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삶들


 밝게 읽으려는 마음때문이었을까. 시인의 말과 시집의 문틀말들을 새겨둔다.  전시작품들을 시로 새겨놓은 것들까지 읽다보니, 모두 시에 있는 새김말들이다. 어쩌면 우리는 죽음을 경멸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지나치도록 경멸해서 거꾸로 삶에 대한 집착을 너머서서 건강함과 강함에 경도된 세상에 살아지는 군상들인지도. 젊은이들이 젊지 않다. 노숙하다는 말도 아니고, 어떤 말로도 그들을 에워쌓을 수 없다. 우울과 신음에 겹쳐 살 수 밖에 없고 그 그늘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이들도 거의 없다. 시대와 세상의 결핍이란 모서리에 짓이겨져 사는 것이 우리 젊은 군상의 소묘일른지도 모르겠다. 나이든 사람들이 죽음을 직접 대면하거나 강도를 강하게 느끼는 것도 아니다. 삶에 대한 맥락을 잡지못하는 만큼 주검에 대한 맥도 잡을 수 없다. 오히려 주검의 결을 느끼거나 죽음의 현실적인 체감력이 높은 청년의 아이러니가 세상이다. 세상이란 다행은 없다. 거꾸로 그 결들을 느끼거나 좀더 나은 대면을 바라는 확장은 거꾸로 삶의 결들을 더 살피게 할 수도 있다. 뭉쳐진 세상은 결코 도망가는 법은 없다. 이렇게 트여진 시야는 어느 삶들의 곁으로 번질 수밖에 없지는 않을까. 그래서 강한 작품일 것이다. 뜨거운 작품이라고 말이다.

















2. 중년


 중년 여성작가 이름을 빼곡히 적어둔 작품을 만난다. 젊은 청년은 말한다. 외삼촌의 죽음과 자신의 위태로움을 겹쳐 말하며, 그가 삶의 방편으로 삶는 책들과 저자들의 시대넘음을 다시 한번 굵은 글씨체로 모아둔다. 뜨거운 것들은 중심도 아닌 가장자리로 밀려나며 그 많은 것들은 감싸안는다. 아픔들이 보자기 안에 들끓는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엔 늘 좋은 것들이 불쑥 솟는다. 삶의 거름이자 비료, 윤기나는 흙빛이다. 누구나 그 토양안에서 한 점의 씨앗들은 볕을 찾아낸다.싶다. 건필하기를 바란다. 안작가.























3. 문어


ph. D 박사. 실력보다는 학위를 선호하는 하버드. 미국대학의 문제를 문어권력처럼 묘사한 글이다. <아더 마인즈>의 실제 문어와 다른 문어다. 이자벨 스탱게르스는 <다른과학은 가능하다>를 읽어내자 곳곳에 출현한다. 황수영의 의학사를 짚는 대목이거나 도나 해러웨이 책에서도 자주 출몰한다. 번역자인 이유선작가는 로티와 제임스의 실용주의 계보를 친절히 설명해주고, 이 작품이 랑시에르의 <무지한 스승>에 관련지어 덧붙인다. 랑시에르는 알튀세로 <자본의 읽자>의 멤버이기도 하고 현재도 엄청난 저작을 쏟아내고 있는 듯하다. <미학적 무의식>은 프로이트의 무의식이 19세기 예술, 미학의 무의식에 빚지고 있음을 밝혀낸 책이기도 하다. 빠른 과학. <닦달>하는 과학의 세기는 경도되기 때문에 많은 문제를 안고가는 폭탄과 같다. 정치인 한명이 얼마나 세계사를 갈지자로 쓰게되는 지, 우리는 여기저기서 목도하고 있다. 핵폭탄 자체를 제거하거나 제거하는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면 공멸한다는 더 이상 위협이 아니다. 에이아이. 현실이다. 곳곳에 괴물로 출현하는 가장 약한 곳을 골라 찾아다니는...아니 우리는 목도했다. 매일 식사하며 에이아이 트레이로 감원된 식당과 레스토랑과 자영업자들과 등등등....마치 못본 것 처럼 확대해서 보지 않으려고 할 뿐은 아닌가.


















