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마지막 코멘트
캉길렘은 잘 알려진 단절에만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유래와 연속성 또한 추적하였다. “이건 어디서 왔지?” 강박적으로 반복되던 이 질문은 때로 우리를 몇 시간 동안이나 단 하나인 문단에 붙잡아 두었다. 137
“치열하게 사유하는 것” 캉길렘이 심어 준 윤리는 게으른 사유의 경향을 거부하는 데 있었다. “악은 본질상 게으름인 이기심이다. 게으름은 쾌락의 추구와 노력으로부터의 회피라는 두 측면을 지니고 있다. 행동한다는 것은 이 게으름과 싸우는 것이다. 다른 모든 행동은 기만적이고 덧없다. 우리가 세상에 홀로 남더라도, 그리하여 주변에 아무도 없고 우리 자신에게 부과되는 그 무엇도 남아 있지 않더라도, 법칙은 동일하게 남아 있을 것이며, 진정으로 산다는 것은 항상 삶의 고통을 감내하는 것일 터이다.” “고통을 견디기보다는 삶을 만들어 가야 하는 것은 아닐까? 그런 면에서 회의주의는 옳다. 세계과 자신을 난해하게 만드는 것이며, 혼돈을 선언해야 한다. 그런데 혼돈은 아무 것도 아니다. 자기 자신과 모든 것을 존재하게 할지말지, 선택해야 한다.” 145
3장 역사적 인식론?
바슐라르 저작의 본체를 구성하는 세 가지 공리. 제1 진리는 얻을 수 없다. 다만 제1 오류들만이 있을 뿐이다.“ 첫 번째 공리는 오류의 이론적 우선성에 관한 것”이라고 정식을 인용하며 쓴다. 또 다른 정식 “직관들은 파괴당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매우 유용하다”로 표현될 수 있는 “두 번째 공리는 직관에 대한 사변적 평가 절하에 관한 것이다”. “세 번째 공리는 관념의 관점으로서 대상의 지위에 관한 것이다. 우리는 실재를 구성해야 하는 필요성 그 자체로부터 실재를 이해한다. 우리의 사유는 실재로부터 줄발하는 것이 아니라 실재로 향한다.” 70-71
“오류는 무력함이 아니라 힘이며, 몽상은 연기가 아니라 불꽃이다”라고 쓸 수 있었다. 능동적 연구에서 오류는 증식한다. 오류는 사유 그 자체에 원천을 두고 있다. 오류들은 욕구, 이미지 그리고 몽상을 관념으로 변환한다. 사유는 자신을 지배하는 “동요”를 모면했을 때에만 지식을 향한 여정에 가담할 수 있다.“ 이 점에서 새로운 기예를 요구하는 과학사가 나타난다. ” 이 역사는 더 이상 자연사와 마찬가지로 전기들의 모음, 학설에 대한 묘사가 될 수 없다.“ 이 역사는 합리적 가치가 어떻게 과학적 활동 자체를 이끄는지를 보여 주는 개념적 계보의 역사가 된다. 71 바슈라르는 ”이제껏 하위 범주에 속해 있었던 상황에서 과학사를 끄집어 내 일선의 철학 분야로 끌어올림으로써“ ‘과학사의 의미’를 근본적으로 쇄신했다고 평가한다. 72
과학의 논리와 철학 세션의 논문 <17, 18세기 반사 개념의 형성>에서는 낡은 역사(생리학에서 데카르트적 기계론의 역사)와 승인된 역사(생기론의 전통 역사)를 구분할 수 있게 하는 “개념적 계통”의 역사를 쓴다. 73
“데카르트는 모든 의학적 실천의 외부에서 의학 이론을 만들었다. 그는 정상적인 것으로부터 병리적인 것으로 나아갔다. 윌리스는 병리적인 것에서 정상적인 것으로 나아간다. 그는 생명적 운동의 원리와 원천에 대한 거의 시적인 직관에 가까운 유비 추론 능력으로 거의 대부분을 사로잡는다. ”유비의 힘 덕분이다. 윌리스는 생동이자, 임페투스(관성)이며, 불관성에 반하는 노력으로서 생이 빛과 유사하다고 보았다. 그리고 이것이 그에게 빛의 법칙에서 생의 법칙의 본보기를 발견하는 것이 자명해 보였던 이유이다.“ 이처럼 ”생기론적“ 과학자의 전통은 윌리스로부터 프로체스카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왔다. 중요한 것은 임상으로부터 출발하여 생을 현상의 고유한 질서라고 인정하는 것이다. 78 바슐라르 <<불의 정신분석>>참조.
