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의 감옥
쓰네카와 고타로 지음, 이규원 옮김 / 고요한숨 / 2020년 11월
평점 :
품절


 

독특한 소설집을 만났습니다. 쓰네카와 고타로 란 작가의 가을의 감옥이란 소설집인데(2008년도에 노블마인에서 번역출간된 작품인데, 이번에 고요한숨에서 개정판으로 번역출간되었습니다.), 책 속엔 3편의 단편소설이 실려 있습니다. 모두 환상소설이라 부를 수 있는 소설들. 각기 세 종류의 감옥에 갇힌 상황에서 일어나는 이야기들입니다. 가을의 감옥은 시간에, 신의 집은 공간에, 그리고 마지막 소설 환상은 밤에 자란다는 환상의 능력 속에 갇힌 이야기들입니다.

 

첫 번째 소설인 가을의 감옥은 어느 날 갑자기 같은 날이 반복되며 시작됩니다. 바로 117일의 반복입니다. 처음엔 누구에게도 밝힐 수 없었고, 두렵기까지 했지만, 점차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있음을 알게 됩니다. 같은 날이 반복되기에 이런 현상을 리플레이라고 부르고, 117일에 갇힌 사람들을 리플레이어라고 부른답니다.

 

무엇을 하든 다음날이면 다시 시작되는 117. 이런 상황 속에서 리플레이어들은 어떤 선택을 할까요? 누군가는 아내가 바람난 사실을 알게 되고, 아내를 죽이기도 합니다. 물론 117일이 계속 반복되기에 그 날 아내는 다시 바람을 피우게 되고, 아내를 또 죽이기도 하죠(다양한 방법으로 말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부질없음을 알게 됩니다.

 

이처럼 같은 날의 반복만이 있다면 어쩌면 너무 따분할 수도 있을 텐데, 소설 속에선 리플레이어들이 하나하나 행방불명된답니다. 그 행방불명에는 기타카제 백작이라고 이들이 부르는 괴물이 연관되어 있다고 여긴답니다. 때가 되면 누군가는 이 기타카제 백작에 의해 사라지게 되는데, 그 사라짐이 정말 사라지는 것인지, 아님 시간의 감옥인 117일을 벗어나 118일로 가게 되는 걸까요? 이는 끝내 모를 일입니다. 하지만, 이왕이면 118일로 넘어간다는 희망을 남겨두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문득, 내일 눈을 떠보니 오늘의 반복이 시작된다면, 나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 생각해봅니다. 어쩌면 소설 속 등장인물들이 그랬듯 하루의 시간 동안 다녀올 수 있는 곳들을 여행하는 것도 좋겠다는 생각이 드네요. 무엇보다 이 소설은 117일에 읽었어야 했는데, 그 때를 놓쳐 아쉬움이 있었답니다. 책을 받은 것이 116일이었기에 더 아쉬웠답니다.

 

신의 집은 주인공이 마을 공원에서 길을 잃고 어느 초가고택에 들어가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그곳은 마을이 수백 년 전부터 비밀리에 지켜온 신역인데, 이 집 안에 들어간 존재는 밖으로 나올 수 없습니다. 누군가 자신을 대신할 존재를 집에 들이지 않는 한 말입니다. 그렇게 주인공은 우연히 들어간 집에서 오랫동안 그곳에 갇혀 있던 사내 대신 신의 집을 지키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집은 공간자체가 여러 지역을 일정한 경로로 공간이동을 하게 됩니다. 전국 곳곳을 일정한 간격으로 이동하는 신비한 집, 그곳을 벗어나기 위해 주인공은 어느 한 사내를 유인하여 안으로 들이고 자신은 결국 밖으로 도망치게 되는데, 그 뒤로 이상한 사건들에 대한 기사를 접하게 됩니다. 바로 이 집이 움직이는 경로에서 일어난 실종 사건과 살인 사건들, 이에 바로 그 사내가 범인이 아닐까 의심하게 되고 다시 그 신의 집으로 향하게 되는데, 과연 신의 집을 이용한 범행을 그치게 할 수 있을까요? 이를 위해선 자신이 다시 그곳 신의 집에 갇혀야 할 텐데, 그런 선택을 과연 하게 될까요?

 

어떤 의미에서는 신의 집은 자유가 박탈된 감옥이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외부로부터 안전한 파라다이스이기도 합니다. 물론, 아무리 파라다이스여도 외부로 나갈 수 없다는 사실 자체가 그곳을 감옥으로 만들어버리긴 하지만 말입니다.

 

환상은 밤에 자란다는 어느 날 바닷가에서 낯선 할머니에게 납치되어 그곳에서 몇 달을 함께 살았던 소녀의 이야기입니다. 소녀를 납치했던 할머니는 남들이 없는 능력을 가지고 있답니다. 바로 환상을 보게 되고, 더 나아가 다른 이들에게 환상을 보여주는 능력이죠. 이 능력을 소녀 역시 갖게 되는데, 과연 이 능력으로 소녀는 무엇을 하게 될까요?

 

문제는 이 능력을 이용하려는 못된 이들, 그들로 인해 소녀는 갇히게 됩니다. 과연 소녀는 계속 악인들에게 이용만 당하게 되는 걸까요? 이런 능력이 주어진다면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환상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실제가 아니더라도 순수한 마음으로 누군가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그것이 진짜가 아니기 때문에 의미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세 편의 소설 모두 재미납니다. 무엇보다 그 분위기가 독특한 점이야말로 이 작품의 꽃입니다. 시간, 공간, 환상, 서로 다른 의미에 갇혀 버린 이들, 그들의 절망과 그 절망 속에서 찾게 되는 또 다른 느낌의 감정들, 그리고 갇힌 곳에서 이어가게 되는 삶이 묘한 느낌을 줍니다. 작가의 작품은 이번에 처음 접했는데, 다른 작품들 역시 관심을 갖게 됩니다.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협찬 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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