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한 꽃은 더 이상 피지 않고

가을을 닮은 은은하고

옅은 꽃들이 번진다.

 

 

햇살은 맺혀 열매로 익어가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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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내부 여행지 속의 잡담 - 좋은 사람들끼리만 모여 살 수 있는가

 

1

 

저기가 아니라 여기가 더 가깝다면 여기의 실패에 천착해봐야 한다. 서울이 아니라 지방이 더 가능성이 있다하자. 그렇다면 내려오는 글이나 사람이 아니라 여기에서 내려는 목소리나 몸짓을 살펴야 한다. DJ이 아니라 YS이 더 흔적이 있다하자. 그렇다면 아쉽거나 안타깝거나 하려고 했던 것들을 손꼽아봐야 한다. 실패를 보듬어보려 한다면 아직 식지 않았다는 증거다. 징글징글한 기억을 되살리고 싶을까? 세상이 나로 도는 것이 아니라 알아서 돌아가고 있다고 느낄 수 있을까? 나만의 공간에 다른 것을 꿰어차려는 것이 아니라 남은 이해하지 못할 무엇이 있다고 체념할 수 있는가? 적어도 걱정이 된다는 마음이 남아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을까?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은 있는 것인가?

 

 

2

 

무엇을 이야기하는지 모르겠다. 불쑥 유아라고 하거나 어른이 아니라고 하니당황스럽다. 끼리끼리만 만나지 말아야 한다고, 깍두기를 두어야 한다고 하니 알듯 말듯하다. 서울의 몸짓, 머리짓이 궁금한데 이곳의 몸짓을 살펴보라고 한다. 조직이 정체되어 있다고 한다. 조직의 야당을 의도적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한다. 그게 될 법이나 한 일인가? 얼굴조차 보기 싫은데 또 그 진상을 봐야한단 말인가. 단체의 활동을 인정하는 것을 떠나서 다른 쓴소리를 듣고 들어야 한다고 하니 머리에서나 가능한 일이지 너무 현실성이 떨어지는 소리가 아닌가 손으로 꼽는 사람들. 그래도 지금의 우리는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한줌밖에 안된다고 한다. 도대체 무슨소리인가 모르겠다.

 

 

3

 

이념이 있고 노선이 있다고 한다. 누군가의 생각과 판단을 빌려야 한다. 뭐가뭔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여기로 생각하라 한다. 하나 하나 다르고 이해되지 않는 것을 또 노선의 꼬리로 묶고, 이념의 잣대로 해석한다. 그 해석을 빌려온다. 빌린 해석을 따라 몸을 움직인다. 나는 움직였던 것, 움직인 것을 기억해낼 수 없다. 필요하지 않다. 여기 이 자리 나의 여집합, 그들의 생각과 인식이 궁금하지 않다. 할 일이 허다한데 왜 그 몫까지 감내하려하는가 부질없다. 너의 이력과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맥락을 다 안다. 너의 스타일도 패턴도 한결같았기에 다른 생각도 다른 되새김도 궁금하지 않다. 일만 그르치게 될 것이다. 남을 깎아내림으로써 올라갔던 존재감을 외면하기 싫다. 무엇을 도모하려던 의도가 놓쳤던 것들도 살필 여유가 없다. 지금 여기의 맥락과 틈새, 그리고 다른 시선의 겹침은 있어본 적이 없다. 잘못이라고 하는데 도대체 무엇이 그런지 구체적으로 말하라. 뜬구름같은 말들, 말의 성찬이 궁금하지 않다. 제대로 짚어달라.

 

 

4

 

제도안에 있다. 운동인지 활동인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활동가의 삶도 전망도 없다. 어찌 살아야하는가 우리의 경로는 만들어지고 있는 것인가. 정당활동을 한다. 제도안인지 제도밖의 활동인지 어떤 이야기를 만들어야 하는지 말해주지 않는다. 활동은 현실에서 할 수 있는 정당의 영역밖의 일이 허다하다. 시선을 밖으로 돌려 할 일들을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을 되돌아봐야 한다. 활동들에 거칠은 시선들이 있다는 가정하에 새롭게 다르게 여럿이 그 방향을 살펴봐야 한다. 제도안이 흔들거리지 않는다면 어떻게 접근하는 것이 더 나은지 어떻게 제도안-곁-밖의 활동을 섞어야 하는지 고민해야 한다.

