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관계를 풀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를 차별하느냐의 말미를 찾아들어가다나면 차별받는 것 같다. 날 더 미워하는 것 같다.라는 추측과 합리화가 과도하다 싶다. 주위의 전후좌우 평가가 다르다. 피해의식이 과다하다. 커피 한잔 내돈으로 산 적이 없고, 풀어나가기 위해 노력한 적이 없다. 어릴 때 관계에 사로잡혀 있는 듯하다. 교통사고가 일방이 없는 것처럼 가해에 대한 감각이 떨어져있다. 


-2. 


도박중독일까. 번듯한 일터에 다니면서 빚이 잔뜩이다. 관계들은 망가질대로 망가졌다. 일수 돈을 빌렸다. 오토바이로 문틈 사이로 날라오는 일수명함 말이다. 


-3. 


배달음식, 튀김음식만 입에 맞다. 과일도 야채도 먹지 않는다. 잠도 제대로 자지 못하고 머리가 지끈거린다. 6층 계단을 오르는 할머니보고 먼저 올라가시라 한다. 알바가 힘들다. 그만둔다.


0. 


상담 아닌 상담을 하게 된다. 믿기지 않지만 현실이다. 일상이 얼마나 비틀어져 있는지. 젊은 친구들의 편린이다. 여러가지 일들을 챙기다나니 몹시 피곤해져 일찍 잠을 청한다. 밤 중동에 일어나 <<관촌수필>> 녹수청산 편을 읽다.


1.


 <<인류세 윤리>>에서는 그 윤리 가운데 하나로 <<관촌수필>>이 나온다. 토박이말이라고 하지만 우리말이다. 외려 낯선. 그 문구 가운데 한 번도 -적이라는 표현은 없다. 우리는 무언가 잔뜩 중독되어 제대로 된 표현을 하지 못한다.  이해는 언듯되지 않지만 곧 이해가 되고 단어가 쥐어진다. 암 이렇게 써야해. 하지만 이미 중독된 불구자다. 식물 한 잎. 잎새 한잎의 보살핌의 윤리가 필요하다 했던가. 착각인가.


2. 


옹점이 대박이 순심이...어린 나의 시선으로 해방과 미군정, 전쟁의 시기를 겪는 대부분 올려다 보는 시선은 놀랍다. 문득 위화보다 더 세련되다. 아니 다른 무언가가 자리잡고 있다. 허망함을 넘는 다른 메시지들이 심어져 있는 건 아닐까.


3. 


<<녹색계급의 출현>>에서는 미개인이라는 대목이 나온다. 전쟁과 보리고개와 격변을 겪은 708090세노인들의 삶이 정작 대안이라고 말하며, 그 삶의 방식이 많은 도움을 줄 것이라고 과감히 말한다. 기후양극화시대. 인류세의 윤리로 말이다. <<회색 생태학>>이 아무래도 걸린다. 우리는 녹색생태학으로만 사유해오고 있어서 이다. 시선들이 겹치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4. 


Now is good 을 잘못 읽었다. Now is god 지금이 신이라고 읽은 셈이다. 지금은 PRESENT 선물이기도 하다. 지금을 다른 것으로 채울 수 없음은 안타까움이자 직무유기다. 관계를 만들어가고, 건강하지 못한 몸을 건강하게 하고 척박한 일상이지만 다른 결들을 찾아가는 것. 지금을 채우는 것이 최선이다. 이왕이면 색다르게 말이다. 선물을 해보는 것도, 요리를 해보는 것도, 아이와 또 다른 나날을 만들어가는 것도 지난 질곡에서 벗어나는 방편일 것이다.



어제를 만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가을이다. 선선한.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폭풍같았던 십여일. 명절일정들도 마치고 돌아와 운전대를 잡고 작업실로 향하는 길, 온몸의 실금으로 눈물과 울음들이 새어나오다 멈춘다. 대전역 열차로 향하는데 전화로 들려오는 누나의 떨리는 목소리. "아버지 돌아가셨어" 가 여러 틈을 비집고 십여일만에 다시 자란다.  염과 입관, 분골실의 장면들이 겹치고 나서야 삶의 인연이 닿지 않는다는 걸 새삼확인한다. 식물들에게 물을 주고 작업실 화분이 궁금해 섬안대교를 건너고 나서야 정신을 차린다. 


