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시작하려면 지금 여기 있는 인간과는 특정한 분리가 필요하다

1. 합주행위

젠ㄷㅓ가 욕망하는 게 뭘까? 이렇게 말하는 게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우리의 존재를 구성하는 사회적 규범이 우리의 개별 인간됨에서 비롯되지 않은 욕망을 수반한다는 것을 깨닫는다면 조금은 덜 이상하게 들릴 것이다. 11

사람은 그의 인종, 그 인종에 대한 이해 가능성, 그 사람의 형태, 그 형태에 대한 인식 가능성, 그의 성별, 그 성별에 대한 지각적 검증, 그가 속한 민족, 그 민족에 대한 범주적 이해에 따라 다르게 생각된다. 12

인식가능성은 지배적 사회 규범에 따라 인정을 받은 결과로 생기는 것이라고 본다면, 인식 가능성에 못 미친다는 것에도 장점은 있다. 정말 내 선택이 혐오할 만한 것이고 나에게는 특정한 일단의 규범 안에서 인정을 받겠다는 욕망이 없다면, 내가 생존한다는 의미는 인정을 부여하는 이런 규범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는 것에 달려 있게 된다. 13

내가 행위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사람이라면 내 행위의 조건은 부분적으로 내 존재의 조건이기도 하다. 나의 행위가 내게 행해진 행위에 달려 있다면, 아니 그보다도 규범이 내게 작동한 방식에 달려 있다면 내가 ‘나‘로서 지속될 가능성은 내게 행해진 것과 밀접히 관련될 수 있는 나의 존재에 달려 있다./그런 패러독스만이 행위 주체성이 가능해지는 조건이라는 뜻일 뿐이다. 13

인간을 새롭게 만드는 과정을 시작하려면 지금 여기 있는 인간과는 특정한 분리가 필요하다/여기가 바로 비평이 등장하는 지점이다. 이때 비평은 다른 삶의 양식의 가능성을 열기 위해서 삶이 규제받는 관점이 무엇인지를 질문하는 것이라고 생각된다. 14

결혼이 친족 관계를 결정하게 되면 결혼 관계에 근거하지 않은 친족 유대를 세우려는 시도는 거의 불법적이거나 존속 불가능한 것이 되고, 그래서 친족 범주 자체가 가족으로 붕괴된다. 결혼 유대가 섹슈얼리티와 친족을 조직하는 독점적 방식으로 존재하는 한, 성적 소수자 사회 속에서 가능한 친족을 만드는 지속적 사회 유대는 인정받지도 못하고 존속하지도 못한다는 위협을 받을 것이다. 17

실제로 ㄱㅐ개인들은 어떤 신체, 어떤 젠더를 가지고 유지할지에 관한 자기결정권을 행사하기 위해 사회적 지원 제도에 의존한다. 그래서 자기결정은, 행위 주체의 활동을 지원해주고 또 가능케 해주는 사회 세계의 맥락에 놓일 때만 가능한 개념이 된다./자기 힘으로 젠더를 주장하는 행위를 가능하게 ㅎㅏ고 또 지원해주는 사회 규범이 존재하는 한에서만 우리는 ‘자기만의‘ 젠더의 의미를 결정할 수 있다. 어떤 것이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외부‘에 의존하는 것이다. 19
인식 범주가 존재하지 않는 삶은 살만한 삶이 아니듯, 인식 범주에서 살아낼 수 없는 규제가 생기는 삶도 수용할 대안은 못 된다/입장의 차이, 욕망의 차이는 윤ㄹㅣ적 반사 작용이 되어 보편화의 가능성을 제한한다. 21

젠ㄷㅓ를 역사적 범주로 이해한다는 것은, 몸을 문화적으로 구성하는 방식이라고 여겨지는 젠더가 계속 수정될 수 있게 열려 있으며 (인터섹스 운동이 분명히 밝혔듯) ‘신체anatomy’와 ‘성‘은 문화적 틀 없이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23

인종이나 민족적 차이가 일차적인 것이 아니듯 성차도 더 이상 일차적인 것이 아니며, 그것이 표명된 인종적이거나 민족적인 틀 바깥에서 성차를 이해할 수 없다는 주장은 옳다. 24

