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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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특한 소설집을 만났습니다. 쓰네카와 고타로 란 작가의 가을의 감옥이란 소설집인데(2008년도에 노블마인에서 번역출간된 작품인데, 이번에 고요한숨에서 개정판으로 번역출간되었습니다.), 책 속엔 3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모두 환상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소설들. 각기 세 종류의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입니다. 가을의 감옥은 시간에, 신의 집은 공간에, 그리고 마지막 소설 환상은 밤에 자란다는 환상의 능력 속에 갇힌 이야기들입니다.

 

첫 번째 소설인 가을의 감옥은 어느 날 갑자기 같은 날이 반복되며 시작됩니다. 바로 117일의 반복입니다. 처음엔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고, 두렵기까지 했지만, 점차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같은 날이 반복되기에 이런 현상을 리플레이라고 부르고, 117일에 갇힌 사람들을 리플레이어라고 부른답니다.

 

무엇을 하든 다음날이면 다시 시작되는 117. 이런 상황 속에서 리플레이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누군가는 아내가 바람난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를 죽이기도 합니다. 물론 117일이 계속 반복되기에 그 날 아내는 다시 바람을 피우게 되고, 아내를 또 죽이기도 하죠(다양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부질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같은 날의 반복만이 있다면 어쩌면 너무 따분할 수도 있을 텐데, 소설 속에선 리플레이어들이 하나하나 행방불명된답니다. 그 행방불명에는 기타카제 백작이라고 이들이 부르는 괴물이 연관되어 있다고 여긴답니다. 때가 되면 누군가는 이 기타카제 백작에 의해 사라지게 되는데, 그 사라짐이 정말 사라지는 것인지, 아님 시간의 감옥인 117일을 벗어나 118일로 가게 되는 걸까요? 이는 끝내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118일로 넘어간다는 희망을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득, 내일 눈을 떠보니 오늘의 반복이 시작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그랬듯 하루의 시간 동안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을 여행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이 소설은 117일에 읽었어야 했는데, 그 때를 놓쳐 아쉬움이 있었답니다. 책을 받은 것이 116일이었기에 더 아쉬웠답니다.

 

신의 집은 주인공이 마을 공원에서 길을 잃고 어느 초가고택에 들어가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그곳은 마을이 수백 년 전부터 비밀리에 지켜온 신역인데, 이 집 안에 들어간 존재는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대신할 존재를 집에 들이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우연히 들어간 집에서 오랫동안 그곳에 갇혀 있던 사내 대신 신의 집을 지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집은 공간자체가 여러 지역을 일정한 경로로 공간이동을 하게 됩니다. 전국 곳곳을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하는 신비한 집,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주인공은 어느 한 사내를 유인하여 안으로 들이고 자신은 결국 밖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그 뒤로 이상한 사건들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집이 움직이는 경로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과 살인 사건들, 이에 바로 그 사내가 범인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다시 그 신의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과연 신의 집을 이용한 범행을 그치게 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선 자신이 다시 그곳 신의 집에 갇혀야 할 텐데, 그런 선택을 과연 하게 될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신의 집은 자유가 박탈된 감옥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외부로부터 안전한 파라다이스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무리 파라다이스여도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그곳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리긴 하지만 말입니다.

 

