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ing)
내가 할 수 있는 기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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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싱어,1996, 세종서적
궁극적인 선택 ultimate choice
1. 윤리와 이기주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궁극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선택이나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생각해놓지 않으면 안된다. 정작 행위를 하게 될 때 그 행위의 여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으므로 다양한 선택 가운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선택으로 인한 행위를 뒤덮으려는 합리화의 나락으로 급속히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선택으로 여러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미 몸은 반대편에 서있게 되는 경우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2. 궁극적인 선택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짓을 하고 있는가? - 인생의 주된 목적을 달성하게 되자마자 금방 슬픔과 허전함과 상실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모두가 가치 의식과 목적을 상실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31
Derek Parfit [이성과 인간 Reasons and Persons] - 아주 최근까지 윤리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종교적인 틀 안에서 수행되어 왔다. 비종교적인 사람으로서 윤리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온 사람은 놀랄 만큼 적다. 그런 인물로 부처, 공자, 데이비드 흄, 빅토리아 시대의 공리주의 철학자 Henry Sidgwick을 들 수 있다.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여러 신들에 대한 믿음이 도덕적 사유의 자유로운 발달을 저해해 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고 그것을 대외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대단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아직도 완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 사건은 그 자체가 아주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비종교적인 윤리학은 아주 초기상태에 있다. 따라서 윤리학에서는 수학과 같은 분야처럼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은 종교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윤리에 까지 확장시키는 경향이 있어, 윤리 영역을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시대에 중요한 도덕적 문제는 낙태나 동성애와 같은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가들은 이것을 물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말리아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 가는 이때 보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우리들의 의무는 무엇인가...보다 개명한 기독교인들은 교회가 성(sex) 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성적인 과실이 다른 과실보다 '더 중요한'것이라는 생각에 빠지는" 잘못을 범했다고 인정한다. 오히려 가난과 같은 보다 포괄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9
우리 시대를 주도하는 정치-경제적 모델은 시민이 자신의 사익을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는 것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이와 같은 생각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반성하지 않고 살아간다. 과거에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실패했다고 해서 가치가 우리의 삶에서 사소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단지 이론적인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동시에 윤리적인 실천도 동반돼야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요구된다. 우리의 삶에서 윤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대한 편협한 물질적 이해방식을 거부한다면, 보다 넓고 보다 중요한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함으로써 상호간의 신뢰감을 재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가들도 유권자에게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는 정책보다는 근본적으로 나은 정책을 지지할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41
윤리와 자기이익
일반적인 윤리와 자기이익에 대한 생각은 윤리가 우리와 떨어져 있는 것으로, 심지어는 우리의 이익에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런 생각은 의외로 문화 깊숙이 사고방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는 옳은 생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그른 행동에 대해서는 처벌을 약속한다. 그러나 보상과 처벌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두어 그것을 현세적인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 현대 경제학 근저에도 물질적인 성공만을 진정한 성공인 양 방송하고 만들어버린다.
마이더스의 손 - 황금으로 변해서 굶어죽었다.
칼뱅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종교와 일상 생활을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일상 업무를 보다 잘 수행하면 할수록, 신의 영광을 위해 보다 많은 일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윤리적인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는 내 친구의 이익뿐만 아니라 내 적의 이익도, 내 가족의 이익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의 이익도 고려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의 이익과 선호를 완전히 고려하고 나서도 행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 중 그 행위가 가장 좋은 것이라는 판단이 들 경우에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사는 것은 세계를 보다 총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273-4
윤리의 최고 원리를 공유하는 두 집단간의 이견이 아니라, 윤리적인 원리에 헌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투쟁임을 알 수 있다. 전자는 돈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평한 배려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며 후자는 자기 자신의 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347
윤리를 정치보다 우선시 할 경우, 사람들은 누구를 이해 투표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길 원하는지에 따라 평가되기보다는 지금 당장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당신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자원 배분 상태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리고 당신이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윤리적인 삶은 사는 것은 단지 올바른 태도를 갖고 올바른 견해를 표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348-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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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윤리와 일상을 하나가 되게 만든다면, 삶의 가치나 선택이 다시 복권될 수 있을 여지가 있는가? 회자될 수 있는가? 삶이 좀더 가치로 나올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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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녕하세요. 저는 도서관이용자로써 화가 나서 도저히 참을 수가 없네요.
