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훔쳐라
박성원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00년 11월
품절


"아 참, 그리고 댈러웨이는 이런 말을 했어요. 워낙 말도 아낀 사람이라서 아마 그가 죽을 때까지 한 몇 마디 안 되는 말 중의 하나일 거예요. '창은 진실을 엿볼 수 있는 기회다. 만일 창이 없다면 사각의 벽 속에 갇혀 있는 진실을 어찌 구해낼 수 있단 말인가. 나는 그 창을 사진기에 있는 뷰파인더를 통해서 본다.' 어때요, 멋있지 않아요?-21쪽

"댈러웨이 사진중에 한 사내가 그냥 웃고 있는 표정을 찍은 게 있어요. 그냥 함박웃음 같은 그런 표정으로 말이에요. 그런데 그 사내의 눈동자를 확대해서 자세히 보면 한 산모가 막 출산하는 모습이 있어요. 아마 사내의 아내겠죠. 그 모습을 보고 나서 사내의 웃는 모습을 다시 보면 소름이 쫙 돋죠."-23쪽

창을 통해서 사각의 벽 속에 있는 실제를 엿볼 수 있다고 했지만 그것은 실제가 아닌 그림자일 뿐이다. 바로 빛이 만들어낸 그림자. 진실이 창을 향해 스스로 움직이지 않는 한, 우리는 그림자를 보고 생각할 수밖에 없다. 실제는 아직도 사각의 벽 안에 웅크리고 있는데 말이다. 결국 창은 진실을 보여주지 않는다. 실제는 사각의 벽 속에 온전히 있을 뿐이고, 창은 다만 진실을 향한 허망한 갈망일 뿐이다.-32쪽

"제가 지문을 예로 들어볼까요? 지문이 사람과 사람을 가장 뚜렷하게 구분해준다고는 하나 그놈도 허점투성이여서 지문이 일치할 확률은 20억분의 1이랍니다. 20억분의 1이라면 확률이 작다고 생각하겠지만 60억이 넘는 인구를 두고 계산하면 적어도 두세명은 자신과 지문이 일치한다는 말이지요. 더군다나 그런 두세 명이 우연히 자신 주위에 있다면 변별력의 지표가 되는 지문은 허무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하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를 규정하는 기능과 정의를 상실하면 한 존재는 더 이상 그 존재가 아니죠. 지문은 더 이상 지문이 아니란 말입니다. 순전히 세상은 필연을 가장한 우연이 지배합니다. 과학과 수의 법칙도 우연 앞에선 무력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니 그런 확률 따위에 너무 연연하지 마세요."-40쪽

"엄밀히 말하자면 수의 세계는 약속의 세계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사람들은 존재하지도 않는 기호 0을 당연히 있는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0이라는 가상이 없으면 계산이 되지 않으므로 강제로 끼워 맞춘, 오직 편리와 연산을 위한 억지일 뿐인데도 말입니다. 가감승제를 위해 존재하지도 않는 0을 우리들은 언제부터인가 아주 자연스럽게 믿으며 따라왔습니다. 또한 0이라는 게 실제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감히 할 수조차 없게 되었습니다. 계산은 10진법으로, 컴퓨터는 2진법으로, 시간과 각도는 60진법으로, 연력은 12진법으로, 그렇게 소수의 학자들이 편리를 위해 약속한 것이지만 우리들은 그것들에 아무런 간여도 하지 못한채 살아왔습니다. 기술이 아무리 진보하더라도 인간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어찌 보면 세상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찿기도 전에 시작한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의 의지는 왜 세상에 간여하지 못하는가 이 말입니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믿고 싶습니다."-41쪽

"나 참, 조금 전에 선생께서 말하지 않았습니까. 과학이니 확률은 엉터리라고. 의사의 말로는 이런 병에 걸릴 확률이 1억분의 1이라는 군요. 그게 무얼 의미하겠어요? 확률이 있다는 건 그만큼 안전하다는 것이 아니고 더러운 꼴이 누구에게나 갈 수 있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10억분의 1이고 100억분의 1이고간에 다수를 지향하는 민주사회니 병에 걸릴 확률이 낮은 병에 대해서는 관심은 커녕 아예 존재 자체를 부정하고 싶겠죠. 그것이 바로 다수를 중시하는 현대 사회니까 말입니다."-53쪽

벌레는 꺼무슥한 몸에 징그러운 촉수가 꾸무럭거려야 벌레다울 것인데도 자신이 마치 공작새라도 된 것처럼 위장된 아름다움을 드러내는 것이 심히 마뜩하지 못했다. 놈이 기기 위해 꾸물거릴 때마다 알록달록한 무지개 파장이 그놈의 근육에 따라 더욱 일렁이었는데, 그때마다 나의 온몸은 근질거렸다.-101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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