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의 동일함.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중립언어](관계된) 권력의 유용함에 대해(ing)

우리가 네트워크의 두터운 그물망 속에 존재한다는 통찰을 받아들인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세계를 변화시킬지 말지 하는 것이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것인가 하는 것뿐이다. 권력은 스스로 행동할 수 있는 능력을 의미한다. 우리 각자는 종종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다.

1. 진보라고 칭하는 사람들의 고민 지점은 늘 세계를 어떻게 변화시킬지? 어떻게 전복시킬지?에 생각이 매여 있는 것은 아닐까? 그리고 그 질문에 바짝 붙어 뒤에 누가란 질문이 달려나온다. 그렇게 되면 주체가 늘 먼저 걱정이고, 중심이 늘 생겨야 그 다음 질문이 해결될 수 있는 곤경에 처하는 것은 아닐까? 아무래도 이것은 나를 가장한 우리가 있고, 나와 너사이에는 간극과 서열을 무의식 중에 깔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니 결국 [나-주체, 내가, 우리가] 라는 울타리에서 한걸음도 벗어날 수 없다.

1.1 그러니 내가 인지하고 있지 않거나, 우리가 모르거나, 관심에 멀어지거나 하면 그 변화라는 것도 자동 소멸되는 결정적인 단점을 갖게 되는 것이다. 나의 세계이지 너-나로 이어지는 세계관이 아니라는 점이다.

2. 그런데 위에서 지적한 통찰을 받아들여, 세계를 변화시킬지 말지가 아니라 어떤 방향으로 세계를 변화시킬 것인가란 점을 염두에 둔다면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은 1의 경우보다 많아지게 마련이다. 최소한 나-너의 세계가 아니라 너-나의 세계관이기에, 너에 기댈 수 있는 철학이기에 내가 사라져도, 잊어버려도 여전히 세계는 존재하는 것이다.

 

권력이라는 것이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끔 하는 능력이라면, 잠깐만 생각해 보아도 우리 각자가 그다지 많은 권력을 생산할 수 없다는 점이 자명해진다. 여기에서부터 권력은 인간이 함께 발전시키는 어떤 것, 관계적 권력으로 변하게 된다. "관계적"이란 말은 제로섬 개념이 아니라 해방적이고 증폭한다.


3. 어떤 방향으로 변화시킬 것인가? 내 문제가 아니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별반 많지 않은 것은 사실이지만, 너의 시선으로 보면 할 것이 거꾸로 많아지게 된다. 내가 던지는 한방울은 늘 네트워크 속에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아주 자그마한 일이지만 그 그물을 출렁일 수 있게 만든다는 것이다.

4. 권력이란 것이 중립적이고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끔 하는 능력이라면, 나의 권력은 보잘 것 없지만 너로 향하거나 이어지는 권력은 정말 많은 것을 할 수 있게 되며, 그 그물이나 틀을 인식하게 된다.

5. 서재를 닫고 말고, 시간이 지나 돌아오고, 여건이 되지 않아 문닫을 수 있다. 혼자쓰는 시간이란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니 가타부타 할 이야기가 없다. 시간이 연결된 것도 자라는 것도 아니니 그 관계라는 것도 알량하기 그지 없을 것이다. 속상함이 다독거려지거나 얼굴도 대면하지 못한 상처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불매활동이란 시공간으로 나를 너에게 보냈음에도 마치 아무일도 없던 일로 연기처럼 사라지는 일 또한 온라인 민주주의의 경계를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그 불매의 틀이 알라딘을 너무 사랑하기에 거추장스럽겠지만 알라디너 서로를 깊이 가늠하는 배려가 있으면 하는 점도 아쉬움으로 남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쟈니님의 지적은 뼈아프고 소중하다. 

6. 쟈니님의 의견을 소중하게 받아들인다면 한방울 한방울 내린 비, 그 빗방울의 의미도 중요하지만, 그 빗방울을 오목하게 담는 그릇의 문제가 또 생기는 것은 아닐까? 어떤 그릇인지 정리해내지 못한다면, 그저 한때의 치기나, 발산이나 연기같은 의미로 줄어들까 염려스럽다. 


--신뢰의 씨앗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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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1-05 13:5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1-07 13:28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