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
인포그래픽 성경 - 그래픽으로 읽는 성경
박재용 지음 / 북카라반 / 2018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백문이 불여일견(百聞不如一見)”이라는 말을 우린 잘 알고 있다. 백번 듣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것이 낫다니! 그만큼 시각적인 효과가 크다는 의미다. 성경을 이런 시각적 효과를 극대화하며 접근한 책이 있다. 인포그래픽 성경이란 제목의 책인데, 성경공부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도 도움이 되며, 성경에 대해 알고자 하는 분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될 만한 책이다.

 

먼저, ‘인포그래픽이란 말에 대해 책은 이렇게 소개한다.

 

인포그래픽(infographics)이란 데이터 또는 정보를 빠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기본적 요소인 내용(content)과 그래픽(graphics)을 활용하여 정보의 감성적 시각화를 구현한 것입니다.(책표지 뒷면에서)

 

책은 이처럼 시각적으로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성경 속 내용을 잘 정리해주고 있다. 역시 백번 듣는 것보다 인포그래픽을 한 번 보는 것이 더 낫다.

    

책은 구약성경의 모세오경부터 시작하여 신약의 계시록까지 성경 66권을 잘 아우르며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책을 차례대로 쭉 읽다보면, 성경 전체를 훑는 효과를 누릴 수 있다. 물론, 필요에 따라 원하는 부분의 정보를 쉽게 시각적으로 확인할 수도 있고 말이다.

 

물론, 아쉬운 부분들도 없진 않다. 아주 사소한 아쉬움이 있긴 하다. 예를 들면, 예수님의 12제자의 경우, 가룟 유다 대신 추후에 결원으로 뽑힌 맛디아를 넣고 있는데, 이건 오히려 성경의 메시지를 약화시킬 우려가 있다. 성경은 끊임없이 가룟 유다를 말하며 열둘 중의 하나인 가룟 유다라고 말한다(굳이 열둘 중의 하나임을 반복해서 언급하고 있음에 주의해야 한다.). 이는 예수님을 배신한 자는 에 있는 자가 아닌 함께 에 있던 자였음을 강조하고 있는 것. 그렇기에 12제자 명단에는 가룟 유다를 넣었더라면 어땠을까?

 

말이 나온 김에 가룟 유다의 이름 역시 그렇다. 책은 성경본문을 많이 싣고 있는데, 성경본문은 개역개정 한글 성경을 텍스트로 하고 있다. 그 성경본문에서 가룟 유다라고 명시되고 있기에, ‘가룟 유다라 명시하면 좋았을 텐데, 책은 성경본문은 가룟 유다, 그 외에는 가롯 유다라 명시하고 있다. 아무것도 아닌 표기에 불과하지만, 이왕이면 통일성을 줬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아주 사소한 아쉬움이 있지만, 그럼에도 책은 성경 전체를 시각적으로 쉽게 접근함에 아주 유익한 책임에 분명하다. 성경을 가까이 하는 성도들, 또는 목회자, 그리고 성경공부를 하려는 이들에겐 언제나 곁에 두고 참고할 수 있는 좋은 자료다. 이런 좋은 작업을 남겨준 저자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루터 로드 - 마르틴 루터의 500년 유산, 종교개혁의 길을 걷다
구영철 지음 / CBS북스 / 2017년 6월
평점 :
절판


점차 신앙의 유적지들을 순례하는 것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기독교 성지 순례하면 떠오르는 것이 이스라엘 뿐 이었다면, 요즘은 그 범위가 넓어졌다. 국내 기독교 유적지 순례도 제법 자리를 잡았고, 국외 역시 다양한 루트가 관심을 받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루터와 연관된 종교개혁 순례코스가 아닐까 싶다.

 

특히,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는 해 이다. 타락한 종교를 보며, 마르틴 루터가 비텐베르크 성당에 95개 반박조항을 내걸은 이후 기독교는 종교개혁의 기치를 세우며 건강한 신앙을 세워내기 위해 몸부림을 쳤다. 그 결과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500년이 지난 지금 개신교는 건강한 신앙의 모습을 견지하고 있는지 묻게 된다.