지난주에 4시쯤에 늦은 점심을 먹고 있는데 매점과자나 식권판매하시는 아주머니 직원분이 오셔서 따지더라구요.
제가 오는 길에 도시락에 라면을 말아먹을려고 컵라면을 사왔습니다.
더운날씨에 대형마트를 들러필요한걸 사고 컵라면도 사들고 와서 먹었는데 매점 아주머니께서
"여기서는 라면같은거 밖에서 사온거 가지고 와서 먹으면 안되요" 라고 하시기에 "알았습니다" 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컵라면판매하는데 밖에서 사와서 먹으면 안되죠" 그래서 "네 알았습니다"라고 말하고 "여기 오면서 밖에서 사온거라 먹었다고 알았다"고 말을 했는데도
"여기는 물값도 있고 쓰레기(컵라면 용기가 쓰레기봉투에 따로 분리되어있더라구요)버리는 값도 있다고 다 라면값에 포함이 되어있는데 밖에서 샀으면 밖에서 먹고 와야된다"고 하시더라구요
"그래서 알았다고 컵라면 용기는 도서관밖에 가지고 가서 갈때 버리고 갈께요" 했는데 "
도서관밖에서는 쓰레기 버리면 안된다고 하더라구요" 도서관밖에 지정된 쓰레기 버리는 곳에 쓰레기를 버리면 안된다는게 말이되나요?
정말 말이 안통하는 직원이더라구요.
제가 오는길에 컵라면을 사가지고 먹었지만 알았다고 무슨말인지 안다고 해도 계속 따지고 사먹기를 강요하더라구요.
제가 돈이 좀 여유있으면 편하게 고시원월로 끊어서 공부하지 시도서관에 와서 먹고 공부하겠습니까?제능력탓이지만 이런식으로 서럽게 하는 시립도서관 매점 아줌마정말 화가나서 못참겠습니다.
자기가 파는 컵라면 안사먹었다고 따지는 아줌마 직원분!!
시립도서관이 식당매점으로 팔아서 남는걸로 운영하는지 정말 궁금합니다.
제가 어린 나이도 아니고 서른인데 계속 밥먹는 사람한테 도서관 컵라면 안사먹었다고 계속 말도 안통하게 인상찌푸리면서 따지는 데 정말 서럽고 화가납니다. 안사먹은 거 죄송스러워서 알았다고 계속 말을 하는데도 따지고 드는데 이제 시립도서관에서 밥먹는게 무섭습니다.
어떤거 말도 안되는걸로 공부하는 학생들한테 이런식으로 따지니까요.
시립도서관 **에 있는 도서관이지만 **시민으로써 정말 창피하고 다신 가고 싶지 않습니다.
2.
안녕하십니까.
귀찮기도하고 해서, 건의할까말까 망설였지만 가감없이 솔직하게 건의하겠습니다.
쓴소리라도 시립도서관 발전, **시민들에 도움된다는 긍정적이고 오픈마인드로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1) 직원 품성 문제 -이용자가 죄인입니까? 불친절에 무사안일 천하태평까지..
8월14일 3층 인터넷실에서 겪은 일입니다. 저녁때 도서관에 도착해서 2층에서 다큐멘터리영화와 방송 등에 관련된 책좀 보다가 인터넷 검색좀 할까해서 3층 CRT컴퓨터실에 갔습니다. DSLR 고급기종으로 HD영상 촬영까지 한다는 기종이 있다는 것은 획기적인 정보였습니다. 그래서 해당제품의 HD 화질 샘플 동영상 2분짜리를 보고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말총머리 20대 여직원이 오더니 "이거 보시면 안되거든요" 한마디만 하고 휙 사라졌습니다. 저는 황당했죠. 무슨 놈의 정보화센터인지 IT플라자인지 하는 곳에서 첨단 문화콘텐츠인 다큐영화 관련 정보도 검색 못한다는 것인지 어안이 벙벙하고 억울했습니다.
그 여직원에게 항변하기 위해 1층사무실로 가서 만났습니다. "아까 오해한 것 아닌가요?"라고 하니까 "(그러면) 그게 어떤 (영상인)거예요?"라고 물어서 자세히 설명해줬습니다. 그런데 그 여직원 또한번 나를 황당하게 만듭니다. 내 말을 들었으면, 오해해서 미안하다, 좀더 신중하게 상대방한테 어떤 영상을 보고있는지 먼저 물어보겠다든지 하는 사과성 답변 한마디 없이 저쪽으로 휙 사라져 버리는 겁니다. 짜증 확났지만 그냥 집으로 왔습니다.