테일러주의적 합리화는 노동계의 저항을 야기하면 그 실천적 한계를 드러낸다. 여기 실패의 저변에는 이론적 오류가 자리잡고 있다. 자기 삶의 모든 의미가 박탈당하지 않는 이상 사유하기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며, 이 사유를 통해 자신의 고유한 환경을 구성하는 생명체인 인간 개체의 특수성을 무시한 것이다. 그래서 생물학적, 심리학적, 사회적 오류를 보여주는 증거인 것이다. 82
<<방법서설>> 출판 300주년 기념 학술대회 “데카르트와 기술”에 대한 발표에서 과학 덕분에 “자연의 교수이자 선생님”이 된 인간이 “필연성에 대한 지식을 능력으로 전환하는 것”이라고 요약했다. 이 기획은 자연에서 모든 목적성을 제거하고, 영적 차원을 완전히 부정하고, 물질에 질적인 것은 없다고 이해한 후에만 세워질 수 있는 기획이라고 말한다. 85
과학은 기술로부터 생겨난다. 그러나 이는 참이 유용한 것의 체계화, 성공의 기록이라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기술적 곤경, 불완적한 성공, 실패가 정신으로 하여금 인간적 기예를 통해 마주친 저항에 문제를 제기하게 하고, 마주친 장애물이 인간의 욕구와는 독립적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며, 참된 지식에 대한 탐구를 촉발한다는 의미에서 그러하다. 86
기술의 주도권은 생명체의 요구 안에 있다. 이 요구를 전달하는 충동은 이론가의 허가를 기다리지 않는다. 기술은 “창조”로서 사유되어야 한다. “과학의 문제는 과학의 영역에서 해결될 수 없다. 과학은 기예의 관점에서, 그리고 기예는 생명의 관점에서 고찰되어야 한다. 기술이 과학에 우선한다. 기술중심주의적 의미가 아니라 ”과학적 사유의 비약적 발전의 조건은 기술의 실패“라는 의미에서 말이다. 과학은 ”제작하려는 충동“이 마주치는 실패와 장애물에 대한 반성으로서 나타난다. 열역학, 파스퇴르 이론, 탄도학 문제를 사유한 갈릴레이까지 차고 넘친다. 87
볕뉘.
팔월의 끝. 진행중인 작업. 쉼이 필요한가. 쉬어 주어야 하는가. 불안증이 몸을 덮고 있다. 작업실을 달리 세팅하고 스토리라인을 만들어둔 것이 출발하기 전 날이다. 진도는 아주 조금씩 작업실에 거처한 만큼만 나간다.
다녀오자. 찾던 책도 둔 곳이 어디메뇨 헤매이다 식수냉장고 곁에 꽂아둔 걸 발견한다. 오고가는 길. 오늘에서야 두 권을 마저 읽다.
다시, 세 권을 주문 넣다.
현대미술관 청주 수장고 전시를 보다가 얻은 아이디어를 구겨 넣어보니 괜찮다. 또렷하게 시간과 작업을 채워넣으면 된다. 뫔이 많이 편해지고 있다. 횟수만큼 마무리된다고 여기고 나니 말이다. 내일은 구월의 이틀. 사흘.
많이 더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