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워드 - 열정으로서 사랑, 낭만으로서 사랑, 섹슈얼리티, 결혼, 사랑, 친밀함, 경제의 화폐, 정치의 권력, 학문의 진리, 쾌락/사랑의 차이, 정보, 통지, 소통, 주고받는것, 우정, 사랑과 우정,인격적관계/비인격적관계,개체화, 차이,재귀적,역설,문제,코드,프로그래밍,체계,환경,주체, 둘만의 친밀성, 진리/지각,사랑/섹슈얼리티,화폐/기본적 욕구,권력/물리적 폭력, 공생 매커니즘
의미 sinn,sense는 세차원 즉 사태적, 시간적, 사회적 차원의 조합으로 이루어진다. 사태적 차원은 이것과 다른 것의 차이, 즉 '것'의 구별이 부각되어 어떤 것의 내부 지평과 외부 지평이 열리는 차원이다. 시간적 차원은 이전과 이후의 차이가 부각되어 현재로부터의 과거지평과 미래지평이 열리는 차원이다. 사회적 차원은 자아-관점과 타아 관점의 차이가 부각되어 자아 지평과 타아 지평이 열리는 차원이다. 주의해야 할 것은 사회적 차원의 타아-관점은 다른 관점을 뜻하는 것이지 타인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5년 전에 빌려간 타인을 다시 만나 지금의 그에게 그 행위에 대한 책임을 귀속시킨다면, 시간적 차원의 과거 지평과 사태적 차원의 외부지평을 '지금의 이것(타인)'으로 끌어오는 일반화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사회적 차원의 일반화란 다른 관점들 사이의 '합의'를 뜻한다. 82
화폐,진리, 권력 등의 매체 영역인 경제,학문,정치 등 사회의 기능체계들의 독립분화는 기업, 학교, 학회,정당 같은 거대 조직들의 도움을 받는다. 반면에 사랑이라는 소통매체는 이런 도움을 받지 못하기 때문에 사회의 기능체계로 자리 잡을 수 없다. 55
루만은 자기지시의 세 단계를 구별한다. '요소'의 자기지시'를 기초적 자기지시'라 부르며, '과정'의 자기지시를 '재귀성reflexivitat', '체계'의 자기지시'를 '반성reflexion'이라 부른다 52
현대 사회는 이중의 증가라는 특징, 즉 비인격적 관계들을 맺을 가능성이 증가하며 또한 더 집중적인 인격적 관계들을 맺을 가능성도 증가한다는 특징을 갖는다.-사회적 관계들 속에서 인격적 계기는 외연적으로 확장될 수 없으며 단지 내포적으로 밀도가 높아질 수 있을 뿐이다. 28
우연을 코드에 끼워 넣는 일은 한 가지 중요한 혁신을 낳는다. 즉 우연을 필연성으로, 우연을 운명으로 혹은 우연을 선택의 자유로 역설화하는 것이다. 이렇게 우연이 내장됨으로써 다른 경우에 우연의 기능이 무엇이건 간에 접촉 영역의 확대가 고려되며, 코드가 사회의 모든 계층으로 확장되는 길이 마련된다. 212
새로 발전시켜야 하는 친밀성의 의미론은 이전에 결코 이런 방식으로 상징적 내용들을 각인시켜본 적 없는 한 가지 요인, 즉 비인격젹 관계와 인격적 관계의 차이에 의지할 수 있다. 이제 형식을 갖게 되는 이 차이는 오히려 사회적 관계들의 층위에 놓이며, 개별자가 그 관계들 속에 그의 전체 자아를 투입할 수 있게 하거나 그렇지 못하게 한다. 개별자는 삶에 필요한 대부분의 것을 비인격적 관계들 속에서만 보장받을 수 있으며, 바로 이것이 새로운 점이다.(그런 관계들 속에서 개별자는 각 해당체계의 좁은 범위 안에서만 자기 자신에 관해 소통할 수 있거나 아예 소통할 수 없다.이러한 조건은 심지어 자아 자체의 구축도 포괄한다.분화의 경험은 자아 자체가그 경험에 따라 구성되도록 해주며, 이러한 사회구조적 조건들을 통해 특유의 색채를 띠게 된다.-산업혁명이 시민계급을 위해 창출해놓은 상황은 남자들만이 동료들의 무관심, 무시, 악의에 직접 노출되어야 했고, 여자는 그것을 사랑을로 보상했다....중요한 여성의 임무는 바로 파김치가 된 남성의 마음을 다잡는 것이다. 이러한 사회이론적 전제에 따라 남성과 여성의 인간학적 차이는 유지될 수밖에 없으며, 심지어 극단으로 치닫게 된다. 그런 차이가 완전히 폐지되기 전까지는...) 224
비인격적 관계와 인격적 관계의 차이에 대한 이러한 기본적인 경험이 공동의 것이 되면 그리고 그 경험이 계층이나 성별과 무관하게 모든 이에게 해당하는 것이 되면, 이것은 인격적 관계들을 향한, 더 풍부한 인간들간의 상호침투를 향한 바람을 심화시킬 수밖에 없으며 이와 동시에 이 바람을 더 충족되기 어려운 것으로 고착시킨다. 225
코드의 형식은 '이상'에서 '역설'을 거쳐 '문제'로 전화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229
사회적 역행 social regression - 옛날 사회질서들이 갖고 있던 지역공동체의 생활관계들은 친밀관계를 위한 여지를 거의 남겨두지 않았으며, 사회적 통제이지만 또한 사회적 안전보장이었던 것이 행동을 긴밀하게 규정했고 개별자에게 충분하게 합의 기회를 제공했다. 좀더 가까운 관계에 들어선 파트너들은 대개 서로를 다른 맥락에서 미리 알고 있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더 가까운 관계에 돌입한다고 해서 이렇게 아는 내용이 본질적으로 확장되는 것은 아니었고, 파트너의 체험이 갖는 심층 구조ㅡㄹ 받아들이는 것도 아니었다. 인격적 일치와 관련된 기대들은 별로 높아질 수 없었다. 자기를 문제화할 수 있는 기회를 사회가 전혀 제공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제 외부의 받침대는 제거되고 내부의 긴장이 첨예화된다. 이제 안정성은 순수하게 인격적인 자원들로부터 나올 수밖에 없다. 게다가 타인에게 몰두하면서 안정성을 획득해야 한다.230
