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살아가지 않으면 안된다.
삶과 죽음의 대립 대신, 고통에 대한 이해로 논의의 초점이 옮겨져야 한다 (1)

 

권력


 

징병제- 평화는 평화로운 상태여서는 안 된다. 공동체의 문제가 공유되고 약자의 고통이 가시화, 공감, 분담되는 '시끄러운' 상황이 평화다. 지원병제는 특수한 경험을 한 사람들을 격리시키고 조용한 무관심을 조성한다. 징병제보다 무서운 것이 그것이다.  185


팍스코리아나 - 어떤 가치도 온 누리에 골고루 퍼지지 않는다. 미국 밖에서 전쟁이 없다면 미국 군수 노동자는 실업자가 된다. 뻔뻔한 이의 마음의 평화는 억울한 사람이 겪는 마음의 고통의 대가다. 관용은 개인의 인격이 아니라 사회가 주어진 권력에서 나온다. 때문에 '없는 자'의 관용은 비굴이나 아부로 간주되기 쉽다. 188


사람은 누구나 두 나라를 갖고 있다. - 자기의 모국과 프랑스다. 이 문구는 "프랑스가 이 나라 자체의 원칙(인권)에 의해 붕괴될지 모른다는 공포에 휩싸인" 사회주의자들과 르낭같은 유명 사상가를 포함한 은폐 세력에 맞서, 재심 요구파의 선두에 섰던 조르주 클레망소가 쓴 감동적인 글의 일부다. 국가는 영토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묶을 수 있는 정신으로도 구성된다는 의미에서, 클레망소는 후자의 문제, 즉 어떤 가치를 지닌 프랑스가 진정한 프랑스냐고 호소했다.  191


자기 입장이 분명해야만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은 - 여성, 동성애자, 장애인(운동가)-"나는 당신들과 다른 부분이 있고 이 차이는 당신들이 만든 정치적 문제다"라고 주장한다. 당파적일 것 같지만 의외로 일부 좌파 집단은 당파적이지 않다. 한국의 좌파는 정치경제적 이해 경합 세력이라기보다는 보편성을 지향하는 지식인으로 간주되는 경향이 있다. 또한(남성)은 좌파든 우파든, 지구상에서 가장 막강하지만 가시화되지 않은 권력인 남성 연대의 '영원한' 보호를 받는다. 통치 세력이 때리고 감옥에 집어넣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이들은 좌파라기보다 민중들이다. 192


이념이 보편의 탈을 쓰고 이데올로기가 될 때 인간을 소외시키지만, 꿈과 고뇌는 우리를 연결시킨다. 194


안다는 것


방법에의 도전 - 독단 없이 과학은 불가능하다 - 과학은 그것을 신봉하는 집단 안에서만 과학이지, 반례와 새로운 세력에 의해 신앙심이 흩어지면 과학의 지위를 잃고 새로운 과학이 그 자리를 대체한다. 이것이 패러다임 혁명이다. 이후 기존 이론은 오류, 데이터, 역사로 남는데, 이 과정이 과학의 발전이다. 201


파울 파이어아벤트는 더 나아가 개종의 과정에 혁신적인 방법론을 제안한다. 그 방법은 이 책의 부제 '새로운 과학관과 인식론적 아나키즘'이다. 앎의 시도에 방법의 제한을 두지 말자는  것이다. [방법에의 도전]이 공부하려는 사람의 첫 필독서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학은 현재의 법과 질서와 통념으로 구성되므로 이를 맹신하는 것은 과학 발전에 큰 걸림돌이 된다. 아나키즘은 어떤 방법도 "무엇이라도 좋다"라고 말하는 완전 개방성의 이념이다. 201


약자의 대응은 두 가지다. 하나는 객관을 향한 욕망을 접고 자기 입장을 더 깊이 있게 전개하면서 "그렇게 말하는 당신 입장은 뭐냐?"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그들 뜻대로 균형감각과 중도의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물론 불가능하다. 균형의 의지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언어의 세계에 중립이란 없기 때문이다. 객관성은 권력자의 주관성이라는 사실을 모르는가? 익명성은 가장 무서운 서명이고 객관성은 가장 강력한 편파성이다. 202


비상사태는 예외가 아니라 상례다. - 폭력 피해 여성, 위험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성 산업 종사 여성, 인신매매를 당한 여성, 난민 여성은 사는 게 전쟁이다. 베냐민의 테제가 바로 이것이다. 고통받는 사람에겐 인생의 시시각각이 비상이고, 민중의 고통으로 품위를 유지하는 지배자의 입장에서는 민중의 각성이 비상이다. '베냐민과 우리'는 진정한 비상사태, 즉 억눌린 자를 위한 봉기를 일으켜야 하는데, 지배자와 역사관을 공유한 진보진영이 이를 가로막고 있다. 205


그는 진리는 불꽃처럼 순간적이며, 역사는 원래부터 파편적이고 또 과거의 승리자와 동일시해서 기록한 것이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보았다. 시간은 흐르는 것이 아니며, 진보는 '그날'을 위한 것이 아니다.! 206 인류 역사상 정상 국가가 실현된 시기와 지역은 단 한번도 없다.


