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어진 동백꽃은 그래도 핀다.(ing)

 

E.P 톰슨은 1960년 [뉴레프트 리뷰] 출간에 맞춰 모두에 모리스를 불러내었다. 모리스의 사회주의에 대한 노력과 삶은 그 지평이 얼마나 넓어져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만든다고 했으며, 그러한 노력이 새로 시작해야 한다고 한다.  1890년, 벌써 120년전 이야기다. 모리스는 1951년 혁명으로 바뀌는 2150년의 삶을 이야기한다. 앞으로 140년이후의 일이니 그리 멀리있는 일도 아니다. 읽으면서 1951년 혁명이 68혁명을 떠올리게 만든다. 애초 1971년을 가정했다 하는데 두번째 판부터인가 바뀌었다고 한다. 각설하고  아래 시대정신이란 말이 가슴에 닿는다. 역자의 덧글에도 마음이 간다.

--시대정신-----

모리스의 변혁의 원동력에 대한 질문에 노인은 다음과 같이 답한다. 부유하고 교육을 받은 사람들의 목적없는 고독한 생활에 대한 구역질이 연인의 열정과도 같은 자유와 평등에 대한 갈망을 이끌어냈다고 말이다. 사람들은 돈의 많고 적음으로 사람을 가르지만 정작 부자들의 삶은 초라하기 짝이 없다. 어찌보면 별반 다를 것도 없다. 지나친 선망이 삶과 무관한 악순환의 고리를 만드는 것은 아닐까? 마음의 구역질이라는 표현이 와 닿는다.

--마음의 구역질-------

과학에 대한 표현이 놀라울 정도로 예리하다. 상업주의 체제의 부속물이자 보이지 않는 것은 연구조차 하지 않아 위험을 키우고 있는 지금의 과학이란 사람도, 사회도 묻어있지 않다. 그래서 괴물이 활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편협하고 비겁한 과학. 지금의 그 모습으로 읽혀진다. 자꾸 일과 여가을 구분해서 질문하다가 이해못하겠다는 표정을 짓는 사람들 속에 모리스가 원하는 자연스러울 수밖에 없는 사실이 읽혀진다.

---과학,예술, 노동과 즐거움의 관계--

그가 중세 14세기를 좋아하지만, 분권과 민주주의 자치에 있어서는 배울 것이 많다. 중세가 암흑의 시대란 관점은 사회에서 개인을 발라낸 개인주의자의 시선일 뿐이다. 그 개인이 저지른 후과를 생각하면, 차라리 떨어져나오지 않은 개인이 있던 중세가 훨씬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당신의 직선적인 관점이 문제가 될 수 있다. '이 나라가 세계시장의 하나란 허세'를 버렸다고 한다. 더 이상 굶주림을 채워야한다는 허기의 삶을 벗어난다. 우리는 인간이다. 굶기지 마라. 굶지 않을 권리가 있다. 인간이기에 인간의 삶을 원하다. 동물을 넘어서 좀더 좋은 삶을 살아갈 권리가 있다. 살아지지 말게 해달라. 이것은 헌장이다. 사랑도 소유가 아니다. 감금된 어리석음이 아니다라고 말한다. 

--굶주림에 대한 생각---
--짜투리 몇조각------------

뱀발.  

1. [뉴레프트 리뷰]가 1960년부터라....아무튼 다양하고 신선한 관점들이 열렸으면 좋겠다. 지식소매상이나 도매상들이 활개를 치지 못하게 삶이나 개인이 아닌 유적존재로 묶어두면 좋겠다 싶다. 2집이 나왔다고 하던데... 

2. 지금이 별반 문제가 없다라고 생각하면, 어떤 앎도, 책도 필요없다. 그 책과 앎은 그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잡는 것이 아니라 교묘히 그를 빠져나갈 것이다. 그 앎은 그의 입에 남거나 논쟁의 도구나 수단으로 전락할 처지에 있다는 것이 안타깝지 않은가? 사람냄새가 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자와 교육받은자의 고독한 삶이 처량하지 않은가? 한번 삶을 진지하게 생각해본다면 저기 가슴에서 헛구역질이 올라오지 않는가? 꼭 이렇게 살아야 하는지? 그렇다면 우리는 다를 것이 없다. 아마 모리스의 삶이 당신의 마음에서 가슴으로 길을 뚫어줄 지도 모른다. 

3.  그리고 여기서도 제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 NEWS FROM NOWHERE인데 NOWHRE를 그대로 살려둘 수 없을까?       4. 토머스모어의 책이 궁금해진다. 5. 물론 유토피아에서 모든 로망을 걷어내야 한다. 다르게 멀리보는 자만이 기쁨을 누릴 수 있으리라. 물론 먼 훗날의 일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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