터널
소재원 지음 / 작가와비평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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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곧 개봉하게 될(2016.8.10. 그러고 보니 내일이다.) 영화 ≪터널≫의 원작소설인 소재원 작가의 『터널』을 읽고 난 후 한 동안 힘들었다. 책에 대한 서평도 쉽게 쓸 수 없었다. 결국 책을 읽은 지 며칠이 지난 후에야 서평을 써 본다.

 

소설은 우선 재미있었다. 이걸 재미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나? 슬프고, 화가 나고, 안타깝고, 때론 황당하며 어이없기도 하지만, 그것이 어떤 감정이든 소설에 몰입하게 하는 힘이 있었으니 재미라 표현해 본다. 소설을 읽는 내내 여러 차례 책장을 덮고 숨고르기를 해야만 했다. 몰입도도 높고, 길지 않은 분량임에도 책을 읽는 시간이 여타 책에 비해 조금 더 걸렸다. 과연 터널에 갇힌 이정수씨가 어떻게 될까? 그 가족은 또 어떤 결말을 만나게 될까? 궁금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그 끝을 알고 싶지 않은 이율배반적 감정에 책읽기를 멈출 수밖에 없던 순간도 많았다.

 

사랑하는 이가 터널 안에 갇혀 있음에도 무엇도 할 수 없는 무력감과 절박감 앞에 함께 가슴이 무너지는 것 같아 먹먹한 가슴을 어루만져야만 할 때도 많았다. 불행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한 가정을 향해 전해지는 수많은 이들의 격려와 위로. 특히, 택시 안에서 기사 아저씨의 아내와 통화하는 장면에서는 눈물을 닦아내느라 책을 읽지 못할 정도였다.

 

뿐인가. 뇌물수수와 부실공사로 터널이 무너져 내리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만들었음에도 그 일에 대해 반성하고 자신들의 죄를 고백하기보다는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생명을 가볍게 여기고 피해자 가족의 슬픔도 외면하며, 본질을 흐리게 만드는 가진 자들의 그 뻔뻔한 죄악성 앞에는 자꾸 분노가 끓어올라 분노를 식히느라 책을 덮던 적도 잦았다. 자신들의 잘못에도 당당한 자들. 그리고 그들의 공작에 미혹되는 군중들. 마치 정의를 부르짖는 양 약자를 죽음으로 몰아가는 불특정 다수의 횡포 아니 그들의 광기 앞에 망연자실하기도 한다.

 

소설 속의 내용은 분명 극도로 과장된 내용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현실 속에는 없다 말할 수 없는 내용이기에 가슴 답답하고 먹먹하다. 아니 어쩌면 우린 이런 모습들을 이미 수차례 보고 경험하고 있지 않은가.

 

소재원 작가의 『터널』은 재난소설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재난소설은 아니다. 일반적인 재난 소설이 재난 속에 피어오르는 휴머니즘을 이야기한다면, 『터널』은 휴먼이즘 이면에 도사리고 있는 인간의 악마성을 재난을 통해 부각시키고 있다. 물론 무너져 내린 터널과 그 안에 갇힌 생명을 구해내고자 하는 일에도 관심을 기울이지만, 그 현상을 바라보고 대하는 우리들의 자세는 어떠한지 돌아보게 한다.

 

생명을 구하는 일보다는 자신들의 단단한 권력의 아성을 먼저 생각하는 가진 자들의 모습은 우리를 슬프게 만든다. 특히, 우린 이런 모습을 제법 봐왔기 때문이다. 뿐 아니라 소설은 재난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시청률을 챙기려는 방송매체의 상실한 방송윤리 역시 고발하고 있다.

 

무엇보다 소설이 문제제기를 하는 점은 군중의 권력화다. 정의를 세운다 말하지만, 실상은 자신들의 감정을 쏟아 붓는 것에 불과한 군중의 횡포 그 광기는 가히 더할 수 없을 만큼 폭력적이다. 이런 군중의 폭력성이 위험한 것은 무엇보다 분별력의 상실에 있다. 방송미디어와 권력자들의 공작에 이리저리 휘둘리는 군중의 어리석음. 여기에 더하여 자신들의 잘못된 선택, 그 실수를 인정하기보다는 오히려 그 실수를 감추기 위해 더욱 광기어린 폭력의 날을 세우는 군중들의 모습 등을 소설을 보여준다.

 

이런 수많은 모습들이 여러 독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다. 하지만, 그렇기에 출판에 어려움을 겪었다는 작가의 말에 슬픔이 느껴지기도 한다. 불편하다 하여 외면한다면 우리 역시 같은 가해자, 익명의 살인자가 될 수 있다. 그렇기에 때론 불편해도, 때론 읽기 힘겨울지라도 외면하기보다는 작가의 질문에 마주 서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다.

 

소설 속의 내용들, 그 부끄러운 모습들이 우리네 삶 속에 실재하지 않기만을 기원해본다.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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