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쓰라린 고통을 되살려줬지만, 이 책 우리는 언젠가 죽는다는 재미있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가신 것도 아니지만, 이 책은 내가 읽어본 교양 인문서와 에세이를 통틀어 가장 많이 웃게 했다. 090
우리가 배워야 할 건 사람이다 - 지하철에서 읽으면서 몇 번이나 눈시울이 붉어졌다. 코를 훌쩍이면서, 어쩌면 나는 누군가가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걸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인간의 성장이 내게는 눈부시게 느껴졌다. 내가 미국에 가게 된다면, 마이클이 일하는 스타벅스를 찾아가보고 싶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혹은 차가운 캬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하며 그에게 싱긋, 미소를 지어주고 싶다. 책 표지에 실린 그의 얼굴을 보니, 그가 손님들이 좋아하는 직원이 된 것도 당연해 보인다. 그의 인상은 참 좋은 할아버지 같다. 그 인상은 그의 성장이 빚어낸 것일지도 모르겠다. 096
별것도 아닌 일들을 가지고 식탁에서 입씨름이 벌어지곤 했다. 그는 토론할 줄을 몰랐기 때문에, 난 항상 내가 옳다고 생각했다. 또 그가 먹고 말하는 방식에 대해 이것저것을 지적했다. 113
연민과 동정은 사양합니다 - 호프밀러 소위는 자신을 희생하는 것도 ‘제대로’ 해내지 못했다. 그는 우유부단해서 소녀를 절망에도 빠뜨리기도 하고 또 가장 황홀한 희망을 품게도 한다. 그러나 희망조차 연민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래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고, 결국 절망으로 바뀔 것이 뻔하다. 우유부단한 연민이, 끊어내지 못한 동정심이 그녀에게 더 큰 절망을 안겨준다. 아, 이 빌어먹을 연민. 그는 자신의 연민에 대해 후회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걸 반복한다. 더 큰 절망을 줄 거라는 걸 알면서 제대로 된 행동도 취하지 못한 채, 진신을 말해야 하는 순간을 뒤로 늦춘다. “이 순간 우리가 서투른 연민으로 서로에게 얼마나 깊은 상처를 줄 수 있는지에 대해 처음으로, 그리고 뼈저리게 경험했다. 처음으로, 그리고 너무 늦게(연민, 291, 초조한 마음 2013 개정판)” 119
시공간을 함께 하려면 - 쓰키코와 선생님이 전차에서 마주치는 장면을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난다. 이 담백한 데이트가 무척이나 마음에 든다. 처음보다는 서로의 공간에 더 발을 들여놓게 되었지만, 타인과 거리 두는 방법이 닮아 있는 이들의 관계도 마음에 든다. 사랑은 꼭 껌처럼 달라붙어 있는 게 아님을 이들을 통해 본다. 내가 생각하는 사랑도 이렇다. 상대의 공간에 너무 깊이 들어가지 않는 것, 상대의 거리를 두는 방법을 존중해주는 것. 존중해주다 보면 어느 틈에 담백하게 어느 정도의 거리를 상대에게 내주게 될 것이다. 144
당신의 사정 - 나쓰메 소세키, 한눈팔기 - 내가 말하지 않도 내 마음을 짐작해주거나 알아주는 사람들을 간혹 만나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사람이 특별한 사람인 거지, 내가 말하지 않았는데도 내 마음을 짐작해주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이다. 상대에게 내 입장을 설명하지 않은 채 나를 잘 이해해주지 못한다고 원망하는 것도 잘못된 일 아닌가....“사람들은 이 앞만 보고 뒤도 똑같을 거라고 생각해. 그게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잘 대하지 못하는 이유야.” 나는 되물었다. “그렇지만 앞과 뒤가 다르다는 걸 보여주지 않았잖아. 보여주지도 않았으면서, 앞뒤가 같을 거라고 생각하는 게 잘못이라고 말하는 것도 잘못된 거 아니야?” 158
책 읽는 작은 바 - 유독 일에 지친 퇴근길에 터벅터벅 찾아갈 수 있는 그런 작은 바. 기분에 따라 마시고 싶은 술을 홀짝이며 책을 읽다가 주인이 한가해지면 책 얘기를 나눌 수 있는 그런 곳. 그러다가 어떤 책에 대해서는 이 책은 당신도 좋아할 것 같다고 빌려주기도 하고, 각자 읽었던 책에 대해 간혹 흥분하며 얘기할 수도 있는 그런 장소. 아, 그렇다면 하루의 고단함을 씻어낼 수 있을 텐데. 191
볕뉘. 일본 여행길에 세권의 책을 챙겼다. 바쇼 하이쿠 선집, 동사의 맛, 그리고 다락방님 책이다. 하이쿠에 물릴 무렵 한나절을 함께헸다. 잔잔하면서도 다른 관계의 디테일들을 볼 수 있었다. 책을 매개로 해서, 소설을 들어가고 나섬을 통해서 좀더 촘촘하게 느낄 수 있겠다 싶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드물다. 하물며 책을 좋아하면서 사람을 아끼는 사람도 흔치 않다. 또 다른 길로 들어서서 느끼는 재미가 쏠쏠할 것 같다. 책갈피에 잡힌 몇권의 책을 디딤돌처럼 놓는다. 재미만이 아닐 것이다. 아프기도 하고 고통스럽기도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