 

 

5

 

지금 여기의 문화적인 근력은 있는가? 활동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의 모둠, 조직, 단체의 쓴소리를 공유할 일들이 직, 간접적으로 있는가? 지금 여기만의 문제를 찾으려하는가? 균열낼 수 있는 사안들을 품고 있는가? 다른 조직의 이견을 받아들여 색다르게 같이 해결하려고 하는가? 활동가의 삶을 책임지려고 하는가, 다양한 흐름을 읽어내고 나누고 있는가? 제도화로 이루어지는 한계를 생각하고 있는가, 제도밖의 활동의 한계를 짚어내고 있는가 제도안밖을 넘나들어야 하는 부분을 확인하고 그 정보에 대한 교류와 감을 잡고 있는가?

 

 

6

 

지역이 답인가? 지역의 사람들이 느끼는 문제는 무엇인가? 나의 모둠과 조직이 갖는 한계, 혼자 할 수 없는 일들이 무엇인지 절감하는가? 형식적인 결합, 물리적인 양의 결합이 아니라 화학적인 결합, 결합의 양이 아니라 질적으로 볼 것이 있는가? 여기만의 쟁점과 사안을 만들어내려고 하는가? 작은 문제라도 볼 수 있고, 따질 수 있는 깊이는 있는가?

 

 

7

 

본디 나는 없다. 자아라는 것은 너로부터 생성되는 것이다. 나를 위주로 유지해온 활동과 사고를 흔들어벌어야 한다. H의 존재감이 I와 겨루어서 회자되고 표시된다는 것, L당과 J당의 활동이 T당과 견줘서 비교되고, a라는 단체의 활동이 B라는 단체의 활동으로 비유되는 자중심주의를 무너뜨려야 한다. 단체들의 활동들이 서로 연결되고 질적인 모색이 겹치고 제도로 뻗고 주민사이로 스며들어야 한다. 제도 안과 곁, 밖으로 서로 뻗어나가는 것, 그래서 달라진 사유와 실천으로 되먹임되어야 한다. 그 다른 색깔, 과정과 결과가 고스란히 서로에게 번져야 한다.

 

 

8

 

지역은 지역만큼의 달란트가 있다. 지역의 현실이라는 바닥에서 출발해야 한다. 다른 지역의 사유와 모색은 지금여기의 고민과 과제로 녹여내야 한다. 똑 같이 수입하여 대행만 하는 일은 그다지 바람직하지도 않다. 여기의 사람들, 여기의 삶들, 여기의 관계들, 여기의 흐름들을 포착해내고 또 다른 방법으로 시험하고 실험하는 일들, 여기가 영점, 지금이 원점이라는 자각은 늘 늦지 않는다.

 


 

 

무엇인가 써야한다 무엇인가 써야한다
생각이 마르기 전에
어제 치민 울컥이 식지 않기전에

 

무엇을 써야한다. 무엇을 써야한다
들어올렸던 긴장감을
그간 삭혔던 애틋이 싸늘해지기 전에

 

무엇을 내야한다. 무엇을 내야한다
마음의 화살이 안으로 가 아니라
마음이 꿈틀, 몸밖으로 피도록

 


 

 

볕뉘.

 

1. 기다려주지 않는다.  늘 관조의 마력은 놓친다. 삶의 허덕거림 속에 벌써 지난 일은 없다. 아픔의 그림자만 아쉬워 되뇌이지만 아무것도 거스를 길이 없다. 무엇이라도 하면서 몸의 언어가 달라야 한다는 사실이 조금더 완급을 조절해주는지도 ..... 늘 안타깝다. 마음도 밀리는 것이... ...