환상은 밤에 자란다는 어느 날 바닷가에서 낯선 할머니에게 납치되어 그곳에서 몇 달을 함께 살았던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소녀를 납치했던 할머니는 남들이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바로 환상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능력이죠. 이 능력을 소녀 역시 갖게 되는데, 과연 이 능력으로 소녀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문제는 이 능력을 이용하려는 못된 이들, 그들로 인해 소녀는 갇히게 됩니다. 과연 소녀는 계속 악인들에게 이용만 당하게 되는 걸까요? 이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환상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실제가 아니더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 편의 소설 모두 재미납니다. 무엇보다 그 분위기가 독특한 점이야말로 이 작품의 꽃입니다. 시간, 공간, 환상, 서로 다른 의미에 갇혀 버린 이들, 그들의 절망과 그 절망 속에서 찾게 되는 또 다른 느낌의 감정들, 그리고 갇힌 곳에서 이어가게 되는 삶이 묘한 느낌을 줍니다.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다른 작품들 역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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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신 살인사건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4
다카기 아키미쓰 지음, 김선영 옮김 / 검은숲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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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맛 집을 이야기해도 전국 삼대 짬뽕집”, “전국 삼대 빵집등 셋을 골라 이야기하길 좋아한다. 물론 그 선별의 기준은 모호하다. 이는 솔직히 극히 주관적인 판단이니 말이다. 그럼 탐정은 어떨까? 일본 본격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3대 명탐정은? 물론, 각자의 기준에 따라 이 안에 넣고 싶은 탐정이 얼마나 많겠는가? 그렇다면 나름 일본 추리소설의 고전이라 말할 수 있는 에도가와 란포 시대의 3대 명탐정이라면?(본격과 신본격을 구분하여 그 한계를 정한다면 본격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3대 명탐정이라는 기준이 다소 설득력이 있을 수 있겠다.) 그 셋을 이렇게 꼽는다고 한다. 에도가와 란포의 아케치 고고로’, 요코미조 세이시의 긴다이치 코스케’, 그리고 다카기 아키미쓰의 가미즈 교스케로 말이다. 이 가운데 개인적으로는 가미즈 교스케는 이번에 처음 만나게 되었다.

 

바로 다카기 아키미쓰의 데뷔작이라는 문신 살인사건을 통해서다. 다카기 아키미쓰라는 작가가 있음을 알게 되었고, 작가의 작품을 읽고 싶어 책을 두 권 구입했는데, 그 가운데 한 권이 바로 이 책 문신 살인사건이다. 검은숲에서 출간된 작품인데, <다카기 아키미쓰 걸작선> 4번째 작품이다(이 책은 동서문화사에서도 번역 출간되어 있다.). 구입한 책 가운데 작품의 제목에 끌려 오히려 뒤 번호의 이 책을 먼저 선택하고 읽었는데, 이 책이 작가의 데뷔작이란다. 이런 행운이.^^

 

먼저, 마쓰시타 겐조란 등장인물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겠다. 마쓰시타 겐조는 도쿄대학에서 법의학을 전공하고 있는 재원인데, 경시청 수사 1과장인 형을 두고 있다. 이런 점 역시 사건에 접근할 수 있는 이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사전 지식 없이 소설을 읽으며, 마쓰시타 겐조가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 역할인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다. 명탐정은 마쓰시타 겐조의 선배 법의학자인 가미즈 교스케. 하지만, 마쓰시타 겐조는 작가의 작품에서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한다. 명탐정 가미즈 교스케가 홈즈의 역할이라면, 마쓰시타 겐조는 왓슨의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 이번 작품 문신 살인사건는 명탐정의 등장은 상당히 뒷부분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의 등장은 미궁에 빠졌던 사건의 실타래를 술술 풀어내는 전능함마저 보인다. 소설이 클라이맥스를 향해 나아가던 시점에 갑작스럽게 이런 명탐정이 등장하기에 다소 생뚱맞다는 생각을 한 게 사실인데, 이 명탐정의 존재가 저자의 작품 가운데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을 알게 되어 오히려 이런 등장에 후광이 비춰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아무튼, 작품의 시대적 배경은 종전 직후인 1946년인데, 사건은 마쓰시타 겐조가 한 문신대회에 참석하면서 시작된다. 문신을 금지하는 처벌령이 내려진 시대에서 비밀스럽게 열린 문신대회, 그 대회에서 마쓰시타 겐조는 등 전체에 거대한 뱀을 새긴 여인을 만나게 되는데, 이 여인의 매력에 순진한 청년 마쓰시타 겐조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깊이 빠져들게 된다. 그런데, 이 여인이 살해되었다. 끔찍한 모습으로 문신이 새겨진 몸통은 사라진 얼굴과 팔다리만이 놓인 밀실 살인사건. 과연 범인은 왜 문신이 새겨진 몸통을 가져갔을까? 피해자의 신분을 감추려는 의도였다면 문신이 새겨진 몸통만이 아닌 머리를 가져가야 했을 텐데 말이다.

