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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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개봉하게 될(2016.8.10. 그러고 보니 내일이다.) 영화 ≪터널≫의 원작소설인 소재원 작가의 『터널』을 읽고 난 후 한 동안 힘들었다. 책에 대한 서평도 쉽게 쓸 수 없었다. 결국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난 후에야 서평을 써 본다.

 

소설은 우선 재미있었다. 이걸 재미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나? 슬프고, 화가 나고, 안타깝고, 때론 황당하며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소설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 재미라 표현해 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여러 차례 책장을 덮고 숨고르기를 해야만 했다. 몰입도도 높고,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책을 읽는 시간이 여타 책에 비해 조금 더 걸렸다. 과연 터널에 갇힌 이정수씨가 어떻게 될까? 그 가족은 또 어떤 결말을 만나게 될까?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끝을 알고 싶지 않은 이율배반적 감정에 책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던 순간도 많았다.

 

사랑하는 이가 터널 안에 갇혀 있음에도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박감 앞에 함께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 먹먹한 가슴을 어루만져야만 할 때도 많았다.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 가정을 향해 전해지는 수많은 이들의 격려와 위로. 특히,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의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책을 읽지 못할 정도였다.

 

뿐인가. 뇌물수수와 부실공사로 터널이 무너져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었음에도 그 일에 대해 반성하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보다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피해자 가족의 슬픔도 외면하며,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가진 자들의 그 뻔뻔한 죄악성 앞에는 자꾸 분노가 끓어올라 분노를 식히느라 책을 덮던 적도 잦았다. 자신들의 잘못에도 당당한 자들. 그리고 그들의 공작에 미혹되는 군중들. 마치 정의를 부르짖는 양 약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횡포 아니 그들의 광기 앞에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소설 속의 내용은 분명 극도로 과장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 속에는 없다 말할 수 없는 내용이기에 가슴 답답하고 먹먹하다. 아니 어쩌면 우린 이런 모습들을 이미 수차례 보고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소재원 작가의 『터널』은 재난소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재난소설은 아니다. 일반적인 재난 소설이 재난 속에 피어오르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한다면, 『터널』은 휴먼이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악마성을 재난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무너져 내린 터널과 그 안에 갇힌 생명을 구해내고자 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 현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한다.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는 자신들의 단단한 권력의 아성을 먼저 생각하는 가진 자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특히, 우린 이런 모습을 제법 봐왔기 때문이다. 뿐 아니라 소설은 재난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시청률을 챙기려는 방송매체의 상실한 방송윤리 역시 고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설이 문제제기를 하는 점은 군중의 권력화다. 정의를 세운다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감정을 쏟아 붓는 것에 불과한 군중의 횡포 그 광기는 가히 더할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다. 이런 군중의 폭력성이 위험한 것은 무엇보다 분별력의 상실에 있다. 방송미디어와 권력자들의 공작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군중의 어리석음. 여기에 더하여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 그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실수를 감추기 위해 더욱 광기어린 폭력의 날을 세우는 군중들의 모습 등을 소설을 보여준다.

 

이런 수많은 모습들이 여러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출판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작가의 말에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불편하다 하여 외면한다면 우리 역시 같은 가해자, 익명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때론 불편해도, 때론 읽기 힘겨울지라도 외면하기보다는 작가의 질문에 마주 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 속의 내용들, 그 부끄러운 모습들이 우리네 삶 속에 실재하지 않기만을 기원해본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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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로큰 그레이스
E. C. 디스킨 지음, 송은혜 옮김 / 앤티러스트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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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스는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자동차 시동을 건다. 그리고 급히 도망친다. 누군가 자신을 쫓는 차량을 피해, 경찰서를 향해. 급히 속력을 내보지만, 갑자기 뛰어든 사슴을 들이박게 되고, 이어진 사고로 의식을 잃는다. 8일후 깨어난 그레이스는 모든 기억이 지워졌음을 알게 된다. 과연 자신에게 어떤 일이 벌어진 것인지. 자신은 누구이며, 어떤 사연을 가지고 있던 건지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이제 그레이스는 자신의 언니라는 리사의 돌봄을 받으며, 기억을 되찾기 위한 사투를 벌인다. 과연 그레이스는 기억을 되찾게 될까? 되살아난 기억은 그레이스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올까?