인간적 삶human life – 인간적이 그저 삶만 수식하는 게 아니라 삶은 인간을 인간적이지 않아면서 살아 있는 것과 연결한다./자신이 아닌 것과 맺는 관계가 살아 있는 인간 존재를 구성하므로, 인간은 그런 것들을 확립하려는 노력 속에서 인간의 경계를 넘게 된다/삶의 가능성은 인간적인 것을 초월해 살아있는 존재에 속하는 것이므로, 이런 역설은 살 만한 삶의 문제와 인간적 삶의 위상을 분리할 것을 요구한다. 27

인간 범주가 시간 속에서 만들어지며 또 광범위한 소수자들을 배제해야만 작동된다는 말은, 그런 범주에서 배제된 자들이 그 범주에 대해, 그 범주에서 말하는 ㅂㅏ로 그 지점에서 ‘인간‘ 범주에 ㄷㅐ한 새로운 표명을 시작할 것임을 의미한다. 29

정신분석학-성행위를 나누는 부모가 이성애 관계도 아니고 재생산도 할 수 없다고 한다면 새로운 심리적 지형이 필요할 것이다./남성 여성의 이분 구조가 아닌 상황은 유아가 등장하는 사회 심리적 유형, 친족 층위의 변화, 인간이 ㅌㅐ어나고 양육되는 사회적 조건을 다시 숙고해볼 것을 요구하면서, 사회 분석과 심리 분석이 만나는 장소를 열어낼 뿐 아니라 사회적*심리적 분석의 새 영역을 열어낼 것이다. 30

나라는 존재가 언제나 내가 만든 적 없는 규범으로 구성된다면, 나는 이런 구성이 일어나는 방식을 알아야 한다. 정동affect과 욕망을 연출하고 구성하는 것은 규범이 나만의 가장 고유한 속성이라고 느껴지는 쪽으로 움직이게 만드는 확실한 한 가지 방법이다. 31

젠더라는 것이 내 것이 되기도 전에 다른 사람에 대해,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라 할지라도, 섹슈얼리티 또한 어떤 특정한 ‘나‘의 박탈을 포함하는 것이라 할지라도 그게 나의 정치적 주장에 종지부를 찍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단지 누군가 이런 주장을 할 때, 그 사람은 그 사람보다 훨씬 많은 것에 대해 주장하고 있다는 뜻일 뿐이다. 33

2.

젠ㄷㅓ ㅎㅓ물기는 14년 전의 책 젠더 트러블과 달라졌다. 첫째, 나에서 우리로 존재의 인식론이 확대되었고, 둘째, 이론적 정교함에서 현실적 정치성으로 선회해 사회적 소수자에 ㄷㅐ한 ‘정치윤리적 성찰‘을 전개했으며, 마지막으로 다문화 ㅅㅣ대에 ㅊㅏ이를 수용하는 올바른 방식으로서 ‘문화번역‘의 가능성을 강조했다. 391

젠더 허물기는 여성이면서 사회적 소수자로, 또 성적 소수자로 살아가는 현실의 사회, 문화, 역사, 지역적 관계 속에서 소통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정체성을 논의한다. 이것이 바로 문화 번역이라는 현실적 ㅅㅏㄹㅁ의 정치성이 주창되는 지점이다. 392

제도권 철학이나 규범적 젠터라는 안정된 제도나 확정된 의미가 기존의 고정된 규제에서 자유로울 때 새로운 해석과 의미가 열릴 수 있다. 정통 철학, 규범적 젠더만을 고집하는 것은 억압과 폭력을 생산할 수 있는 반면, 그로부터의 자유와 타자성과의 소통은 비억압적이고 비폭력적인 미래로 향할 가능성을 연다. 393

문화 번역은 보편성 개념에서 배제된 것으로부터 역사적이고 우연적인 자기 정의를 발견하는 언어도단이나 수행 모순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서로 경쟁하는 열린 보편성으로 재소환되어 자기 안의 ㅇㅠ령인 타자를 포함할 가능성, 반토대주의적인 의미에서의 ‘구성적 외부‘가 될 잠재성으로 제시된다. 394

