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이 없는 세상, 예의바른가? 자발적굴종인가?
파리의 밑바닥 생활까지 가지 않더라도, 점심시간에 수많은 손님을 치뤄내기 위해서는 설명이 필요하지 않다. 일을 해내기 위해 말을 될수록 단음절로 줄여 말한다. 중국집에 종업원들이 요리이름을 칭하는 것도 그러하다. 주방안에서는 거의 욕이 절반이 섞여있을지 모른다. 안전을 요하는 곳에서도 차분한 설명과 논리가 필요한 것이 아니다. 몸을 긴장하게 만들어 자칫 벌어질지 모르는 사고를 예방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요즘 술자리나 모임자리에 꼭 그런 사람이 없다. 차분하고 수더분하고, 울화를 삭이는 기술이 체화된 것인지 쌍시옷이 없는 세상이다. 가스통을 드는 고엽제나 전우회의 그림자가 없는 일상은 너무 평온하다. 쌍팔년 이전 이야기를 현실에 대입한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도 하지만, 데모만 하던 학생들은 버스 안에서도 동네 선술집에서도, 파출소에서도 화를 참지못해 논쟁이 싸움으로 번졌다. 상대방도 살아봐서 아는데를 연신하며 두고보자를 반복했다. 언젠가부터 평온한 이 사회는 만나지 않는다. 만나더라도 몇몇만 만난다. 만나더라도 정치이야기를 피한다. 정치를 하더라도 논쟁하지 않는다.
예의바르다.
먹고 살만함을 가장하여 너무 옷매무새를 가다듬는다. 건강에 여념이 없다. 끊임없이 나로 함몰하는 순간...말 못하고 느낌을 토하지 못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우울하다. 문어보다 구어, 구어보다 말의 느낌, 주문, 그리고 욕은 상대방에게 자신을 직접 표현하고 불같은 강도로 인해 상대방에게 마음 속까지 뚫고 들어간다.
먹고 살만하지 않다. 열에 여덟은? 나만 잘 살 수 없다. 잘 살아도 이제 그렇지 않는 이들이 보일 수밖에 없다. 분하면 분하다라고, 욕하고 싶으면 욕해야되고, 울분은 토해내야 한다. 사회의 건강을 위해서도, 사회가 좀더 제자리로 돌아가기 위해서라도 욕이 필요하다. 선술집에서 내탓이 아니라고 남탓이라고 치고받고 상처도 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해진다. 지금 이 사회는 속병직전이다. 골병직전은 아닌가?
울지만 마라!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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