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자유도 그날그날을 살고, 민주주의도 살아날뛰는 것이고, 노동이라는 것도 끊임없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삶의 출렁거림을 잴 수 없는 이론은 검정색이자 경색이다.

 

 

2.

 

형평이라는 지렛대가 없다면 민주주의도 자유도 신위에 모셔져 풀려날 길이 없다. 모시기만 할 뿐 삶은 형편없이 헛바람처럼 날려 살아진다. 단 한 사람, 그 삶들의 인력은 없다.  삶의 척력만, 사람은 사람을 기대지 않는다. 형평의 중력이라는 숨골이 제 기능을 못해 한 걸음도 제대로 걸을 수 없다. 공평은 노동에서, 일자리에서, 일자리에서 벌린 몫을 가늠함으로 시작한다. 부끄럽고 몰라야 되는 것이 아니라 상품에 대한 소비자의 욕구처럼, 아픈 곳을 스캔하는 CT처럼 MRI처럼 드러나야 하는 것이다. 궁금해서 참을 수 없는 것이어야 한다. 지금 만나는 사람들의 삶과 일상을 가늠해낼 수 있어야 한다. 어쩌면 주식시세처럼 붉그락 푸르락하는 것이어야 한다. 그 노동의 결을 따라 민주주의도, 자유도 호와 흡의 한 숨을 내 쉴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3.

 

노동에 대한 감수성이 사라진 세상은, 외려 돈에 대한 강박증만 남겨 삶의 출구를 닫아버린다. 그런 삶의 출렁거림에 몸을 맡겨야 자유의 깃발과 민주주의의 깃발이 잡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체감할 수 있다. 헤엄쳐야 하고, 깃발을 잡아내기 위해 몸부림치고 안간 힘을 써야하는 것인지도 살필 수 있다. 한 푼의 소중함이나 구명조끼에 기대어 손을 내밀 수 있는 것이 삶의 큰 충격인지 느낄 수 있다. 삶들의 자장으로 모이지 않는 일상은 허황되기 그지 없고, 돈의 자장으로만 끌려가는 하루하루로 얼마나 많은 삶들이 내쳐지는가.

 

 

4.

 

 '극정상'으로만 치닫는 '신자유'는 개인의 삶의 패턴까지 옭아매는데 성공했다. 극정상 이외의 모든 미물은 정신적 식민지의 존재다. 제도밖의 야생물이다.  극정상으로 닿지 못하는 개인은 그 책임을 전적으로 자신이 지고 있다. 사회계약 이전의 야생인이 되어있다. '극자유에 대한 책임을 오로지 자신이 진다'는 정신승리의 결과물이다. 목없는자. 건강을 잃은자. 열외자. 남자가 아닌자. 늙은자들. 정신의 숙주에 오염되어 아무런 권리도 책임도 자유도 벙어리처럼 아무것도 외칠 수 없다. 패배자는 정신승리의 묘지에 묻혀있다. 신민도 국민도 인적자원도 핵심만 필요한 나머지 이류삼류사류이다. 기생하면서 숙주를 외면한다. 회피한다.

 

 

5.

 

돈의 자유에 얽매인 정신승리의 영토는 개인의 혼을 점령하자마자 쇠락이다. 삶의 자유를 억압한 연유다. 삶의 민주주의를 감금한  연이다. 노동의 분배를 몰살시킨 까닭이다. 정신승리의 영토는 단 한명의 사회인도 남기지 않는 핏빛제단 위에 세워졌기 때문이다. 고립한 나로 세상을 그려놓았기 때문이다. 야생의 극단이자 로빈슨크로우로 사회를 설계해두었기 때문이다. 살아있는 자, 살 수 있는 자들의 자유와 몸을 사슬로 묶어 제단에 바치고 있기 때문이다. 똑 같은 한표, 한번의 삶, 한번의 삶을 영위하는 존재들의 삶을 공포로 지웠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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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om 木筆 2015-05-06 09:04 
    오랜만의 한가한 새벽은차가운 새소리가 옅다.강연의 마지막 멘트처럼마지막 페이지를 덮는다.끝획에 온힘을 기울인 붓의 낙점에접힌느낌들을 한점도 전할 수 없다.만지작거리다욕심같아애꿎은 흔적만최루액처럼 남긴다.목련잎과목필이창문을 비집고 들어와 있다.푸르다푸르르다아이처럼아이들처럼 오늘은 ᆞᆞ