‘비평성‘이란 사유 실험, 에포케, 의지 행위를 통해 도달할 수는 없지만 토대 자체의 열개와 파열을 거쳐 도달할 수 있는 가능성이다. 397

볕뉘

0. 세벽 세시 - ..잠들어 있는 새들을/꿈의 얼룩고양이가 덮친다/늙은 세일즈맨은 잠옷차림에 서류를 들고/축축하거 거대한 버섯들 사이로 갈팡질팡 걸어다닌다....네시의 기차가 오기 전에/쓰레기들이 은빛 레일 밖으로 치워진다. 진은영

1. 이른 잠, 한밤 중에 일어나 네시가 오기 전 잠을 청하지만 뒤척인다. 막 읽기를 끝낸 연유는 아닌 것 같다. 주디스버틀러의 ‘수행성‘, ‘정체성은 없다‘라는 말이 맴돌면서도 정확히 박히지를 않았는데, 이 책의 요지로 어느 정도 가늠이 된다. 하지만 급하게 읽으려하지 않는다. 열어둔 책들 사이로 갈 마음의 준비가 필요하다. 그래야만 마음의 잔상에 남아 더 적확하게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2. 몇 권의 책들을 열어두었다. 가벼운 책부터, 주제가 있는 책들, 이렇게 철학가이자 사상가이자 정치가인 책들. 심히 무겁고 버겁다. 그래서 가벼운 책들이 많이 필요하다. 잡지같은 책들을 곁에 열어둔다. 좀더 딱딱하고 힘겨운 책들을 읽기 위함이다. 많이 왔다. 보들레를도 읽어야 한다. 저기 한켠에 미뤄둔 파리의 우울에 말을 건네는 이가 있어 몇 꼭지를 읽어두었다. 랭보, 장 주네. 무거운가 가벼운가...아무래도 무거운 한 달이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하다. 아..그렇지 가벼운 봄. 봄이 곁에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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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실감 – 여러 다양한 견해들 중 무엇은 절대적으로 옳고 무엇은 절대적으로 잘못됐다고는 할 수 없다. 어떤 견해든 젠더에 과한 사항은 적어도 한 면은 적확히 파악하고 있고, 적어도 어떤 일정한 사람들의 생활 실감에 뿌리를 두고 있다. 6

정규 고용의 비율이 줄고 비정규고용의 비율이 늘어난 배경에는 젊은이들 자신의 선택보다는, 특히 청년층 비정규고용화를 통해 중장년 남성의 정규고용을 지키고자 하는 산업계의 의향이 은폐되어 있음을 많은 논자들이 지적한다. 37

총체적으로 남성의 여성에 대한 우위는 유지되면서, 그러한 남성지배체제의 혜택을 누리는 입장으로부터 배제되는 남성이 늘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38

오늘날의 기업사회는 재정의된 ‘남자다움‘을 성취한 일부 여성을 ‘명예 남성‘으로 그 중심에 끌어들이는 한편, 그런 ‘남자다움‘을 성취하지 못한 더 많은 사람들, 곧 대부분의 여성과 점점 더 많은 남성을 주변화하면서 여전히 ‘진짜 남자‘에 의한 ‘진짜 남자가 아닌 자‘의 지배를 유지해간다고 이해할 수 있다. 39

청년 남성의 불안정한 고용 상황이 ㄱㅖ속되고 학교에서 ‘거처‘를 찾지 못한 남자의 다수가 졸업 후에도 ‘거처‘를 찾지 못하는 상황이 더 현저해진다면, 앞으로 일본에서도 소년 비행 엄벌화의 흐름과 성과주의의 격화를 배경으로 하여 배제하는 풍조가 더욱 강렬해질지도 모른다. 41 책임을 개인 일방으로 돌리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사회경제적 문맥에 더욱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41

남자의 문제를 대할 때 중요한 것은 남자 내의 다양성을 두루 살피는 것이다. 물어야 할 것은 “남자는 문제인가 아닌가”가 아니라, “어떤 남자가 문제인가”일 것이다. 서술한 남자 ‘문제‘의 근거로 거론되는 ‘증거‘의 대부분은 어느 것이나 남녀 간의 ‘평균적인 차‘를 나타내고 있는 데 불과하다. 남자에도 다양한 남자가 있고 여자에도 다양한 여자가 있다. 43

현대 ㅅㅏ회에서 차별과 배제는 젠더에 의해 구조화되고 있다. 따라서 차별과 배제의 문제를 젠더의 관점에서 파악하는 일은 중요하다. 여자의 문제만이 아니라, 남자의 문제도 주목하고, 그에 대해 논의하거나 그로부터 뭔가 새로운 대처를 ㅅㅣ작하는 것 자체는 충분히 의미 있는 일이다. 44

볕뉘.