그리고 며칠 울컥울컥 올라오는 장면들은 생의 자락을 좀더 길게하는, 연민같은 것들이다. 만약 요양원을 옮기지 않았더라면, 약을 쓰지 않았더라면, 밤새 간병인을 쓸 수 있었다면, 마지막 대면의 시점은 늦추지 않았을까하는 것들이었다. 쓸모가 없음을 알면서도 하나하나 따지고 있게되는 것이다. 이내 접고 정신을 차리게 되지만 막연한 후회라고 위에 줄을 긋게 된다. 


이튿날 동생은 취했다. 안해도 같이 펑펑 울었다. 술취한 사람들을 설득한다는 게 무모하다. 왜 그런가 하면 그들은 편린을 잡아삼키기에 설득되지 않는다. 자신을 부정하는 말을 묘하게 낚아채서 반론하는 것이다. 앞뒤전후를 재는 것은 무익한 일이므로 자제해야 하는 것이다. 동생 문상객들이 줄지어서 오고, 사돈댁과 불화를 짐작하며 뭔가 묘하게 맞지 않는 줄다리기같은 긴장을 내내 느끼게 된다. 제수씨들과 큰형수와 동생이 데칼코마니처럼 닮았다고 아침 육개장을 들며 이야기를 나눈다. 뭘까 대체.


바꿀 수 있다고, 변할 수 있다고 하자. 


장지를 선정하는 일도 여러해 전부터 나온 얘기라 장남과 며느리의 생각만 하면 안된다. 열차 이동 중에 염두에 둔다.정말 그럴까. 원할까. 자식들이 아니라 어머니 마음은 어떠실까. 하루밤이 지나고 며느리들의 반대의견이 있었다. 장례식장에서 정한 것은 얼마든지 변경가능하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의견들을 다시 들어 확인해보는 것이다. 고인의 뜻은 무엇일까. 아들보다 더 아들같은 매형은 부친은 흙으로 돌아가길 원하신다고 모시길 원하지 않는다고....어머니도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곁에서 자식들이 시간을 일년에 한 두번 더 내길 바란다고..누나는 그것도 욕심이지 않느냐고 그냥 자식들이 결정하는대로 따르시라고 말한다. 그렇게 속내를 확인한다.


발인날 새벽부터 비가 많이 내린다. 발인제를 지내고 화장장에 도착하고 기다린다. 작은 어머니를 모실 때보다 빨라지고 간편하다. 장례버스 기사분이 말한 전분유골함에 식당까지 챙기고 오다. 보자기로 싼 함의 온기가 여전히 남아 전달되는데 사시던 곳곳을 돈다. 그렇게 든 길은 당신이 달리던 고개마루를 지나 당신이 뵙고 싶어하던 곳에 다다르자 비도 그쳐 편안히 모시게 된다. 포도와 술로 같이 모신 할아버지 할머니 숙부 숙모에게도 알린다.


저녁 밤도 깊고 이야기도 무르익어 일상의 빈틈까지 보인다 싶다. 다 다르다고, 가장 가까운 사람이 제일 싫어하는 걸 정작 모르기가 다반사라고 한다. 그래서 바뀌지 않는 것이라고 하자. 일터에서 챙기는데 왜 가까이 정작 내 편의 맘을 모르느냐고 하자.


삼우재도 49재도 생신으로 대신하고자 하였지만, 다들 절에 모시고 탑을 돌고 묘소를 다녀오고 다른 추모방법으로 곁을 채우고 있다. 존경하는 아버님, 고명손녀딸에게 물가져오라는 심부름 한번 시키지 않았다는, 정말 따뜻한 할아버지였다는 추모로 명절은 무척 깊어간다.


