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에 다음에서 '거실을 서재로' (샘터사 후원) 이벤트도 당첨 시켜주더니, 이번에 또 당첨시켜 줬네요ㅋㅋ 고마워 다음^^

'마지막 선물'이라...제목이 같은 책이 많아 어디 출판사인지 모르겠네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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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dgghhhcff 2007-08-04 10:18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다음과 인연이 있으신가 봐요 ㅎㅎ 다음에서 자꾸 당첨되시네요.^_^
마지막선물이란 책 당첨되셨군요~! 축하드려요~

쥬베이 2007-08-04 11:49   좋아요 0 | URL
ㅋㅋ그런가봐요~ 자꾸 당첨되네요ㅋㅋㅋ

비로그인 2007-08-04 11: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거실을 서재로에 당첨되셨다니 너무 대단하네요. 다음에서 쥬베이님을 사랑하나봐요.ㅋ
저에게도 그런 사랑을 보여주면 얼마나 좋을까요.ㅋ

쥬베이 2007-08-04 11:49   좋아요 0 | URL
짱돌이님에게도 행운이~!!
다음에 리뷰 자주 올렸더니, 자주 뽑아주는거 같아요 ㅋㅋㅋ
 
나를 훔쳐라
박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평점 :
품절


작가 박성원을 처음 알게 된 것은 소설집 <우리는 달려간다>를 통해서였다. 몽롱하고, 흥미로운 이야기 전개가 마음에 들어 마음속에 새겨두었는데, 갑자기 그의 다른 소설이 읽고 싶어졌다. <이상 이상 이상>, <나를 훔쳐라>, 이렇게 두편의 소설 전부 구입했다. 다행히 출간된지 10년이 넘은 <이상 이상 이상>이 절판되지 않아 다행이었다.

정말 감탄했다. 이런 멋진 작가를 왜 이제까지 알지 못했을까 하는 후회와 더불어, 일본소설만 탐닉해 오던 내 자신을 돌아봤다. 우리 주변엔 이렇게 멋진 작가가 있었던 것이다. 가장 놀라운 점은 '하리망당' ' 아치랑거리다' '흥감스레' '훙뚱항뚱' '새근발딱' 같은 멋드러진 우리말을 제대로 구사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껏 젊은작가들 중, 박성원 작가처럼 우리말을 아름답고 멋지게 구사하는 작가를 본 적이 없다. 이 점 하나만으로도 저자는 인정받아 마땅하다.

[댈러웨이의 창] 세든 청년의 여자친구에게서 느끼는 묘한 감정과 댈러웨이를 통해 서술되는 철학적 사유가 인상적이었다. 이층에 세든 청년, 그리고 그를 찿아온 여인. 화자는 이층으로 사라진 그들의 행방을 쫓으며, 외로움을 느끼는데 그 심정이 공감이 갔다.(p.13-14참조)

댈러웨이. 댈러웨이는 사진을 직접찍기 보다, 피사체에 반사된 모습을 표현해 냈던 작가라 한다. 그의 사진은 평범해 보이지만 고도의 기술과 주제 의식이 들어간 걸작으로 평가받는다. 화자는 청년을 통해 댈러웨이를 알게 되고, 댈러웨이에 대해 호기심을 느끼지만, 곧 그를 잊기로 한다. 댈러웨이와 위에서 언급한 여인은 오버랩된다고 이해했는데, 다음 서술을 보자. "애정이 증오로 치닫고, 또 그리움이 혐오로 쉽게 바뀔 수 있다는 것을 나는 그때서야 알았다. 댈러웨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이상하게 구토가 속을 우비고 올라왔고, 댈러웨이 사진을 응용한 광고를 보면 가눌 수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p.27)

댈러웨이란 인물은 과연 실제할까?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은 정말 사실인가? 사실이란게 존재하긴 하는 것인가? 나중에 밝혀진 진실은 그만큼 충격적이다.

[중심성맥락망막염] 구더기사내, 화자, 그리고 친구의 술자리 대화(상담)가 핵심내용인데, 그들 대화의 깊이는 만만치 않다. 구더기사내? 무릎의 상처가 썩어가지만, 항생제 거부반응때문에 항성제를 사용할 수 없는 사내는 썩은 살만을 먹어치우는 구더기를 무릎에 넣은 것이다. 자기 몸속에 구더기라니...끔찍하지 않을까? 부끄럽지 않을까? 아니다. 사내는 당당하다. 그의 말을 들어보자.