 

E. C. 디스킨의 『브로큰 그레이스』는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이다.

 

“매우 예기치 않은 놀라운 결말!”

“한번 읽기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다.”

“빠른 속도감으로 페이지가 잘 넘어간다.”

“디스킨은 무서운 서스펜스의 마스터!”

 

이런 수많은 찬사가 따르는 소설답게 재미나다. 찬사 그대로 술술 읽힌다. 과연 어떤 결말이 기다릴까 기대되는 마음으로 책을 떨칠 수 없다. 그럼에도 아쉬움이 없는 건 아니다. 소설 앞부분부터 독자는 범인이 누구일지 짐작하게 된다. 물론, 이 역시 소설 마지막 부분의 대반전을 노린 밑밥이기도 하지만, 그럼에도 소설을 시작하며 갖게 된 독자의 확신이 완전히 틀린 것은 아니다. 아울러 마지막 예기치 않은 대반전 역시 이런 결말로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품게 하는 부분이기도 하다(솔직히 이 마지막 반전은 반전을 위한 반전이 아니었나하는 아쉬움도 있다.). 그럼에도 재미나다. 모르고 속아야만 재미난 건 아니기에. 비록 결말이 어느 정도 그려진다 할지라도, 작가가 끌고 가는 스토리가 재미나면 그만이다.

 

기억을 조금씩 되찾아가는 그레이스를 향해 뻗어오는 마수가 누구 것일지 짐작되지만, 그럼에도 쫄깃쫄깃 긴장감이 있다. 무엇보다, 두 형사(그레이스와 뭔가 썸 관계가 있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 헤켓의 관점에서 응원하며 읽게 되지만.)가 어떻게 사건을 해결해나갈까 기대하는 마음이 크기에 이 부분 역시 소설을 재미나게 한다. 이런 긴장과 재미가 있기에 굳이 범인이 누구일까 추측하고 알아가는 것이 큰 의미는 없지 않나 싶기도 하다. 그저 작가가 끌고 가는 데로 따라가며 그 분위기에 압도당하며 읽으면 된다. 아울러 그렇게 끌고 갈만한 힘도 작가에게는 있다.

 

그러니, 무더위로 허덕이는 지금 읽기에 딱 좋은 소설이 아닐까 싶다. 어쩌면 뻔하다고 평가할 수도 있지만, 결코 그렇게 평하고 싶진 않다. 재미나게 읽었으니, 그럼 된 것 아닐까. 소설 자체의 평은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별 다섯을 드리고 싶다.

 

단, 소설 몰입도를 방해하는 요소가 있어 지적하고 싶다. 우선 오타가 너무 많다. 많아도 너무 많다. 물론 어느 정도의 오타란 있을 수밖에 없는 부분이고, 스토리를 크게 방해하는 요소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이 책의 경우 오타가 너무 많아 스토리를 방해한다. 게다가 단순한 인쇄과정의 오타만이 아닌, 조사 사용에 대한 잘못된 지식에 의한 오타도 많아 아쉬움을 남긴다. 이런 부분들이 소설 몰입도를 떨어뜨리는 일등공신이다. 게다가 활자가 지나치게 크고 지면에 꽉 찬 느낌이어서 처음엔 조금 어색했지만, 이는 소설을 읽어나가다 보면 어느새 적응하니 그리 큰 문제는 되지 않을 수 있다. 처음에만 조금 참으면 되니 말이다.

 

이런 아쉬움이 없지 않지만, 소설은 믿고 볼 수 있다. 무더위를 시원케 할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브로큰 그레이스』와 함께 여름을 이겨보는 것도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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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빠 알레르기
고은규 지음 / 작가정신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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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규 작가를 알게 되었던 것은 『알바 패밀리』라는 작품을 통해서였다. 웃프다는 표현이 딱 맞는 소설로 기억된다. 오늘 우리 한국사회 민중들의 무너진 경제구조를 오롯이 보여주었던 작품. 아무리 성실하고 부지런히 일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힘겨운 아이러니를 유쾌한 필체로 그려냈던 작품으로 기억된다.

