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꽉찬 룸이다. 일행과 다른 곳에 가겠다고 하는데도 아니란다. 주춤거리는 아는 얼굴이 섞인 일행들이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장면이 바뀌어 나는 일터밉상을 온 힘을 다해 가해하고 있다. 다른 이가 거든다. 헤드락한 채로 말이다. 때릴 기운도 풀려버리자 다시 룸 한켠의 빈공간에 맞은 이와 서있다. 그 자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인다. 술값을 다 치룰거라고 하니 냉큼 자리를 잡는다. 머뭇거리던 안면 있는 이들도 쑥 같이 들어간다. 문 밖에서 멀어지는 나는 어느새 허름한 구멍가게 빈방같은 곳. 술상에 꽉찬 안면은 있는 이들. 그들에게 룸에 들어간 이들이 훌륭한 이들이라고 자랑삼아 이야기하다 허름한 술을 한잔 받다. 그리고 깨었다. 손에는 사람을 패버린 기억이 그대로 전해졌다. ` - 꿈 밖이다. 잠시의 후련함도 잠깐이다. 원망을 샌드백처럼 다루었다. 미안했다. 꿈이라도.

발1 「악」, 테리이글턴을 읽고 있는 연유인가. 그렇지는 않다. 이른 잠. 꿈결에 시들거리다. 이젠 꿈들도 행간을 읽혀 어쩌지 못한다. 일상들이 원이 없다면 괜찮을텐데 바램과 현실이 교직하며 불만들이다.

발2. 현금을 찾아 직원들에게 김장지원금을 봉투에 넣어드렸다. 한분의 결혼축의금을 챙긴다. 그 끝에 가까운 부고를 듣다.

발3. 악의 적은 선이 아니라 삶이라는 말이 걸린다. 악이 싫어하는 것이 삶이라ㆍ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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볕뉘. 오후에 비가 내려 그치기를 기다리다 지근 거리에 있는 은행나무를 찾다. 한적하리라 기대했건만 출사를 나온 사진전문가들로 가득하다. 단풍을 조금 더 찾다가 돌아온다. 조금 더 기다려도 좋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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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고독이 발바닥 굳은살처럼 다져졌다

아프지 않게 생의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고요를 듣다

 

꽃 지는 고요를 다 모으면 한평생이 잠길 만하겠다

 

 

홍매화

 

이롱증 앓던 고막을 도려내어

찬바람에 걸어놓고

오지 않는 먼 당신 발걸음 소리 잎잎이 새긴다

각혈하듯 꽃 피는 소리로 귀가 열릴 때

당신은 불현 듯 오라, 오시라

 

사랑을 기억하는 방식

 

산정의 어떤 나무는

바람부는 쪽으로 모든 가지가 뻗어 있다

근육과 뼈를 비틀어

제 몸에 바람을 새겨놓은 것이다

 

 

마주보기

 

너를 빤히 쳐다보았던 까닭은 네게 두고

온 내가 그리웠기 때문이다.

 

 

지도를 그려

 

세상을 줄여놓고 당신과의 거리를 한 뼘으로 잡는다

금방 온다고 했으니까

 

노을

 

눈이 빨개지도록 울다 간 네 발소리로

가슴의 저녁이 물든다

 

 

이유

 

바람이 불 때

꽃은 너무도 불안하여 그만 예뻐져 버렸다

 

 

높이

 

기댈 데 없는 허공에 이르러서야 새는

제 몸을 읽고 길을 찾는다

세찬 바람을 끌어당겨 높이 난다

 

 

지각의 현상학

 

그립다는 말은 언어가 아니라 살이다

 

 

나무

 

허공을 더듬어 길을 낸다

걸어간 만큼만 길이 몸이 된다

 

 

꽃에게

 

꽃아, 내가 견딜 수 없는 나를

네가 견뎌다오

 

 

흉터

 

망설이다가 그만 보고 싶다고 말해버렸다

말 하나가 몸을 빠져나간 뒤

시커멓게 뚫린 몸의 자리를 본다

오랜 시간 힘겹게 떨며 몸은 스스로를 메우고 있었다

 

보름달

 

혼자 소리치다 제 안을 얼마나 때렸으면

모든 밖에서 중심까지 안으로 눌러 삼킨 소리가 얼마나 컸으면

비명조차 저토록 둥글고 환해질 수 있을까

 

고개숙여

 

깊어진다는 것은 언제든 몸 던질 수 있는 자기 안의 강물을 내려다보는 일

 

 

우리둘이

 

너와 같은 생각으로

너를 그리면 너는 없지만

너와 다른 생각으로

너를 그리면 너는 언제나 있다

 

진주

 

입안으로 들어가 내장에 붙은 말

상처를 감싸며 자란다

시간의 묽은 막이 둥글게 쌓이고

상처가 아물어 단단히 빛을 가질 때

아름다운 말은 은은히 온다

 

마주침

 

