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투트랙ㅡ과거를 겨워내는 일도 중요하지만 연금이나 복지를 수면위로 올려놓는 일이 오히려 두마리 토끼를 잡아내는 건 아닌지. 주말 귀향의 뒤풀이 흔적들이 남는다. 51.6에 말거는 일. 복지가 마마가 되기 위한 치장이었다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외려 양수겹장은 아닐까. 정치지분을 유지하기 위한 정략에 놀아나고 있는 건 아닌지. 문득 돌아가는 팽이 가장자리가 위태롭다. 팽이위에 서있는 사람들이 더 기우뚱 넘어질 듯하다. 벌써 년말이다. 먹고 사는 일보다 중요한 것이 있나 ㅡ 금을 넘는다. 정치엔 포트폴리오는 없나? 민생이 아니라 연금?! 잘못생각하고 있는건가? 배고프다. 저녁때가 되니 막걸리 한잔도 고프다.

 

 

 

2. 삶은 계란! ㅡ 계란 속 노른자와 흰자! 그냥두면 섞이지도 않지만 품고 늘 기대기도하면 노른자는 흰자에게 흰자는 노른자에게 톡톡! 병아리처럼 총총! 삐약거리기도 하는데. 문득 세상이 나이 서른에 멈춘다면 ᆞ음 삶은 반짝!?

 

 

 

 

 

3. 제수씨 가라사대 대통령을 꿈속에서 넘 리얼버전으로 알현하사 이건 왕건이다 얘기도 숨기고 로또를 샀다는데, 조마조마를 부여잡고 일주일이나 기다려 쪼여보니 이런 세상에! 아무것도 당첨된 것이 전무하여 물어보니 ᆞᆞᆞ사람들은 가로사되 ᆞᆞᆞ

 

 

음 그건 아무래도 ᆞᆞᆞ합법이 아니라 비합법이라 소근소근 ᆞᆞᆞ

 

 


 

 

 뱀발.

 

반차를 낸 지난 금요일 아카데미안들, 토요일은 연극공연벙개, 일요일은 마을기업발표회까지 이어지는 일정이 며칠간 여행을 다녀온 듯하다. 밀린 이야기들, 생각들을 다른 시선으로 보고 들을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 반가웠다. 모임 역시 생동감없는 일들의 집합이라면 얼마나 부질없는가? 좀더 남기기 위해 아둥바둥하는 분위기와 좀더 달리 온기와 비판들로 긴장감도 생기도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대면한다. 그러고 보니 떨어져 있다는 푸념도 섞여버렸다.  활동한다는 사람의 반경이 얼마나 과거에 묶여있고 제한되어 있는지 다시 한번 돌아본다. 그리고 국면을 뚫고 나가는 힘들조차 모아지지 않는 현실이 더 안타깝다. 하루 이틀 하는 일은 아니지만, 밥한끼 할 수 있는 사이들. 좀더 많은 시선과 이야기, 논쟁이 오갈 수 있는 사이들이 늘어났으면 좋겠다 싶은 주말이었다. 여독이 많이 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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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뺏지 맛들인 이는 제도 안의 길만 밝히고
바깥 오솔 길로 가는 이들을 꾀여
이 길이 돈도 되고 밥도 되는 길이라 한다.

도지사,청장 된 이들도 제도 안의 길만 밟아
곁의 사이길은 다 길이 아닌 듯
화수분같은 내 길이 최고라 한다.

정당을 하는 이들도 이 길이 최선이라
이 길 만이 곧은 길이라 한다.
달리 갔던 길은 수북히 잡초만 쌓여 걷는 이조차 없다.

함께 꾀하며 길게하는 것을 활동이라 운동이라 칭한다면
길은 큰 길만이 길인 듯 작은 길을 헤아리지 않는다
내가 놓는 길만 길일뿐, 

섞어 문들어지는 왕년의 그 길들엔 마음의 지문조차 없다

 

협동을 하는 이들은 돈을 버는 일인지 공동체를 만드는 일인지

운동을 하는지 버무려 생각하지 않는다. 논쟁하지 않으며 다른 길

아프게 삭히지 않으며 다른 길로 이어진 것인지 관심이 적다.

