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_9 내맘대로 독서 편린 결산 (1) (ing)

-그런데--


14-1. 다시 니클라스 루만으로 가본다. 노신의 쇠로 된 방이 나름대로 코드로 둘러싸여 프로그래밍된 궤도를 돌고있는, 종언에 휘말려있는 정치,경제,사회,문화,문학,예술, 자본, 법, 교육, 과학이라고 해보자.  스스로 나르시즘의 퇴행에 갇혀 끊임없이 복제품만 낳는 강철로 된 방이라고 하자. 사람은 온데 간데 없고 자본의 충실한 시녀가 되어 있다고 하자. 그 단단하기만한 쇠방은 서서히 삶을 조여오고, 더 이상 숨쉴,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고함을 칠 수 있는가? 고진은 맑스를 다시 읽는다. 그 자본의 고리를 끊으려면 소비의 고리를 끊으면 된다고, 소비의 고리를 물고 있는 자본의 머리 턱의 이빨은 그렇게 끊길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경고한다. 문학은 퇴행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이다.

14-2. 지젝은 헤겔과 레닌을 불러들인다. 혁명이란 무엇인가라고 한다. 다시 총체성을 이야기한다. 무페와 랑시에르는 정치적인 것으로의 귀환을 명한다. 정치의 영역 그 가장자리를 다시 자리매김할 것을 권면한다. 


14-2-1. 누구는 말한다. 자본의 순환고리에서 소비의 고리를 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소비자가 할 수 있는 일이, 누구는 말한다 혁명이 가능하다고 헤겔과 칸트가 다시 필요하다고, 누구는 말한다. 프로이트는 근본이 잘못되었다고, 그리고 거기에서 출발한 과학은 거기에서 토대를 쌓았으므로 무효하고. 누구는 말한다. 겨우존재하는자는 말할 수 없다고, 그 전유로 인해, 여전히 겨우존재하는 자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별반없다고. 그리고 삼중고-사중고로 응축되는 지점을 응시해야된다고. 누구는 말한다 나는 안다와 나는 할 수 없다라는 정식에서 출발한 어떤 것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고. 누구는 말한다 자본의 생산고리를 끊으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고.

14-3. 다시 맥루언으로 들어가본다. 고대인,중세인,근대인의 차이점으로 몸에 배인 현대인들이 전지구적인 앎의 토대를 허물었으므로 중세인의 열정과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머리가 통일되었으므로 가슴과 손, 발, 마음의 감각을 회복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어떤이는 소비로, 어떤이는 생산으로, 어떤이는 ...일리는 있으면서도 없다. 

14-4. 역사를 어떻게 보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문명교류사라든가 접목된 사실들을 보는 다른 관점은 지금을 되돌아보는 다른 실마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경제사로 환원되는 관점에 의문을 제기하는 일은 경제인류학자인 폴라니의 관점은 맑스의 경제사를 보는 관점과 다르다. 다른 시선 아래에서 펼쳐지는 사유는 또 다른 경로를 만들 수밖에 없다. 교차하기도 하지만, 보지 못했던 다른 공백을 볼 수 있기때문이다. 북친의 관점에서 보는 것, 그리고 마이크 데이비스의 기후-기근의 관점에서 살펴보는 것도 또 다른 시야를 확보하게 합니다. 시대의 한계로 본질적으로 갖는 제한된 시야를 열어주는 또 다른 사실들을 접목시키는 것이 현실의 바다를 조금도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아닐런지요.

너에게 가는 길

14-5. 김우창은 시적 삶의 회복을 이야기한다. 강팍한 현실을 이겨내는 방편으로 이데올로기의 삶이 아니라 예술이 이를 회복할 수 있으리라 본다. 일상의 예술화. 시적언어도 시적동선도 부족한 건조증에 걸린 일상들은 정작 사회운동의 장에 열려야 하나, 현실은 더욱 더 메마르다. 여유가 집나간 무한궤도 상의 나날이다. 더 열심히 돌면 돌수록 소진된다.

14-6. 하트는 헤겔의 변증법적 사고의 맹점을 이야기한다. 현실이라는 것이 조각조각 모여 총체성을 발휘하는 것이 아니라, 핵폭탄에 의해 깡그리 소멸되며 다시 장을 여는 국면이 오히려 우세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 헤겔이 말하고 있는 그 전제에 대한 일갈은 맑스의 머리를 거꾸로 쳐박고 있다는 표현과 맥이 닿은 것일까?  

14-7

 

사회

14-13. 부르디외는 상징자본, 문화자본을 이야기한다. 계급이 다른다는 것. 그것을 넘어서지 못하는 문화의 이전이 존재한다. 환원의 사유는 차제하더라도 열외의 세상은 여전하다. 그래서 스피박 호비바바는 이야기한다. 열외자가 과연 말할 수 있느냐고 말이다. 암묵지보다 더 견고해서 지금 사회의 틀로는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는다고, 끊임없이 열외자는 생성된다고 말이다. 지금의 상식으론, 지금의 주류문화로 건질 수 없는 무엇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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