몇 십년만의 친구들 방문으로 그들의 삶들을 읽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신없이 상주들을 밀고가거나 밀려가는 것이 다 이유가 있던 셈이다. 그럴 겨를을 주지 않았던 이들이 무척 고맙다. 4형제에게 각기 다른 엄한 아버지가 얼마나 다감해지고 다정해졌던가 얼마나 피해를 주고 싶지 않아했던가. 여러 정황들을 다시 곱씹으면서 무척이나 마음들 사이사이 빈 곳들이 조금씩 채워진다. 얼마나 다정했던 어머니인가. 그 빈틈을 제주에서 온 한 강아지가 달래주고 채워준다. 밀착 방어를 하는 모습은 대견하다.


이렇게 정신없던 갈피를 잡는다. 또 다른 일상을 채우기로 한다. 읽히는 '관촌'에는 부친의 삶들이 빼곡히 적혀있다. 애틋하거나 애절한 일상이 나란히 있다. 존경이라는 말은 너무 부족하다. 정말 잘 사셨다는 말씀을 드릴 수밖에. 당신 노석우!!! 멋졌어!!!


큰아들 拜上


볕뉘. 어머니에게 읽어 드려야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리토르넬로에 대해> 11장 표지화는 클레의 <지저귀는 기계>다. 


도구로서 앎. 지식으로 앎은 너무도 쉽게 증발된다. 리토르넬로. 드뷔시, 모짜르트, 슈만도 나온다. 카오스도 나오고 카오스코스, 코스모스도 나온다. 고전주의도 나오고 낭만주의도 나오고 근대도 나온다. 민중도 나오고, 새집짓기도 나온다.아이-되기, 광인-되기도 나온다. 


철근 사이로 콘크리트를 타설하는데 '다짐'이 필요하다면서 이 다짐에 대해 여기저기 이곳저곳 빠지지 않고 장황하게 이야기한다. 단어의 정의에 휘말리면, 당신은 이해할 길이 요원하다. 이 장은 영토화에 관한 것이다. 고전주의와 낭만주의를 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기계라고 한다. 시인, 화가, 예술가, 음악가도 얘기한다. 어떻게 다른지 말한다. 서양란과 말벌도 어김없이 나온다. 클레도 밀레도 세잔도. 책도 말라르메도 카프카도 얘기한다. 자장가, 연가, 노동요, 분광프리즘. 권주가이자 시-공간 결정체다. 배치물과 연관으로서 영토, 기계, 탈영토화까지 아우르고 있는 장이다. 들어가고 나오고 이어지는 실잣기처럼 사유의 타래를 놓치지 않는다 싶다.


애벌레인 나. 자칫 허물을 잘못 벗으면 끝이다. 그런 긴장감이 도처에 서려있다. 달을 가르키는 손가락만 보지 말라고, 저 달을 쳐다보라고 한다.



0.


문득 옆에 놓인 책에서 '리토르넬르'를 찾는다. 대체 뭘 알고 있는 것인가. 알고 있는 건 맞나 싶다.  이 장에서는 대단히 많은 이야기를 겹쳐놓는다.  시대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는 이라면, 시인이라면, 화가라면 다시 한번 음미해봐도 좋을 대목들이다. 


-1.


조금조금 라이딩을 하다보니 하루 마음먹은 양쯤을 한 듯싶다. 출근 라이딩도 조금 에둘러 돌아와 좀 상쾌해지려 한다. 폴 비릴리오 얘기는 다음에 해야겠다. 




-2. 


쓸 글에 앞서서 책 한가운데 문제의식이 겹쳐 읽기에 힘을 쓰고 있다. 누가 쫓아오는 건 아닌데 불안하다 싶다.  어제 맛 본 두 권의 책과 함께 읽히는 이 양반은. 벡터사유란 문을 처음으로 열어젖힌 듯싶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습관적 의식에서 벗어나면 자신을 초월할 수 있다. 관심과 호기심은 본질적으로 우리 바깥의 다른 것을 향해 끝없이 확장된다. 관심과 호기심을 통해 우리는 무언가를 도구적으로 이해하려는 성향을 유보할 수 있다. 189쪽








 0. 


