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만원미만의 삶, 그리고 대통령 ing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시간
카이스트 교수 시절에는 전국을 돌아다니며 외부 강의를 100회 정도 했는데 대부분 교사나 학생, 시민단체 등이 그 대상이었다. 시간과 재능을 기부하는 것이고, 사회 공헌이라고 생각했다. 강의를 많이 하게 된 것은 미국에서 공부할 때 시골에 있는 대학에까지 장관급 등 유명인사들이 와서 특강을 하는 걸 보고 느낀 게 있어서다. 그 사람들은 돈보다 더 중요한 게 시간인데, 기회가 적은 지역 학생들을 위해서 기꺼이 시간을 낸 것이죠. 한국에 돌아와서 저도 그런 마음으로 강의를 많이 다녔다.
돈없으면 보장되지 않는 인간의 존엄성
의료봉사활동, 가족 관계는 무엇보다도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먹고사는 문제 때문에 가족이 깨지는 경우도 봤다. 남녀가 결혼을 해도 각자 벌어 먹고사는 경우, 둘 중 한 사람이 아프면 다른 사람이 집을 나가버려서 가족이 깨지기도 한다. 처음에 아버지, 엄마, 할머니, 손녀 네 가족이 살았는데 아버지가 아프니까 엄마가 집을 나갔고, 아버지가 병으로 죽어 할머니와 손녀만 남았다. 그러다가 할머니가 몸져누우니 초등학교 손녀가 신문배달을 해 먹여 살렸는데 중학생이 된 후 결국 못견디고 가출했고, 할머니는 굶어서 숨진 채 발견됐다. 소설보다 현실이 더 끔찍하다는 생각을 했다.
공짜가 반드시 좋은 방법은 아니다.
구로동 진료를 다닐때 환자들이 잘 낫지 않아 이상하다고 여겼다. 그런데 어느날 애들이 흙바닥에서 공깃돌 놀이를 하는데, 돌이 아니라 알약을 갖고 노는 거다. 환자들이 약을 먹지 않고 버린 거죠. 공짜로 약을 받으니 아깝다는 생각이 없던 거죠. 그래서 생각 끝에 진료비를 100원씩 받기로 했어요. 자기 돈을 내고 약을 받아 가니 꼬박꼬박 챙겨먹고 진료율도 쑥 높아지더군요.
지속가능성에 대한 신중한 검토
연구소 시절, 월 5만원까지 책값을 지급했는데 회사 상황이 좋지 않아 복지혜택 중 가장 금액이 적었던 책값 지원을 없애기로 했다. 그랬더니 가장 큰 반대에 부딪혀 깜짝 놀랐다. 아무리 사소한 복지혜택도 한번 도입하면 없애는게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란 것을 깨달았다. 그러니 회사 상황이 어려워져도 지속할 자신이 있을 때 새로운 복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걸 알게됐다. 국가 차원에서도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지속가능성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안전망 제공이 광범위한 불안을 줄인다.
우리 사회는 주거, 보육, 교육, 건강, 노후 등 민생의 기본적인 영역에서 광범위한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 어느 정도 생활수준이 되는 중산층도 가족 중 한 사람이 중병에 걸리면 한순간에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 자녀들 교육시키다 보면 노후대책을 세울 여유가 없다. 어렵게 대출을 받아 아파트를 장만했는데 이자 갚느라 쩔쩔 매는 집들이 많다. 개인들이 각자 불안하다 보니 자기만 생각하는, 그리고 자기가 속한 집단만 생각하는 이기주의가 팽배해 있다. 그래서 사회 공동체 의식도 급속하게 약화되고 있다. 정부가 국민의 불안을 해결해주지 못하니 각자 살기 위한 방편에 몰두한 결과다. 이제 이 문제를 개개인의 경쟁력이나 책임에만 맡기지 말고 국가가 기본적인 안전망을 제공해서 불안을 해소해줄 때가 됐다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에서 경쟁에 진 사람에게 재도전의 기회를 주는 패자부활전은 가능한가?
아이들의 인권과 정서라는 측면의 배려
선별적 복지는 또 '낙인 효과'를 만들어 사회통합에 금이 가게 하죠. 국민을 '시혜자'와 '수혜자'로 구분한다. 학교 급식의 경우 가난한 아이들에게만 무상급식을 하면 '얻어먹는 아이'라는 낙인을 찍을 수 있다. 이것은 경제적 효율을 따질 문제가 아니라, 자라나는 아이들의 인권과 정서라는 측면에서도 배려가 필요한 문제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선별적 복지를 하다 보면 수혜 자격, 즉 가난을 입증하고 검증하는 과정에서 막대한 행정 비용이 든다는 점도 감안할 필요가 있다.
기업의 목적
기업의 의미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의미 있는 일을 여러 사람이 모여 함께 이뤄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흔히들 말하는 '기업의 목적이 수익 창출'이라는 명제에 의문을 가졌다. 기업은 고객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물건이나 서비스를 만든 다음 그것을 판매하는 조직이며, 수익은 그 결과라고 생각했다. 수익보다 가치 창출을 통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조직이어야 한다고 본 것이다. 윤리경영과 투명경영 모델이 되고, 공익과 이윤 추구가 서로 상반된 것이 아니라 공존하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중견기업 육성
국책연구소들을 중견기업 중심의 R&D 기지로 바꿀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다. 대기업의 거래 관행에 대한 감시도 강화해야 한다. 독일의 '히든 챔피언' 같은 강소기업들이 나올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인사 시스템
대통령이 자신의 철학을 대변할 수 있는 도덕적인 인물을 우선 잘 뽑아서 조직의 정점에 기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조직의 정점에 가면 사람의 장점이 증폭될 수 있다. 반대로 부적격자가 가면 그 사람의 단점이 조직 내의 과잉충성파들을 통해 증폭되면서 조직 전체가 망가져버리게 된다. 그래서 우선 기관장 인사를 잘해야 하고, 동시에 공직자의 취업 제한 등 윤리규정을 강화하고 적극적으로 점검하는 제도와 관행의 개혁도 필요하다.