 

2. 늦밤 지인과 만나 가을 바람에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와 빈화면에 담아둔 흔적을 옮긴다. 달빛은 휘영청 밝은데 마음은 싸늘하게 식은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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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 긴 연휴에 미리 준비해둔 책들로 허기를 메운다. 리차드세넷의 글들에 대한 깊이를 느끼고 싶기도 하다. 있던 책들과 구입하지 못했던 것과 같이 읽다.  그의 삶의 통해 얘기하고 싶던 것이나 얘기하고자 하는 것이 다가온다. 큰아버지, 아버지와 어머니 68혁명과 조지오웰의 카탈로니아 찬가의 한 장면, 매카시즘의 광풍들 왜 바뀌지 않는가? 왜 바뀌어야 하는가? 세상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그의 책 속에서는 끊임없이 그의 삶과 주변 인물들이 나온다. 사회사상에 관한 책이 스토리와 주변 인물들의 소식이 무척 궁금해지게 만든다. 말미 구체적으로 남은 그물같은 것이 출렁거린다.  ....욕망자본론은 가타리의 저자의 삶이 궁금해서 읽는데, 신혼이 느껴지는 다소 닭살스럽기도 하다. 하지만  문제의식과 하고싶은 말들은 잘 전달된 것 같다. 반복되는 내용이라 겹치기도 하지만... ...고병권샘의 철학자와 하녀도 읽다. 투고한 내용이라 조금 신선도가 떨어지긴 했지만 루쉰의 향기와 천착하는 부분은 잘 드러내고 있다 싶다. 가을이 많이 익어버렸다. 오고 가는 길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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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 전략이 좌/우파의 공리계를 넘어선 관계망의 성숙을 추구하는 경제 전략이라는 점에서 욕망가치가 그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사회적 경제에서 난타나는 욕망의 자본화와 자본의 욕망화라는 색다른 국면을 욕망가치의 측면에서 정리하고 싶은 욕심도 생겼다. ‘기본소득’, ‘발전’, ‘사회적 경제라는 최근의 쟁점을 욕망가치의 관점에서 정리해보고 싶었다. 물론 인문학 연구자로서 실증적인 연구 방법론과 도구를 갖고 있지 못하다는 한계도 느꼈다. 특히 토마스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출간 소식이 연구에 자극이 되었다. 7

 

예술가들과 활동가, 직장인, 생협 조합원 등과 함께 3개의 인문학 모임을 운영하면서 자극받았다. 9

 

우리의 관계가 갖는 배치의 변화와, 관계의 발효와 성숙이 세상을 재창조해 낼 것이라는 희망의 끈을 발견했다. “속도를 내지 않아도 이익에 사로잡히지 않아도 따듯해지고 부드러워질 수 있어요. 우리의 인격, 가치, 존엄성을 버리지 않고, 대안적인 가치와 값어치를 분리시켜 보지 않는 삶은 가능하다.” 20

 

/우파의 프레임이 파시즘의 토대 위에 세워진 건축물이라는 점에서 잉여와 같은 찌꺼기와 잔여적 이미지를 갖고 있다. 우리 세기 동안 무의식, 욕망, 사랑의 획기적인 변화는 가능할까? 예기치 못하고 생각지도 못했지만 도처에서 일어나는 분자 혁명의 연쇄 반응이 가능할까? 32

 

사람들 간의 관계 역시도 음향, 색채, 향기, 표정, 몸짓 등의 비기표적 기호 작용에 따라 성숙하고 발효된다. 그래서 대면적 관계에서 자신도 모르게 사랑과 욕망의 흐름이 생겨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가타리의 흐름으로서 도표라는 개념이 개념상으로는 무척 어렵지만, 현실에 놓고 생각해 보면 공동체에서 이미 내게하는 기호 작용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62

 

욕망노동은 아이들이 문자와 색채, 음향, 몸짓, 언표 등의 기호를 습득하는 학습노동 여성의 돌봄과 가사노동, 장애인의 재활과 이동을 위한 정사화노동, 정신질환자가 상담자를 만나서 자신에 대해서 분석하게 되는 분석노동, 다음날 출근하기 위해서 TV를 보며 쉬는 시청각노동등을 망라할 수 있습니다. 이렇듯 욕망노동은 이미 가치화되어 있는 영역이며, 실존의 좌표를 획득하고 있다. 79

 

가타리는 레닌과 러시아 혁명가 집단의 분열 생성에는 세 가지 요소가 발견된다고 말한다. 이것일 수도 저것일 수도 있는 흐름으로서의 도표적 과정들’, 분석을 통해서 창조적 개입과 이행의 구성요소를 만드는 분석장치들무언의 춤을 추듯 발언할 수 있는 공동체적 관계망인 집합적 언표 행위 배치들이 그것이다. , 공동체적 관계망의 성숙, 분석가로서의 혁명 집단, 언어적 매체와 연단을 가진 집단으로 설명할 수 있다. 레닌에 대한 가타리의 분석은 주체적 생산이라는 섬광과 같은 분열의 순간을 분석한 것이다. 91