어~ 이 책이 왜 여기 있지. #달팽이책방 에는 영자읽기모임이 있다. 한 권을 정해 낭독하는 모임인데 벌써 오주년이란다. 알만한 분이 전시준비를 하고 있다. 쥔장에게 몇백권을 기념하여 받은 책이기도 하다. 읽는 내내 이건 페터의 책과 유사함을 감출 수가 없었다. SNS세대, 아니 지금 살아가는 이들이 읽기에 안성맞춤이구나 했다.


1. 

전시에는 참여 컨셉도 있는데, 책의 문구를 적어서 붙이거나 낭독해서 보내면 전시장에서 배경으로 들을 수 있도록 해놓는다. <수영장의 그레고리>라는 호크니가 

나오는 대목으로 녹음화일을 보내 미션도 수행할 겸, 밑줄을 다시 읽어본다.


2. 


저자는 젊은 예술가이다. 에피쿠르스, 견유주의, 바틀비 등등 이름을 들어봤을 이들이 여기저기서 나온다. 그리고 그 행간의 하고싶은 말들을 예술가의 시선으로 녹여내는 재주가 있다. 주변의 많은 이들을 관찰하거나 행동하는 모습들을 보면 대부분 자기 착취에 빠져있다. 해내야한다는 강박이 오히려 많은 것들을 하지 못하게 한다. 성과나 목표가 사실은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피곤하다. 메여있어서 주말은 온전한 내 것이 되지 못한다. 피곤과 강박에 매여있어 피곤이 폭습한다. 그러자마자 정신을 차리고 싶으면 월요일이 코앞이다.


3. 


람들은 '궁금'해할 틈이 없다. 궁금을 자라게 하지 못한다.(저자는 관심과 호기심이란 표현을 쓴다.) 


"계속하지 않는 편을 택하겠습니다." 바틀비 정신도 필요하지만 고독이라는 신발을 신을 수 있다면, 틀림없이 당신은 여기저기 갈 수 있는 삶의 근력이 생길 수 있다. 그래서 많은 이들이 이 대목을 장황하게 설명하게 되는 것이다. 일단 내려놓자. 아무 것도 하려고 하지 말자.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가 생기기 직전이다. 번아웃이라는 세계보건기구의 공식질병이 바로 곁에 있는 것이다. 맞다 과로. 너무도 강력하게 매여있기 때문이다.


4. 


저자는 문제제기만 한 것이 아니다. 그 방법을 쉽게 편안하게 아니 생생하게 다가가도록 세심한 배려를 잊지 않았다는 점도 기억하자. 우리는 원격시선에 중독되어 있는 세대다. 마샬 맥루언의 시각경도를 말하지 않더라도 SNS와 매체에 얽혀있어 난독증은 물론 독해능력도 현저히 떨어져가고 있다.  궁금하거나 관심, 호기심은 시각에서 자라지 않는다. 대부분이 착각하는데 실제로는 촉감이나 다른 감각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시각의 몇 십배, 아니 몇 백백 강렬함이 나의 꿈 속에서도 무럭무럭 자라나 관심을 유발한다. 



5. 


만들면 만들수록 다양한 감각을 베이게 하면 할수록 여러 긴장이 풀릴 확율이 높다. <<손의 모험>><<리페어 컬쳐>> 도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가의 자극은 아이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취미와 동호회가 우후죽순으로 생겨나는 것은 그만큼 온정신으로 살아가기 힘들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어쩌면 우리는 늘 답을 손에 쥐고 있는지도 모른다. 당신이 제3의 공간을 만들고 있었다는 사실. 그 자신감과 자긍심이 없었서 그랬는지도 모른다. 답은 늘 곁에. 손내밀자 잡힐 것이다. 우리 모두 거의 비슷한 고민을 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6. 