최저임금 수준
유럽 연합은 회원국들에게 최저임금을 근로자 평균임금의 60%로 하도록 권고하고 있고, 우리나라 노동계는 50%를 요구하고 있는데, 현재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은 30%를 조금 넘는 정도입니다. 최저임금을 올리면 한계기업들이 도산하고 일자리가 오히려 줄어든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실제 연구결과는 다릅니다. 적절한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구매력을 높여서 일자리를 늘린다는 연구결과도 있거든요. 물론 영세자영업자 등 최저임금이 올라가면 타격을 받는 사람들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삶의 존엄성 측면에서 이 문제가 가야 할 길은 정해져 있다고 생각한다.
교육개혁을 넘어 사회개혁을
교육이라는 것이 사회구조의 종속변수다. 중장기적으로 사회인센티브 시스템 개혁이 이뤄져야 한다. 대기업 사원, 변호사, 의사, 공무원 같은 직업만 안정적으로 돈을 많이 번다면 모든 대학교가 여기에 맞출 것이고, 거기에 따라 초등학교 교육까지 영향을 받는다. 중견기업도 좋은 일자리가 되어야 하고, 지방에도 좋은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져야 한다. 공기업과 대기업 본사가 지방으로 이전하도록 인센티브를 주거나 지방대에서 지역할당제로 채용될 수 있게 하는 거다. 대기업도 지방대 출신에 채용 인원을 일정부분 할당하면 큰 자극제가 된다.
창의력을 갖추려면 무엇보다 좋은 질문을 할 줄 알아야 한다.
과학기술의 안전과 신재생에너지
안전이라는 것은 기술과 제도, 문화의 측면에서 바라봐야 하는데 너무 기술 관점에서만 본다. 우리가 갖고 있는 기술에 대해서도 과연 완벽하냐는 반론이 있다. 설령 원전이 안전하다 하더라도 안전성을 담보할 수 있는 제도가 치밀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의 문화도 고리 사고를 은폐한 사례에서 볼 수 있듯이 만일의 가능성에 대비해서 최선을 다해 사고를 줄이는 문화가 아니다. 기술이 앞서가더라도 제도나 문화적 요인 때문에 일본 같은 사고가 날 가능성이 있다.
대규모 발전소를 건설하기 위해서 최적의 입지조건을 가진 곳을 찾으려고 한다면 만족스러운 곳을 찾기 힘들 수도 있지만, 발상을 전환해서 작은 규모의 발전소를 스마트그리도로 연결한다면 입지조건에 대한 제약점은 줄어든다. 지역 단위 분산형 발전을 추진하고 스마트그리드로 연결하면 효율적 생사놔 소비가 가능하다. 가능성이 보이는 분야에 국가예산으로 R&D를 추진하고, 발전차액보상제의 문제점을 보완, 국가가 보급을 지원한다면 수출가능한 산업도 만들어지고, 에너지 가격도 점진적으로 낮아질 것이다. 또 경우에 따라서 국제 협력도 가능하다.(아시아 슈퍼그리드)
뱀발.
1. 한참 지난 후에야 책에 접힌 부분을 옮겨 적어본다. 비욘드 노무현과 룰라를 롤모델로 삼고 있는 김두관, 현대사의 산증인이 아니라 덩어리인 문재인, 민생경제론의 손학규, 박근혜의 책들을 함께 살펴본다. 김두관, 문재인, 안철수 모두 책을 좋아한다. 김두관은 어렵게 전문대를 가고, 삶의 주변이 고락이 보인다. 그의 높고 깊은 행정경험과 소통방법은 현실에 있어 단연 돋보이는 듯 싶다. 문재인의 삶도 애정도 깊이가 있어 보인다. 이런 잔상들이 있어서인지 말을 꺼내기가 쉽지 않다.
2. 안철수의 삶의 굵은 선을 이 책을 통해 느낄 수 있게 된 것 같다. 기업의 목적, 돈보다 시간이 소중하다는 경험, 가난을 배고자는 이들에 대한 깨달음이 그의 지금을 끌고가고 있구나 하는 느낌들. 강연을 통해 되받은 소중한 공부와 결과보다 과정을 중시하는 마음이 이쁘다.
3.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현실화의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것을 차치하고서더라도 안철수가 애정을 품고 마음을 품는 가난을 배고자는 이들이 그를 선호하지 않는다. 열에 일곱은 박근혜지지자들이다. 이런 딜레마가 현실로 버티고 서있다.
4. 김두관-문재인, 과오를 뉘우치고 공부하는 손학규... 아무도 가난을 이고사는 이들의 마음을 얻지 못하고 있다. 세대별로 높은 지지율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5. 정태인은 새사연 리셋코리아에 버금갈 마인드를 갖고 있다하고, 민언련운영위원장인 한일수원장은 낯섬이란 키워드로 안철수를 기존의 정치문법과 다르게 접근하고 있다. 현실화의 우려를 이야기하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