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0320 무진 霧津 기행 O ...ing

목마른 사람은 물에 세상의 모든 맛이 담겨 있음을 압니다. 배고픈 사람은 흰 쌀밥에 최고의 맛이 담겨 있음을 알 거고요...이유를 따지고 논리를 만들기 전에, 마음이 먼저, 발이 먼저 그들에게 도달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앉아 세상을 구경하려는 자들에게는 어떤 느낌도 오지 않습니다. 자신을 둘러싼 세계는 무시한 채 먼 곳에서 뭔가를 찾으려는 자들에게도요. 잘 느끼는 사람들은 열심히 구하고, 열심히 움직입니다. 그러다 보면 목도 마르고 배도 고프고, 그럴 때 바로 가까이에서 가장 맛있는 물과 밥을 찾게 되는 거죠. 49


단지 서로의 말에 끄덕거리기만 해서는 소통이 될 리 없습니다. 소통이란, 말 그대로 막힌 데를 뚫고 서로를 통과해 가는 것이거든요. 공감은 다른 두 세계 사이에 전류가 흘러 거대한 에너지 장을 만드는 것이고요. 그러니까 소통과 공감은 언제나 둘 이상에서 벌어지는 사건입니다. 느끼는 것은 고독한 행위가 아니라 고독을 넘어가는 행위입니다. 혼자서는 느낄 수도, 통할 수도 없으니까요. 느끼는 것은 다른 것과 만나고, 다른 것을 통과해 가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다른 세계를 경험하고, 다른 것이 되는 경험을 하며, 거대한 전체와 한 덩어리가 되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게 됩니다. 52


느낌의 달인들에게는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두 세계의 경계에서 생각한다는 것이죠. 선명한 가치 판단으로 세상을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뭔가를 느끼기가 어렵습니다...예술은 이런 느낌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경계 위에서 이것과 저것이 동시에 느껴질 때, 이 세계와 저 세계 사이에서 무언가가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하나의 판단을 방해할 때, 그때 우리는 세계를 다른 방식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예컨대, '차가운 뜨거움'이라든지 '슬픈 기쁨' 이라든지 '텅 빈 충만함' 같은 모순된 느낌들을 통해 우리는 세계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깨닫습니다 예술은 결국 다르게 느끼는 것이고, 다르게 느끼는 연습을 통해 예술가는 자신의 독창적인 세계를 형성합니다. 75


느낀다는 건 언제나 '둘'에서 시작합니다. 이것과 저것이 만나 폭발적 에너지를 만들어 내죠. 느끼는 건 나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다른 무엇을 만나 둘을 이루고, 열을 이루고, 무한을 이루는 문제입니다.92


느끼는 데는 여러 기술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그 기술이란 게 어려운 지식이나 특별한 재능을 필요로 하는 건 아니예요. 지금까지 본 것처럼, 비우고, 의심하고, 변신하고, 경계를 넘나들고, 전달하고, 벗을 사귀는 기술, 그런 게 느낌의 달인들이 가진 능력이죠. 99


빨리 먹어 치우는 음식은 양분으로 쓰이지 않고 배나 허리나 엉덩이에 군살로 쌓인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음미하지 못하는 감각들은 군살이 됩니다. 때문에 새로운 걸 보고 들어도 느낄 수 없게 되죠. 예술가의 감각에는 군살이 없습니다. 철학자의 머리에도 군살이 없고요. 덩치가 크든 작든 운동선수가 불필요하게 살이 찌면 운동을 잘할 수 없게 되는 것처럼, 예술가에게는 감각의 군살, 철학자에게는 생각의 군살이야말로 더 이상 예술과 철학을 할 수 없게 만드는 최대의 적이거든요. 하나의 방향으로, 하나의 속도로 내달리는 것보다 위험한 건 없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모든 차이를 하나로 만들면서, 새로운 느낌을 억누르거든요. 그러다 끝내 느낌의 독재자, 생각의 독재자가 되는 겁니다.  119


우리는 생각하고 말하는 건 누구나 갖춰야 할 능력이라고 생각하지만, 느끼는 것도 능력이라고는 잘 생각하지 못하는 것 같아요. 하지만 느끼는 거야말로 생각하고 의지하고 행위하는 데 기본이 되는 능력입니다. 느낀다는 건 내 안에 낯선 힘을 받아들이는 거거든요. 달리 말하면, 내 마음의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나아가는 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깥으로 나가면 무슨 일이 생기는지 알 수 없습니다. 어쩌면 상처를 받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상처받지 않으려고 자신만의 세계에 꽁꽁 갇혀 지내는 것보다는 차라리 상처받고 아파하는 게 훨씬 낫습니다. 그걸 통해 조금 더 단단해지고, 세상을 보는 또 하나의 눈을 갖게 될테니까요.  145

 

뱀발.  좋아하는 말들이 겹쳐 고르다가 읽다. 도서관에 서성인 보람같은 것 말이다. 채운 책은 몇권 읽었다. 느낌을 이리 잘 풀어서 좋다. 생각도 말이다.  군살보다는 근육이란 말을 즐겨쓰기도 하지만 아무튼 좋다. 너머학교와 길담서원의 청소년 교육 툴이 관심이 간다.  여전히 비가 흩날린다.

 

느낀다는 것의 속

 

 

 

 

 

 

 

 

펼친 부분 접기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