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1027 저녁 ㄴㅇㄷㅅㄱ을 찾다. 시험기간을 지난 열람실은 횡하다. 그래도 인적이  절반을 넘어 허전하지는 않다. 어제 반납하며 빌린 디자인책 3권과 여물여물 씹고 있는 책, 그리고  함께 섞어온 아감벤 책을 두고 보다.

 

 

 

  

한국 디자인 책임자는 "어디에도 없는 디자인을 하라"라고 입버릇처럼 이야기한다. 어쩌면 한국에 기발한 제품이 많은 이유는 '어디에도 없는 평가기준'이라는 것이 평가기준이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한편 한국 기업의 디자인 미팅에 들어가보면 경쟁사의 제품을 가지고 들어와 '이것을 이길 만한 제품을 만들라.'라는 이야기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상식이었다. 즉, 한국의 제조사에게 디자인이란 눈앞의 라이벌에게 이기기 위한 도구이며, 라이벌 기업을 기준에 둔 상대적인 가치 창조인 셈이다. 역으로 말하면 자신들이 보유한 절대적인 개성을 디자인으로 표현하려는 사고방식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장사의 도구로서만 디자인을 생각하기 때문에 디자인을 통한 브랜드 아이덴티티으 구축이라는 사고방식은 정립되지 않은 것이다.

한국 기업과의 작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프레젠테이션 제출용으로 만들 목업(실물모형)이 그대로 제품화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일본에서는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일본 기업에는 조직적인 디자인 작업에 대한 경험이 축적되어 있다. 공동작업에 대한 경험이 풍부한 만큼 만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다양한 의견이 작업에 반영된다. 그 결과 프레젠테이션 단계에서는 거칠었던 디자인 안도 제품화될 때 즈음에는 평범한 디자인으로 안착하는 경우가 많다.(71-72, 디자인의 꼼수)

 

** 이 일본디자이너의 이야기를 들으며 아차 싶다.  지난 월요일 후배들의 발표를 들으면서 지나치게 일에 강박이 되어있지 않아 마음이 풀리기도 했는데, 정작 스스로도 이렇게 일의 강박에 매여있다. 안도 다다오의 작품여행을 통해 그것이 같은 효과를 짚어낸 것이 있었고 충분히 설득력이 있는 제안같이 보였다. 다른 주제들은 현실적인 입장이나 새로운 관점의 당위만 있을 뿐 그대로가 현실과 관점을 동시에 안고 있지 않는 것 같다.  우리에게 새로움에 대한 숙성의 과정을 찾기 힘들다. 일터이든 삶터이든 모임과 모임이 겹치는 부분도 그러하다. 새로움에 대한 강박이 밀어부치는 힘에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여지없이 견디고 보듬어지지 않는다.

** 왜 아이디어에 다른 생각이 겹치지 못하는가? 어쩌다 운때가 맞는 기획만 살아남거나 지난 것은 없는 것이다란 무의식이 여기저기 자리잡은 때문인가? 불쑥 그런 생각이 든다.

** ㄴㅇㄷㅅㄱ에 책들을 풀고 시작하는 사이 졸음이 바람처럼 몰려와 깜박하는 사이 몇몇 단어들만 주먹만큼 커져 기억의 흔적을 남긴다.  악셀 호넷이 들려주는 칸트씨와 헤겔씨의 가족, 정의, 배려, 사랑 그리고 그 닫힌 그물에 대한 이야기를 다시 리뷰를 해서 본다. 그리고 생각도 몸도 가슴도 턱없이 지금..그리고 여기 3-40년의 흔적이 켜로 남아 어쩌지 못하는 [나]가 있다. 담론의 틈바구니에서 머리를 들이밀고 생각을 기웃거리려 하지만, 이미 가슴과 몸, 그리고 손 발은 여기를 살아왔고 살고있어 낯설다. 머리 속으로만 유영할 뿐 가슴의 뿌리로 몸의 뿌리로 다시 내려올 수 있을까란 두려움이 행간에 나타난다.

** 메모장에 떠오르는 사람 얼굴을 그려본다. 이렇지 않은데, 초상의 미묘함은 실망으로 번진다. 색을 넣어 그려본다. 얼굴을 그려보고 싶단 느낌은 어쩌면 어제 전시 관람의 여파인지도 모르겠지만 야초와 꽃들의 특징처럼 쉽지 않다. 한꼭지를 잡아 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도 표정을 잡아내는 일이 힘겨울 듯싶다.

** 아침 일찍 눈이 떠져 책의 다른 곳들을 뒤적여본다. 을씨년스런 추위가 몸을 감아 옷을 겹쳐입지만 책으로 맺힌 생각은 더 또렷하다.  

뱀발. 디자인 책들이 손에 간다. 아무래도 표현하지 못하는 답답함은 표현력과 관계가 있으며, 표현의 수단인 느낌을 전달하는 매체에 대한 관심은 아닌가 싶기도 한다. 설명한다는 한계를 벗어나 때론 직관의 풍부함에 관심이 가는지도 모르겠다. 어디를 걷고 있는지, 걷다보면 늘 생각도 사람도 만나는 것을 알지만 짙은 가을 불안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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