 

아무리 감추려 해도 이미 곳곳에서 타락의 징후가 보이는 것이 현 개신교의 모습이 아닐까 싶다. 이러한 때, 500년 전 루터의 흔적들을 더듬어 가며, 다시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고 바로잡는 기회로 삼는다면 어떨까?

 

여기 루터의 흔적들을 더듬은 작업이 하나의 책으로 나왔다. 구영철의 루터 로드란 제목의 책이다. 이 책에는 저자가 독일에서 공부하고 목회하던 17년 남짓의 기간 동안 직접 찾아다니며 보고 느꼈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독일 74개 도시와 180여 장소에서 찾아내는 루터의 흔적들. 가히 그 흔적의 방대함에 감탄을 자아내게 된다.

 

그 장소의 방대한 숫자만큼 참 다양한 루터 흔적들을 만나게 된다. 루터의 탄생과 죽음이 서려있는 도시를 만나기도 하고. 어느 도시에서는 빵을 벌기 위해 이집 저집 다니며 노래를 부르던 청소년기의 루터를 만나기도 한다. 책을 통해, 청년의 루터가 공부하던 대학로를 함께 걷기도 하고. 또한 함께 걷던 친구가 벼락을 맞았던 위급한 체험의 순간을 함께 느껴보기도 한다. 성경을 번역하던 작은 방을 들여다보게도 되고. 쯔빙글리와 성만찬 논쟁을 벌였던 장소를 거닐게 되기도 한다.

 

루터와 연관된 장소들 뿐 아니라, 루터와는 다른 길을 걸었던 종교개혁자 토마스 뮌처의 도시들을 만나기도 한다(토마스 뮌처는 농민 혁명 종교개혁가로 상당히 매력적인 인물이다.). 또한 루터의 아내 카타리나 폰 보라와 연관된 도시들, 장소들도 만나게 된다.

 

무엇보다 루터와 연관된 거의 모든 도시를 직접 탐방하고 이렇게 소개하는 저자의 그 열정과 노고가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 책은 루터와 연관된 거의 모든 도시를 망라하고 있다 여겨진다. 이러한 수많은 도시들의 루터 유적을 통해, 루터가 독일인들에게 얼마나 사랑받는 인물인지 알게도 된다.

 

물론, 저자는 루터에 대한 찬양 일색으로만 일관하지는 않는다. 루터의 결정적 흠인 유대인과 농민들에 대한 잘못된 관점 역시 언급함으로 균형을 잃지 않으려 노력함을 느낄 수도 있다.

 

신앙인들이 신앙의 유적지들을 이유는 다름 아닌 역사적 현장에서 보고 듣고 느끼기 위해서이다. 단순히 돌멩이나 건물을 보려는 것이 아니라, 그 역사적 돌멩이를 통해 그 안에 담겨진 것들을 느끼고, 지금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장차 어떻게 해야 할지를 고민하고 생각하기 위함일 게다. 그렇기에 기독교 유적지 탐방에는 볼거리이야기 거리라는 두 가지 측면이 충족되어져야 한다.

 

그런 측면에서 이 책에 약간의 아쉬움이 남는다. 방대한 장소를 통해 루터의 흔적을 거의 빠뜨림 없이 전해준다는 측면에서는 너무너무 고맙다. 그럼에도 단순히 그 도시는 어떤 도시라는 소개에서 그치는 장소 역시 적지 않다. 그 속에 담겨진 살아있는 다양한 이야기들(물론 이야기가 없다는 건 아니지만, 그 이야기가 딱딱하게 굳은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일지도 모르겠다.), 그리고 종교개혁과 연관된 다양한 유적지들을 통한 볼거리 제공이 다소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는 아마도 너무 많은 장소를 독자들에게 전해주려는 열정 탓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루터에 대한 거의 모든 흔적을 전해주려 할 것이 아니라, 더 많은 장소를 과감히 생략해버리고, 신앙의 감동과 도전을 받을 수 있는 그런 공간들을 위주로 전하며, 살아 있는 이야기들과 더 생생한 사진들을 실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럼에도 루터의 흔적들에 대한 방대한 장소의 소개는 이 책의 가치를 증명하고 있다. 루터 탐방을 계획하고 있는 분들이라면 반드시 참고해야 할 가치 있는 책임에 분명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잃어버린 교회를 찾아서 - 일곱 교회와 당신을 향한 사랑과 회복의 메시지
김병삼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 무엇을 일하느냐?” 보다는 “하나님의 길을 어떻게 가느냐?”에 하나님의 마음이 있다고. 그렇다. 오늘날 많은 교회는 어쩌면 하나님의 길을 가기보다는 자신들의 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착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뭔가를 열심히 하고 있지만, 많은 이들이 모여 하나님의 뜻을 듣고 행한다며 생각하지만, 실상은 교회들이 각자 자신들만의 일에 열중하고 있다면. 생각만 하도 가슴이 답답하다.