지식인은 장인이다 - 밀스가 좋아한 용어 '기예 craft'는 세가지 조건을 함축한다. 외롭고 지루한 노동, 완성도에 대한 비타협성, 창의력 "기존의 집단 문화에 저항하라,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방법론자가 되자. 모든 사람이 자신만의 이론가가 되고, 이론과 방법이 지식craft을 생산하는 실천이 되도록 하자" 208


무엇을 할 것인가 - 어떤 지역에서 '한물간' 이야기가 다른 이들에겐 절실할 수 있고 가장 올바른 길일 수 있다. 사상은 보편성이 아니라 공간적(local) 맥락에서 논해져야 한다. 210 한국 사회에서 레닌의 팔자인지 '분단 조국의 운명'인지 모르겠으나, 부당하다. 이 사회는 그를 학술적으로 다루지 않는다.


선악을 넘어서 - "괴물과 싸우는 사람은 자신도 괴물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대가 오랜 동안 심연을 들여다볼 때 심연 역시 그대를 들여다본다." "인간이 궁극적으로 사랑하는 것은 자신의 욕망이지 욕망의 대상이 아니다." 한 번쯤 들어봤음 직한 유명한 글귀의 출처가 바로 이 책이다. 214


배제되지 않기 위해 포함되길 거부하라 - [성의 정치 성의 권리]는 해결보다 의미화에, 부정보다 문제 설정에, 이론의 적용보다는 새로운 언어를 모색한다. 이런 접근 방식과 기존 언설의 탁월한 격은 문제를 자체를 추적하여 지식이 고안된 과정을 드러내는 데 있다. 양성 평등 주장보다 중요한 것은 남성과 여성이 만들어지는 역사와 방법이다. '주류'가 되고 싶다면 무조건 노력하지 말고 일단, 포함과 배제의 원리를 공부하라. 여성주의의 실용성과 지적 수월성을 보여주기에 손색이 없다. 218


혁명은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을 인정하는 것이다 - "레볼루션에는 반란의 의미도 있지만 회전한다는 뜻도 있다. 세상이 어떻게 변하든 삼라만상은 항상 운동하고 있으니 사는 것이 혁명이다. 일상적으로 일어나는 무수한 작은 변화가 세상을 흔들리게 하고 시대를 변화시킨다." 220


혁명은 당파적 개념이다. 노동자의 혁명은 '차르'의 몰락이다. 하지만 이는 보편적인, 따라서 낡은 개념이다. 당파성들은 상호 당파적이기도 하다. 당파성은 '적과 나' 두 개가 아니다. 수많은 당파성이 있다. 사람마다 처지에 따라 혁명 개념이 다르기 때문이다. 221 저출산, 동성애자의 결혼권 주장, 병역거부, 높은 이혼율... 지금 일어나는 혁명을 인정하다. 그리고 해석하라 221


내가 생각하는 '대안'은 역사 인식을 달리하는 집단이 이분화되지 않고, 각자 내부에서 분열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수 진영이 부패 파렴치 집단만이 아닌 지적인 보수, 이데올로기적 보수, 문화적 보수, 사상적 보수 등으로 다양화되고 그들 사이에서도 비판과 논쟁이 활발해지기를 바란다. 하긴, 우리에게 부재한 것은 토론 문화가 아니라 토론하는 사람이다. 223


에피스테메는 미셀 푸코가 부각시킨 말로서 주어진 시대의 앎의 기본 단위를 말한다. 주류의 범위는 유동적이긴 하지만, 그들으 삶과 기존의 언어는 일치한다. 그러나 '주변'의 경험은 불일치한다. 이것이 근대의 가장 강력한 통치 방식이다. 쟁점은 중심 되기가 아니라 주변의 가능성이다. 삶과 언어가 일치하지 않는 민중은 모욕과 굴욕 혹은 이데올로기의 '보호' 아래 살아가지만, 동시에 기존의 언어를 의문시할 수 있는 위치성과 가능성이 있다. ..중심은 앎을 말하지만 우리는 혼란을 호소한다. 이 혼란은 혼란 자체로 멈출 수도 있지만, 이해되지 않은 새로운 현상이다. 민중의 혼란이 앎의 근거다. 이해되지 않는 질서는 언어가 될 수 있다. 바위처럼 보이는 기존의 권력관계는 의외로 쉽게 조각날 수도 있다. 바위 틈새에 콩을 집어넣고 계속 물을 붓는다. 가진자의 혼란! 거대한 바위 더어리, 우리를 억압했던 그들의 거대담론은 부서진다. 233