 

공공 영역, 사적 영역과 더불어 공동체 영역도 있다는 점을 경제에서 빼놓고 생각하면 안 될 것 같다. 공동체 경제는 자율과 자치, 자립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영역이다. 래서 이러한 공동체 경제 영역이 시장과 국가가 하지 못한 일을 해낼 수 있다는 가능성과 잠재력에 대해 많은 활동가들이 주목했을지 모른다 99

 

돌봄, 모심, 살림, 보살핌, 섬김 등으로 다양하게 불리는데, 요새는 노동자들도 돌봄노동자라고 규정된다. 그렇지만 돌봄은 공동체를 자기 생산하는 활동이지, 타자 생산하는 노동이라 보고 싶지 않다. 사실 돌봄노동자들도 돈만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지는 보람과 사랑 등에 따라 실천한다. “공동체적 관계망이 성숙되고 발효되면 우리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잘 답해주는 것이 바로 돌봄이다. 111

 

관계망 창발의 산물로 생태적 지혜가 있다. 생태적 지혜는 아카데미처럼 관계 외부에서 관조자, 관찰자로서 관계망 외부에 진리를 구축하는 것이 아니라, 관계 내부에서 사랑과 욕망의 흐름으 통해 성립된 지혜이다. 그래서 아카데미의 진리와 공동체의 생태적 지혜는 엄격하게 구분되어야 할 것이다. 113

 

생태적 지혜는 관계망을 복잡하게 만들어서 생각과 상유의 경로를 색다르게 구축한다. 관계망은 마음이나 사유의 원천이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환상 속에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망에 따라서 마음이 생기는 것이다. “관계와 배치가 생각이며 마음이다.” 115

 

일반지성이라는 색다른 문제제기를 던지는 정치경제학비판 요강은 문제의식과 연구 계획, 아이디어로 가득하다. 120

 

노동하지 않지만 특이한 욕망을 갖고 있는 사람들도 사회에 기여하는 바가 크다. 노동자가 아닌 소수자나 민중은 사회와 공동체에 보이지 않는 기여를 많이 한다. 특이한 욕망의 흐름이 공동체의 관계 성좌를 복잡화하여 생태적 지혜를 형성하고 또한 그것이 집단지성의 발전에 도움을 주어 결국 첨단기술사회의 기계류의 혁신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134

 

기계에게 전기를 주듯, 소수자의 욕망에 기본소득을“ 138

 

후대의 사상가들은 칼 폴라니 사상은 삼분할로 이루어져 있다 한다. 국가는 재분배로서의 모아서 나누어주는 것이며, 시장은 시장으로서의 상품을 사고 파는 것이고, 공동체는 증여로서의 선물을 주고받는 것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세 가지 섹터가 원다이어그램으로 겹치고 교직하면서 균형을 이룬 구도를 그려낼 수 있다. 세 영역 모두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작동함으로써 시너지 효과를 이루는 것이다. 187

 

들뢰즈와 가타리는 접속을 욕망하는 생산으로, 이접을 코드의 등록으로, 연접을 욕망의 소비로 배치한다. 쉽게 얘기해서 욕망을 생산하는 공동체, 생태계,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며(접속), 차별과 선별을 거쳐 (이접), 정체가 분명한 것만 소비한다는 것(연접)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차이에서 차별로 만든 메커니즘이다. 215

 

기존의 발전 노선은 대부분 자생성의 신화에 기반하고 있다. , 자연스럽게 공동체적 관계망이 성숙하고 발효되고 그 외부에서 지식인이 개입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다. 그러한 지식의 외부 개입과 달리, 지혜는 관계 내부에서 발효된다는 생각이 든다. 자연주의, 자생성이라는 신화가 아니라, 관계망 창발을 만들 정도로 내부의 사랑과 욕망의 흐름에 대한 미시정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것은 외부 지식인의 개입과 모델화가 아니라, 공동체 내부의 구성원들이 미지의 관계망을 만들어가면서 서로를 뻔하게 보는 의미화로부터 벗어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238

