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 불안정, 해고' 위협이라는 공포는 거꾸로 '자유'의 소망 위에 세워진다 (1)

 

자기 계발하는 주체의 정치학

 

어린이 비즈니스 스쿨에서 창의와 도전정신 그리고 자율과 책임의 주체가 되기 위한 다양한 놀이, 토론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어린이부터 고령화 시대에 대비해 인생 2모작’, ‘인생 3모작을 경영하기 위한 노하우를 알려주는 강연회에 참석하는 노인들에 이르기까지, 우리 모두는 자기계발하는 주체라는 울타리 속으로 들어왔다. 따라서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모습은 끊임없이 펼쳐지고, 모든 주민을 아우르며, 모든 삶의 공간을 흡수한다. 348

 

한마디로 말하자면 자신을 책임지는 자율적인 주체로서의 시민이라고 할 수 있다. 349

 

수많은 상투어들을 대신하는 것에 불과하지만 기업가적 자아의 정체성을 리스크를 관리하는 주체로 분명히 서술함으로써, 기업가정신의 근본적인 특성, 위험을 감수하는 주체로서의 정체성을 잘 보여준다. 구본형의 표현을 빌리자면 미래를 아직 발생하지 않는 시간이나 사건으로 보는 불확실성의 횡포로부터 우리를 구해주는 시간 개념을 택한다. 이는 리스크 담론이 이야기하는 시간과 다른 것이라 할 수 있다. 리스크는 계산 불가능한 것을 계산 가능한 것으로 전환시킴으로써 그것을 지배할 수 있는 대상으로 다루려는 대표적인 사회적 관리의 기획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354

 

실업이란 표현은 신자유주의자에게는 있을 수 없는 현실이다. 그리고 이처럼 항상적으로 사업을 관장하는 주체로서 개인을 바라보는 시점이 1인기업가란 개념이다. 1인기업가란 관점에서 실업을 리스크 관리로 바라보자면 그것은 자신의 인적자본의 가치를 증대시키고 변화하려는 사업이 된다. 359

 

기존의 성공학과 그를 가리키는 또 다른 경멸적인 표현인 처세술은 언제나 이미 마련되어 주어진 규칙이나 이상이란 테두리 안에서 자기 성공을 도모했다. 따라서 그 또한 자기를 적극 계발 향상시키는 행위를 요구하고 또 그에 관련된 테크닉을 사용하지만, 이를 자기경영이란 관점에서 보자면 그 역시 또 다른 모습을 한 순응과 복종에 불과한 것이다. 361

 

성공학이 내세우는 시간관리 테크닉은 규칙적인 일과의 엄수, 근면, 성실, 절조, 금욕 등의 이상을 시간관리라는 테크닉과 연계시키는 훈육의 시간관리 테크닉이었다고 할 수 있을지 모른다. 반면 자기경영의 시간관리 테크닉은 DMBO든 아니면 사명선언문, 시간가계부이든 그 세부적인 차이를 떠나 한 가지 점에서 수렴한다. 그것은 더 이상 정해진 일과를 살지 않는다는 것이다. 361

 

지난 20년간 교육개혁을 통해서는 학생의 주체성을, 구조조정이라는 일련의 경영혁신을 통해서는 노동자 관리자의 정체성을, 그리고 일상적인 현실에서는 개인 정체성을 변화시켜온 과정에 공히 흘러다니고 있던 주체화의 권력을 가리킨다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자기주도적 평생학습의 주체에서 고용 가능성을 즐기는 유연하고 역량 있는일하는 주체, 나아가 1인기업가로서 자신의 삶을 적극적으로 경영하는 자유와 해방을 꿈꾸는 개인이라는 각각의 자기계발하는 주체란 모습으로 변화무쌍하게 나타난다. 365

 

정치적인 당파의 성격과 소속을 떠나 지난 수십 년간 전지구적으로 진행되어왔던 변화는 거칠게 말하자면 새로운 정치적 합리성이 등장했다는 것이고, 그것은 다양한 만큼이나 동질적이고, 차별적인 만큼이나 유사하다. 자기주도적 학습주체와 평생학습체제를 위한 영국의 개혁과 한국의 개혁 사이에는 아무런 질적인 차이가 없다. 위대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 리엔지니어링을 시도하고 기업문화를 도입하며 학습조직을 만들어내는 미국 기업과 경영혁신과 인재경영을 역설하며 신노사문화를 제창하고 문국현 모델의 확산을 위한 캠페인을 펼치는 한국 기업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다. 스티븐 코비의 [성공하는 사람들의 7가지 습관]은 한국과 대만에서 더욱 많이 읽히며, 미국에서 유행했던 모든 자기계발의 테크닉과 프로그램은 모두 한국의 자기계발 전문가들이 이미 번창하는 사업으로 판매하고 있다. 366

 