포스트는 실제 이후가 아니라 인식 이후를 말한다. "포스트 모던은 근대성의 일부임이 분명하다. 근대의 끝이 아니라 새롭게 생성되는 근대이다" ...포스트는 전후의 문제가 아니다. 포스트의 시간성에 대한 사유는 전진해야만 하는 삶에 태클을 건다. 시간을 따라잡기보다 따돌리자. '지금여기'에 '가는 시간'을 넘어뜨려야 한다. 239


중심과 주변 - 중요한 것은 중심과 주변이 어디냐가 아니라 자기 위치 설정이다. 중심이든 주변이든 내부의 차이는 내외부의 차이보다 더 큰 경우가 대부분이다. 중심과 주변. 이 이분법의 가장 큰 문제는 실재하지 않는 덩어리를 하나의 단위로 동결시킨다는 점이다. 이것이 현실의 운동을 가로막는 지배의 본질이다. 242


남성성들 - 남성은 여전히 놀라운 존재다. 흥미로운 생애사와 쉽게 풀어낸 정신분석, 정치학, 퀴어, 역사 이론은 인문학 입문서로서 손색이 없다. 248


삶과 죽음

 

인생이 강물이 아니라 사막을 혼자 걷는 일이라면, 애초에 물에 빠지는 사람도 없다. 우리가 선택한, 그립지만 괴로운 대상들은 사막을 지나가다 잠시 스친 풍경들이다. 조우했을 뿐 오아시스에서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눈 사이가 아니다. 인생에 오아시스가 없다고 생각하면 익숙한 것들의 막강한 존재감이 다소 상대화된다. 중독보다는 생존의 힘이 세다고 믿는다. 천천히 조금씩 이별할 수 있다. 257


몸은 포물선이다. - 포물선의 비유조차 절정이 있다는 의미에서 위계적인 면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포물선은 시작과 끝이 있다는 점이다. 몸의 생애는 곡선이다. 내려갈 때가 있다.....인간이 사회를 이루고 사는 가장 큰 이유는 이 고통을 함께 하기 위해서다. 272


염상진 - 개별적 몸에서 일어나는 일, 즉 '현지' 입 안에서 느껴지는 곡식의 단맛은 위계가 없는 공시의 흔적이다. 여기에 기원은 없다. 원소 중심의 사고에서는 성분 중 원소(기원) 함량에 따라 서열이 정해진다. 염상진 대장의 말은 각자의 몸에서 역사만들기를 상징하는 것이 아닐까. 역사는 기원의 전파가 아니라 동시적 파생이다. 281


간혹 매우 총명한 이들과 조우한다. 나는 그들의 '비법'을 알고 있다. 이해는 영혼이 순수한 사람의 특권이다. 대상에 대한 사랑, 이해하고 싶어서 기득권을 포기하는 데 망설임이 없다. 자신을 보수하지 않는다. 284


의욕, 삶의 방향, 목적, 사람은 결국 '무엇'때문에 산다. 삶의 의미는 인간이 묻는 것이 아니다. 삶이 우리에게 묻는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려는 몸부림이, 내가 생각하는 의미 있는 삶이다. 의미는 스스로 부여하는 것이어서 아무도 속일 수 없다. 자신과 마주할 수밖에 없으니 인생에 몇 안 되는 정의다. 290

 

 

볕뉘.

 

1. 중심과 주변. 이런 이분법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저기, 꿈처럼 그리는 저기는 역사상 한번도 있어본 적이 없다. 저기를 가지고 얘기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 세상은 늘 혁명이다. 눈앞에 일어나는 일들고 사고해라. 역사도 맥락이 있었던 적이 없다. 늘 비정상상태였다. 정상과 주류, 과학이라는 것도 가진자들이 누리는 것일뿐, 세상은 온통 비정상과 비주류이다.  혼란과 고통, 그 그늘에서 사유하고 비유할 수 없는 언어를 찾아내는 일이 또 다른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이다. 인간은 본디 외로운 것이다. 혼자 짐을 지고 가는 것이다. 생각노동자, 아니 생각을 캐는 광부일 수밖에 없다. 지식노동자가 하는 일이란 올림픽 메달을 따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갈고 닦고 장인의 기질을 연마하는 것이다.

 

2. 글을 읽으면서 루쉰이 겹쳤다. 밀려드는 외로움과 고통, 하지만 생각의 험난한 길을 가지않을 수 없는 상황. 지금 당장 고통받고 아픈 것을 미래를 위해 유보시키는 것은 말도 되지 않는 것이다. 진보도 보수도 똑같다.

 

3. 마지막으로 추천하는 [하류지향]이란 책의 독후감을 남겨둔다. 마지막 잎새처럼 남겨둔다. 주말 내내 서성거리다가 남기는 말을 생각해본다. 많이 아플 듯하다.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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