 

욕망과 사랑은 같아 보이지만 개체적인 경향을 갖는 욕망연결망의 경향을 갖는 사랑으로 구분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랑과 욕망은 차이를 갖는다는 생각이 든다...소승불교와 같이 자신의 실존을 규명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노력하는 과정은 사랑과 일치한다. 그러나 대승불교처첨 한 번의 순간에서 섬과과 같은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욕망이라는 생각이 든다. 240

 

환상의 소비는 환상의 분비물을 수동적으로 수용하는 것에 의해 이루어진다. 직접 관계 내부로 들어가서 사랑과 욕망의 부드러움과 상냥함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그저 관계 외부에서 달콤한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들이 많다. 그래서 사람들은 관계로 풀어야 할 것을 소비로 푸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러한 환상의 경제는 특이한 욕망을 포섭하여 상업화함으로써 상품 소비가 모든 것을 해결해 준다는 무의식으로 향하게 만들어준다. 268

 

펠릭스 가카리가 세가지 생태학에서 언급했던 보이지 않는 윤리와 미학은 이런 의미에서 중요하다. 공동체에서 사랑과 욕망의 흐름은 공동체 구성원들의 수다스러움이나 선물 등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이미지 영상의 수다스러움은 그것을 보고 있는 사람들의 침묵과 관조를 유도한다. 저는 이런 의미에서 자신의 실존을 강건하게 만들어줄 수 있는 것은 바로 사랑과 욕망의 흐름이라고 생각한다. 279

 

수다는 여성적인 색깔을 갖고 우리 삶의 미세한 부분에서 나오는 스토리들을 재잘거리게 만든다. 프루스트의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에서 한 청년이 거리를 지나면서 새들처럼 재잘거리면서 대화하는 한 무리의 소녀들 사이에서 한 여성을 사랑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새의 지저귐과 같은 집단에 대한 연모였다는 점이 드러난다. 가타리는 그것을 기계적 무의식에서 꽃피는 아가씨들의 성운이라고 말한다. 관계 성좌에서 수다와 재잘거림은 관계망을 성숙시키고 발효시키는 것이다. 282

 

홉스는 분리되고 고립된 시민 개인은 조각난 환상밖에 갖지 못한다고 한다. 그래서 리바이어던과 같은 초월적 권력이 통합된 환상인 구조 환상으로 나아가게끔 한다고 말한다. 환상의 통합력에 호소하는 국가 권력이 아닌, 사랑과 욕망에 의해서 하나된 공동체가 더 중요하다. 284

 

거시 정치에 환상을 가지면서 모든 삶이 이에 따라 결정된다는 생각을 갖는 것은 문제가 있다. 구조 환상에 사로잡히면 삶과 생활의 모든 영역이 정치적 게임에 의해서 장악되고 있다는 환상을 갖게 된다. 그래서 미시 정치와 분자적 운동이 중요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가타리가 주장한 욕망의 미시 정치는 거시 정치와 환상의 찌꺼기가 아니라 사랑과 욕망을 통해서 세상을 재창조하는 생활 정치를 의미한다. 285

 

코드의 잉여가치라는 개념에서 보면 사회적 경제 부문은 자본에 의해서 공동체가 색다른 착취를 당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그런 의미에서 자본주의는 양적 착취 단계에서 질적 착취 단계로 이행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시각에서 보면 모든 영역이 자본에 의해서 장악되고 사랑과 욕망의 자율성이 완전히 사라진 세상이 연출된다. 비관, 우울, 좌절의 주체성이나 냉소, , 뻔하게 보는 모습 등이 오버랩된다...그들은 대부분 공동체를 경험해 보지 못하고 단지 일 개인으로 사회와 대면하는 모습도 많이 발견된다. 296

 

사실 마을, 협동조합, 공동체, 사회적 기업, 마을 기업 등의 회계 지표는 발명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기존에 통용되던 회계 담론으로는 사실상 설명할 수 없는 관계와 흐름의 지표가 있기 때문이다. 동시에 비자본주의적인 영역에 대한 자본의 접근이다 자본의 조성에 있어서 회계는 지나치게 일면적이다. 사실상 코드의 잉여가치에서 코드는 수정되고 변경되는 것이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하는 상황에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적 자본이 갖고 있는 회계 담론에 대한 영구적인 혁명이 이후 내포적 발전 전략의 핵심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310