 

이렇게 끔찍한 밀실살인사건의 피해자가 된 여인은 유명한 문신사의 딸로, 오빠와 쌍둥이 여동생, 이렇게 세 남매는 삼자견제라고 불리는, 그래서 문신사들 사이에서는 금기처럼 여겨지는 문신을 각자 새기고 있다고 한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개구리는 민달팽이를 잡아먹고, 민달팽이는 뱀을 녹여버린다.”는 삼자견제의 전설. 그 가운데 뱀을 새긴 여인, 그리고 그 살해의 현장인 밀실 안에서 발견된 민달팽이. 정말 전설이 이루어지고 있는 걸까? 전쟁 중에 실종되거나 죽은 것으로 알려진 오빠와 쌍둥이 여동생, 그리고 살인의 피해자가 된 여인 사이에는 여전히 어떤 불운한 역학관계가 존재하고 있는 걸까?

 

문신에 얽힌 전설, 그리고 풀리지 않는 밀실살인사건 등으로 인해 다소 초자연적 느낌도 없지 않는 사건, 그런데, 또 다른 연쇄살인이 벌어지게 되고, 범인은 오리무중이다. 과연 이 사건은 어떤 식으로 해결이 될까?

 

밀실살인사건은 언제나 흥미롭다. 이것만으로도 추리소설을 사랑하는 독자들을 매료시킨다. 게다가 소설 속 사건은 알리바이 트릭 역시 중요하다. 여기에 피해자들이 문신을 새긴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그 문신을 수집하는 수집광 하야카와 박사의 존재 역시 사건을 미궁으로 빠뜨리게 한다. 무엇보다 사건이 굳이 밀실살인사건이 되어야 했던 이유가 흥미롭고, 이 안에 또 하나의 트릭이 감춰져 있다. 기계적 밀실을 통해, 심리적 밀실을 만들려고 했던 고도의 트릭이. 또한 삼 남매에게 새겨진 세 개의 문신, 서로 물고 뜯기는 삼자견제라는 전설의 문신이 새겨져 있다는 설정 역시 또 하나의 커다란 트릭이다. 이는 서술트릭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뱀은 개구리를 잡아먹고, 개구리는 민달팽이를 잡아먹고, 민달팽이는 뱀을 녹여버린다.”는 삼자견제의 전설을 통해, 독자들은 이들 삼 남매에겐 이 문신이 새겨져 있다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사건을 들여다보게 하니 말이다.

 

고전의 느낌이 있으면서도 지루하지 않게 소설은 진행된다. 소설은 종전 직후의 무너진 도덕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어쩌면 형제애가 더 두터워져야만 할 전쟁이란 사건, 하지만, 전쟁의 끔찍함은 형제애마저 돌아보지 않게 하는 극단적 이기주의로 인간을 내몰고 있음을 소설은 은연중 고발하고 있다. 또한 문신에 대한 반감, 혐오감, 그리고 선입견 등에 대해서도 소설은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물론 그럼에도 문신을 한 사람의 인간성에 대해 소설은 또한 단정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지만 말이다.

 

아무튼 일본 본격 추리소설을 대표하는 3대 명탐정 가운데 한 사람을 처음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배부른 작품이었다. 그것도 데뷔작을 통해 처음 만났으니 말이다. 가미즈 고스케와 마쓰시타 겐조의 멋진 콜라보를 기대하며 작가의 다른 작품을 읽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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ㅇㅇ 2020-11-16 0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문신대회 흥미롭네요 재미있어 보여요
 