 

이러한 때, 예수님께서 사도 요한을 통해, 소아시아 지역에 있던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를 살펴봄으로, 오늘 우리들 교회의 모습이 어떤 모습인지를 되돌아보는 것은 의미 있는 작업이리라. 저자 김병삼 목사는 바로 그러한 작업을 이 책을 통해 하고 있다.

 

저자는 이 책 『잃어버린 교회를 찾아서』에서 요한계시록에 실려 있는 일곱 교회에 보낸 편지의 내용을 하나하나 살펴보고 있다. 아마도 성도들을 향한 강해설교를 정리한 것이 아닐까 조심스레 추측해본다. 즉, 이 책에 실린 내용들은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 계시록의 성경본문을 가지고 우리에게 들려져야 할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우선 이런 점이 좋다. 오늘날 강단에서 선포되어지는 말씀들 가운데 얼마나 하나님의 말씀일까? 그 판단은 우리의 몫이 아닐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럼에도 얼마나 성경본문에서 벗어나지 않고 메시지를 선포하느냐에 달려 있지 않을까 싶다. 성경본문을 가지고 말하면서도 자신이 처한 개인적인 상황, 자신의 입장을 변론하기 위한 수사학적 메시지만이 선포되어진다면 이를 어찌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을까?(물론, 성경본문은 마땅히 우리가 처한 콘텍스트 하에서 재해석되어질 수 있다. 성경본문이라는 텍스트는 사라지고 콘텍스트만이 존재하는 메시지라면 이미 메시지임을 포기한 것이 아닐까.) 심지어 뭔가 자신들의 의도를 뒷받침하기 위한 수단으로 성경본문을 이용하고 있다면.

 

저자가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보다 신앙의 관점이 건강하다. 어느 한 쪽에 치우쳐있지 않다는 느낌을 갖게 한다. 그리고 앞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목사의 말이 아닌 성경의 내용을 이야기하기에 성서적이다.

 

소아시시아 지역 일곱 교회에 보내는 편지를 통해, 교회들이 책망 받은 이유는 무엇이며, 그들이 칭찬받은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그들에게 돌아갈 상급은 무엇인지 등을 살펴봄으로 오늘 이 땅의 교회들이 다시 건강해지고, 자신의 일이 아닌, 교회의 일이 아닌, 하나님의 일을 감당하는 교회들로 거듭 나게 되길 소망해본다.

 

아울러 이 책은 기본적으로 교회를 향한 메시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에 등장하는 일곱 교회를 향한 편지 자체가 불신자들을 향한 편지가 아닌, 교회를 향한 편지임을 알고, 교회가 되새기고, 교회가 귀를 기울이고, 교회가 변화하는 역사가 있어야 한다. 여전히 예수님이 문밖에 서서 두드리고 있음을 기억해야만 한다. 사실 이 부분은 교회가 불신자들에게 복음을 전함으로 그들의 마음 문이 예수를 향해 활짝 열리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흔히 사용하는 구절이다. 다시 말해 전도용 구절이라는 말이다. 하지만, 사실 성경본문을 결코 그렇지 않다. 이 부분은 교회를 향한 편지임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하고 있다. 교회이지만 여전히 그 예수를 문밖에 몰아세우고 문을 두드리게 하고 있다고 말이다. 여전히 예수는 문밖에서 두드리고 있다고. 그럼에도 교회는 문을 닫고 그 안에 옹기종기 모여, 예수의 일을 감당하고 있다는 착각에 빠져 있다고 말이다. 이젠 그 문을 활짝 열어드리자. 제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웰컴 투 광야 - 광야 여정에서 이끄시는 하나님의 메시지
김병삼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9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우린 어느 누구도 힘겨운 광야의 시간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가급적 인생 가운데 광야와 같은 힘겨운 시간이 주어지지 않길 바라며 살아간다. 하지만, 그럼에도 살아가는 가운데 광야의 시간이 없을 수는 없다. 우리 삶 속에 어느 날 문득 광야의 시간이 주어진다면, 우린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여기 그러한 상황에서의 답이 될 신앙서적이 있다. 김병삼 목사의 『웰컴 투 광야』란 제목의 책이다. 물론 광야를 반길 필요는 없다. 굳이 광야를 찾아다닐 필요도 없겠다. 하지만, 굳이 광야를 외면해서도 안 된다. 광야의 시간이 주어질 때, 우리가 어떤 자세를 갖느냐에 따라 광야는 저주의 공간이 아닌, 축복의 공간으로 거듭날 테니 말이다. 그러한 영적 비결을 이 책은 우리에게 전해주고 있다.

