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그림자가 없다
뱀발.
1. 책이 나왔다는 소식을 듣다. 듣고서도 뜸을 들인 이유가 뭐였을까? 시간이 지나고 난 뒤, 오랫만에 들른 도서관의 신간코너가 빼곡해졌다. 도서관이 구력이 생긴 것인지 헐겁던 코너가 시간의 힘에 이렇게 무게를 감당하며 부피를 채우고 있다. 몇권을 빼어들고 그림과 사진과 활자 큰 글들을 번갈아 보다 대출하려고 마음먹다. 그런데 독서카드를 큰녀석이 가져간 것도 그때 알아차린다. 고스란히 이동 책꽂이에 두고 물러선다.
2. 시를 낯설고 좋아하지 않은 이들이 많다. 이 책에서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는 너무 삶과 동떨어진 시를 강요당한 것 하나. 둘째는 너무도 판에 박힌 틀에 박혀 본능적?으로 새로운 것에 대한 기피가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저자의 분석이다. 음~ 그런가?! 좋아하니 그 이유ㅡㄹ 잘 모르겠다. 수학 방정식 같은 것인가?! 숙제같은 것이었나? 어린아이들은 다 시인이다. 궁금하고 사물에 대한 가림이 없다. 불쑥 불쑥 뭐야? 어른이 생각지 못하는 발견 속은 모두 시다.
3. 시는 모태 다양성의 발로다.
4. 그런데, 시를 밝히는 이들 가운데 김수영을 좋아하는 분들을 만나는 것은 무척 반가운 일이다. 주변에서 저자들과 같이 컴밍 아웃을 하거나 건네들은 이들이 여럿이니 나름 잠재적인 팬클럽을 만들 수준이 될까? 그런면에서 강신주-김서연 저자가 고맙다. 이렇게 인문정신의 금빛가루를 뿌려주어서....라고 말하면 그 취지에 반하겠다 싶다. 하지만 그 좋아하는 속내를 듣고, 그 아픔의 친구로 김수영을 껴안았다는 사실로도 그 위로를 받을 수 있겠다 싶다. 처음 책을 펴들고 굿바이! 김수영의 저자말씀을 읽기전, 그림들을 쭉 살핀다. 그림들이 차분하게 다가선다. 좋아하는 그림들이거나 봤던 그림들이 중간중간 박혀있어 더 친숙하다 싶다.
5. 인문정신과 시, 시인의 삶, 김수영은 온몸으로 밀고가는 것이 시라고 했다. 삶이라는 것. 삶을 건드리지 않으면 아무것도 없이 그저그런 색깔 회색이 될 수밖에 없다. 끙끙 앓는 이들은 여전히 이런 문제로 고민과 통증을 호소한다. 여기저기 답답함을 토로하지만 단체와 조직들은 그 호흡을 감당하려 하지 않는다. 인간 人間 사람 사이가 있을까? 기댈 수 있을까? 그런 관계는 있나? 일의 강도가 세거나 규격화되어 있어 활동하거나, 살아지는 이들에게 다른 시선이 들어갈 수 있을까? 시 한편 읽힐까? 바삐 움직일 수밖에 없는 곳이어서 시도, 꽃도 나무도, 사람사이의 일들과 일상에 비집고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지 않을까 싶다.
6. 진보는 진부?해져 김수영이 온몸을 흐느끼며 말한 비와 팽이와, 민주주의와 적을 지금여기에 불러내며 회자시키지 못하고 있다. 소음처럼 소리지르고 주장하고, 이게 아니라는 삶과 일상을 논하지조차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김수영의 해묵은 그림자가 50년이 지난 지금여기에 그대로 드리워져 있는 것이다. 뻔뻔스럽고 말많고, 소란스럽고 불편해져야 한다.
7. 감추어져 있어야만 했는데 드러나고만 어떤 것들에 대해 불편할 줄 알아야 진보다. 그래서 김수영을 굿바이!! 할 수가 없다. 어느 선술집이나 회의자리나 모임이나 반상회나 일터나 학회장이나 세미나 장이나 곳곳에 김수영을 불러내고 싶은 유혹을 멈출 수 없다.
8. "너나 잘 하세요." " -너-나-너- 도 잘 하세요" 일상을 겨워내는 일들....너무 늦은 건 아닐까? (세상엔 그런 법은 없다.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