스나크 사냥 미야베 월드 (현대물)
미야베 미유키 지음, 권일영 옮김 / 북스피어 / 2017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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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베 미유키의 소설을 많이 읽은 편은 아니다. 그럼에도 작가의 작품을 읽을 때마다 이래서 다들 미미여사라 부르며 미야베 월드에 빠져드는구나 싶다. “독자들이 꼽은 미야베 미유키의 진정한 최고작이라는 찬사가 따르고 있는 소설, 스나크 사냥을 읽었다. 평소 출판사가 책을 선전하는 문구를 신뢰하지 않는 편인데(그래서 책의 띠지 역시 곧장 이면지 박스로 던져버리곤 한다.), 이번엔 다르다. 가히 최고작이라 불러도 과함이 없겠다 싶다. 무엇보다 빠른 진행, 그리고 여러 인물들에서의 서로 다른 접근이 하나로 엮여 나가는 몰입도가 대단하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 책 뒷 표지에 적힌 소개 글을 읽는데,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사건을 추적하며라고 문구가 시작된다. 이 문구를 보며, ! 그랬구나! 싶었다. 소설이 빠르게 전개되고 박진감과 긴장감이 최고조였기에 소설의 진행이 단 하룻밤 사이에 일어난 사건이란 생각을 미처 하지 못했던 거다. 그만큼 몰입도가 좋고 빠르게 진행된다.

 

먼저, 소설의 제목이 궁금했다. 소설을 상당히 읽어간 후에도 책 제목과는 어떤 상관이 있을까 의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소설을 다 읽은 후엔 비로소 알게 된다. 왜냐하면 작가가 친절하게 소설 속에서 설명을 해주고 있어 모를 수 없다. ‘스나크는 괴물을 가리킨다. 보이진 않지만 존재하는 괴물들이 스나크다. 그러니 소설 속에서는 여러 스나크, 괴물들이 등장한다. 소설을 재미나게 만들어주는 등장인물이지만, 실제 현실 사회 속에선 존재하지 않았으면 싶은, 그러나 실제 현실 사회 속에서도 수없이 만나게 되는 그런 스나크, 괴물들이 말이다.

 

소설은 여러 등장인물들의 이야기들로 각기 진행되지만, 이들의 이야기가 어느 샌가 하나로 촘촘히 엮여 진행된다.

 

제일 먼저 만나게 되는 인물은 세키누마 게이코란 미모의 여성인데, 부잣집 딸이자 철부지 여인이다. 평범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평범한 회사원은 누릴 수 없는 호화 생활(?)을 하는 건 모두 부잣집 아빠의 사업을 이어받은 오빠의 물질적 후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 그녀는 엽총을 들고, 결혼식과 피로연이 한참 진행되는 호텔로 잠입한다. 과연 무엇을 하려는 걸까?

 

게이코란 여인과 연관된 스나크, 괴물이 또한 등장한다. 고쿠부 신스케란 괴물인데, 이 녀석은 사법고시를 준비하던 고시생이었는데, 그동안의 생활을 책임질 대상으로 게이코를 택한다. 허영심 많고 머리는 빈 여성이라고, 돈은 많고 미모의 여성이지만, 딱 이용하기 좋다고 여기고 말이다. 그리곤 사법고시에 합격하자 게이코를 버린다. 이젠 필요 없으니 토사구팽 하는 것. 단물만 빼먹고 버리고서는 자신의 행동을 자랑스럽게 여기는 아주 야비한 스나크, 괴물이다. 그런 그는 자신의 결혼식장에 게이코가 총을 들고 왔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는 신혼 첫 날 밤에 몰래 게이코의 집으로 향한다. 게이코 몰래 복사해놓은 그녀의 집 열쇠를 들고 말이다. 과연 이런 괴물의 침입에서 게이코는 자신은 지켜낼 수 있을까?

