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란 단어를 사용했을 때, 유토피아는 오직 목표로서 혹은 실제적 행동을 위한 일종의길잡이로서 생각되는 모든 미래 계획들을 일컫는다.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한 것을 일컫는 말이 아니라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것을 일컫는 말일뿐이다. 326
우리가 만들고 있는 것은 사회적 실험일 뿐이며, 이 실험의 방향을 잡기 위해서 우리는 미리 작업가설을 짜놓아야 한다. 즉 정당한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어떠한 변화들이 실제로 이루어져야 하는가에 대한 생각을 실재하는 어려움들에서 도출해 짜놓아야 한다. 335
정치 이념은 운동의 일반적 방향을 제공할 뿐이다. 행동 노선, 현실의 그림, 그에 대한 여러 가치 평가는 현실에 존재하는 여러 조건들을 출발점으로 삼아서 구체적인 내용을 부여받을 수 있으며, 특히 사람들의 태도라고 불리는 것, 또 그 태도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여러 가능성들로부터 상당한 정도로 구체적인 내용을 부여받을 수 있다. 그러한 구체적 내용을 가진 미래의 그림을 우리는 잠정적 유토피아라고 부를 수 있다. 잠정적 유토피아는 행동 강령의 방향을 인도하는 노선이다. 하지만 구체적 행동 강령이 마련되면 이러한 그림이 비현실적이라거나 말도 안 되는 것이라는 인상을 더 이상 주지 않도록 유토피아라는 단어는 버릴 필요가 있다. 333
뱀발 . 1. 전근이동이다. 피시자료와 짐들을 정리하다보니 단촐하다. 떠남을 가정하는 살림살이는 상자 몇개의 짐으로 족하다. 이렇게 일터의 구력이 붙은 것인가? 바닷내음 있는 곳으로 몸은 벌써 움직이고 있다. 책내음, 시간들, 책마실 몸마실에 대한 생각으로 설레인다. 그래서 빌려온 책을 정리하려고 했다. 반납하고 돌아서려는 길, 고종석 [어루만지다]에 어쩔 수 없이 손길이 가버렸다. 밀어나 마음사전, 사이시옷의 책들과 같은 친근감의 향기가 훅 올라온다.
2. 고은샘의 개념의 숲의 그림과 아포리즘을 읽다. 책을 건네읽는다. 비그포르스, 잠정적 유토피아가 걸려 배경을 훑고 바로 그 생각으로 닿는다. 어루만지다. 과도한 추상성과 그림이 아니라 저기에 가 있는 것이 아니라 현실에서 과거를 줏어담으며 미래는 거꾸로 가는 것이라 한다. 이념과 가치도 중요하지만 현실의 행동으로 이어지지 않는 가치는 추상성이 사로잡혀 결국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것이다. 그 숱한 개념들 사이로 현실은 요상하게도 빠져나가기만 한다. 어쩌면 우리의 엘리트주의와 지식은 청사진만 강요하기 이를데 없는 것은 아닐까? 구체성을 현실에 잇대는 능력은 전무하면서도 화려한 치장에 자족하고 만 것은 아닐까? 신자유주의, 진보, 노동자, 민주라는 말의 늪에 신음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토피아가 미래의 청사진이 아니라 길잡이라 한다. 아직 실현되지 않은 모든 계획들이라고 한다. 행동 강령으로서 잠정적 유토피아다. 유토피아는 실현 불가능한 것이 아니라 아직 현실이 되지 않은 것이다. 지금 여기의 우리는 어쩌면 현실이 되지 않은 것을 이야기하려 하지 않고, 실현불가능한 추상의 늪으로 향하기만 한 것은 아닐까? 읽고 있는 [리얼유토피아]도 차분히 복기하는 책이다. 절망의 가장가리에 희망의 다리를 놓으려는 처절한 학문적 몸부림이다. 처절함은 가능한 모든 그림들과 작업가설을 바탕으로 하는 사회적 실험들로 행위의 결과을 얻는 무수한 시행착오일지도 모른다. 자칭진보는 미래를 너무 쉽게, 다른 이를 저편에 놓고 아픔도 없이 얻으려는 것은 아닐까?
3. 이동으로 모임 걱정도 되지만, 잘 버티고 더 풍성할 것으로 기대한다. 깊이도 시선도, 현실에 대한 치열함, 심심함의 시간이 여울에게 더 좋을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