. 전쟁을 경험한 수많은 사람들이 트라우마를 앓고 있는 것은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이 경험을 다룬 수많은 작품이 등장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 시대의 고통은 피해자와 가해자 모두에게 전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뒤에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말로만 명령을 내린 사람들에게는 해당되지 않을 것이다. 이 책에서 등장하는 한 장면은 그래서 인상적이다. 어떻게, 왜라는 질문에 그냥 하라고 하는 장면이다. 흔히 군대에서 하는 말로 ‘까라면 까’와 닮아 있다. 늘 해왔다는 표현 속에 이성은 마비되고, 감정은 메말라 간다. 뇌는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기억을 묻어버린다. 이 작품은 그 기억을 캐내는 과정을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예상한 것보다 강하게 다가오지 않았다. 자극적인 장면을 자제한 것도 이유지만 이 당시 정치 상황에 대해 무지했기 때문이다. 레바논 전쟁에 대한 지식이 있는 사람들은 간단하게 말하고 지나간 것의 의미를 쉽게 알 수 있겠지만 나처럼 외국인이고 중동 정세에 무지한 사람들은 잔혹한 학살이 있었던 그 밤의 장면만 남는다. 그리고 이 장면을 오랫동안 다루지도, 잔혹하게 그려내지도 않았다. 왜 이런 상황이 벌어졌는지도 쉽게 알 수 없다. 그래서 관련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하고, 책 속 정보들을 꼼꼼하게 읽어야 한다. 여기에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 빠져 있다. 당시 국방장관 아리엘 샤론이다. 잠깐 등장하지만 그의 역할에 대한 설명이 없다. 그래서 이 영화에 대한 아쉬움이 많았던 모양이다. 샤론이 이스라엘 총리가 된 이스라엘과 독재자의 딸이 대통령이 된 한국을 비교하면 또 다른 수많은 이야기 거리가 나오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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