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걸리 마시고 "김일성만세"라고 외치면 끌려가던 시대에 김수영시인은 아무렇지 않게 "김일성만세"를 썼다. 아무렇게 "혁명만세"라고 쓰자. 입춘대길처럼 문짝에 크게 쓰자. 자본만이 거리낌없이 마음대로 쓰는 말 그 "혁명"을 "왜 이렇게 살아야지"에 저며넣자. 눈만 깜박거리면 들리는 말이 혁명인데 왜 우리는 숨죽여 그 말을 들어본 적이 없는 듯 덧칠을 하며 지우고 있는 건지
밥먹듯이 탐욕과 자리보전을 위해 쓰는 혁명이란 말은 그들 몫이 아니라 정작 우리 몫이었다. 귀천에 떠도는 숨진 넋들의 가슴 속엔 이 말이 사리처럼 남아있을 것이다. 계약직과 파견직 청춘들의 자기(삶의)소개서에 씌여져야 할 말은 이것이다. 자본만 끊임없이 혁명을 발설하고 있지만 세상의 제도와 시스템은 가진것없는 잉여들을 위해 한치도 혁명하지 않는다. 그래서 이 말은 목없는자에게 돌려져야 한다. 자기소개서에 자기의 색깔만큼 혁명만세라고 쓸 수 있어야 하며, 죽은 넋들의 마음을 담아 열외자의 사발통문에 역시 혁명만세라고 씌여져야 한다. 노인들의 피폐한 일상만큼, 달동네 끼니거르며 매맞을 걱정하는 아이들의 대물림에도 이 말이 걸려야 한다. 혁명이라는 말이 돈냄새가 쫑긋한 곳에만 맴돌 것이 아니라 여기저기 그늘지고 아파하는 곳에서 자라야한다. 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여기로 옮겨와야 한다. 여기로 가슴 속으로 가까이 와 무엇을 할 수 있는가란 머리 속에 심어져야 한다. 삶의 사발통문에 담긴 비통과 고통의 혁명만세는 전염처럼 흔적없는 이들의 마음에 번져야 한다. 삶의 비탄과 통탄을 다 받아안아야 할 그말이 "혁명"이다. '혁명'을 품지 않고 녹슨 그 단어를 다시 쓰지 않아, 이렇게 말같지도 않는 세상이 유예되고 있는 것이라고 해야 한다. 자본은 혁명하라 혁명하라 사주해서 제 잇속차리기에도 급급하다. 그래서 삶들을 확인도 하지 않은 채 벼랑끝으로 내몰지만, 열외자 목없는자 겨우사는자 줄이고, 가진자들도 돈맛이 아니라 살 맛나게 살자는 이들은 이말을 벙긋도 하지말아야 한단말인가...
계절은 어김없이 우르르 단풍으로, 첫눈으로, 곳곳에 꽃으로 혁명하는데, 왜 우리는 혁명을 뫔 밖에 바스러지게 둔 것인지. 발 한걸음 딛지도, 꿈도 꾸지 못할 듯 그 말을 지우면서 살아온 건 아닌지. 경제가 밥이고 문화도 예술도 공기같은 것이라면 혁명도 산소같은 것이다. 자본에도 그것이 산소같으므로. 혁명만세라 쓴다. 검정빨강푸른 하늘을 한점 찍어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