 

바로 그 고은규 작가의 단편소설집을 만나게 되었다. 『오빠 알레르기』라는 다소 유쾌한 느낌을 주는 제목의 소설집이다. 도합 7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유쾌하지 않다. 고단한 삶의 무게 위에 가벼움을 덧입혔던 그의 문체에서 가벼움을 싹 빼낸 것 같은 느낌의 단편들(물론, 몇몇 작품은 유쾌함이 살며시 덧입혀져 있기도 하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때론 슬프고, 때론 답답하다. 마치 단편 「엔진룸」에 등장하는 세 모녀가 세간을 버릴 수 없어 좁은 집에 가득 채워 넣고 짐들 속에 끼여 살며 느꼈을 그 답답함이 가슴을 짓누른다. 각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힘겨운 인생이 소설 속에만 존재하는 것이 아닌, 오늘 우리네 삶에 가득한 삶이기 때문에 그렇다. 주인공들이 아무리 용을 써도 벗어날 수 없는 삶의 고단함과 운명의 가혹함이 오늘 우리네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에 그렇다.

 

평생을 힘겹게 일했음에도 삶을 나아지게 하기보다는 조금씩 삶의 공간을 줄여야만 했던 아버지의 무력함은 오늘 우리네 곁에 있는 아버지들의 무력감이기도 하겠다. 운동권 오빠의 의문의 실종과 그 지난한 기다림에 지쳐가는 가정의 모습 역시 우리 민족의 현대사가 낳은 괴물 같은 현실이다.

 

돈이 있다고 안하무인, 버르장머리 없는 ‘꼰대’ 어른들의 모습을 우린 여전히 심심찮게 보게 된다. 돈 몇 푼 빚 때문에 사채업자에게 시달리다 결국 「상자 어두운 상자」에 누여졌음에도 자기 신세를 깨닫지 못하는 이지숙은 오늘 우리 누이이며 딸이다. 죽음조차 끊을 수 없는 빚의 굴레에 갇혀 있는 인생들 말이다.

 

소설들은 고단하고 힘겨운 삶, 삶의 무게에 짓눌려 허덕이는 우리네 인생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그래서 답답하고 먹먹하고 아프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더욱 고마운 소설집이다. 우리네 인생의 아픔을 외면치 않고 있으니 말이다. 우리네 인생이 그렇다. 때론 막다른 골목에 가로막히기도 하고, 먹먹함과 울분을 삼켜야만 하기도 하며, 풍랑에 이리저리 비틀거리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린 그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가야 한다. 비록 희망 없는 삶이라 할지라도 여전히 희망을 품고 말이다. 「딸기」 속의 환희가 그렇게 활짝 웃듯이 힘겨움 가운데 미소를 지으며 말이다.

 

“엄마 사주고 싶다. 저거.”

“예쁘다. 근데 비쌀 것 같다.”

“그치?”

“언니, 옷 살 돈 있어?”

“지금은 없지만 이젠 돈 많이 벌 수 있을 거야.”

환희가 활짝 웃었다.(222쪽, 「딸기」)

 

과연 환희는 예쁜 옷을 엄마에게 사줄 수 있게 되었을까? 활짝 웃던 웃음이 그 이름처럼 진정한 기쁨 환희가 될 수 있을까? 여전히 힘겹다 할지라도. 그렇게 되길 믿어보며, 책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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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을 잃은 소년
창신강 지음, 주수련 옮김 / 책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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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은 악동이다. 올해 나이 열 살. 그런데, 펑에게는 펑조차 모르는 비밀이 있다. 그건 이미 8년 전에도 펑은 열 살이었다는 것. 펑이 너무나도 악동이었기에 이런 악동이 성장하여 사회에 나오면, 세상을 어지럽히고 혼란하게 할 여지가 있다는 판단으로 성장이 유보된 것이다.

 

펑의 악동 짓은 가히 추종을 불허한다. 쌀 푸대를 운반하는 아저씨 뒤에 몰래 다가가 쌀 푸대에 구멍을 내기도 하고, 불난 집에 가서 물건을 훔쳐오기도 한다. 피부질환을 앓는 아이에게 비눗물과 오줌을 섞은 물총을 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부지기수. 이런 악동이기에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판결을 받는다. 아울러 성장이 유보되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펑의 기억을 빼앗는다. 펑은 3분전의 일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이렇게 펑은 영원히 10살에 머물게 된다. 과연 펑은 자신의 기억과 잃어버린 나이를 되찾게 될까?