 

이 책, 『웰컴 투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되는 순서에 따라 서술되고 있다. 물론, 그 과정을 모두 다 언급하는 것은 아니고, 중요 사건들이나 장소들을 통해 메시지를 전해주고 있다.

 

내용은 강해 설교의 형식이다. 설교 메시지를 읽고 있다는 느낌이 강하다(어쩌면 강단에서 설교한 내용을 정리한 것일 수도 있겠다.). 이러한 메시지를 접할 때, 마음을 열고 읽어나간다면, 그 안에 내 삶을 영적으로 풍성하게 할 내용들을 만나게 된다.

 

내용 가운데 몇몇 인상 깊었던 내용을 언급해 보자.

 

고센은 ‘땅 중에서 좋은 곳’, ‘축복 받은 땅’이란 뜻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이렇게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그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약속된 ‘약속의 땅’은 아니었다. 아무리 좋은 곳이라 할지라도 현재에 주어지는 축복이 전부가 아님을 알고, 그곳은 머물 곳이 아닌, ‘약속의 땅’으로 가기위한 징검다리임을 아는 것이 필요하다는 말이 인상적이었다.

 

비록 이 축복의 순간을 떠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과정이 힘겨운 시간이 펼쳐지는 광야의 땅이라 할지라도 현재의 축복을 전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과감히 광야로 나아갈 때, 진정한 축복, 진정한 약속의 행복이 주어지게 됨을 생각해보게 된다.

 

또한 저자는 말한다. 광야는 낭비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훈련시키시는 과정이라고. 광야는 아울러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점검하기 위한 최적의 장소라고. 이런 광야의 순간 이스라엘 백성들이 지금 당장의 고통과 힘겨움으로 하나님 앞에서 불평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허락하실 최고의 것을 기대하며 기다렸어야 한다는 말이 내 영혼을 두드린다.

 

아울러 이런 구절도 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의 보금자리를 흩으신다면 그것은 우리를 버리시는 것이 아니라 고난을 통해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어 가는 과정입니다.”(201쪽)

 

사실 고난을 당하는 이들을 향해 함부로 교훈적 내용을 언급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고난은 이러이러한 의미가 있으니 참으라고 한다면 오히려 더 큰 상처를 안기는 잘못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바로 나의 힘겨움, 나의 고난 앞에서는 우리가 이런 영적인 교훈을 붙잡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 그러니, 이 책을 통해, 나에게 주어진 고난의 시간, 힘겨운 광야의 시간을 이렇게 영적으로 승화하며, 나아감으로 결국엔 하나님께서 날 향해 예비하신 가장 좋은 것, 그 약속의 땅을 일구어내는 축복이 있길 기도해본다.

 

참, 내용 속에 비록 지엽적인 내용이긴 하지만, 열 가지 재앙 모두가 이스라엘과는 상관없는 재앙이었다는 언급이 몇 차례 나오는 데, 이는 잘못된 내용이다.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처음 세 번의 재앙은 이스라엘 백성들 역시 함께 경험했다. 다시 말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아론의 주장으로 인해 자신들이 해방될지도 모른다고 기대했지만, 해방되기는커녕 도리어 세 차례 재앙의 대상이 됨으로 더 힘겨운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이런 내용 속에 분명 또 다른 메시지들이 감춰져 있음도 사실이다. 그렇기에, 열 가지 재앙 모두를 이스라엘과 상관없는 재앙으로 만들어 버린 오류는 수정해야 할 것 같다.