 

활동이라 주장하던 것, 운동이라 말하던 것, 운동권이라 불리우던 길들이

마치 하나의 길인 것 마냥 사이사이 난 길을 다 막고 막아 버린다.

언듯 보이는 다른 길을 보이지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을 눈치채지 못한다.

 

아는 이, 공감하는 이, 만나는 이도 늘 같은데

다른 마음으로 다른 몸으로 난 길도 생각조차 않는다. 말하지 못한다.

다른 방식으로도 걷지 않는다. 다른 길로 묵묵히 가지 않는다.

제도밖으로 난 길들을 함께 동시에 논하고 품지 못한다.

 

제도안과 밖을 섞는 수많은 길을 미로로만 생각할 뿐...

과거의 길과 지난 삶의 경로만 길인듯 몸으로 기어가는 청춘의 길로 향하지 않는다.

생각으로 난 수많은 다른 삶을 탐하지 않는다. 막힌 길들과 가기만 하는 길을 동시에 욕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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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탯말 책들이 있어 함께 빌려오다.  경상도 우리탯말 서문과 몇쪽을 보다나니 이곳 성향과 스타일을 잘 드러내는 듯하다.  10개월 남짓 몸을 담으면서 알 듯, 모를 듯한 분위기가 모호하기도 한데, 그래도 이 책으로 많이 나아질 듯싶다.

 

 

 

 

 

 

 

 

 

 

 

 

 

 

 

 

 

 

 

2. 죽음을 생각하면 사랑이 보이고, 사랑이 이어져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해뜨기 전에 사랑편을 읽다. 공감한다. 헌데 난 애가 셋이다. 소유와 사유에 대한 생각, 연애에 대한 여러 단면이 같이 읽힌다. 동치미 토론이 기대된다. 얼마나 다양할까? 강신주 많이 까일까? 살아남을까? 도 다른 읽기는 있을까? (12월 12일 아**미, 책방) 곁들여 봐도 좋은 책: 수전 손택의 서른까지 사랑과 학문에 대한 이야기와 사랑은 아플 수밖에 없다는 사랑의 사회학이 중반을 달리고 있다.

 

3. 그림으로 본 음식의 문화사도 재미있다. 그림, 문화....등등... 쏠쏠한 책읽기가 될 듯싶다. 읽다가 접힌 책들이 는다. 해치워야 겠다. 이곳에 첫눈이 오기 전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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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가 기후변화를 통제하는 데 실패했기 때문에 바로 우리가 우리 삶을 변화시키거나 새로운 삶-형태를 창안하기 위해 다른 메커니즘을 발전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공통재를 잘 돌볼 뿐만 아니라 그것과 공존하고 그것을 대안적 방식으로 운영할 수 있는 메커니즘들을요. 또한 이와 유사한 방식으로 생산적이고 인공적인 공통재, 요컨대 특정 영역의 아이디어들 속에 있는 공통적인 것, 언어-사회적 관계-정동의 영역에 있는 공통적인 것의 자주관리라는 측면에서 공통적인 것을 생각해보는 것도 유용할 것입니다. 우리가 여기서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궁극적으로 삶-형태입니다. 우리가 '삶정치적'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지요. 삶-형태, 정치적 삶-형태를 조직하는 것이 아이디어-정동-코드 등을 조직하는 데 핵심적입니다. 55 마이클 하트

 

소비주의가 갖는 문제는 그 조건에서는 욕망이 제대로 크지 못한다는 점이지요. 제 주변에는 울적하거나 심심하면 쇼핑을 간다는 친구들이 많이 있어요. 그것은 불쌍한 것이지 그릇된 것이 아닙니다. 그냥 불쌍한 거예요. 우리는 삶 속에서 더 크고 더 많은 욕망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는 소비주의를 넘어서야 합니다. 그러니 당신의 아이팟을 사랑하세요. 저도 제 아이팟을 사랑합니다. 다만 다른 더 많은 것들을 사랑하세요. 저는 지금 소비주의 비판이라는 전통의 무력함에 허위의식을 문제 삼으며 징징대는 태도에 항의하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허위의식이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제한된 욕망이 문제이지요. 혁명의 효소는 무엇이 옳으냐, 무엇이 진리이냐에 있지 않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원하는 것, 우리가 원하는 사회를 만들어내는 데 있습니다.  59-60 마이클하트