 

또 다른 중요 주인공이 있다. 성실한 이미지 가득한 중년 남성으로 직장에서는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으며 젊은 동료들에게 아버지라 불릴 정도로 신뢰받는 오리구치란 남성인데, 이 남성은 이혼한 부인과 딸이 무참히, 그리고 장난스럽게 살해당한 씻지 못할 상처를 안고 있다. 가해자들은 인간의 생명을 장난처럼 빼앗아놓고도 반성이 없다. 아니 오히려 자신들이 빠져나갈 구멍만을 여전히 만들고 있다. 변호사들의 협조아래 말이다. 자신들을 환경의 피해자라 주장하며 피해자 코스프레만 한다. 이들이야말로 소설 속에 등장하는 최고 괴물들, 스나크다. 법정에서는 최대한 자신들이 반성하고 있다는 시늉을 하지만, 실상은 여전히 장난스럽게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인성을 그대로 소유하고 있는 괴물들이다.

 

바로 이들 괴물들을 향해, 성실맨이자 가족을 잃은 상처 입은 남성 오리구치는 놀라운 계획을 선택하게 된다. 자신의 직장 단골이었던 게이코에게 엽총이 있음을 알고는 그 엽총을 빼앗아 들고 말이다. 과연 오리구치는 괴물들을 처단하기 위해 기꺼이 스나크가 될 수 있을까?

 

여기에 또 다른 각도로 사건을 쫓는 이가 있다. 사쿠라 슈지라는 역시 성실한 직장인으로 오리구치의 직장동료다. 직장에서 유일하게 오리구치의 상황(1년 전 아내와 20살 딸이 무참히 살해당한 사건과 그 가해자들의 재판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알고 있는 유일한 동료인데, 그는 자신에게 소개팅을 시켜주는 오리구치, 하지만, 뭔가 분위기가 다르고 위화감이 느껴지는 오리구치의 행동들을 추리하며, 오리구치가 엄청난 일을 계획하고 있음을 알게 되고, 오리구치를 뒤쫓기에 이른다. 물론, 오리구치가 돌이킬 수 없는 일을 저지르기 전에 막으려고 뒤쫓는데, 과연 슈지는 오리구치가 돌이킬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기 못하도록 막을 수 있을까? 아님, 슈지 역시 자신 안에 감춰진 스나크를 소환하는 건 아닐까? 과연 슈지는 최고의 짐승들, 자신이 행한 죄를 반성할 줄 모르는 괴물들을 오롯이 보고 느끼면서도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을까?

 

소설은 다소 하드보일드 소설의 느낌이 강하게 느껴지는 긴박감 가득한 소설이다. 그러면서도 뭉클한 감동 역시 빠지지 않는다. 게다가 사회적 이슈에 대한 질문을 끊임없이 던진다. 예를 든다면, 가해자들의 인권을 생각하며, 그들 역시 환경의 피해자임을 인정하는 것이 정당한가? 아니, 가해자가 환경의 피해자라면 그들을 향한 처벌이 감형되어야만 하는 걸까?

 

향정신성 약품에 정신을 빼앗긴 상태에서 행한 범죄는 감형되어야만 하는 걸까? 특히, 이러한 점을 악용하는 악당들, 괴물인 스나크임에도 그들에게 법정이 손을 들어주는 것이 과연 정의인 건가?

 

법정이 올바른 정의구현을 행하지 않는다면 피해자 스스로 린치를 행해도 되는 걸까? 아니면 린치가 허락되면 사회는 붕괴되고 말 것이라는 당위성을 붙들고 린치는 절대 불가인 걸까? 린치 말고는 정의구현의 방법이 없다면, 린치 말고는 진실을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면, 그래도 린치는 지양해야만 하는 걸까?