0. 가족 - 밖에선/그토록 빛나고 아름다운 것/집에만 가져가면/꽃들이/화분이/ /다 죽었다. - 진은영

1. 제목에 끌려 보게 된다. 저자는 남성의 젠더 형성 2001, 남자다움의 사회학 2006 흔들리는 샐러리맨 생활 2011 3권의 남성학 저서와 편저를 썼다. 젠더 리버럴파에 가깝다고 자신을 소개하는 저자는 부각되는 ‘남자문제‘를 유럽, 호주, 미국, 일본 등등 가로로 질러가기도 하고, 일국의 시간적인 연대기를 감안 종적으로 살피기도 하다. 남성이나, 여성 개인의 이분법의 함유라는 문제라기보다는 사회경제적 맥락을 갖고 있으며, 그 맥락에 의해 판별할 때 더 적확히 살펴볼 수 있다고 한다.

2. 좀더 입체적으로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그 틀로 참조가 될 만한 책으로 보인다. 당장은 저자의 남성학 저서를 읽게 되지는 않을 것 같다. 급변의 사회에서 함께 그 근저를 파헤쳐보는 것도 유의미할 것이다. 지금 이 사회. 감각적인 논의가 아니라 합리적인 문제의 해법을 찾아가는 것 가운데 다양한 이론화 역시 중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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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내가 초록 페인트 통을 엎지른다
나는 붉은색이 없다

손목을 잘라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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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그래도 싫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그 일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 일이 놓인 조건, 일이 포함하는 다양한 활동, 그 안에서 맺게 되는 관계를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이 놓인 조건에 만족하는 것과 일 자체에 만족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둘은 늘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언제나 조건과 상태를 전제한다. 65

새롭게 일을 정의하려면 일 속에서 맺는 관계망 역시 새롭게 정의해야 한다. 일이란 본질적으로 관계 안에 놓여 있다. 골방에 ㅊㅓ박혀 아무에게도 보여주지 않으며 아무에게도 영향을 미치지 않을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을 우리는 일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일은 언제나 그 결과물을 세상에 내놓는 작업이다. 우리는 언제나 누군가와 함께 일하고, 누군가에게 물건이나 서비스를 팔며, 누군가로부터 노동의 ㄷㅐ가로 돈을 받는다. 일 속에서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가 건강하지 못하다면 우리는 결코 행복하게 일할 수 없다./행복하게 일하려면 ‘행복한 일‘의 정의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255

1.

많은 사람이 입버릇처럼 ‘일하기 싫다‘고 말하지만 싫은 것은 대개 일 자체라기보다 일이 놓인 조건이다. 그저 싫다. 괴롭다 토로하는 대신 정확히 어떤 부분이 싫은지 구체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거기서부터 무엇이든 하나씩 지금과는 ‘다르게‘ 해보아야 비로소 실마리가 드러난다. 49

절절한 연애가 결혼이라는 일상이 되는 순간 무수히 많은 결이 생겨나듯이, 일 역시 다르지 않다는 것을. 그래서 그저 좋아하는 일을 하겠다는 친구를 말리기도 한다. 51

번역가 정영목의 선택이 자신의 호불호와 현실 사이의 냉정한 타협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랬기에 ‘관성‘이라는 것이 생겨났다고 믿는다. 그 관성이 “번역할 책을 제가 고를 수 있는 위치”로 그를 데려다주었고, 그 일을 더 좋아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을 것이다. 54

나 역시 진짜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지 몰라 오래 방황했다. 내가 어쩔 수 없이 택했던 전략은 싫어하는 것을 하나씩 피하는 것이었다. 눈앞에 보이는 대안 중에 절대적으로 싫은 것을 피해가며 살아왔다. 그렇게 싫어하는 것을 하나씩 알아가다 보니, 내가 좋아하는 ‘것-들‘의 조합이 무엇인지 조금씩 뚜렷해졌다. 그리고 그 조합이 하나의 변치 않는 정답이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변화하고 성장하는 만큼 좋아하는 일 또한 달라질 수 있다. 58, 59