권력은 지배받는 주체에게 직접 작용하지 않는다. 그것은 주체성을 형성하고 그 주체가 자신의 삶에 작용하는 방식을 규정함으로써 주체를 멀리에서지배한다. 신자유주의는 바로 그런 지배대상으로서의 주체를 빚어낸다. 그렇지만 그것은 동시에 자기 삶을 대하는 주체에게 새로운 행위 가능성, 즉 개인적 자유를 행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하면서 작용한다. 따라서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품고 있는 자유는 허위적인 기만도 아니고 한낱 허깨비에 불과한 것도 아니다. 언제나 권력은 자유를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367

 

자본은 노동을 착취하면서 동시에 생산한다.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자본은 사회적 관계 자체를 생산해야 하며, 푸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근대 권력은 주체성 자체를 생산해야 한다. 따라서 지식기반경제로 변화한다는 것은 또한 새로운 주체성의 체제로 변화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368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계보학적 분석

 

등장하는 주체들의 모습은 여럿이지만 그들은 하나의 명령에 따라 앞으로 나아간다. 그것은 몸값을 올리고 명품 인재가 되기 위해 자신을 브랜드화하는 다양한 인성-상품을 소비하는 개인이기도 하고, 평생학습의 주체가 되어 급변하는 지식정보사회에서 자기 인적자본의 가치를 꾸준히 제고하는 자율적이고 성숙한 시민이기도 하며, 자신의 암묵지를 적극적으로 공유하고 자신의 핵심자아와 기업가치를 일치시키는 지식근로자이기도 하다. 372

 

서로 공명하고 교차하는 세 가지 주체성의 형태가 나름의 독자적인 궤도에서, 또 서로 다른 시간적 연대기를 거치며 생산되는 과정을 분석하고자 했다. 그것은 거칠게 나누자면 다음의 세 가지 계기, 국가가 추진한 새로운 시민 형성프로그램, 자본에 의해 구조조정이란 이름으로 진행된 새로운 일하는 주체 만들기기획, 그리고 자유로운 삶을 열망하는 개인들이 추구했던 자기주체화의 행위들이라 할 수 있다. 372

 

유연한 노동주체를 형성하는 것과 자율과 책임의 시민을 빚어내는 것, 그리고 자기계발하는 자유로운 개인이 되는 것은 서로 다른 사회적인 공간에서 서로 다른 시간의 궤도를 따라 진행되었지만, 또한 양자는 상호교차하며 서로를 강화하는 흐름 속에서 움직이기도 했다. 375

 

지난 20년간 한국 자본주의의 변화 과정에서 형성된 권력의 주체화의 논리, 자기계발하는 주체의 형성은 아이러니하게도 동시에 기존의 규율사회를 비판하고 자유를 꿈꾸는 주체의 자기형성 논리와 겹쳐져 있다. 그렇다면 이런 자기계발에의 의지와 자유에의 의지의 공모는 불가피한 것일까. 자유에의 의지를 통해 우리의 삶을 예속시키는 권력에 맞서 싸우기 위해 우리는 자유에의 의지를 거부해야 할 것인가. 아니면 전연 새로운 자유의 이미지를 고안해야 할 것인가. 물론 자기계발하는 주체가 소망하는 자유가 협잡이나 기만이라 말해서는 안될 것이다. 적어도 거의 모든 자유주의적 사회에서 자유란 자명하고 선험적인 이상이 아니다. 그것은 끊임없이 도구화되고 조작화됨으로써 사회적 삶을 관리하고 지배하는 데 사용된다. 그렇지만 반대로 우리는 자유를 통해 지배와 관리의 규칙과 의무, 규범을 의문시하고 현실에 관해 새로운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하게 된다....그런 자유의 동원을 다시 문제화함으로써 자유가 지닌 위험을 알리고 비판하는 것도 역시 자유의 정치학이어야 한다. 376-377

 

신자유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이 자유를 거부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많은 자유를 위해 관료제와 공장, 학교와 가족의 규율과 통제에서 벗어나려고 했던 우리는 지금 그 자유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는 기괴한 맹목적 필연성에 구속되어 있다는 불안을 떨치기 어렵다. 자유를 추구하면 할수록, 자유와는 반대방향으로 치닫는다는 느낌이 우리를 휩싼다. 따라서 이제 자유를 향한 열망은 자유에의 환멸로 반전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유혹에 굴복해서는 안 될 것이다. 외려 함께 지혜를 짜내어 자유와 경제, 자유와 통치 를 새롭게 합성하면서 자신을 이끌어나가는 우리시대의 자본주의를 분석해야 할 것이다. 3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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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인생 2015-01-25 05:5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런 책도 있었군요!

여울 2015-03-24 16:46   좋아요 0 | URL

네, 이제서야 댓글을 보았습니다. 서재 곰팡이 피겠습니다. 인상깊게 보았네요. 마음 나눌 이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