 

이처럼 소설은 범죄에 관해 다양한 주제를 던진다. 그런 의미에서 소설은 또한 분명한 사회파 소설이다. 흔히 사회파 소설은 조금은 박진감을 잃게 되는 경우가 있는 데, 소설은 그 모든 것들이 적절하게 버무려져 있다. 그렇기에 역시 미미여사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는 소설이다. 아무래도 미미여사의 책을 더 많이 찾아 읽게 될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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셰어하우스 플라주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90
혼다 데쓰야 지음, 권남희 옮김 / 비채 / 2020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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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데쓰야를 처음 만난 것은 <레이코 형사 시리즈> 첫 번째 책인 스트로베리 나이트를 통해서였다. 소설을 재미나게(?) 읽으면서도 한편으로 힘겨웠던 것은 소설을 통해 만나는 너무나도 잔혹한 인간성 때문이었다. 가히 짐승이라 부를만한, 인간이길 포기한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범죄의 모습에 몸을 떨어야만 했다. 너무나도 잔혹하고 사실적인 범행 묘사, 그리고 암울하고 어두운 분위기의 소설. 그럼에도 작품의 구성이 탄탄하고 좋아 그 매력에 금세 빠져들고 말았다. 그렇게 혼다 데쓰야란 작가를 알게 되었고, 결국 시리즈의 다른 책들도 여럿 찾아 읽게 되었다.

 

내가 만난 혼다 데쓰야의 작품 가운데 최고이자 최악의 작품은 다름 아닌 짐승의 성이었다. 악마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는다면 악마를 만날 수 있는 작품, 그래서 최악이라 말할 수 있지만, 그럼에도 미스터리소설로서는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 그런 작품이었다(특히, 그 반전이란...). 이런 작품들을 읽으며, 혼다 데쓰야의 작품들은 모두 그런 분위기인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음을 알게 된 건 마스야마 초능력사 사무소란 작품이었다. 초능력자들이 등장하는 미스터리 연작 소설이었는데, 분위기가 확 달라진 작품에 같은 작가인가 싶을 정도였던 기억이다. 이제 또 다른 분위기의 감동미스터리 소설을 만나게 되었다.

 

셰어하우스 플라주란 작품인데, “플라주란 이름의 셰어하우스에 입주한 입주자들이 만들어가는 이야기다. 여행자 직원으로 수년을 일했지만, 딱히 보람도 없고, 인정받지도 못하는, 아니 도리어 사람들에게 천덕꾸러기 취급받는 다소 무능한 영업직원 다카오, 그는 단 한 번의 탈선으로 약을 접하게 되고 이 일로 집행유예 전과자가 된다. 이렇게 직장마저 잃은 그는 그나마 있던 숙소마저 화재가 남으로 갈 곳을 잃게 된다. 그런 그를 받아준 곳이 바로 플라주란 셰어하우스다. 각 방마다 문이 없이 커튼으로 가려진 독특한 분위기의 셰어하우스, 아래층 1층은 같은 이름의 카페인데, 손님이 하나도 없는 것 같지만, 점심시간과 저녁시간엔 단골손님들로 북적거리는 장소다.

 

이곳 플라주란 곳에 입주해 있는 사람들은 사실 모두 전과자다. 그 가운데는 누군가를 죽인 전과자 역시 여럿 있다. 모두가 알고 보면 상처 하나씩 가지고 있는 플라주. 전과라는 흔적이 인생에 너무 깊이 상처를 내어 회복이 힘겨운 이들이 모여 있는 곳. 그곳에서 다카오는 세상에서 얻지 못한 위로와 평안, 참 안식처를 누리게 된다. 과연 그곳에선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소설은 전과자들이라고 해서 모두 악한 것은 아님을 보여준다. 오히려 한순간의 실수나 한순간의 잘못으로 전과자가 되고, 이 전과자라는 낙인이 그들의 갱생의지를 꺾어놓고 있음을 보여준다. 마음잡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보려 하지만, 기회조차 얻기 어려운 전과자들, 그들에게 플라주라는 셰어하우스는 안식처가 되어준다. 아니 그곳은 그들을 품었다가 다시 세상으로 내보내는 자궁과 같다. 플라주라는 엄마에게서 영양분을 공급받아 세상에서 살아갈 힘을 얻게 되는.

 

그곳 플라주를 세운 여인 역시 상처가 있다. 아버지가 살인자라는 상처, 그로 인해 법의 처벌을 받았지만, 그 뒤로도 낙인처럼 따라다니며 괴롭혀 결국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고, 내몰려 자살이란 선택을 해야만 했던 아버지를 둔 딸, 그 딸이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자들을 보듬어 안아주려는 공간이 바로 플라주다.

