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다들 제 말만 하고픈 이들로 가득하다. 어딜 가나 말은 넘치는데 소통의 부재를 외친다. 제 말에만 충실한 슬픈 결과다.
아침부터 할 일은 많은데 해찰을 부리며 컴퓨터에 앉았다. 인터넷 상 사람들은 다들 제 말을 쏟아내기에 바빴다. 미욱한 자들은 나르시시즘에 젖은 저만의 말을 남용했고, 조금 영리한 자들은 조목조목 제 생각을 읊으며 나름 공정한 언어인 듯 행동했다. 그런 말의 넘실됨이 편치 않았고 글로 증명된 그들의 생각 또한 성긴 구석으로 그득했다. 핍진한 마음이 말로 드잡이를 하고 어깃장을 부리라 강요했지만 말이 낳을 파장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싶진 않다.
친구 중에 드라마를 자주 보는 이가 있다. 그는 드라마 속 관계로 세상을 안다 여기며 개별적 사례를 일반화 하려 든다. 기실 드라마 또한 몇 명의 작가가 현실에 빗대어 풀어낸 생각인데 뭐 그리 대단할 게 있겠는가. 다만 영상이란 매체 활용으로 그 다가감이 간편하단 이점 말고는 책에 비해 하등 나을게 없다고 본다. 그렇기에 나는 그 친구의 말을 들을 때 마다 그 약한 고리가 쉬이 눈에 띄어 설득은커녕 내 생각을 강화하곤 한다.
결국 언어가 제 존재증명을 위한 가장 절실하면서 편리한 수단이라면 말을 벼릴 필요가 있다. 타인의 생각을 차용하고 제 자신의 생각만 추어올리면 그는 말 그대로 ‘언제나 그 자리에’ 머물 테다. 말이 말을 낳지만 대부분 그 말들은 맺음을 향해 다가간다. 어떤 맺음이냐는 어떤 말이냐에 달려있는 듯하다.
마찬가지로 달을 가리키는데 왜 손가락만 보느냐는 아포리즘은 틀렸다. 사람들은 당연히 손가락에 집중하기 마련이다. 손가락에 먼저 눈이 가게 하는 그 낮은 헤아림을 우선 탓해야 한다. 그래도 사람들이 달을 보지 않는다면 시각 자료를 활용하거나 또 다른 유인책을 써야한다. 개인의 시간을 앗는다는 데 그 정도 노력 없이 타인의 미욱함만 탓하는 일은 진정 가엾은 일이다. 제발 제 언어도 감당치 못하면서 타인의 불민함을 탓하지 말자. 그 지적질이 온당하면 자연히 대중은 달을 향해 눈길을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