 

중국 작가 창신강의 소설 『기억을 잃은 소년』은 묘한 분위기의 판타지성장소설이다. 착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억을 잃고 성장을 멈춘 소년의 이야기 자체가 묘하다. 아울러 사회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악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할 권한을 누가 부여한 걸까? 아울러 악하다는 기준, 판결은 누가 내리는 걸까?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여 기억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은 과연 선하다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사회적인 접근과 질문을 던지면서 소설의 장르는 판타지를 붙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판타지인 점 역시 묘하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판타지적 요소가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소설의 배경은 완벽히 일상의 공간이다. 시장이 나오고, 학교가 나오며, 가정이 나온다. 판타지는 기본적으로 일탈을 꿈꾸는 장르다. 그럼에도 소설은 여전히 일상에 머물러 있다. 일상을 떠난 판타지는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지.

 

소설 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치고 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왠지 인간성을 상실한 모습들을 거듭 보여준다. 또래 친구를 괴롭히는 폭력의 행위. 학생 개인 문제에 관심 갖지 않는 교사(또는 교육계). 아들 인생에 대한 엄마의 왜곡된 애정. 이런 분위기 가운데 유독 인간미가 넘치는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펑이 기르는 개 나이트가 그렇다. 주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나이트의 헌신. 펑의 태도로 인해 눈물 흘리기도 하고 웃음 짓기도 하는 개. 인간의 말을 다 알아들으면서 정작 말을 할 수 없기에 의사소통은 되지 않지만, 그 내면에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개의 모습이라니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기묘하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개와의 대조를 통해,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들의 모습을 고발하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작가가 너무 많은 주제들을 흩어놓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너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많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도 없진 않다. 캐릭터들 일관성의 부족도 아쉽다. 예를 들면, 마치 하얀 벽과 같은 담임선생은 인간미가 하나도 없다. 그런 담임선생이 소설 중후반부에서는 특별한 계기 없이 펑의 기억을 되찾고 펑의 나이를 되찾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정의의 사도가 되어 산화한다. 이런 비약이 옥의 티라고 할까?

 

그럼에도 한 인간을 향한 공권력의 개입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가지고 소설을 풀어나가는 힘이 있기에 독자는 끝까지 책을 붙잡고 읽게 된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선을 붙잡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펑이 열 살의 나이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자체가 악동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악을 끼칠 가능성 때문이다. 아울러 펑이 기억을 되찾아가는 수단 역시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소설은 펑의 모습을 통해, 선을 행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선과 악의 기준을 가지고 판결을 내리는 공권력은 과연 선하다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할 권한은 누가 부여한 것인가? 누가 개인의 미래를 미리 예단할 수 있단 말인가? 아울러 자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녀의 성장을 유예시키고 기억을 지운 엄마의 사랑 역시 선하다 말할 수 있을까?

 

다소 산만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판타지소설이지만, 참신한 소재와 사회성 강한 주제, 글을 끌고 나가는 힘이 어우러짐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소설이다. 청소년들 뿐 아니라 그 부모나 교사가 함께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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랑야방 : 권력의 기록 2 랑야방
하이옌 지음, 전정은 옮김 / 마시멜로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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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시멜로 출판사에서 번역 출간된 『랑야방』1권을 읽은 후, 고맙게도 2권이 바로 출간되었다. 2011년 중국 인기 웹사이트에서 연재를 시작하여 책으로 출간되어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뿐더러, 드라마로 제작되어 중국 50개 도시 시청률 1위를 하는 기염을 통한 화제의 책 『랑야방』.

 

주인공 매장소는 랑야방(최고 정보조직인 랑야각이 해마다 발표하는 문서로 천하 10대 고수, 천하 10대 방파, 천하 10대 부호, 천하 10대 공자, 천하 10대 미인. 이렇게 다섯 분야 50명의 순위를 발표하는 문서다.)이 명시하고 있는 천하 10대 방파 가운데 1위인 강좌맹의 종주다. 그런 매장소에게는 또 하나의 신분의 비밀이 있다. 바로 12년 전 모반죄로 스러져갔던 적염군의 소원수 임수라는 신분이다. 황제의 조카이자 공주의 아들이라는 신분, 반역자이자 죽은 자라는 신분을 감추고 매장소는 대량(소설속의 가상의 나라)의 수도 금릉에 입성한다.