 

아버지는 분명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다. 돌이킬 수 없는 짓을 저질렀다. 그러나 이 나라는 법치국가다. 설령 죄를 저질렀어도 제대로 벌을 받으면 용서해주어도 좋지 않은가. 그 사람이 제대로 갱생했는지 어떤지, 재범 가능성이 높은지 낮은지 그건 또 다른 문제일 터다. 일단 벌을 받은 사람에게는 재출발할 기회를 준다. 그 정도는 사회가 보장해주어도 좋지 않은가(346).

 

사실 소설은 어쩐지 미스터리 같지 않다. 그럼에도 미스터리소설이라 말할 수 있는 건 바로 이곳 플라주에 위장 잠입한 프리랜스 기자의 존재다. 그는 플라주에 입주한 사람들 가운데 누구일까? 기자의 입장에서 서술할 때는 라는 존재로 나오지만, 그 나는 입주자 중 누구일까? 그리고 그가 위장 잠입하여 살인자 A라는 자의 살인을 입증하려 하는데, 정말 그것이 목적일까? A는 플라주 입주자 중 누구일까? 그리고 의 진정한 목적은 무엇일까? 이러한 점들이 미스터리 소설의 맛을 느낄 수 있게 해둔다. 여기에 전과자에 대한 고민을 다루는 사회파소설처럼 느껴지기도 하고. 하지만, 무엇보다 작가가 전해주는 것은 이곳 플라주에서 발산되는 감동이 아닐까 싶다.

 

소설의 제목인 플라주는 해변이란 뜻의 불어라고 한다. 셰어하우스 플라주를 읽는 가운데, 어느 곳에도 제대로 속하지 못한 주변인간들이 만들어가는 감동을 맛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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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
오가와 요코 지음, 이윤정 옮김 / 작가정신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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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박물관이란 독특한 제목의 소설을 만났다. 이 소설의 책장을 열어보게 된 이유는 다름 아닌, 이 독특한 제목에 있었다. ‘침묵 박물관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지, 무엇을 전시하는 공간일지 궁금했던 것이다. 침묵이 도리어 어떤 소리보다 더 크게 손짓했던 셈이다. 여기에 또 하나의 이유가 있다면, 작가가 다름 아닌 박사가 사랑한 수식의 작가라는 점 역시 소설을 펼쳐보게 된 이유였다.

 

이제 갓 겨울이 봄에 자리를 넘겨주던 시기에 한 젊은 박물관 기사(‘’)가 면접을 보기 위해 한적한 시골 마을의 어느 저택을 찾게 된다. 그곳에서 를 기다리던 이는 나이를 갸름하기 힘들 정도로 늙은 괴팍한 성향의 노파였다. 그 첫 만남의 느낌에 이번 면접은 틀렸구나 싶었는데 나는 그 괴팍한 노파와 함께 노파가 구상하는 박물관을 개관하기 위해 일하게 된다. 노파가 모아놓은 물건들은 다름 아닌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남겨진 유물들. 노파는 소녀 시절 자신의 집 정원사(현재 정원사의 할아버지)가 사고로 죽게 된 후, 뭔가에 끌린 듯 정원사의 전지가위를 모으기 시작하면서 그 뒤로 누군가의 죽음 이후에 그 사람의 일생을 이야기 할 만 한 물건들 하나를 모으게 된다. 마치 자신의 사명인양.