 

사실상 이제, 체념으로 향하는 실업자가 아니라 착취당하는 중간층이 자기 자신을 분명하게 표현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신맑스주의는 이 집단에 대해 아무것도 말해주지 못합니다. 전통적인 맑스주의는 하층을 선동해서 저항하게 만드는 데 시야가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중간층의 저항을 탐구하지 못하지요. 제 생각에는 이것이 전통적인 맑스주의의 구조적인 취약점입니다. 진보적이고 새로운 강령을 갖춘 정치, 즉 대중들을 위한 정치뿐만 아니라 현대의 사회비판 이론도 이제는 다중을 찾아내야 합니다. 흥미롭게도 다중은 밑바닥에 있는 빈자들이 아닙니다. 중간층이지요. 중간층이 다중입니다. - 슬로터 다이크 168

 

우리가 발전시켜야 하는 개념은 코뮤니즘이 아니라 코-이뮤니즘, 다시 말해서 공동면역주의입니다. 사람들이 집단적 삶에서 면역 체계를 어떻게 발전시켜야 할지 파악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코뮤니즘은 공동면역체의 원리가 아직 철저하게 사유되지 않았을 때 나타나는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함께 모여 치명적인 것에 맞선 동맹을 맺어야 합니다. 사람들이 서로에게 상호 안전을 제공해야 한다는 말이지요. 사람들은 서로에게 지구적인 규모의 연대 공동체가 되어줘야 합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집단적인 자기파괴가 가능한 상황 속에 살고 있으니까요. 우리는 코뮤니즘을 말하기 전에 '이뮤니즘'의 원리를, 더 정확하게는  상호보장을 가장 심층적인 연대의 원리로서 이해해야 합니다. - 슬로터다이크 172

 

공동체와 면역체를 충분히 깊이 있게 파고들었다면, 미래를 나타내는 진실한 일차적 개념이 코뮤니즘이라고 불릴 수 없으며 코-이뮤니즘이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이제는 가장 높은 수준에서, 그리고 가장 먼 거리를 가로질러 면역체 동맹, 즉 상호 연대의 동맹을 맺는 것이 핵심임을 이해해야 합니다. - 슬로터다이크 173

 

제 생각에 혁명은 배제된 사람들, 몫 없는 사람들이 보여주는 몫을 가질 능력에서 옵니다. 해방에 대해 생각할 때 제가 중요하다고 보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늘 존재하는 종류의 행동을 사유한 것이지요. 맑스주의적 논리는 사실상 미래를 준비하는 데 근본적인 토대를 둔 논리입니다. 이에 반해 제 생각에 해방은 '목없는 자들'이라고 불리는 사람들, 즉 몫이 없으나 사유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개입할 수 있고, 생산을 조직할 능력을 입증할 수도 있는 행위자로서 공적 무대에서 당당하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들의 등장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이미 등장하고 있는 중이지요. - 랑시에르 203


조직화와 관리의 대상이면서도 이러저러한 차원에서, 이러저러한 지점에서, 이러저러한 순간에 세계의 질서를 일정하게 파열시킬 수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꼭 가장 가난한 사람들인 것도, 경제적인 존재인 것도 아닙니다. 가령 우리는 교육을 둘러싼 갈등이, 혹은 정치적 자유의 문제와 연관된 갈등이 어떻게 영향력이 매우 큰 대중 운동의 계기가 될 수 있었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제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사회의 권력을 가시적으로 조직하는 것과 역할의 분배를 일정하게 파열시키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랑시에르 204


고전적으로 착취는 일종의 토대로 생각되고 그위에 정치적 지배, 이데올로기적 지배 등이 놓여 있었지요. 이런 식이 아닙니다. 착취는 능력 있는 사람들과 능력 없는 사람들에 관한 일종의 전제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능력 있는 사람들과 능력 없는 사람들의 바로 이런 경계가 모든 갈등에서 문제로 불거지는 것입니다. (착취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과 지배의 문제) - 랑시에르  204 랑시에르

 