급진적 변화는 사회구조적 발전의 성과이며, 궁극적으로는 현대 사회가 이격적 관게와 비인격적 관계를 철저하게 구별하기 때문에 이루어진다. 각각의 모든 사회적 관계에서 이런 차이를 경험할 수 있다고 말해도 심한 과장은 아닐 것이다. 비인격적 관계들은 '단지' 비인격적 관계들일 뿐이다. 인격적 관계들은 인격(개인)가 조율이 가능하다는 기대로 인해 과부하를 받게 되며, 종종 그런 기대는 산산이 조각나고 만다. 하지만 이것은 오히려 더 강하게 인격적 관계들을 추구하도록 만들고, 비인격적이만 할 뿐인 관계들에서의 불만족을 그만큼 더 뚜렷하게 부각시킬 뿐이다. 이를 통해 인격적/비인격적 차이는 이전과는 달리 구성적 차이, 즉 베이트슨이 정의하는 의미(하나의 차이를 만드는 차이)에서 정보들에 그것들의 정보적 가치를 부여하는 차이가 된다. 238
다른 출발점에서 시작해 논의되는 문제는 도대체 짧은 접촉만이 가능한 공적 상황에서 인격적 소통을 시작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하냐는 것이다. 239
존재와 가상의 통일을 신뢰하거나 적어도 이것을 그의 고유한 자기묘사 대상으로 만들어 재차 신뢰를 보여주어야 하는 어떤 타인에게든 의지하게 된다. 자기묘사가 자의적으로 선택된다 하더라도 이렇게 자기묘사를 확인해주는 일은 친밀관계의 길을 내고자 할 때 누구나 배워야 하고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제가 행동의 코드로 규격화될 수 있을까? 어쨌든 그것은 역설적 구성의 형식을 혁신하도록 만들 것이다. 사랑은 환상에서 나온 것과 현실에서 나온 것의 통일로 새롭게 제시되어야 하며, 그럼에도 신뢰할 만한 삶의 모범으로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관찰자들이 어떻게 판단하건 간에 연인들은 사랑한다는 이유만으로 자기자신과 상대방을 불신해서는 안된다. 자기묘사의 타당화 문제가 제기되면 사랑의 의미론도 여기에 적응해야 한다. 그런 변화는 무엇보다도 친밀관계의 독립분화를 주도하는 상징구조와 관련된다.
이제 의미론의 안에서는 '무엇에 맞서' 와 '무엇을 위해'를 옮겨 놓는다. 여기서는 열정이라는 개념은 거절당한다. 열광과 과민반응이 이 지점에서는 불필요해진다. 그 대신 정식화하기 어려운 원리, 즉 사랑하는 자 자신이 그의 사랑의 원천이라고 표현하는 원리가 등장한다. 사랑은 유발되어서는 안 된다. 사랑은 반작용이 아니라 앞서 작용하는 방식으로 행위해야 한다. 이런 식으로만 사랑은 사랑받는 자의 행위뿐 아니라 체험과 세계 태도에도 반응할 수 있으며, 아직 규정되어 있지 않은 상황 속에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다. 이런 식으로만 사랑하는 자는 그의 고유한 자유와 자기규정을 보존하며, 이때 그가 전념해야 할 사람보다 먼저 움직여야 한다. 그리하여 자발적 복종이라는 역설, 사슬에 묶인 채로 있고 싶다는 역설 또한 해소되며,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무엇이 관건이 되는지를 볼 수 있다. 즉 사랑하는 자는 나의 나로서, 그의 고유한 사랑의 원천으로서 행위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243
우리는 관점들의 상호성이라는 관념을 인간들 간의 상호침투라는 개념으로 대체한 바가 있다. 이것은 사랑이라는 주제를 위해 더 많은 방향을 가리키는 여러가지 결과를 낳은다. 상호침투는 상이한 체계들을 하나로 통일시키지 않는다. 그것은 신비로운 합일이 아니라 상호침투는 요소들의 재생산이라는 작동상의 층위에서만, 즉 여기서는 체험과 행위라는 사건 단위에서만 진행된다. 그래서 하나의 체계가 사건의 연쇄를 재생산할 때 이용하는 매번의 작동, 행위, 관찰은 동시에 다른 체계 속에서도 일어난다. 상호침투는 한 체계의 행위로서의 상호침투가 동시에 다른 체계의 체험이기도 하다는 점에 주목하는 개념이며, 이는 외적으로 확인하는 것일 뿐 아니라 상호침투에 고유한 재생산 조건이기도 한다. 사랑 속에서 우리는 바로 이런 타인의 체험을 통해 더 살아갈 수 있는 방식으로만 행위할 수 있다...사랑의 객체는 고요히 머물러 있지 않으며, 그 작동을 자기 안에 받아들임으로써 변화한다. 타자-로부터-체험하게-됨은 작동적 재생산의 구성요소가 된다. 254-5
코드의 통일성은 친밀관계라는 사회적 체계의 통일성을 요청하며, 이 체계의 통일성은 그 정보처리의 근저에 놓여있는 차이의 통일성이다. 25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