빛의 공해로 뒤범벅된 곳에서는 그늘을 제대로 볼 수 없다. 경계로 다가서거나 경계에 위치지움으로써 또 다르게 움직이는 모습들을 제대로 볼 수 있다. 달라지거나 거듭날 수 있다. 그제서야 많은 것들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위의 여러 꼭지를 조합해서 느껴보시길 바란다. 삶의 답답함이 어느 정도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어느 날 아침 동이 트자 자리에서 일어나 태양 앞으로 걸어 나갔다. 그리고 태양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그대 위대한 별이여! 그대가 빛을 비추어 주더라도 그것을 받아들일 존재가 없다면 그대의 행복은 무엇이겠는가!


 -1. 


잠게으름을 피우다가 일어나니 비가 제법 오고 있어, 차로 달려가니 아차 우산을 책방에 둔 것이 떠오른다. 며칠 전 김천 상가에 다녀오다 새마을호 3호차 3D에 두고내린 우산도 마음에 걸렸는데, 하나는 찾을 수 있고 하나는 떠나보내야 하는 게 맞겠죠. 출근길 커피셔틀타이밍을 놓쳐 일리 둘, 큰 종이컵. 따뜻한 물로 제법 넉넉한 커피를 두고 이러고 있다.


0, 


책방 안에 분명 차라투스트라가 있었는데 하며 책고름

중이었다. 빨간 책표지. 하지만 눈에 띄지 않는다. 그나마 민음사 문학전집 코너에서 발견. 첫 장. 아니 머리말을 펼친다. 


0.1 그래요. 어제는 책을 받으러가는 날이다.

<<시각 저 끝 너머의 예술>>의 원격객관성, 원격주관성, 원격비주얼리즘, 초거시경이란 시선은 다소 충격적이기도 해서 주루룩 읽기로 해서이다. 속도를 높이면 시간과 공간이 접히지 그런데 그게 어떻다고... ...


0.2 들뢰즈 책에서 봤던가 아니면 페터슬로터다이크 책에서 소개를 받았던가 가물하다. 그 대목을 찾아보고 싶은데 찾아지질 않는다.


1. 


맥주 한잔에 책읽기를 시작한다. 요약본부터....속도란 현상들간의 관계이자 환경이라 정의한다. (오호라. 이렇게 정리부터 하면 쉽지) 그러가다. 그는 민주주의도 정의해두었다. "민주주의란 공유하는 것이다. 그것은 돈을 공유하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의사결정을 공유하는 것이라." 이렇게 말이다. 그러면 읽기 쉬울 것이다. 


2. 


내가 생각하고 펼치는 공간, 시간은 이미 쪼그라들어 있을대로 쪼그라들었다. 기술은 달리고 달리고 달리다가 멈출리가 없다. 멈추어지지 않는다. 멈추려고 해도. 그래서 하는 필수적인 것이 사고 Accident다. 사고로만 피드백 되면서 기술이 자란다. 과잉되어 있다 한다. 


3. 


그렇다면 대중-개인은 어떻게 사유하며 살아가는가? 페터슬로터다이크가 냉소라고 말하는 대중-개인의 패턴을 확장시켜 볼 수 있겠다. 민주주의도 쪼그라들고 전체주의화에 가까워지는 사례들의 상관관계를 추적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4. 


그런면에서 두 작가를 주목하고 있다. 폴 비릴리오는 2018년에 작고하셨다. 페터는 <<냉소적 이성비판>>이 분기점이 되는 책이다. 이 책부터 읽으시면 도움이 될 듯 싶다. 키니코스 Cynicos 견유주의의 계보를 쭉 꿰어볼 수 있고 그 가운데서 구체적인 대안의 결도 볼 수 있다. <<인간농장을 위한 규칙>> 3부을 읽으시면 왜 니체를 다시 읽어야 하며


막스 슈트리너, 프루동을 읽어야 <<자본론>>을 새롭게 이해할 수 있다는 점도 유념하면 좋겠다. <<독일이데올로기>>가 막스 슈트리너를 부수기위한 책이었다 한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