"회충이나 십이지장충 같은 것들에 비하면 이 구더기는 얼마나 이로운 생물입니까? 회충은 생살을 뚫고 기생하면서 온갖 질병을 일으키지만 제 몸 안에 있는 구더기는 생살을 먹지 않습니다. 오직 썩은 부위만 먹을 뿐이라 이 말입니다. 회충이 얼마나 독한 놈들인지 모두들 잘 아시죠? 수컷은 온몸이 생식기로 이루어져 있고 또 암컷은 한 번에 20여만 개의 알을 낳을 수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물 중에 이처럼 섹스만 밝히는 더러운 것들은 또 없을 겁니다."(p.38-39)

구더기사내는 중심성맥락망막염이란, 병에 대해 상담을 하고자 한다. 저 병은 망막이상으로 사물의 일부가 보이지 않는 병이다. 볼펜을 들고 있는 손을 바라보면, 손만 보이고 볼펜은 보이지 않는거 같은…. 이야기전개와 무관하게, 난 처음 '이 병이 그렇게까지 고민할 병인가'란 생각을 했다. '걸리면 죽는 불치병이 널렸고, 죽음보다 심각한 고통을 주는 병도 있는데 말야' 하고.

하지만 다음 서술을 보자. "제가 이 병을 겁내고 또한 지독하다고 느끼는 것으 제가 보고도 미처 의식하지 못하는 것이 존재한다는 점에 있습니다. 그러니까 저는 사물을 보거나 혹은 책을 읽더라도 남과 비교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확인하지 않으면, 제가 본 것이 과연 진실인지 아닌지 알 수 없다는 점 말입니다."(p.44) 그렇다. 자신 자신이 본 것에 대해 신뢰하지 못하는 삶은, 진실 저 편에 있는 삶일 것이다. 왜 그가 힘들어 하는지 알았다.

저자는 이런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이 세상을 사는 우리는 과연 자기가 본 것을 사실이라고 확신할 수 있을까? '중심성맥락망막염'을 앓고 있지 않다면, 사물을 제대로 보고 있다고 단정할 수 있을까? 저자는 도발적이고 충격적인 저런 질문을 재기발랄하고 멋지게 부각시킨다. 짧은 단편이지만 저자가 던지는 메시지는 가히 충격적이다. 저런게 능력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이 리뷰에는 단 두편만 소개했지만, 수록되어 있는 단편 모두가 하나하나 음미해야할 가치를 가진다. 아름다운 우리말과 함께, 저자가 던지는 깊이있는 메시지를 가슴으로 느껴보길 바란다. 정말 훌륭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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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winpix 2007-08-02 18:1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예전에 댈러웨이의 창을 읽고 정말 충격을 받았지요. 지금도 종종 생각나는 단편이에요. 리뷰 잘 읽었습니다.^^

쥬베이 2007-08-02 19:53   좋아요 0 | URL
정말 충격받을만한 작품이에요. 감사합니다^^

turnleft 2007-08-03 00:39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오홋.. 이 책도 보관함으로~

쥬베이 2007-08-03 18:34   좋아요 0 | URL
저도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는데, 아무래도 소장해야 할거 같아,
주문했습니다. 두고두고 읽게요 ㅋㅋㅋ

프레이야 2007-08-03 00:4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쥬베이님, 박성원이라는 작가를 소개받고 갑니다. 꾸욱^^
순우리말의 재발견도 의미있구요. 담아갑니다.

쥬베이 2007-08-03 18:35   좋아요 0 | URL
네. 정말 우리말이 제대로 쓰였습니다.
해설을 읽어보니, 저자는 우리도 생소한 우리말을 통해 '낮설기하기'의 효과까지 노린거 같다고 하더군요.