4. SF


SF. 한 때 학위를 하는 친구가 있어 덩달아 읽어낸 적이 있다. 하지만 그 가능성은 보았지만 모임과 일반인의 관심과 격차는 가늠할 수 없었다. 또한 그렇게 까지 관심사들을 확장하고 있지는 못했다. <로빈슨 연대기>, <기가메시>와 서평 서문을 보면서 그야말로 빨려드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르헤스를 넘어선 기획과 작품이라니...기대된다  고인이 된 김한수의 쿠옹의 재림을 보는 것 같기도 하고, SF를 철학과 사상의 전개 방편으로 보는 해러웨이도 겹치고,  전설의 작품인 <빼앗긴 자들>까지 여러 편이 동시에 몰려오며 읽어낼 수밖에 없구나하는 감정까지 생긴다. 잘이겨내며 쾌차를 기원해본다.


볕뉘


죽음은 없다. 죽음은 모른다. 거기서부터가 0이다. 이제 살아낼 수 있다. 이천년 삼천년도 더 된 얘기다. 기본으로 돌아가도 괜찮다. 삶이란.


한 중년여성작가가 서울 전시에 다녀갔다. 한 젊은 청년작가도 어머니와 여동생과 다녀간다. 그렇게 같은 시공간이 겹친다. 아마 다른 언제 같이 만나게 되는 날도 없으란 법이 없다.  우연이란 이렇게 강렬한 선물투성이다. 미래란 폭죽처럼 터지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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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8 11:00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저는 이른바 비주류 문학인 B급 문학을 좋아해서 상당히 많은 책을 읽고 수집했는데 실제 미스터리,무협,공포판타지,SF소설중에서 SF소설이 제일 매니악한 편인 것 같으며 실제 애독자들도 상대적으로 매우 적은 것 같습니다.
그러다보니 국내에서도 이천년대 이전까지만해도 국내 작가들의 SF소설들은 전무하다시피 했고 해외 번역 작품들도 손을 꼽을 정도였지요.실제 한국에서는 SF소설은 어린이들이나 읽는 책으로 취급받았고 그래서 SF소설은 공상과학소설(현재 일부 매체에서도 아직까지 이 표현을 사용중)이라고 할 정도니까요.
사실 이천년대 초반까지도 한국에서 SF소설을 번역 출간한다는 것은 출판사 입장에서는 매우 리스크가 큰 사업이었습니다.당시 SF소설을 구매할 이들이 대략 3천명 내외라고 출판계에서 생각할 정도였으니까요.그리고 이 당시 간행한 SF책들은 간행 부수도 적고 또 판매 부진으로 절판된 책도 많아서 현재는 중고시장에서 비싼 값으로 거래되는 실정이지요.
하지만 70년대 아이디어회관 SF소설을 읽고 자란 분들이 출판사 사장,편집자들이 되면서 위험을 무릎쓰고 이천년대 이후 꾸준히 SF소설을 출간하면서 국내 SF소설시장의 저변이 넓어지기 시작했고 이를 읽고 자란 MZ세대 작가들이 SF작품들을 출간하는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됩니다.

여울 2026-03-18 12:08   좋아요 0 | URL
간략사를 해주시니 이해가 잘 됩니다. 무협, 공포판타지, 미스터리까지 접근이 쉽지 않겠지만 발판 삼아 SF소설로 소프트 포커싱해보겠습니다. 유수한 작가군이 많아 기대됩니다.
 

 지난 주 몇 장 남은 부분을 마저 읽다. 발끝만 보고 달리다. 숲길과 비포장도로를 수시로 그것도 지나치게 천천히 달린다. 아베베로부터 마라톤의 훈련은 군조직의 지원을 받아 체계적이고 지속적이었다는 사실들도 알게된다.


서울마라톤 중계가 시간이 되어도 나오질 않는다. 엘리트 선수들 10여명이 달리는 35km 지점이 되어서야 방송이라니 좀 거시기하다. 지난 주말 지인들과 수다, 그리고 금산 5k를 달리고 내려온 길이라 허한 느낌이 뭉쳐있기도 한 주말 아침은 그래도 마라톤을 시청하는 옆 원룸의 티브이 소리로 왁자시끌하다.


에디오피아 선수들이 10여명에서 한 두명이 빠지며 5-6명으로 좁혀진다. 오천미터 선수가 있다는 해설위원의 설명과 함께, 부상인지 한쪽 다리를 절뚝이는 모습으로 뛰는 최장신 선수까지 1-2k를 남겨두고 그야말로 도아니면 모인 상황이 벌어지기 직전이다. 오천미터 선수였던 친구가 치고 나간다. 하지만 그룹 제일 뒤편에 있던 작년 우승자는 보란 듯이 이 삼백미터를 남기고 거침없다. 누가 마라톤 선수라고 하겠는가?


