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요한 건 손가락이야!
** 몸의 언어에 대해, 지촉화가나 고흐의 작품을 설명하는 가운데, 반복작업에 대해 이야기하는 부분이 있다. 한번두번 같은 색이나 무늬, 물결을 그리다보면, 그것이 머리, 가슴을 넘어서 몸으로 그리는 경우, 그 반복이 가져다주는 것은 머리나 가슴의 울타리를 넘어선다. 그리고 그 몸의 언어가 고스란히 그것을 음미하는 너에게 전달된다고 한다. 정녕 이런 언어가 있다면, 이는 말로 설명되지 않는 것,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있다는 말씀이겠다.
** 사람과 소통하는 방법 가운데, 말을 넘치지 않게 하는 방법 외에 이렇게 시간과 몸의 흔적을 아로새기는 방법이나 전달을 고민해봄이 어떨까? 마음이라는 것이 있다라면, 마음씀이라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흐르기도 하고 모이기도 할 것이다. 마음의 우물을 깊숙히 파 놓게 되면 그 마음들이 흐르고 고이고, 뭉클뭉클하게 되는 것은 아닐까? 거기에 몸의 언어까지 교감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면, 머리와 말의 현란함을 제어할 수 있으리라.
** 머리의 현란함은 마치 시간을 고려하지 않는 것 같은데, 머리는 각설탕처럼 맛을 음미하기까지 녹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야 알맞은 마음의 농도와 맛을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머리가 채 녹기도 전에 들이킨다면 맛도, 마음도 떨떠름한 아무것도 아닌 상태가 되는 것은 아닌지?
** 혹 머리의 주장으로 사람의 마음을 밀쳐내거나 아니면 목욕하고 있는 아이까지 덩달아 버리는 경우가 생기는 것은 아닌가? 머리와 말의 먼저나섬이 어쩌다 머리와 말의 논리를 꿰어 맞추기 위해 사람까지 내쳐서는 아니될 것 같다. 사람의 마음까지 밀쳐내고 발라낸다면 그것이 어찌 사람이 사는 곳일까? 사람을 연결시키는 동네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그 차별은 무의식 중에 전염되는 것은 아닐까? 마음이 간 곳을 되짚어봐야 하지 않을까? 서로 마음을 섞어보려고나 하는 것인지? 적이라 규정짓고 그 머리와 말을 뭉게기 위해, 또 서슬퍼런 머리와 말만 벼리고 있는 것은 아닌지는 스스로 되물음만 한다면 그것은 어쩌면 양심의 문제이기도 할 것 같다.
뱀발
1. 100109 아카데미 김**사무국장, 서**샘과 삼겹살에 소주한잔 하며, 그리고 바밤바님의 글의 그림자를 섞어보며...
2. 복식부기 - 사람과 마음의 거래를 주장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