그토록 많은, 흘러가는 인연들의 혼돈 속에서

하필 너는 왔다

충격이 이전의 나를 다 흔들 때

촉수를 내밀어 맞이한 해후

눈을 떠 처음으로 빛인 시선이 생겼고

벽을 통과한 마주침으로 너는 번식되기 시작했다

전염처럼 나를 무한히 이동시키는

해후는 진행형이었고 떨리는 현재였으므로

우리는 사랑했고 사랑할 것이었다

해후의 아래에서 스멀스멀 올라오는 고요한 징후

너를 눈치채기 위하여 뜬눈으로 새운 밤들을 지나

몰랐던 네가 스며드는 건

무섭고 희한한 일이었다

소문은 빠르게 몸 전체로 퍼졌다

피부와 속살들이 밤새 수런거리며

너를 놓치지 않기 위해 아팠다

 

 

시작

 

세찬 빗줄기 위로 깃발을 올립니다, 전하. 소신은 말갈의 피를 받아 검은 지평선을 홀로 걸어온 사람, 전하의 목을 칠 역적입니다. 생전 처음보는 번개가 궁궐을 때리고 피뢰침 속으로 사라질 때 소신은 올 것이옵니다. 곧이어 새와 구름이 지나간 곳, 나비가 얇은 날개로 허공을 저며낸 화사한 길을 끊는 번개가 칠 것입니다. 전하, 소신의 붉은 머리카락이 빗줄기 속에서 망나니처럼 펄럭이고 차가운 비명 소리가 들리거든 귀를 여시고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전하, 역적의 사간이 전하의 은총으로 왔지만 익숙히 멈출 수 없어 지독한 고독 이후에 혼란한 역적의 나라를 건설하는 것이옵니다. 눈부신 어둠의 기둥 위로 쏟아지는 빗발을 따라오는 새벽, 젖은 깃발이 마르기도 전에, 세계를 받치던 전하의 무릎은 부서지고 역적의 나라는 완성될 것입니다. 그때 피 묻은 칼을 들고 날선 지평선을 마저 넘겠습니다. 전하, 소신은 말갈의 후에, 완성된 역적의 나라에서도 지평선 너머 지평선으로 가는 행려자입니다. 시작은 언제나 시작이오니 전하, 그럼 하해 같은 은혜 소신의 어미에게 그러하였듯이 전하의 목을 치겠습니다.

 

- ‘시작은 특별한 한순간이 아니다 모든 순간이 다 새로운 출발이고 시작이다. 극단적으로는 1초 전의 1초 뒤의 도 분명히 다르다. 그 짧은 순간에 마신 공기, 들은 이야기, 본 것들이 나에게 새롭게 축적되어 다른 나를 만들기 때문이다. ‘는 늘 새로운 시작이다. ‘시작은 마음 다잡고 맞이해야할 무엇이 아니라 일상이 시간들 속에서 성실히 수행해야 할, 때로는 의 의지와 무관하게 수행되고 있는 어떤 것이다. 무엇을 이루었다고 하는 순간에도 우리는 어느 끝에 이른 것이 아니라, 이미 또 다른 시작에 서 있을 뿐이다. 시작을 방해하는 기존의 안일한 안녕과 관성적 질서의 목을 과감하게 내리칠 때 우리는 우리 삶을 매순간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을 것이다. 전혀 다른 시간들이 우리들 앞에 무한히 닥쳐오고 있다. 시대의 지평선을 넘어 우리의 삶은 언제나 새롭게 시작된다.

 

 

볕뉘.  책선물을  받았다. 시서화. 훑어보다 색감이 좋아보였다. 지인들과 만남, 환대를 받고 내려오는 길 마저본다.  허공, 고요, 상처, 고독...들을  선물처럼 받아들이게 만든다. 그리움이라는 것도 마음이 아니라 살과 피부에 가까운 것이라고...바람의 지문을 그대로 남겨버린 바닷가 나무들처럼...그리움은  그 결을 남기고 만다고 한다.  마음 자리를 맴도는 시 몇편을 남겨둔다. 그리움의 넓이라는 시집은 따로 챙겨봐야 할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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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시작

단풍은 꿈을 내려놓고 지는 자가 아니라
허공에 일생 감춰두었던 색 하나를 마지막으로 꺼내 입는 자
목숨의 끝까지 단장하고
가장 낮은 곳으로 가서 마지막을 뜨겁게 인수하는 자
다른 세계를 시작하는 자

- 김주대,「그리움은 언제나 광속」에서

발. 빗 속 단풍이 몹시 곱다. 며칠 남지 않았다. 거닐어 보고싶지만 아쉬움만 붉게 물들여야 할 듯 싶다. 차창 밖으로 남은 비가 마저 나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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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

두 손으로
모아
모아
옮기는
샘물같아

조심조심
마음이
흘러내리지
않길

손으로
꼭 움켜 잡을수록
아무 것도
남지 않아

두 손을 모아
마음을 모셔
마음들을 옮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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