그 뒤에 국내 남녀선수, 엘리트 선수들 뒷 모습엔 235-240주자들의 물결엔 아연 실색할 정도다. 저것이 가능하단 말인가? 마스터즈의 30대의 약진 뒤에는 40대의 물결이 스며있다는 걸 알게된다. 서브 3는 이제 옛말인듯, 새로운 러닝문화의 전환을 보는 것 같다.


아나운서와 해설위원도 말하듯이 그 배경에는 506070대의 저력이 뒷받침하고 있다는 것을 이제서야 확인하는 듯싶다. 신행철, 최진수 등등 일상을 딛고 버티고 나가는 거인들로부터 이 흐름들은 이어지고 급류로 변해왔다는 걸 알게된다. 


볕뉘


1.


아마추어와 엘리트. 엘리트의 구조와 차이에 대해서는 면밀히 살펴본 바가 없어 잘 모르겠다. 다만 육상연맹의 운영틀이나 선수 발굴 육성 등등 짚어볼 부분이 많다는 것 또한 느끼게 된다. 인류학자이자 마라토너가 에디오피아 선수들과 15개월을 함께 훈련해나가고 조사하는 방식들에 대한 지혜가 있을까 싶기도 하다. 아니면 이렇게 도드라지지 않지만 저력들이 어디서 나오는지도 살펴보는 것들이 우선은 아닐까. 다른 분야도 그렇지만 자기 분야의 경계는 지극히 좁다. 남녀 모두 세계 100위의 선수 가운데 절반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에디오피아는 아프리카 저편의 맨발의 나라가 아니다.  우승자의 소감처럼 여기 한국이 3년전부터 모국처럼 포근하고 뭔가 될 듯한 나라라고 하지 않았는가.


2.


금산 마라톤에 온 영조형처럼 일반인과 엘리트의 사이에 쓴소리와 함께 뭔가 문제인지 다른 시각들이 난무해야할 때는 아닌가. 엘리트 마라톤을 아끼는 러너의 한명으로 소감을 남겨본다.


3.


삼십분 전에 도착해 워밍업을 하고 5k 달리기를 치고 나간다. 다행히 앞에 달려나가는 선수들이 보인다 싶다. 그렇게 스무명 정도에서 달려보지만, 더 빨리 달릴 수는 없다. 그제 모임을 핑계되어보지만 아니다 싶다. 그래 필요한 게 있다. 


4.


그래 인문학이야. 우리가 부족한 건. 여기서부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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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7 00:27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한국 마라톤 관련해서 과거 전성기였던 90년에 비해 현재 한국 마라톤 기록은 퇴보에 퇴보를 거듭하고 있지요.그에 대해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감독은 한마디로 현재 한국 마라톤 선수들은 힘든 훈련을 하지 않는다고 질타한 바 있습니다.물론 과거 황영조 이봉주 선수 시절처럼 무지막지한 훈련보다는 이른바 과학적 훈련법이 더 선호되지만 절대적인 훈렬량이 적은 것은 사실이지요.
게다가 힘든 훈련을 참고 할 유능한 선수들도 많이 부족한데다가 각종 지자체에 마라톤 선수단이 있어 취업이 어렵지 않고 기록보다는 순위위주(지자체 홍보수단용)로 포상하다 보니 선수들도 힘들게 기록 단축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래서 매해 국내 마라톤 대회 기록에서 이른바 엘리트 선수와 일반인 선수의 기록차이(에를 들면 엘리트 선수 1등이 2시간 20분이며 일반인 1등이 2시간 30분임)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이른바 한국 엘리트 마라톤 선수들의 수준이 얼마나 낮냐하면 일본의 공무원(지자체에 속한 마라톤 선수가 아니 진짜 일반 공무원임)이 2시간 5분대로 한국 엘리트 선수보다 높으 정도이니까요.
솔직히 현재 엘리트 선수들의 실력을 본다면 앞으로 일반인들이 이들을 앞지를 날이 멀지 않을 것 같은데 지자체마다 괜시리 홍보를 위해 세금으로 선수단을 굳이 둘 필요가 있을까하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차라리 기록 단축에 상금을 더 높게 주면 아마 현재보다 단축된 마라톤 기록이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여울 2026-03-17 09:10   좋아요 0 | URL
맞아요. 아프리카나 미국/유럽과 비교가 아니더라도 유사한 일본하고 차이가 많이 나는 듯싶어요. 구조는 비슷한데..역전마라톤이나 일본마라톤에 대한 응원문화 차이는 지금 우리와 많이 다른 듯요. 육상부들도 예전만큼 많지도 않고, 운동소질이 있다면 야구나 축구를 시키는 내새끼문화도 한 몫하는 것 같고... ...육상부의 대회 성적과 실업팀 경로를 지켜보기만 해도 속이 터지는 일은 비일비재한 듯요. 도청선수 페메를 일반인이 하는 경우까지...뭔가 주객이 전도된 일들이 많이 생기는 것 같기도 합니다. 연맹회장 지도자 그룹도 잘 되지 않게하는 방향으로 한 몫하는 것 같기도 하고...총체적 난국 같아보입니다.
 