 

이 책의 또 하나의 장점은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주는 메시지를 다시 한 번 그룹 나눔의 시간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나눔의 내용들을 단락마다 싣고 있다는 점이다. 이 부분은 매우 좋다. 이 부분만으로 하나의 그룹 토의 교재가 될 수 있다.

 

아무튼, 우리에게 주어지는 광야의 시간이 무익한 시간이 아닌, 오히려 축복의 땅 약속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나아가는 여정이 되길 소망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8)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 - 데살로니가전.후서 강해집
이영훈 지음 / 교회성장연구소 / 2016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얼마 전 지인을 통해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어느 교회 목사님이 장로님에게 호래자식이라고 말했단다. (뜨악!! 어찌 이런 일이.) 이유인즉슨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나님을 아버지로 섬기며 살아야 마땅하건만 마치 아비 없는 자식처럼 살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 말을 듣고 그저 웃어넘길 수만은 없었다. 교회 안에서 직분이 무엇이건 간에 마치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양 자기 멋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아가는 영적 호래자식이 얼마나 많은가? 아니, 내가 그런 영적 호래자식은 아닌가 하는 반성을 해본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의 비난을 받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 물론 과하게 비난하는 감도 있겠다. 하지만, 그럼에도 교회가 바로 서지 못하기 때문에 이런 비난은 또한 일정 부분은 정당하기도 하다. 교회가 바로 설 수 있다면. 교회가 영적 호래자식들의 집단이 아닌, 하나님의 자녀의 자리, 그리스도의 제자의 자리를 회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사족이 길었다. 금번 새롭게 출간된 이영훈 목사의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를 만났다. 이 책은 데살로니가 전 후서 강해집이다. 데살로니가 전후서는 바울서신이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에 보낸 편지다. 데살로니가교회는 바울이 2차 선교여행 당시 방문하여 3주가량 복음을 전함으로 세워진 교회다. 이렇게 자신이 뿌린 복음의 씨앗으로 세워진 교회가 핍박과 환난 가운데 믿음으로 요동치 않고 승리하길 바라는 마음을 바울은 편지에 담아 보낸다. 뿐 아니라 재림에 대한 잘못된 생각을 가진 성도들에게 바른 재림관, 부활신앙을 심어주기 위해 보낸 편지가 데살로니가 전후서다.

 

이러한 데살로니가 전후서 강해설교를 책으로 출간한 것이 이 책이다. 이 책의 강점은 무엇보다 성경말씀 안에서 설교내용을 풀어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성경말씀 안에서 이야기하는 것이 설교다. 당연한 말이지만, 실상 목회현장에서 당연하지 않은 말이기도 하다. 비록 성경본문을 정해놓았다 할지라도, 성경본문에서 벗어난 이야기들이 목회현장에서 적지 않다. 이는 비록 설교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목사 개인의 이야기일 뿐이다. 그렇기에 성경본문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애쓰며 성경본문을 풀어 이야기하는 강해집을 만난다는 것은 행복한 만남임에 분명하다.

 

비록 신학적 노선이 어떤가에 따라 이 책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에 있어 견해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그럼에도 판단하고 흠을 잡으려는 자세보다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마치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하며 읽어 나간다면, 기대하지 못했던 날 향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으리라 여겨진다. 설교자를 보지 않고, 성경말씀을 향해 마음을 열고 읽고 듣는다면 좋겠다.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이라는 타이틀이 누군가에게는 장점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군가에게는 단점이 될 수도 있기에 말이다.

 

다시 처음 사족으로 돌아가, 이 책에서 말하는 내용들을 마음을 열고 읽고 삶 속에서 붙잡음으로 책 제목처럼 이 땅의 모든 교회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교회’가 되며, 아울러 성도 한 사람 한 사람은 영적 호래자식이 되지 않는다면 좋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처음 처음 | 이전 이전 | 1 | 2 | 3 | 4 |다음 다음 | 마지막 마지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