 

자본이 공동체의 욕망을 동원하고 욕망 속에서 색다른 가치 질서를 탐색하는 것처럼 공동체의 다양한 욕망도 자본으로 형성되어 공동체의 자기 생산의 일부를 시장에서 구현하려고 하는 것이다. 이 두 경향의 차이는 모호하기 때문에, 어떤 사람들은 태생적인 것을 통해서 구분하자라는 본질론적인 방향으로 향한다. 그러나 한편으로 이러한 양가적인 흐름은 태생, 본질, 원형이라는 것으로 분석될 수 없는 흐름의 과정이라는 생각이 든다. 315

 

1972년 뜨거운 가을 이탈리아 총파업과 관련되어 있던 이탈리아 노동자 자율주의가 주장하는 자율성의 논의는 바로 동물들의 야성성을 보호하는 것과 긴밀한 관련을 갖는다. 왜냐하면 야성성이 바로 자율성이며, 자본주의의 외부가 상실된 현 시점에서 야생동물 보호와 같은 영역은 인간의 자율성의 보호와 보이지 않게 연결되어 있는 부분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이다. 325

 

소수자의 욕망가치와 노동자의 노동가치가 서로 만나고 연대할 수 있는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정치적 파트너십의 형성이 바로 적녹연정이라는 개념의 구도로 녹아들어가 있다. 그러나 그 두 입장이 공회전하고 텅 비게 될 가능성이 없는 것도 아니다...대부분의 노동자 운동의 태도는 자신들이 다채로운 운동의 중심에 서야 한다는 강박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했고, 마르크스주의가 갖고 있는 노동가치설의 한계로부터 벗어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328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는 분명 동일한 삶의 방식을 반복하는 유형의 시스템이다. 세계 어디를 여행하든지 똑같은 삶이 이식되어 있어서 마트, 백화점, 호텔, 편의점 등 낯익은 풍경이 펼쳐져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반면 자본이 머무르지 않는 자본주의 문명의 외부는 완전히 다른 풍경으로 게토화되기 마련이다.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의 내부는 달콤하고 졸음이 오는 영토의 상태이고, 사람들이 부드러운 예속 속에서 길들어져 있는 상태에 빠져든다. 학교마다 심리 치료가 동원되어 학교 곳곳에서 문제를 부드럽게 해결하려 할 것이고, 가정 생활마다 tv가 설치되어 가족 드라마를 통해서 가족의 재생산을 도모할 것이다. 이러한 부드러운 예속은 통합된 세계 자본주의의 내부에 머무르면서 외부를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예속의 새로운 기법이다. 이것을 펠릭스 가타리는 부드러운 예속과 강경한 탄압이 한 쌍을 이룬다고 한다. 332

 

푸코의 생명정치라는 개념에 의하면, 통제 사회는 체제 내부는 잘 살고 자기계발을 하도록 독려하지만 이로부터 배제된 외부는 죽거나 살거나 내버려 둔다는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334

 

최근 화두가 되고 있는 도시형 마을이라고 불리는 관계망은 낯선 익명의 사람들로 조성되어 있는 도시의 관계망에서 일정한 경계를 만들어내고 그 내부의 부드러운 현실을 조성하는 실험이다. 도시 구역의 마을은 국지적이고 가까운 곳에서 출발하여 위기 상황에 직면하게 될 도시 주민들의 돌봄과 살림의 관계망으로 변모할 수 있다. 또한 농촌에서도 전통적인 성장주의 세대를 넘어선 젊고 색다른 사람들이 유입되면서 점차 마을의 관계망을 조성하기 시작하고 있다. 335

 

소수자를 포함한 풀뿌리 관계망의 관계 성좌는 특이한 것을 생산할 수 있는 판과 구도를 조성한다. 이 속에서 소수자를 향한 사랑과 욕망이 색다른 반복(=기계)을 만들 수 있는 잠재성의 영토를 조성한다. 따라서 기계에 전기를 주듯 소수자의 욕망가치에 소득을 주는 것은 매우 다연한 일이다. 이를 통해서 비노동 영역에 있는 소수자에 대한 욕망가치를 인정하고 긍정하는 사회가 만들어질 수 있다. 3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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