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움이 밀려오는 와 게으름도 피우고 끙끙댄다. 얇은 독서가 그대로 드러나는 것 같아 부끄럽기 짝이 없다. 독서의 가닥을 잡은 것은 최근이다. 그 생각이 불쑥 들어서자 책읽기는 거의 멈추다시피 했다. 하지만 또 미련을 두는 것은 또 어떤 책이 뺨을 후려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멈출 수 없다.
1. 윤석중 외, 『소년소녀 세계위인전집』(계몽사, 1971/1979)
시커멓게 날리는 탄광의 풍경은 어른들 몫이었지만 조금만 골짜기로 접어들어서면 아이들에게 파라다이스였다. 그렇게 정신없이 뛰어놀고 멱 감기를 배울 무렵, 고역 같은 노동에 시달리는 아버지의 마음씀이 옆에 있었다.

2. 허영만, 『각시탈』(만화영상진흥원, 1974/2011) 윤길영,『바벨2세』(도서출판 새소년, 1975/2007)
[10원에 나갈 때]까지, 10원만내면 시간제한이 없는 만화방을 섭렵?하고 신간에 갈증나던 무렵 과학?만화와 공상만화에 푹 빠져지냈다. 물론 어머니에게 발각되어 만화방 출금조치를 당하기도 했다.
3. 이광수, 『무정』(우신사, 1981)
양장본표지를 넘기면 얇은 투명지가 있는 고급스런 전집이었다. 서울변두리 신생 고교 도서관, 하드커버 소크라테스를 들다 헉 소리를 내며 난, 지레 물렸다. “도대체 뭔소리?” 수험공부만 한 말미, 그런 까까머리에게 무정은 달콤했다.
4. 조성오, 『철학에세이』(동녘, 1983/2005)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띤 대학생에겐 세미나가 낯설었다. 얇고 글씨가 큰 편이어서 망정이지 말이다. 지금까지 길들여진 나에 대한 반작용이었다. 도아니면 모였다. 책읽기도 그러했다.
5. 고병권, 『니체의 위험한 책,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그린비, 2003)
불침번 대타 진중문고 읽기 군생활과 포스트모던을 핑계한 90년대를 지난다. 이천년이 되어서야 편식독서자인 스스로에게 니체는 또 다른 설레임이었다. 이후 새로운 생각이라 주장하고 싶었지만 늘 그 그물에 걸렸다.
6. 피에르 부르디외, 조흥식 역, 『과학의 사회적 사용』(창비, 2002)
[세계의 비참]의 저자 부르디외를 다시 만났다. 과학만 생각하는 현실에 묻어있는 사회적 역할을 말해준다. 과학자들과 기술자들에게 이렇게 얇은 책조차 읽히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여기에 여전히 유효하다.
7. 토머스 페인, 박홍규 역, 『상식, 인권』(필맥, 2004)
지금여기에 침잠하다보면 역사 속에서 지금의 삶을 반추할 수 없다. 페인은 250년 전 프랑스혁명과 미국혁명을 오가며 기록했다. 자본주의의 시원에 대한 목소리를 잊은 것은 아닐까? 자본을 정점으로 꽃피운 지금의 과제는 여전히 상식과 인권에서 시작한다. 인식의 시점을 고전으로도 돌릴 것을 제안한 책이었다.
8. 안드레 군더 프랑크, 이희재 역, 『리오리엔트』(이산, 2003)
세계사를 유럽중심주의나 자민족중심주의를 떠나서 생각해볼 수는 없는 것일까? 이 책으로 말미암아 세계사에 대한 관점이 바뀌었다. 천동설론자가 지동설론자로 바뀌듯 관점의 아집에서 벗어날 것을 명했다.
9. 칼 폴라니, 홍기빈 역 『거대한 전환』(길, 2009)
경제란 파쇼속의 일상은 갈수록 척박하고 힘들다. 사람과 삶이 스미는 살림살이로 나아가는 길의 이정표는 있을까? 굶지 않는 삶, 누구나 꿈꾸는 삶이 우선 되고 이 경제란 넘은 아주 작은 위치를 차지했으면 한다. 그 왜곡을 뿌리 깊게 폭로하는 책이다.
10. 백석,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다산초당, 2005)
시는 양념이고 저기 경계밖에 피어있는 꽃이다. 그 꽃을 꺾으러 다가선다. 그 꽃을 보러 다가선다. 눈이 부신 나날, 가끔 백석을 그린다. 그리고 나와 나타샤와 흰당나귀를 그리워한다. 비코의 [처음으로 돌아가라]처럼 사람은 역사에 있어 누구나 시작점이다. 세상을 만들어간다는데 동의한다. 시처럼 서로 달리 호명되며 세상은 만들어져야 한다. 이 순간부터 너를 부여잡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