좋아하는 일도 당장 하고 싶은 일, 1년만 하고 싶은 일, 10년동안 하고 싶은 일이 다르다. 게다가 그것들은 때로 상충한다. 인생에 딱 하루가 남았을 때 하고 싶은 것과 10년이 남았을 때 하고 싶은 것이 같을까? 10년을 내다보며 하고 싶은 일보다 마지막 하루 동안 하고 싶을 일에 무조건 더 열정을 쏟아야 할까? 아니면 10년의 꿈을 위해 오늘 당장 하고 싶은 일을 다 유보하며 살아야 할까? 상충하는 여러 욕구 사이에서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그 사이의 조화와 균형을 고민하며 나아갈 수밖에 없다. 64

‘좋아하는 일을 하라‘는 말은, 그래도 싫은 부분을 구체적으로 말할 수 없다면 그 일을 잘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위험하다. 그 일이 놓인 조건, 일이 포함하는 다양한 활동, 그 안에서 맺게 되는 관계를 아우르며 총체적으로 일을 바라보아야 한다. 일이 놓인 조건에 만족하는 것과 일 자체에 만족하는 것은 다르지만 그 둘은 늘 서로 뒤섞여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것은 언제나 조건과 상태를 전제한다. 65

고정된 일터에서 ‘해방‘되는 것이 기쁜 소식이기만 할 리는 없다. 불안정성을 그 대가로 받아들여 얻은 능동적 자유가 어떤 사람에게는 골치 아픈 숙제에 불과할 수도 있다. 68

지나친 자기애에 빠져 있다면 적절한 가면을 쓸 수 없다. 관계 맺기에 대한 두려움으로 움츠려 있을 때도 마찬가지다. 적절한 거리를 두고 일과 환경을 바라볼 때만 우리는 기꺼이 가면을 쓸 수 있다. 그때야 비로소 쓸데없이 상처를 받지도 주지도 않으며, 사회적 관계 안에서 적절한 역할을 해낼 수 있다. 더 많은 종류의 가면을 쓸 수 있어야 그 주체는 ‘사회적‘인 주체일 것이다. 77

가면 쓰기의 과정에서 건강함을 잃지 않으려면 필요한 전제조건이 있다. 스스로 주체가 되어 대본을 써내려갈 수 있을 때만 우리는 가면을 쓰고서도 소외나 자기연민의 덫에 빠지지 않는다. 그래야 비로소 그 모든 가면이 ‘나‘가 된다. 일이 벌어지는 자리는 다양한 주체의 대본들이 교차하는 장인 동시에 공동의 연극이 공연되는 무대다. 76

2.

일을 돈벌이의 결로 환원해버리는 것이 합당하지 못하듯이 일에 존재하는 돈벌이의 결을 무시하는 것도 똑같이 현실을 부인하는 태도다. 활동가의 일에는 ‘사회적 의미‘라는 결이 가장 위에 놓이겠지만 그 아래에 돈벌이의 ㄱㅕㄹ, 즐거움의 결 등도 분명히 존재해야 한다. 돈벌이가 전부라는 중독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돈벌이의 무게를 부인하지 않아야 얼마큼의 돈벌이를 감당하며 살아갈지 냉정히 판단할 수 있다. 거기서부터 시작이다. 88

3만엔 비지니스 – 한 달에 이틀이상 일하지 말 것. 경쟁을 유발하지 않는 착한사업일 것. 94

자신의 일상을 돈벌이 경제 밖에서도 그럭저럭 꾸릴 수 있다고 믿을 때, 그것도 꽤 즐겁고 행복하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때 세계에 대한 우리의 공포는 사라진다. 공포만 사라져도 일은 훨씬 ㄷㅓ 수월해질 것이다. 어느 날 일자리를 갑자기 빼앗기고 돈벌이 경제 밖으로 밀려난다고 해도 삶 전체가 당장 나락으로 빠져들지는 않을 것이란 믿음이 오늘의 고된 일을 좀 더 견딜 만하게 해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일의 다양한 결들이 좀 더 모습을 드러내게 되고 일이 지닌 돈벌이의 결조차 한층 부드러워질 것이다. 99