여기서 생각해봅니다. 해당 여직원 사과해야 합니다. 나아가, 시립도서관 직원들 서비스 정신 제대로 있습니까? 별로 없거나 그저 그렇다고 봅니다. 어디 패밀리레스토랑이나 피자가게, 백화점 가면 얼마나 친절합니까. 주문받을때 무릎까지 구부리고 주문받습니다. 시립도서관도 시에서 민간위탁 받아 운영된다는데 서비스 더 좋아지라고 그런 거 아닙니까? 목포 시립도서관 직원들은 이용자들을 편견과 백안시하나요? 모두 고시원 학생들로만 생각하고 쳐다봅니까? 직원분들보다 더 똑똑하고 목적의식을 갖고 이용하는 시민들도 많고, 시립도서관에 불평많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시민대상 서비스 매뉴얼을 만들어서 연습하고 실천해보세요. 할수 있는데 왜 안하는 겁니까?
직원들 하는 일 솔직히 말해 크게 힘든 일 없습니다. 그렇다고 친절하지도 않지요. 창의적으로 뭔가 더 서비스하려고 아이디어 짜내고 합니까? 무사안일 천하태평입니다. 2주1회 월요일 쉬고 밤11시까지 당직도 한다고요? 거리에서 어르신들 폐지주워서 하루 몇천원 번다고 합니다. 동남아시아 빈민국 한달 생활비가 1만원도 안되는데 많다고 합니다. 돈을 떠나서 도서관 직원인만큼 최대한의 직업의식을 발휘하세요.
직원분들 제발 서비스 정신 높이고, 정적인 도서관이지만 활발하게 즐겁게 이용할수 있게 만드세요. 시립도서관 자체 경영평가, 직원모니터링 하세요. 서울시청처럼 공무원 워크아웃제 도입하세요.
(2) 시립도서관인가? 시립고시원인가? 2층 죽은 대출실!
도서관에서 월권으로 돈받는 곳은 **밖에 없습니다. 공공도서관. 시립도서관. 큰돈은 아니겠지만 그 돈 받아서 어디에 씁니까? 현실적으로 도서관에서 대입,취직공부하는 건 이해합니다. 그런데 그걸 이용해 왜 돈을 받나요? 그돈으로 신간이라도 구입하나요? **시립도서관처럼 신간책 없는데 없습니다. 완전히 죽은 곳이 2층 대출실입니다. 서울이나 구립, 하다못해 **공공도서관 가보세요. 신간책들이 훨씬 많고 대출자들이 시립에 비해 5배는 많을 겁니다. 이용자가 이렇게 적은데도 시립 2층 대출실은 직원이 2명입니다. 왜 **시민이 시립도서관으로 책 빌리러 안올까 자문자답해보세요.
창의적으로 노력하자 이겁니다. 철밥통처럼 하루종일 지겨움에 지쳐가며 도서관 자리만 지키다 퇴근하지 말고요. 고시실 월권 돈받아서 신간책 구입하세요. 신간책 살돈 없으면 시민대상 모금이라도 하세요. 기증도 받으세요. 공공도서관은 헌책냄새 난다고 공기청정기도 있고, 대출실은 대부분 책읽는 사람들만 이용합니다. 책상위에 책메모하라고 메모장도 볼펜도 있습니다.
시립은 2층 대출실마저 완전히 고시실입니다. 도서관 전체가 거의 시립고시원 수준입니다.. 책복사기도 스캐너도 없습니다. **시 도서관들은 선택한 책들을 택배로 보내주는 서비스도 합니다. 며칠전에 더운날 대출실에 책검색하는데 선풍기 한대 없어서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습니다. 전체적으로 이거 완전 죽은 도서관, 죽은 대출실 아닙니까? 창의적으로 열정적으로 일하자 이겁니다.
(3) 인터넷실. 이게 IT플라자입니까?