네꼬 2007-08-03 17:22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와- 이렇게 쓰시면 안 읽을 수가 없잖아요. =_=

쥬베이 2007-08-03 18:35   좋아요 0 | URL
꼭 읽어보세요^^ 괜찮으실 거에요~~

302moon 2007-08-03 23:1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대학 1학년 때, 읽었던 소설집. 여기서 보니, 반갑습니다. 저도 그때, 우리말 활용에 굉장히 감동을 받았어요. ^^

쥬베이 2007-08-04 10:06   좋아요 0 | URL
반갑습니다^
 
빌리 밀리건 - 스물네 개의 인격을 가진 사나이
다니엘 키스 지음, 박현주 옮김 / 황금부엉이 / 2007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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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생각해 보자. 3명의 여성을 납치,강간한 혐의로 체포된 피의자가, 일명 다중인격으로 불리는 '해리성 정체장애'를 앓고 있다며, 책임무능력을 주장한다면. 과연 당신은 어떤 판단을 할 것인가? 먼저, 간략한 법률지식을 알아야 한다. 범죄란 구성요건에 해당하는 위법하고 유책한 행위로써, 구성요건해당성, 위법성, 책임이란 세가지 요건이 갖추어 져야 한다. 즉, 아무리 살인,강간을 했더라도, 책임능력이 없다면 처벌받지 않는다. 과연, 다중인격이란 '해리성 정체장애'를 인정할 수 있을까? 이름조차 생소한, 상식적으론 납득할 수 없는 저 장애를…

우리는 지금부터 '해리성 정체장애'를 앓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빌리 밀리건의 삶을 소설의 형식으로 돌아볼 것이다. 일단 모든 가치판단을 자제하고, 소설의 내용은 차근차근 살펴가자. 23살의 빌리 밀리건은 대학가 연쇄 성폭행사건을 저지른 혐의로 체포된다. 피해자들의 증언, 빌리 밀리건의 집에서 발견된 피해자들의 물건들, 그리고 지문까지…검사는 그의 유죄를 당연시 한다 . 하지만 정신과 의사 '도로시 터너'는 빌리 밀리건을 상담하면서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녀는 빌리 밀리건의 변호사인 '주디 스티븐슨'에게 다중인격을 소재로 한 '시빌'이란 책을 읽어 볼 것을 권한다.('시빌'은 16개의 인격을 가진 시빌 아델 메이슨이란 여성의 기록을 담고 있는 책이라 한다. p.58참조) 빌리 밀리건이 다중인격이라는 것인가?

변호사인 주디 스티븐슨과 '게리 위웨이카트'는 빌리가 다중인격임을 확신하고, 이를 법정에서 주장하기로 한다. 주디와 게리는 여러 저명한 학자들의 의견을 듣고, 상대방인 검사측을 포함한 그들 앞에서 다중인격이 발현되는 빌리의 모습을 보여준다. 평소 다중인격이란 것을 믿지 않았던 이들도, 다양한 인격이 발현되는 빌리의 모습을 보면 그가 연기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결국, 빌리는 책임무능력을 이유로 무죄로 풀려난다.

빌리의 몸 속에 자리잡고 있다고 여겨진 인격은 총 24명이다. 하지만 14명은 저자가 나중에 연구하는 과정에서 새롭게 밝혀낸 것이고, 재판당시에는 10명이 부각되었다. 간략히 살펴보자면, '빌리' 빌리는 핵심인격으로, 다중인격으로 괴로워 하며, 자주 자살을 시도하고 있다. 그래서 주변의 다른 인격들이 그를 항상 잠재워 두려한다. '레이건' 레이건은 아주 거칠고 폭력적인 성향을 가진 인물이다.'앨런' 앨런은 사기꾼으로 뛰어난 말솜씨로 협상을 주로 맞는다. 나머지 인물들은 직접 읽어보시길.

이제 슬슬 처음 질문에 답을 해야 할거 같다. 과연 '빌리 밀리건'은 해리성 정체장애를 겪고 있는 가엾은 환자인지, 아니면 처벌이 두려워 연기하는 사기꾼인지.

다소 맥 빠진 답이지만, 판단을 유보하겠다. 단정적인 결론을 내리기엔 주어진 자료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의심스러운 부분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모두 존재한다. 의심스러운 부분은 빌리에게 발현되는 인격들이 상황에 따라 급조된다는 점이다. 초반 레이건, 앨런등이 주로 부각되는데, 이들은 하나같이 강간사실을 부인한다. 그렇기에 과연 강간은 어떤 인격이 주도했냐가 문제 되었는데, 이때까지 전혀 모습을 보이지 않은 레즈비언 '에이들라나'가 갑자기 등장한다. 그리고는 그녀가 강간을 했다는 쪽으로 이야기가 연결된다. 수많은 학자와 법률가 앞에서 지금까지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에이들라나'가 갑작스레 등장해서 강간 범행을 고백하는 부분 역시 의심스럽다.

