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을 잃은 소년
창신강 지음, 주수련 옮김 / 책담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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펑은 악동이다. 올해 나이 열 살. 그런데, 펑에게는 펑조차 모르는 비밀이 있다. 그건 이미 8년 전에도 펑은 열 살이었다는 것. 펑이 너무나도 악동이었기에 이런 악동이 성장하여 사회에 나오면, 세상을 어지럽히고 혼란하게 할 여지가 있다는 판단으로 성장이 유보된 것이다.

 

펑의 악동 짓은 가히 추종을 불허한다. 쌀 푸대를 운반하는 아저씨 뒤에 몰래 다가가 쌀 푸대에 구멍을 내기도 하고, 불난 집에 가서 물건을 훔쳐오기도 한다. 피부질환을 앓는 아이에게 비눗물과 오줌을 섞은 물총을 쏘기도 한다. 그 외에도 부지기수. 이런 악동이기에 성장을 멈춰야 한다는 판결을 받는다. 아울러 성장이 유보되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도록 펑의 기억을 빼앗는다. 펑은 3분전의 일조차 기억해내지 못한다. 이렇게 펑은 영원히 10살에 머물게 된다. 과연 펑은 자신의 기억과 잃어버린 나이를 되찾게 될까?

 

중국 작가 창신강의 소설 『기억을 잃은 소년』은 묘한 분위기의 판타지성장소설이다. 착하지 않기 때문에, 사회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기억을 잃고 성장을 멈춘 소년의 이야기 자체가 묘하다. 아울러 사회적인 질문을 던진다. 과연 악하다는 이유만으로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할 권한을 누가 부여한 걸까? 아울러 악하다는 기준, 판결은 누가 내리는 걸까?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하여 기억을 마음대로 조절하는 것은 과연 선하다 말할 수 있을까?

 

이처럼 사회적인 접근과 질문을 던지면서 소설의 장르는 판타지를 붙잡고 있다. 하지만, 이런 판타지인 점 역시 묘하다. 소설은 기본적으로 판타지적 요소가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소설의 배경은 완벽히 일상의 공간이다. 시장이 나오고, 학교가 나오며, 가정이 나온다. 판타지는 기본적으로 일탈을 꿈꾸는 장르다. 그럼에도 소설은 여전히 일상에 머물러 있다. 일상을 떠난 판타지는 없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은 아닐지.

 

소설 전반부에 등장하는 인물들치고 정상적으로 느껴지는 이들은 극히 드물다. 왠지 인간성을 상실한 모습들을 거듭 보여준다. 또래 친구를 괴롭히는 폭력의 행위. 학생 개인 문제에 관심 갖지 않는 교사(또는 교육계). 아들 인생에 대한 엄마의 왜곡된 애정. 이런 분위기 가운데 유독 인간미가 넘치는 등장인물(?)이 있다. 바로 펑이 기르는 개 나이트가 그렇다. 주인의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애쓰는 나이트의 헌신. 펑의 태도로 인해 눈물 흘리기도 하고 웃음 짓기도 하는 개. 인간의 말을 다 알아들으면서 정작 말을 할 수 없기에 의사소통은 되지 않지만, 그 내면에 인간미가 철철 넘치는 개의 모습이라니 재미있다고 해야 할까, 기묘하다고 해야 할까? 어쩌면 개와의 대조를 통해, 인간성을 상실한 인간들의 모습을 고발하려는 것은 아닐까 싶다.

 

전체적으로 작가가 너무 많은 주제들을 흩어놓고 있지 않은가 싶기도 하다. 너무 작가가 말하고 싶은 것이 많지 않은가 하는 아쉬움도 없진 않다. 캐릭터들 일관성의 부족도 아쉽다. 예를 들면, 마치 하얀 벽과 같은 담임선생은 인간미가 하나도 없다. 그런 담임선생이 소설 중후반부에서는 특별한 계기 없이 펑의 기억을 되찾고 펑의 나이를 되찾게 하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정도로 정의의 사도가 되어 산화한다. 이런 비약이 옥의 티라고 할까?

 

그럼에도 한 인간을 향한 공권력의 개입에 대한 커다란 질문을 가지고 소설을 풀어나가는 힘이 있기에 독자는 끝까지 책을 붙잡고 읽게 된다.

 

기본적으로 소설은 선을 붙잡아야 함을 이야기한다. 펑이 열 살의 나이에 머물 수밖에 없었던 이유 자체가 악동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악을 끼칠 가능성 때문이다. 아울러 펑이 기억을 되찾아가는 수단 역시 선을 행하는 것이다. 그러니 소설은 펑의 모습을 통해, 선을 행해야 함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런 선과 악의 기준을 가지고 판결을 내리는 공권력은 과연 선하다 말할 수 있을까? 누군가의 인생에 개입할 권한은 누가 부여한 것인가? 누가 개인의 미래를 미리 예단할 수 있단 말인가? 아울러 자녀를 보호한다는 명목으로 자녀의 성장을 유예시키고 기억을 지운 엄마의 사랑 역시 선하다 말할 수 있을까?

 

다소 산만하고 기괴한 분위기의 판타지소설이지만, 참신한 소재와 사회성 강한 주제, 글을 끌고 나가는 힘이 어우러짐으로 많은 것을 느끼고 생각하게 하는 좋은 소설이다. 청소년들 뿐 아니라 그 부모나 교사가 함께 읽으면 좋을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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