 

권력다툼을 하던 태자와 예왕 틈바구니에 뛰어든 매장소는 실상 제3의 인물을 돕는다. 바로 정왕(정왕은 적염군 소원수 임수의 절친이다. 당시 음모에 의해 기왕부와 적염군이 몰살당할 때, 멀리 변방에 있어 화를 입지 않았다. 하지만, 그 후로도 기왕과 임수를 향한 의리 있는 발언 등으로 황제의 미움을 받아 실권을 잡지 못하고 권력의 변두리로 몰린 사람. 음모에 의해 희생된 이들을 향한 의리를 여전히 간직하고 있는 강직한 성격의 인물이다.)이다.

 

이제 2권에서는 보다 더 본격적으로 정왕과 가까워지고 함께 대계를 세워나가는 모습을 만나게 된다. 정왕을 권력의 중심에 세우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매장소의 활약을 기대해도 좋다. 때론 정치세력의 틈바구니에서 위태롭게 살얼음판을 걷기도 하고, 때론 통쾌하게 상대를 압박하기도 한다. 수시로 병약한 몸이 발목을 잡지만, 뛰어난 지략으로 판세를 끌고 가는 매장소의 활약에 시간가는 줄 모르고 책을 읽게 된다. 때론 냉혹한 지략가의 모습을 보이기도 하지만, 때론 정이 가득한 사내의 모습으로 천하를 경영해나가는 매장소. 무엇보다 의리를 붙잡는 이들의 멋진 모습을 만나게 된다.

 

2권에선 새롭게 권력 구도가 형성된다. 그동안 태자와 예왕 간에 팽팽한 권력다툼을 이어갔다면, 이제 태자는 실권하게 되고 권력에서 밀려난다. 반면, 매장소가 돕는 정왕이 새롭게 부각되며 예왕과 대치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천덕꾸러기 정왕이 황제의 총애를 받게 되는 과정. 정왕의 모친 정비가 새롭게 인식되어지는 장면 등이 재미를 끈다. 아울러 정왕이 매장소의 도움을 통해 어떻게 권력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될 것인지에 대한 기대감을 품게 한다.

 

여기에 또 한 가지 재미는 과연 매장소의 진정한 신분이 드러나게 될까 하는 긴장감이 아닐까 싶다. 아직 정왕도 매장소의 진정한 신분을 모른다. 그토록 임수를 그리워하면서도 말이다. 1권을 마치며, 매장소의 진정한 신분(적염군 소원수 임수)을 알게 된 이는 몽지(적염군 장수 출신으로 황제의 경호실장 격인 금군통령이자 대량 제일의 고수, 랑야방 고수 서열 2위인 5만 금군을 이끄는 일품 장군)와 예황군주(매장소의 옛 정혼자이자, 남경 10만 철기병을 이끄는 여원수) 뿐이었다. 이제 2권이 진행되는 가운데 정왕의 모친 정비 역시 매장소의 진정한 신분을 알게 된 분위기다. 과연 매장소의 진정한 신분이 언제 어떻게 누구에게 밝혀지게 될 것인지에 대한 불안과 기대감이 소설의 또 하나의 재미다.

 

매장소가 승승장구하는 것만은 아니다. 매장소의 뜻이 자신이 아닌 정왕에게 있음을 알게 된 예왕은 이제 매장소와 정왕을 향한 반격에 나서게 된다. 정왕의 역린을 건드리는 것. 바로 기왕과 적염군을 몰살시켰던 반역사건을 말이다. 당시 적염군 부장이자 생존자인 위쟁이 붙잡혔다. 이에 정왕과 매장소는 위쟁을 구출하는 일이 현실적으로는 자신들의 권력 다툼에 아무런 이득이 되지 않을뿐더러, 예왕의 함정임을 알지만, 그럼에도 위쟁을 구출하려 계획한다. 과연 이 계획이 성공할 수 있을까? 이를 알기 위해선 어쩔 수 없이 3권을 기다려야 한다.

 

흔한 무협소설의 자극적이고 황당무계한 요소들이 쏙 빠져있기에 오히려 격조있는 느낌을 갖게 하는 무협소설 『랑야방』 2권 역시 한 번 잡으면 끝까지 읽어야만 하는 매력을 가지고 있다. 1권보다 더 많은 분량(634쪽)이기에 그 재미를 조금 더 오래 누릴 수 있다. 마지막 3권은 어떨지 기대해보며, 책장을 덮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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