 재기 발랄한 그래픽 노블.  감상하는 내내 점점 초점이 맞춰진다. 드디어 탄다. 그 마음이 곱다 싶다.  아르키메데스가 어쩔 수 없이 전투무기를 발명할 수 밖에 없는 형편이 되었을 때, 그는 집광경을 이용해 적들의 선박을 태우는 무기를 발명한다.는 전설같은 일이 있다. 믿거나 말거나 이지만 실제로 재현실험도 해보았다.


반지하거주자의 삶으로부터 나오는 연결에 대한 사실감들도 앎들을 애태우지 않겠는가? 요지부동하지 않는 지구인들의 삶에 적반하장이라도 되지 않겠는가? 이렇게 매치나 저렇게 매치나 어쨌든 매치다보면 패대기라도 치지 않겠는가? 


이런 시작들이 지구란 막의 간절함도 읽어내리라 여긴다. 아르키메데스가 지구를 들어올 릴 수 있다고 했듯이, 이런 시작이 지구인의 마음을 다른 각도에서 활활 태워버릴 단초라고 여긴다.


볕뉘.


가족 작가집단의 번창을 꿈꾸어 본다. 재미발랄한 가족이여 그 기운 번져 스며나가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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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4 07:59   좋아요 1 | 댓글달기 | URL
아르키에데스의 집광경은 말씀하신대로 21세기에도 수차례 실험을 했는데 곌론은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반사울 낮은고대 청동기 거울을 가지고 수백명의 인원이 정확한 촛점을 맞추는 것은 불가능하단 결론을 내렸지요

여울 2026-03-14 15:46   좋아요 0 | URL
네 맞아요. 카스피님은 관심사가 넓고 깊으시군요. 닿지 않는 곳이 없으신 듯요. 감사합니다.
 

1. 저강도 운동법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는 이유

2. 베르그송의 근육 힘쓰기 effort musculaire 와 비교해서 설명

3. 상하체 협응력을 높이는 러닝 저강도 운동


궁금해서 재미어르신께 물어본다.  말귀를 알아들으시는가? 시간을 잘게 쪼개서(공간화) 쓰는 현대인들은 이런 행태를 참을 수 없다고 한다. 신체 역시 부위로 나눠서 생각하는 현대인들은 협응에 대한 관심도 없다고 한다. 


베르그송이 구태여 왜 근육을 가지고 자신의 사상을 전개해나갔을까? 다시 읽으면서 사실 뭘 잘못본 건 아닐까 의심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일관되게 근육의 힘쓰기를 통해 여러 지각과 감정들의 결을 풀고 있었다. 어쩌면 근육자체가 목적이나 한 듯 말이다. 윌리엄 제임스의 느낌에 비유하여 이렇게 말한다


43 우리는 우리가 몸 속에서 내보내는 힘을 의식하지 못한다. 근육의 에너지가 소모되는 느낌은, 한마디로 노력이 변화를 가져오는 주변의 모든 점, 즉 <수축된 근육, 긴강한 인대, 접힌 관절, 고정된 가슴, 닫힌 성대, 찌푸린 눈살, 다문 턱 등으로부터 오는 복합적 감각이다>.


44 주어진 어떤 노력이 우리에게 증가하는 효과를 내면 낼수록, 그와 더불어 수축되는 근육의 수는 더욱 증가하며, 몸의 주어진 한 점에서 더 큰 강도의 노력을 의식하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사실 그 작업에 관여된 신체의 면적이 더 넓음을 지각하는 것으로 환원된다는 것이다.


45 당신은 그 점진적인 침투, 그 표면의 증가를 느꼈고, 그것은 실제로 분명히 양의 변화이다...근육운동이 증가한다는 의식은 더 큰 수의 주변 감각의 지각과 그들 중 몇몇에서 일어나는 질적 변화의 지각이라는 이중적 지각으로 환원된다.