 

내가 찾는 건 그 육체가 틀림없이 존재했다는 증거를 가장 생생하고 충실하게 기억하는 물건이야. 그게 없으면 살아온 세월이 송두리째 무너져 버리는 그 무엇, 죽음의 완결을 영원히 저지할 수 있는 그 무엇인지. 추억 같은 감상적인 감정과는 관계없어. 물론 금전적인 가치 따윈 논외고.”(47)

 

이렇게 유물들이 모아진다. 수십 년 전 마을의 유일한 살인사건으로 희생된 어느 창녀의 유골에서 발견된 피임링, 그리고 미라 개, 피부암으로 죽은 노인의 의안, 109세 전직 외과의사의 죽음 이후, ‘에 의해 수집된 수술 메스, 등등, 이런 식으로 전혀 일관성 없는 여러 유품들이 모아지게 된다. 나는 그 각각의 유품들에 얽힌 사연을 노파로부터 전해 듣게 되고, 그 사연들을 하나하나 기록하며, ‘침묵 박물관의 개관을 준비하게 된다. 괴팍한 노인, 그리고 상큼한 소녀인 노파의 수양딸, 가정부와 정원사 부부, 이렇게 이들이 한 마음으로 침묵 박물관을 만들어 간다.

 

는 이미 모여진 유물들을 하나하나 정리할뿐더러, 여전히 진행되는 누군가의 죽음 그곳을 찾아 그의 삶의 기억하게 하는 물건들을 모으는 작업을 하게 된다. 물론, 그 물건은 대부분 몰래 훔쳐오게 된다.

 

이렇게 하루하루 착실히 일을 하던 가운데, 마을에 사고가 일어나게 된다. 어떤 특별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것만 같은 한적한 마을에서 갑자기 벌어지는 사건들. 폭발사고가 일어나게 되고, 몇 십 년 전 일어났던 살인사건과 유사한 살인 사건이 다시 연달아 벌어지게 된다. 유두가 잘린 채 희생된 여성들의 연쇄살인사건이. 과연 범인은 누구일까? 사실 소설은 범인 자체에 관심을 기울이지는 않는다. 그러니 미스터리 소설은 아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범인이 누구인지는 궁금하다. 특히, ‘가 형사들에 의해 용의자로 의심되기 때문에 더욱. 그래서 어쩐지 묘한 미스터리 소설의 느낌이 없지 않다.

 

여기에 또 한 가지 묘한 느낌을 받게 하는 것은 는 형에게 여러 차례 편지를 보내곤 한다. 이제 곧 조카를 낳게 된다는 형수의 소식에 대한 궁금증을 담아. 그런데, 한 번도 답장이 오지 않는다. 과연 무슨 이유인 걸까?

 

소설은 참 묘한 분위기로 진행된다. 누군가의 죽음, 그 흔적을 모으며 그들만의 방식으로 애도한다는 면에서 어쩐지 텐도 아라타의 애도하는 사람이 떠오르기도 하는 소설이다(물론 두 소설은 전혀 다르지만 말이다.). 사람들이 잘 찾지 않는 잊힌 마을에서 결코 누군가의 삶을 잊지 않으려는 처절한 몸부림을 소설을 통해 만나게 된다. 연쇄살인사건의 범인이 누구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 죽음 뒤에 남겨진 유물, 그 흔적과 기억이 중요할 뿐.

 

정원사가 노파를 등에 업고 박물관을 한 바퀴 돌았고, 우리는 그 뒤를 따랐다. 아무도 입을 열지 않았다. 노파의 힘겨운 숨소리가 끊어질 듯 약하게 들려왔다. 창문이 황혼으로 물들고, 눈은 더 선명한 그림자가 되어 떨어지고 있었다. 바람 소리는 닿지 않았고, 멀찍이 물러나 앉은 얼어붙은 숲 너머에는 발의 세계가 도사리고 있었다. 그것은 망자들을 애도하는 순례였다. 노파의 거친 숨소리는 그 애가였다.(332)

 

이 특별한 애도와 애가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자.

 

, 소설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이름이 나오지 않는다. 무명의 인물들을 통해 이미 이들 역시 죽음을 준비하고 있는 걸까? 모를 일이다. 분명한 것은 이름이 등장하지 않기에, 혹 등장인물의 이름이 헷갈려 일본소설을 읽는데 어려움을 느끼는 독자들에게 이 작품은 전혀 그런 문제가 없다는 것 역시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매력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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