또 있다. '선생'이란 인격이다. 사건 초반 '선생'이란 인격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를 만나고 부터, 다른 인격들을 통합하는 조정자로써 선생이 부각된다. 다른 인격을 통합한다는 것은 상당히 비중있는 역할인데도 지금껏 숨어있다가 필요할 때, 갑자기 드러나는 그 공교로움에 의혹의 시선을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다양한 인격은 연기를 통해 꾸며낼 수 있다. 이렇게 반문할지 모른다. '24명이란 인물을 통일성있게 연기한다는 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아니다. 24명의 인격중 실제 발현되는 인격은 소수이다. 다른 인격은 부끄러움을 탄다던지, 어리다던지 하는 이유로 부각되지 않고, 일부 핵심 인격만이 자주 모습을 드러낸다. 따라서 실제 연기해야 하는 인격은 24명이 아닌 5~7명에 불과하다. 그리고 저 정도는 연기를 통해 충분히 꾸며 낼 수 있다.
 
빌리는 남성들을 극도로 꺼리고 주로 여성들과 소통하려 하는데, 그건 어린시절 새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기 때문이라 주장한다. 그리고 이 때문에 어린시절 학대가 해리성 정체장애의 주요한 원인이라고 생각되기도 한다. 하지만 빌리의 주장만으로 가정내 아동학대 문제로 접근하는건 성급해 보인다. 새아버지는 언론을 통해 그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이렇듯 논란이 있는 상황에서 어느 한쪽의 주장만으로 결론을 내릴 수는 없다. 이 책만으로는 진실을 알 수 없는 상황.

이제, 빌리의 주장에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을 살펴보자. 가장 공감이 갔던 건, 빌리의 행동이 나름대로 일관성이 있다는 것이다. 각 인격들이 특성에 따라 일관성 있는 행동을 보이는 건 놀랍다. 사건 발생 전에 해리성 정체장애의 증상으로 볼 수 있는 이상한 행동을 했다는 어린시절 친구들과 교사의 증언역시 빌리의 주장에 힘을 더해준다. 또한 해당분야 전문가들과 검사, 판사들 모두가 빌리를 보고나서는 그가 연기를 하는게 아니라고 생각했으며, 그에게 호감을 가진 점 역시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이제 좀 정리해 보자. 위에 이야기한 것은 어디까지나 소설 <빌리 밀리건>을 읽고 느낀 점이다. 이 점은 분명히 하고 싶다. 실제 빌리 밀리건을 보지 못한 내가 '빌리 밀리건'이란 한 인물에 대해 언급하는 건(그것도 생존해 있는) 무리가 있다. 이렇게 정리하고 싶다. 실제로 빌리 밀리건을 보지 못하고 이야기만을 접한 지금은 그의 해리성 정체장애 주장에 회의적이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 유보적이다. 실제로 해리성 정체장애를 겪고 있다고 주장하는 환자를 보기전까지. 빌리를 보기 전까지.


* 책 뒤편에 빌리 밀리건의 최근 근황과 편집후기가 실린, 편집자의 '뱀다리^^'가 있는데, 인상적이었다. 저자나 역자의 후기, 평론가의 해설과 평론은 접할 기회가 있지만, 책을 만드는 편집자의 생각은 전혀 알 도리가 없었다. 이런 편집자분들의 후기가 계속 실려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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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그인 2007-08-01 21:3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굉장히 흥미롭네요. 존쿠삭의 '아이덴티티'라는 영화가 생각나는 군요. 이런 사건이 실제로 있었다니 신기할 따름입니다. 읽어보기 전에 어떤 선택을 해야하는지 확신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쥬베이 2007-08-01 21:58   좋아요 0 | URL
짱돌이님 반갑습니다^^ 한번 읽어보세요. 심리학의 고전이랍니다ㅋㅋ
 
나를 훔쳐라
박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품절


"아 참, 그리고 댈러웨이는 이런 말을 했어요. 워낙 말도 아낀 사람이라서 아마 그가 죽을 때까지 한 몇 마디 안 되는 말 중의 하나일 거예요. '창은 진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만일 창이 없다면 사각의 벽 속에 갇혀 있는 진실을 어찌 구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창을 사진기에 있는 뷰파인더를 통해서 본다.' 어때요, 멋있지 않아요?-21쪽

"댈러웨이 사진중에 한 사내가 그냥 웃고 있는 표정을 찍은 게 있어요. 그냥 함박웃음 같은 그런 표정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내의 눈동자를 확대해서 자세히 보면 한 산모가 막 출산하는 모습이 있어요. 아마 사내의 아내겠죠.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사내의 웃는 모습을 다시 보면 소름이 쫙 돋죠."-23쪽