LCD컴퓨터실은 대입,취직준비생들이 하루종일 교육동영상만 봅니다. 이해합니다. lcd실을 차라리 수험전용 동영상실로 아예 지정을 해서 지정좌석제로 하루 500~1000원씩 받든지 양성화하세요. 고시실은 돈받지말고 차라리 동영상실을 돈을 받는게 낫다고 봅니다. 30석 하루 총3만원 한달 총90여만원이면 1~2만원짜리 신권을 50~90권을 구입할수 있습니다. 대단한 양입니다.그리고 그곳 컴퓨터 밑이나 자판기나 온통 먼지투성이 입니다. 일년에 한두번 청소하나요? 먼지 청소? 직원들과 이용자들 함께 청소하세요. 좋아서 참여할 겁니다. 또, 사양도 저급이고 백신,악성코드 방지 프로그램,시스템 최적화 전혀 안되어 있습니다. V3라이트 깔아서 검색해보니 바이러스 3개, 이수비로 악성코드 검색하니 10개도 넘습니다. 시작프로그램 보니 20개도 넘습니다. crt 모니터 hz도 현재 60인데 깜빡거리지 않고 이용자 눈이 덜 피로하지만 그냥 대충 설정되어 있습니다.
이래가지고 512메가 램인 컴터가 제대로 돌아갈까요? IT플라자는 최첨단 문화콘텐츠를 다양하게 접하고 배우고 즐기는 곳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성인영화 게임 채팅은 제외하고 나머지 각종 정보를 접하도록 프로그램이나 아이디어의 놀이마당이 되어야 합니다. 시립도서관 정문에 붙은 IT플라자라는 현판, 이거 정말 부끄럽지 않나요? 프로그램 최적화 해놓으세요. 다들 좋아할 겁니다. 아이디어를 짜세요. 이상한 편견으로 이용자들한테 "그거 보지 마세요"라고 훈계나 감시나 하지 말고요.
프로그램도 포토샵 기초과정 등만 있는데 그게 IT프라자의 목표입니까? IT 강국 IT 정보화교육, 도대체 뭘 어쩌자는 겁니까? 장비,사양,속도는 피시방보다 못하고, 프로그램도 거의 전무하고 도대체 뭐죠? 이래가지고 도서관이 정보화의 허브 구실을 할까요?
(4) 야외 휴게실 만듭시다.. 외
1층 현관은 완전 흡연구역입니다. 야외 휴게실을 문태고쪽 1층 대출실 옆 주차장 등을 선정해 만드세요. 흡연자들 그쪽으로 유치하면 금연구역 어쩌고 저쩌고 맨날 안싸워도 되지 않습니까? 1층 어린이들도 왕래하는 1층 출입구 맨날 담배냄새 납니다. 담배냄새에다 담배피는 것 보고 배우라는 건가요?
2층 정수기에 종이컵이나 물컵 좀 비치합시다. 컵 한두개 있던데 완전 비위생 아닙니까? 누가 그컵으로 물을 마시겠습니까.
이상은 ** 시립도서관에 대한 저만의 경험담과 생각입니다.
도서관 이용자들과 직원들이, 자유롭게 토의해서 좀더 유익하고 살아있는 도서관으로 만들어 보면 좋겠습니다.
공개적이고 구체적인 답변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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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힌 글을 보셨나요? 당신의 몸은 어디에 가까운가요? 당신의 가슴은요? 당신의 차가운 머리는요? 당신이 식당아주머니라면, 당신이 도서관 직원이라면? 도서관 직원이 아니라 시간제근무를 하는 일용직이라면? 도서관 관장이라면? 도서관 운영위원회 위원이라면? 며칠전 도서관 게시판 질의응답란을 보다 마음에 걸려 가져옵니다.
두분 모두 도서관에서 모욕에 가까운 일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그 절박함이 가슴에 응어리가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절박함을 따라가자니 응당 소외된 도서관 이용객의 모습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 절박함은 끝까지 그 감정을 가지고 고스란히 올라갈까요? 당신이 관장이라면 어떻게 하실거죠. 당장 바꿀 수 있을까요? 실무자들은 위탁을 주었으니, 매점이 운영되면 어쩔 수 없다. 매점 위탁자가 직원에게 그렇게 시킨 것을 어쩌겠느냐고 하겠죠. 식당 아주머니 이야기를 들으면 그런 사람 한두사람 봐주게 되면 장사 못한다고 하며 또 도서관에 대고 뭐라하겠죠. 설령 운영위원회에서 두번째는 논의가 될 가능성은 큰데, 우리의 권한과 예산에 한정이 있으니 쉽지 않아 몇건은 처리가 되겠죠. 그런데 첫번째는 논의조차 되지 않고 배제될 확율이 크겠죠. 그런데 절박한 이용자들은 학생을 비롯해 이런 친구들이 많이 있겠죠. 직접적인 표현을 하지 못하겠지만요.