한 인간의 ‘열심의 총량‘을 마냥 늘릴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갖고 있는 열심 용량 대부분을 밥벌이에, 그것도 그다지 원치 않는 밥벌이에 쏟아넣을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재미있는 일을 찾기란 하늘의 별따기다. 그 때문에 개미에게도 베짱이에게도 세상이 재미없고 사회도 이 모양 이 꼴은 아닌가 147

교육과정의 목표는 ‘좋은 일자리‘이고, 얼마나 많이 안정적으로 돈을 벌 수 있느냐가 일자리의 질을 판가름하는 절대적인 기준으로 자리 잡는다.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감사받고 인정받느냐는 중요한 ㄱㅣ준이 아니며, 그런 감사와 인정을 측량할 기준조차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시장의 감사와 인정이며, 그것은 늘 화폐로서 명징하게 수량화된다. 216

등가교환의 시대(하류지향)-현대의 샐러리맨 아버지는 노골적으로 언짢은 얼굴을 가지고 돌아옴으로서 가족을 위한 노고와 희생을 과시한다는 것이다. 사냥꾼이 사냥한 짐승을 들고 오듯, 농부가 곡식과 채소를 지고 오듯/가족 전원이 ‘우리 집에서 ㄱㅏ장 많이 불쾌하고, 가장 많은 불이익을 받는 사람은 누구인가‘를 둘러싸고 패권 경쟁에 열중하게 된다. 217

세넷은 자율이 “타인에 대해 당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것을 받아들인다는 의미로, 불투명한 평등”이라고 말한다. 상대의 다름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다름을 이해한다는 뜻이 아니다. 이해할 수 있어야 받아들이는 관계는 평등한 관계로 이어지지 않는다. 이해해주는 자와 이해받아야 ㅎㅏ는 자의 위계가 들어서기 때문이다. 227

어떤 사람이 대체 불가능한 존재가 된다면 기업의 평가 시스템으로 점수 매겨지는 ‘능력‘때문일 수는 없다. 대체 불가능성은 능력의 양이 아니라 그 사람의 존재가 만들어내는 질적 차이에서 나온다. 그런 대체 불가능성이 현실에서 효력을 발휘하려면 그 차이를 발견해주는 조직이, 즉 사람‘들‘이 필요하다. 기업에서 우리가 언제나 대체 가능한 인력으로 소모되는 이유는 단순하다. 기업이 대체 불가능하다고 생각해주지 않기 때문이다. 기업이 일을 규정할 때 각 존재가 만들어내는 질적 차이에는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이다. 230

이러한 변화는 ‘우리‘만의 측정 기준, 그 기준에 따라 움직이는, 좀 다른 구조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236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고 싶다. 내가 하는 일이 가치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러면서 생계를 유지하면 좋겠다. 249


볕뉘

0. 책방의 책꽂이를 살펴보다 손에 집어든 책이다. 참고문헌이 많이 겹쳤고, 막 읽은 과로사회처럼 좀더 예민하게 살펴볼 부분은 있을까? 저자의 이력도 독특해서 다시 보았다. 주인장의 페북활동 안내도 있기도 했다.

1. 자신의 꿈과 좋아하는 일은 무척 알기가 힘들다. 그래서 함부로 좋아하는 일과 꿈을 혀끝에서 쉽게 놀리면 안 된다. 가장 긴 노동시간이 24시간 회전 시장을 만들어내고, 그 숱한 교육의 배출구는 여전히 세븐일레븐 7to11의 불꺼지지 않는 일터이다.