71 내가 팔로 가벼운 무게를 들 때에는 몸의 모든 나머지 부분은 부동인 채 일련의 근육 감각을 느끼는데, 그 각각은 자신의 <국부적 신호>, 즉 고유한 색조를 가진다. 바로 그러한 일련의 감각들을 나의 의식은 공간 속에서의 연속적 운동이라는 의미로 해석한다. 내가 다음으로 더 무거운 무게를 동일한 높이와 동일한 속도로 들어올린다면, 새로운 일련의 근육 감각들을 거치게 되는데, 그 각각은 이전의 감각연쇄의 대응하는 항과 다르다.


72 운동과 무게는 반성적 의식의 구별이다. 직접적 의식은 이를테면 무게 있는 운동의 감각을 가지며, 그런 감각 자체는 분석하는 일련의 근육 감각으로 해소되는 바, 그 각각은 그 음영에 의해 일어나는 장소(팔끝)를, 그 색채에 의해 들어올리는 무게의 크기를 표현한다.



볕뉘


이런 질문과 응답들을 살피고 있다. 날개뼈 위 승모근 부위가 뭉친다. 어떤 해결책이 있는가하며 말이다. 위의 질문 역시 이런 이유들에 보태서 정작 시장이 되겠는가라는 질문이 빠져있다. 나이들어서 운동이라니, 그러다가 다칩니다. 맞다. 다친다. 다치지 않게 하는 게 기술이다. 그 틈을 이용해 운동기구 하나 더 팔아드시는 부류도 만류할 수는 없다. 


근육힘쓰기는 벌크 업이 아니라 양질 전환의 포인트가 늘 잠재한다는 것이다. 기억을 살리고 키우는 전체의 느낌과 변화를 지향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베르그송이 제임스와 다윈, 스펜서를 언급하면서 말하고 있는 대목이다. 반신불수 환자나 마비 환자가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는 것처럼 검지를 구부리는 것이 호흡의 끝까지 관여된다는 사실을 명백히 하고 있다. 


이런 다급함도 배여있는 것이 그의 글이기도 하다.


-1


우울증과 수면제. 볕과 운동을 담지고 살아가는 젊은 친구가 알바 자리를 얻으려고 전전하다가 아킬레스 건과 약해진 뼈가 다쳐 걷지 못할 채로 지내는 날이 몇 달 더 남았다 한다.


-2


돌아가신 부친은 일흔이 넘도록 턱걸이를 열개씩 하던 양반이었다. 팔십이 넘어서야 오토바이 사고로 운전자들을 돌려보낸 뒤, 다쳐 아문 어깨 근육들을 회복할 수 없다는 확진을 받은 뒤의 절망감이라니. 살피지 못하고 간절한 하루하루의 힘이 되어드리지 못한 것도 마음이 쓰이는 계절이다.


-3


덜 아픈 계절이 되길 바란다. 야만의 세상도 이제 그만이길.


착각


꽃도

당신도

나도


없어없어


남이라,

국경이란 건

선을 긋는다는 일.


전쟁도

지워야할 것처럼


죽여야할 건 없어.


다 너

다 나이진 않아.


시오랑을 빌리지 않더라도 살아내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평범하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다. 괜한 신파라니. 쑥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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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끝을 보고싶다. 새로난 연육교로 가로질러 그 모퉁이 카페를 찾아나선다.  해변의 시선으로는 보이지 않던 저 하얀 포말이 희끗하게 남아 있는 해안선을 직접 보고싶다. 줌을 당겼더니 선명하지는 않지만 아스라히 보인다. 조금 더 높은 곳에서는 보이는, 시선의 작은 기울기가 보는 시차를 느끼고 싶은 봄 오후다.



볕뉘.


입술이 마르고 갈라진다. 바세린을 바르고 바나나를 든다.

카페 한 켠에서 유투버인지 

연신 대사를 치며 인터뷰중이다.

애써 시선을 피하며 필사 작업에 올인한다.

 

햇살이 좀더 고우면 좋으련만

흐린 하늘에 간간이 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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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스피 2026-03-11 23:5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어느 동네인지 바닷가 모습이 참 아름다와 보이네요.

여울 2026-03-12 10:56   좋아요 0 | URL
여기는 그림 작업중인 포항 앞 바다에요. 건너편 왼 편으로 쭉 가면 호미곶이기도 하죠. 여남마을, 환호마을에서 본 전경이기도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