창을 통해서 사각의 벽 속에 있는 실제를 엿볼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닌 그림자일 뿐이다. 바로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진실이 창을 향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한, 우리는 그림자를 보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실제는 아직도 사각의 벽 안에 웅크리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창은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는 사각의 벽 속에 온전히 있을 뿐이고, 창은 다만 진실을 향한 허망한 갈망일 뿐이다.-32쪽

"제가 지문을 예로 들어볼까요? 지문이 사람과 사람을 가장 뚜렷하게 구분해준다고는 하나 그놈도 허점투성이여서 지문이 일치할 확률은 20억분의 1이랍니다. 20억분의 1이라면 확률이 작다고 생각하겠지만 60억이 넘는 인구를 두고 계산하면 적어도 두세명은 자신과 지문이 일치한다는 말이지요. 더군다나 그런 두세 명이 우연히 자신 주위에 있다면 변별력의 지표가 되는 지문은 허무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기능과 정의를 상실하면 한 존재는 더 이상 그 존재가 아니죠. 지문은 더 이상 지문이 아니란 말입니다. 순전히 세상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 지배합니다. 과학과 수의 법칙도 우연 앞에선 무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확률 따위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40쪽

"엄밀히 말하자면 수의 세계는 약속의 세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기호 0을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0이라는 가상이 없으면 계산이 되지 않으므로 강제로 끼워 맞춘, 오직 편리와 연산을 위한 억지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가감승제를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0을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아주 자연스럽게 믿으며 따라왔습니다. 또한 0이라는 게 실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계산은 10진법으로, 컴퓨터는 2진법으로, 시간과 각도는 60진법으로, 연력은 12진법으로, 그렇게 소수의 학자들이 편리를 위해 약속한 것이지만 우리들은 그것들에 아무런 간여도 하지 못한채 살아왔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찿기도 전에 시작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의지는 왜 세상에 간여하지 못하는가 이 말입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41쪽

"나 참, 조금 전에 선생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과학이니 확률은 엉터리라고. 의사의 말로는 이런 병에 걸릴 확률이 1억분의 1이라는 군요. 그게 무얼 의미하겠어요? 확률이 있다는 건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고 더러운 꼴이 누구에게나 갈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10억분의 1이고 100억분의 1이고간에 다수를 지향하는 민주사회니 병에 걸릴 확률이 낮은 병에 대해서는 관심은 커녕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겠죠. 그것이 바로 다수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니까 말입니다."-53쪽

벌레는 꺼무슥한 몸에 징그러운 촉수가 꾸무럭거려야 벌레다울 것인데도 자신이 마치 공작새라도 된 것처럼 위장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심히 마뜩하지 못했다. 놈이 기기 위해 꾸물거릴 때마다 알록달록한 무지개 파장이 그놈의 근육에 따라 더욱 일렁이었는데, 그때마다 나의 온몸은 근질거렸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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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령인명구조대
다카노 가즈아키 지음, 박재현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05년 8월
품절


"'일억옥쇄'라는 말 들은 적 있나?" "전쟁이 끝나기 직전에 군부가 내건 슬로건이야. 일본 국민은 마지막 한 사람까지 용감하게 싸우다 죽어야 한다는 거지. 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져서 말이야. 그런데 전쟁이 끝나자,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는 걸 깨달았어. 일억의 국민이 모두 죽어도, 일본이란 나라는 남을까? 일본인이 모두 옥처럼 부서져도, 일본이란 나라가 이 세상에 남는 걸까? 잘못된 거야. 군대를 조정하는 윗사람들은 일본이 전멸하는 길을 선택했던 거야. 이길 방도가 없어지자, 국민을 휘몰아서 자살시키려고 했던 거야. 일가의 집단 자살이 아니라, 일국의 집단 자살이지. 만약 그게 나라를 지키기 위한 싸움이었다면 그런 슬로건은 내걸지 않았을 거야. 일본 국민을 향해 '죽어라'라니 도대체 말이 되냐고" "게다가 우리들은, 어리석게도 그 누구도 깨닫지 못했어. 무서운 말이야. '일억옥쇄'라는 건. 그 구호 탓에 정말 죽겠다는 사람들이 쏟아져 나왔으니까."-9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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