아마 절박함은 희석될 것이고, 게시판에도 형식적인 답변이 처리될 확율이 큰 것이겠죠. 일이 처분되듯이 말입니다.
한번 이렇게 생각해볼까요. 게시판에 글을 올린 두분이 시간이 지나 한분은 공무원으로 한분을 일터를 얻고 상대적인 여유가 생겼다고 해봅시다. 아마 저처럼, 아니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이들이 도서관에서 대접을 받았던 절박함은 사라질 겁니다. 어쩌면 행간의 주장대로 서비스가 형편없으니 삼진아웃제 하고, 친절 모니터링해서 시간제이든 일용직이든 상관없이 근무시간 규정도 개념없는 소비자 정신에 투철하지 않는다는 보장도 없겠지요.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그래요. 시간이 지나도 그런 절박함들이나 일리들을 빗겨서는 관심이나 유사답은 없을까 하는 겁니다. 내가 식당아주머니이고, 위탁자더라도 꼭 사정이 있는 친구들은 봐줄 수 있는 여력은 없는 것인지? 도서관운영위원으로 이렇게 빈 사각지대는 공적인 세금으로 내는 것이므로 별도의 공간을 만들어내야 한다던지? 이런 친구들은 운영위원회에 참관시켜 소외된 시선이나 절박함이 반영되도록 한다던지? 관장으로 예산만 탓할 것이 아니라 적은 예산으로도 일용근무자나 시간제 근무자들의 여건이나 관리를 개선시키는 노력을 정녕 불가능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가질 수는 없는 것인지 말입니다.
게시판 두번째 글의 이야기가 옳으면서도 옳지 않을 수 있죠. ...이따 이어 쓸게요. 쓸데없이 길어지는 듯. 지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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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사회에서 이식받은 시선은 편할 수 있습니다. 너희들 불친절하고 불필요하게 인원이 많은 것 같아보이니 자르고 위탁주면 더 친철해질 것 아니냐?고 그 시선대로 내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대상이 공무원이 아니라 야간시간만 근무를 하게 되는 같은 아르바이트나 생계를 이어나가 다른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는 분이란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합시다.
2. 어쩌면 가슴의 절박함으로 시작한 일들이 이해관계나, 머리의 영역으로 필터링 되어, 아니면 머리의 단계별 관문으로 인해 절박함의 꼬리는 점점 잘리고 일의 머리만 회자가 되어버린다면, 아니면 발의자 개인의 문제로만 단순화시켜 민원인에게 예란 답만 들으면 된다라고 여겨지는 경로를 밟게되는 것은 아닐까요? 몸이 겪은 아픔들은 사과받을 수 있을까요? 그런 아픔이 나만의 아픔이 아니라 말하지 못하는 많은 학생들이 대꾸조차 못하는 식당아줌마가 군림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별반 밥값 정도는 구애받지 않는 사람이니 관심줄 만한 일일까? 여길 수도 있겠죠.
3. 그런데 도서관에서 늘 생길 수 있는 문제라면, 정말 확보되는 예산으로 고시원이나 독서실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을 만들 수 있다면, 그래서 신간이나 감각에 맞는 시설과 설비를 비용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얻을 수 있는 방법들이 모색된다면, 직원들의 감수성이 수험공부하는 학생으로만 대하는 것이 아니라 독서흐름들을 눈치채고 도와줄 수 있는 경지로 다가설 수 있는 것이라면, 서로 불편만을 감내하고 처리하는 나날을 조금은 벗어날 수 있을까?
4. 사실 도서관은 죽어있다. 저기 걸린 동태의 눈알처럼 촛점도 빛도 잃은 채로, 조금 살아있는 어린이의 눈처럼 순수함을 되찾을 방법은 없을까? 어머니의 도서관으로 자랄 수 없을까? 위탁이란 돈의 마수에 걸려 정신없이 사라지는 서비스의 질곡에서 벗어날 수는 없을까?
5. 나는 그 절박함에 전염될 수 있을까? 그(녀)는 시간에 바래지 않는 절박함을 간직할 수 있을까? 당신은 그 절박함의 실뿌리를 입장이 바뀌어도 조금은 남겨놓을 수 있을까? 사람은 바뀌어도 도서관은 늘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텐데. 수십년 전 느끼던 불편함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그런 모멸을 받던 나인데도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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