저는 맑스주의가 진정한 감각공동체와 단순한 정치적 공동체 사이에서 어떤 위치에 있는가를 다루는 매우 강한 사유를 물려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법의 변형, 국가의 변형일 뿐만 아니라 실로 새로운 공통적 세계의 구축으로서의 혁명이라는 생각을 물려받았다는 것이지요. 새로운 공통적 세계란 지각 능력, 상이한 감각 능력이 모두에 의해서 소유되는 세계입니다.  - 랑시에르 206


착취는 늘 행해지고 있습니다. 문제는 통일될 수 있는 피착취계급, 이를테면 혁명군, 미래의 군대, 미래의 조직이 될 수 있는 피착취계급이 착취로부터 산출된다는 논리로 착취가 사유되던 때가 있었다는 것입니다. 착취는 지난 몇 십년을 거치면서, 착취 단위는 늘 더 커지고 계급은 점점 더 동질적이 되는 것이 역사적 논리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보기에 페달을 뒤로 밟은 것처럼 되어버렸습니다. 아닙니다. 이제 착취는 아웃소싱이나 미세한 분업 등으로 무한히 다양화됐으며, 사실상 19세기의 착취 방식이었던 것으로 돌아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착취는, 조직을 가지고 있고 명백하게 가시화되는 힘을 가진 노동계급을 더 이상 산출하지 않습니다. 그에 따라 우리는 문제적 상황에 처하게 된 것입니다. 착취의 힘이 이렇게 새로이 분산됨으로써 해방을 다른 방식으로 다시 생각할 수밖에 없게 되고, 프롤레타리아트가 일종의 집단적 군대로 형성된 결과와 같은 것을 사유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 랑시에르  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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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알림] 맑스재장전 상영과 저자와 대화
    from 木筆 2013-12-04 17:16 
    뱀발. 행사를 겸해서 책들을 다시 챙겨봅니다. 대담자들에게 빨간약과 파란약이란 질문을 건네지만, 어느 누구도 예,아니오를 답하지 않습니다. 질문이 현실을 제대로 담지 못하는 것이죠. 대담자의 답변이 중요한 것은 아닐겁니다. 리뷰와 다시보기로 혹 스스로 갖고 있는 교조적인 틀에 박힌 생각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러면 우리는 조금 나눌 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스스로 혼자든 모임이든 갖고 있는 선입견이나 관념에 집착하지 않게된다면 조금 더 나은 관계가 되지
 
 
 


주막 안주거리: 굴전, 김치찌게 약간, 꼬들빼기 김치 약간,  벌교꼬막, 매운닭발, 부추전, 동태전... ...에 막걸리, 그리고 콩나물밥, 국에 쐬주...(에퀴녹스 2. 밈 강사, 풀뿌리교육 1 그리고 2)

 


 

 

 S N S

 

 #1. 이야기를 나눈다. 소셜네트워크가 어떠냐고 묻는다. 만나는 사람만 만나고, 분노가 사르르 녹아버리기 때문에, 정작 필요한 사람(행정집행단위)에게 느낌이 전달되지 않으며 광장의 야성이 없다. 예를들어 (구) 학생데모는 버스, 주점 어디에서 건 시비도 붙고 이야기도 전달되기때문에 여론을 무서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자. 하지만 인터넷의 공간은 다른 성향의 사람과 대면이 없다. 다른 정치적? 성향의 사람과 격정과 열정이 만나지 못한다. 하물며 행정에 반영된다는 것은 더 소원하지 않을까? 체감이 없으므로... ...


 

무엇을? 어떻게?

 

#2. 무엇을 해야하는가? 정당의 선택만으로도 되지 않는다. 제도밖에서 묵묵히 시민단체의 성원으로 일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어떻게 살아가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별반 묻지 않기에 그 길이 서로 만나는 것인지도 관심이 없다. 가는 길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도 분분하다. 이론의 용도가 어떻게 쓰여야 하는지? 어떻게 설계를 할 수 있는지? 있다하더라도 경중이 없다. 있다하더라도 장단의 길이감이 없다. 있다고 하더라도 어떻게 접붙여야 살아나는지에 대한 감이 없다.