2. 저자의 고민의 결이 다양하다. 그래서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일과 꿈의 개념을 흔든다. 흔들고, 빠져서 새 이가 나왔으면 좋겠다. 여전히 진행형일 수밖에 없다. 이런 것이다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들로 그 간극들을 메워나가야 할 것 같다. 그래서야 조금 더 나은 텍스트가 만들어질 수 있을 것이다. 막 사유와 활동의 출발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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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화하고 이동하지 않는 주체, 운동, 언어는 ‘운동권/域‘이라는 또 다른 기득권 집단과 ‘연줄‘ 집단을 만들 뿐이다. ‘서울, 중산층, 젊은, 이성애자, 고학력, 비장애인‘ 중심의 여성운동도 예외는 아니다. 왜냐면 이들은 사회가 수용 가능한 이른바 ‘여성다운 여성‘을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11

문제는 연령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연령에 따라 권리가 분배되는 정치경제학적 조건에 있다는 것이다. 성관계의 자유를 요구하는 입장도, 금지의 필요를 주장하는 입장도 모두 섹슈얼리티를 ㄷㅏ른 사회 관계로부터 독자적인 장치로 본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적인 문제 의식이다. 14

양성평등에 기반한 이성애 가족 구조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제기가 없다면, 한국 사회에서 동성애자 인권 운동과 양성평등 패러다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동성애자는 양성평등 패러다임의 ‘가장 큰 피해‘ 집단이기도 하다. 동성애자는 양성의 범주, 인간의 범주를 문제 제기하고 교란하는 대표적인 집단이다.....동성애자 인권 억압의 맥락은 종교 갈등, 계급, 혁명 후의 건국, 영토 분쟁, 섹슈얼러티 통제 등 다양한 시공간의 역사적 상황에 맞게 분석되어야 한다. 17

우리가 비판받지 않는다면 무엇으로 역사를 채우겠는가 19

이분법은 주체와 타자가 하나로 묶인 주체 중심의 사고다. 우리가 흔히 “남성 중심적, 서구 중심적, 미국 중심적, 서울 중심적 사고”라고 비판하는 논리는, 말하는 주체와 그에 의해 규정된 대상의 존재를 전제한다....이분법은 대칭적, 대항적, 대립적 사고가 아니라 주체 일방의 논리다. 29

모든 차이는 이미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언어를 만드는 사람에 의해 규정된 것이다./이분법적 사고는 남성이든, 여성이든, ‘제3의 성‘이든 모든 인간의 해방과 상상력을 제한한다./이분법은 인간의 지식 전반의 구성 원리다. 30

언ㅇㅓ를 만드는 사람들은 자신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자기 이외의 나머지 세상만 묘사한다/이분법은 무엇인가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게 만드는 인식의 절차이자 과정이다./이분법은 두 개가 아니라 하나를 위한 사고다 A가 아닌 것을 사용하고 배치하고 규정할 수 있는 A의 권력을 말한다32,33

성별 사회에서 여성은 외모와 나이, 남성은 사회적 자원 여부가 남성과 여성 여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모든 인간은 인간이기 전에, 남성과 여성이어야 하는 젠더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은 진정한 남녀가 되기 위해 노력한다. 37

여성을 규정하는 수많은 개념의 핵심은 성적 활동이다/실제로 그렇게 살다 보면 남성처럼 보이는 정도가 아니라 ‘진짜 남성‘이 된다. 이것이 몸의 체현이다. 38,39

섹스 스펙트럼도 컬러 스펙트럼처럼 생각할 수 있다. 자연 세계에는 저마다 다른 파장, 주파수가 있고 이는 빨강, 파랑, 오렌지, 노란색 따위로 변색된다. 41

인터섹스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은 생물학과 사회학에 대한 기존의 인식 모두를 바꿔야 하는 일이다./보편성은 권력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지 고정된 것이 아니다. 평등은 희망이자 지향이지 현실이 아니다/보편과 특수는 짝을 이루면서 권력의 필요에 따라 평등, 자유, 민주주의 같은 가치를 특정 사회 구성원에게는 적용할 수 없다고 주장할 수 있다/보편성의 반대는 특수성이 아니라 ㅊㅏ이다. 이 차이를 ‘또 하나의 보편‘으로 드러낼 때, 기존의 보편성이 실제로는 편파적이고 당파적임을 인식할 수 있다 특수성은 보편의 하위 개념인 반면, 차이는 보편성의 전체주의를 문제 제기할 수 있는 보편과 동등한 개념이다./양성평등은 ㄱㅏㄹ등, ㄷㅐ립논리일 수밖에 없다 44,45,46,47

