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운수 좋은 날

꽃이라 해서 늘 아름답지는 않지
모든 꽃은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 딱 한 순간이라네
그 순간은 너무도 짧아
아무나 쉽게 눈치 채지 못하지
꽃 스스로도 마찬가진 것 같아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눈치 채지 못하는
꽃은 또 얼마나 아름다운지

오늘 나는 운수가 좋았다네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막 맞고 있는 꽃을 보았거든
나는 얼마나 행운아인지
그 순간에 부끄러워 고개를 떨어뜨리고 있었거나
짐짓 먼 산을 보고 있었더라면
너무 억울해할 뻔했어

길을 갈 때
꽃이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는 것을
목격할 때가 있지
나는 순간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른다네
아무에게나 기회가 오는 것은 아니거든
나는 그때 꽃에게 쫓아가 말을 걸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네:
당신은 지금 일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을 맞고 있습니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 게 낫겠네
혼자만 기억하기로 하겠네

정작 본인은 모르고 있으니
아름다움은 꽃의 것도 아닌 모양이네
세상이 꽃으로 해서 잠깐 환해졌다 해도 마찬가지지
아름다움은 누구 것도 아닌 것 같아
내 손이 닿기도 전에 꽃잎에 맺힌 이슬이
몸을 던져 땅으로 투신하고 마는 것을 보면

2.

작당

벚꽃나무 아래 놓인 평상에서 / 대여섯 명의 장정들이 작당했다. / 무슨 일이 있었는지 / 소주오 안주를 가운데 놓고 / 동그랗게 모여 앉아 / 아침 댓바람부터 술판이 벌어졌다. / 마침 남의 집 담 안에 핀 꽃이 / 아무 대가도 묻지 않고 담 밖으로 / 손을 활짝 내밀고 있다 해도 / 평상은 오래전부터 그 자리를 지키던 평상인데 / 행복하면 행복한 대로 / 불행하면 불행한 대로 / 저들을 저렇게 한날한시에 / 같은 자리에 동그랗게 모아놓은 힘은 무엇인가 / 지구의 중심이라도 들여다보겠다는 듯 / 저들을 집중하게 하는 힘은 무엇인가 / 술의 힘인가 / 꽃의 힘인가 / 평상의 힘인가, / 작당이 파한 뒤 돌아서서 / 혼자 감당해야 할 쓸쓸함은 누구의 것인가 / 그 때는 술의 죄인가 / 꽃의 죄인가 / 평상의 죄인가,/ 꽃은 가장 아름다운 한 순간을 향해 치닫고 / 술판은 한창 한 고비를 넘어가고 있다./

벚꽃 흐드러진 봄날 / 작당을 유혹하는 아침 / 골목 어귀 행복슈퍼마켓 옆 / 평상의 다리가 위태하다.

3.

독상

시장바닥에서 어머니 / 독상을 받으셨다. / 이천 원짜리 밥을 시켜 / 빈 사과궤짝 위에 올려놓고 / 식사를 하신다. / 뒤란 텃밭에서 뜯은 / 몇 줌 푸성귀가 주인을 기다리는 동안 / 온전히 남이 차려주는 밥상으로 / 식사를 하시는 어머니 / 식구들을 위한 밥상을 준비하러 온 / 사람들의 머릿속의 / 이런저런 밥상 속에서 / 어는 제국의 황후가 부럽지 않은 / 오직 당신만을 위한 어머니의 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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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여우 2006-04-01 13: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아주 좋습니다. 퍼가요^^

여울 2006-04-01 15:25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깜짝 입니다. 휴우 만우절~. 대표이사 라아....알고있는 대표라기엔 뭔가 날라갈 듯한 펄럭임이 보였는데. 정말 감쪽같이 속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