 

 


 

 

생각지렛대 밈

 

 #3. 청소년 교육에 대해 말을 나눈다. 합이 0이 되지만 관계는 덧셈이 되는 그런 교육? 아는 것을 전달하거나 가르치려는 것이 아니라 욕망을 재배치하거나 다른 욕망이 생기도록 하는 것이 교육은 아닐까? 어떤 색깔을 가져야 하는가? 그 원칙을 논의하고 세우는 것이 먼저는 아닌가? 제도권 교육이 일방의 앎의 수수에만 관심과 욕심이 있다면, 그래도 다른 시공간에서는 그렇게 잘리워진 연구와 관심사에 대한 동선, 시간, 표현력을 잊지 않게해준다면 어떨까? 그러기 위한 기예는 가르쳐주면서(인터뷰기술, 글쓰기, 영상, 사진, 애니...) 그것을 바탕으로 100팀에게 100가지 주제로 100일간 기사를 낼 수 있다면 지역도 바뀌고, 청소년도, 부모도 바뀌지 않을까? 작심한다면... 어느 곳보다도 많은 관계망으로 개인 멘토는 물론 자신의 관심사를 담고 키울 수 있게 하는 곳이 있을까?


 

#4. 나름의 색깔을 논의한 사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 놓고 시작하면 한다. 또 다시 조합원에게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은 어려움이 있다. 협동조합에 대한 논의를 한 것과 하지 않은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한 뒤에 결정한 것과 미리 예단한 것은 별개의 사안이기도 하다. 기업을 할 것인지? 영리기업을 할 것인지? 제로의 사회적 기업을 할 것인지에 대한 논의는 구성원이 더 가닥을 잡아봐야할 것 같다.  대상의 문제도 교사분들에게 조언을 들어본 결과 동구와 중구와 둔산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대상을 어떻게 정하는지도 많은 변수를 낳을 수 있다.

 

 


 

 

뱀발.

 

1. 이러한 저러한 일들로 정작 방향에 대한 고민을 나눠보지 못해 아쉽던 차, 자리가 마련된다. 조금 일찍 일터에서 부산을 떨며 열차에 몸을 싣는다.  맑스재장전 몇꼭지를 읽는다.  올라가는 사이 지하철에서 민*수샘의 부고가 뜬다. 십여분의 시간이 지나면서 아쉽고 안타깝다는 느낌이 목을 치밀고 올라온다. 이리도 일찍 따듯함과 미소가 어른거리다니 참 이상한 기분이 든다. 만약 우리들의 삶관계가 혈연의 가족관계가 아니라면 좀더 열려진 공동(면역)체라면 다를까?  그 시공간들이 삶의 열정이나 최소한 먹고살 궁리가 해결되었다면 지위, 나이에 관계없이 많은 논쟁이나 투정도 있었을 것이라고 상상해본다. 그러기에는 현실이 먹고사는 길도 다르고 이어지는 관계들도 점선으로 약하기만 하다. 그래서 반짝, 번쩍거린 그녀의 미소와 앎의 유연함이 더 두드러지는지도 모르겠다.

 

2. 다음달 참* 발제를 준비해야 하는데 마음도 무겁다. 잠 자리에서 얕은 생각이 번져 계속 꿈에서 제목을 정한다. 잠에서 깨기만 하면 잊어버리는 악순환이지만...  과학(기술)...제도 안, 제도 곁, 제도 밖...제도정치의 변화, 활동, 운동, 혁명 그리고 삶..짙은 안개 투성이에 길은 보이는 것인지? 있는 것인지? 있기나 한 것인지? 신기루일 뿐인지? 허황스럽더라도 컹컹 짓는 이들이 늘었으면 좋겠다는 속바램을 썼다 지운다. 컹컹~~

 

3. 밈은 오랜만에 본 영*샘이 참*의 아이디어를 이어준다. 그간의 경험이 녹아있어 고마웠다. 이*샘도 훨씬 부드러워진 듯하다. 좀더 작정들 하고 덤볐으면 한다.  다음날 아침 일찍 치과에 갔다. 그리고 경영이사님에게 혼났다. 이리 얼굴보기 힘드냐고 말이다. 점점... 이번주 하루 날잡아 치료하기로 한다. 선물도 챙겨야겠다. 덜 혼나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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