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진선미가 아니라 그 자리에 ‘차별‘을 넣자고 해. 그 감정을 말야. 인권과 복지와 좋은 건 다 배운 이가 강연말미 장애라는 말을 쓰고 질문을 받지. 선량한 차별주의자가 되기는 얼마나 쉬운지 말야. 동물을 차별하는 이를 종차별주의자라 한데. 가까이 아프거나 사라지는 이에 대한 관심은 왜 소멸하는 나라로 멀어지지 못하지. 뇌손상을 당한 이가 아파하는 것과 동물의 고통이 뭐가 달라. 차별은 잠복하거나 그림자처럼 붙어 있어. 다른 삶을 찾으려 책을 읽는 이를 목격했지. 저 자리를 차지하는 진선미가 아니라 이 자리가 낳는 차별.
삼십년만, 만난 상가 상주에게 근황을 설명하고 있었네. 그 꼴이 돌아서니 더 우스워. 돌아다니는 내내 흘리는 칠 팔할이 차 별로 흥건해. 나란 놈의 즙이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