평등은 다른 사람과 같아지는 것이 아니라 한 사람으로서 ㄷㅏ른 이들과 공정한 대우를 받는 것이다. 그러나 ㄱㅐ인의 상황은 모두 다르기 때문에 평등은 언제나 논쟁적이고 경합적이다. 또 평등은 ‘적용‘될 수 없는 것이며 그래서도D 안 된다. 적용의 주체와 ㄷㅐ상의 구별 자체가 바로 정치의 시작이다. 47

한국 사회에서 ‘사적 영역‘의 변화없이는 여성의 지위는 별다른 변화가 없을 것이다./...여성이 집 밖으로 나와 사회로 진출한, 그 내용은 무엇인가? 이중 노동, 워킹 푸어, 비정규직의 여성화, 빈곤의 ㅇㅕ성화, 남녀 임금 격차의 지속...사회 진출 자체가 평등 혹은 여성 상위로 인식되는 것은 그만큼 “여성이 있을 곳은 집”Dㅣ라는 강력한 의식의 반영일 뿐이다./..노동조합, 지여가회, 진보 정당,학부모 역할까지 요구될 경우 삼중, 사중 노동이 된다. 50, 51

여성들은 지난 30여 년간 최선을 다했고 그만큼 깨달아 가고 있다. “나는 엄마처럼 살지 않을 거야” 에서 이제는 “엄마, 다시 ㅌㅐ어나면 그 남자랑 결혼하지 마, 나 낳지 말고 엄마 인생 살아”Fㅏ고 외친다./평등의 기준이 경쟁, 승부, 부패, 우열이 작동 원리인 남성중심의 ‘사회‘인 한, 진정한 양성평등은 없다...평등보다 책임감으로서의 여성주의 윤리의 전환이든 ㄷㅏ른 세계가 ㄱㅣ준되어야 한다. 비유하자면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 몇 배에 해당하는 발본적인 변환이다. 53

나는 육아에서 국가보다 남성 ㄱㅐ인의 인식과 태도가 훨씬 중요하다고 본다. 국ㄱㅏ는 남성을 ‘따라갈‘뿐이다.....남성도 여성이 겪는 육아와 모성으로 인한 죄의식, 스트레스, 자기 분열, 커리어 포기 경험을 겪어야 한다/..한국 남성들은 자기 ㄱㅖ발과 시간 ㄱㅣ획처럼, 인간으로서, 가족 구성원으로서 자기 관리부터 선행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55

볕뉘

0. 여성운동이나 장애인운동을 읽으면서는 늘 오독하는 경향이 있다. 사회운동이나 진보운동이 이 흐름들을 받아들이거나 흡수하면 어떨까하고 말이다. ㅇㅓ쩌면 그것이 과정이나 여러가지 연결된 몸짓이라 쉽지는 않겠지만, 그렇지 않으면 부문?운동이란 것이 자신의 흐름을 확장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간절하기도 한 것 같다.

1. 다른 저자의 글을 읽으면서 여성운동의 맥락, 기독교가 반동성애 활동에 올인하는 이유 등 여러 최신흐름들을 적확하게 읽어낼 수 있었던 것 같다.

2. 며칠 전, 자 살자라는 책에서도 언급한 이야기는 이분법이다. 남을 발견해낸다는 것. 존재의 근거를 남에게 둔다는 것. 삶이란 것은 어쩌면 단순한 것인지도 모른다. 남도 좋고, 나도 좋고...죽음앞에 선명해지는 것. 활동이라는 것. 운동이라는 것. 이런 활동의 문제는 서로 서거나 피지 않는다면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생각이나 활동의 영점을 늘 염두에 두는 일이 시작이자 끝일 것이다.

3. 사회의 변화는 무척이나 빠른 듯하다. 기득권-중산층이자 남자이자 수도권이자 이성애자 젊은이지향자-을 누리는 사람들에게는 자기배려뿐만 아니라 더 혹독한 자기반성과 개혁의 시기가 아닌가 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시간을 일하고 있다. 일에 호흡도 맥락도 없이 일만 하고 있다. 시간을 앓고 있다. 장ㅅㅣ간 일문화를 도려내는 일과 자신의 일상을 다르게 사는 일이 그래도 화두처럼 앞으로 십여년이 지났으면 좋겠다. 지금보다는 서로 살맛나는...십년 뒤가 도ㅣ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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