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에 빠진 아이 구하기 -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가난으로부터 구할 것인가
피터 싱어 지음, 함규진 옮김 / 산책자 / 2009년 7월
평점 :
절판


제프리 삭스의 <빈곤의 종말>과 주제는 같은데 스타일은 완전히 다르다.
<빈곤의 종말> 같은 경우 두께도 상당하고 책상에 앉아 정독했던 것에 비해 이 책은 지하철에서 정말 가볍게 읽었다.
의외로 어렵지 않고 소설처럼 한 번에 술술 넘어간다.
역시 부유한 나라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도 다른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되고 문화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마저 다 누리고 나면 이제는 슬슬 타인의 고통으로도 눈을 돌릴 여유가 생기는 모양이다.
기부는 그저 개인의 선행 정도로만 생각했는데 이렇게까지 시민의 의무로 여겨질 수 있는 건지 미처 몰랐다.
우리나라도 연예인들 중심으로 슬슬 기부 문화가 표면에 드러나고 있지만 솔직히 아직까지는 과연 기부를 일종의 십일조처럼 의무로 여기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오히려 연예인들의 기부를 이미지 관리로 여기고 몰래 할 것이지 알리고 한다고 욕하는 사람들도 많은데 말이다.
이 책에도 그런 비난의 색안경에 대해 이야기 한다.
인간의 본성은 원래 이기적인데 왜 아무 댓가도 없이 남을 돕는단 말인가?
마치 미국이 가난한 나라에 상품을 강매하기 위해 조건을 걸어 놓고 (이를테면 미국 농산물만 수입하라던가, 수입하더라도 미국 배만 이용하라는 식으로) 원조를 하는 것처럼, 기부하는 사람들도 다 목적이 있고 실제적인 이익이 없다면 하다못해 자기만족을 위해서라도 하는 것이니 순수한 의미에서의 선행은 없다는 식이다.
이런 삐딱한 시선이 기부 문화 확산에 가장 큰 걸림돌이라는 것은 이미 누누히 지적해 왔다.
지만원 같은 사람은 문근영이 기부하는 게 외할아버지가 빨치산이었던 거 숨기려고 한다고 비난하지 않았던가!
또 이런 사람도 있다.
아프리카 난민 구제할 돈 있으면 우리나라 애들이나 돌봐라.
정작 자기는 아프리카는 커녕 어디에도 기부라고는 해 본 적도 없으면서 말이다.
선행은 스스로의 도덕적 양심 때문에 하는 것이지 그것을 자랑할 필요도 없고 또 안 했다고 해서 비난할 수도 없는 일이다.
그렇지만 그건 개인적인 관계에서 그렇다는 거고, 저자의 지적처럼 사회적인 차원에서 보면 부자들의 지나친 소비 행태는 일종의 도덕적 원칙이나 사회적 공감대 같은 기준에서 약간의 제재는 가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몇 억씩 하는 요트를 사서 자랑하면 부러워 하기 보다는, 사회에서 얻은 부를 전혀 나눠 갖지 않는 이들의 이기심을 비난하는 식으로 말이다. 

이 책에도 나온 말이지만 부자가 순전히 자기 힘만으로 재산을 모으지는 못한다.
법률 서비스가 이뤄지고 사회간접자본이 형성되어 작은 돈으로 이용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신용이 확립되어 굳이 내가 나서서 다 조사하지 않아도 안심하고 거래를 할 수 있고 혹시 불합리한 대우를 받으면 언제든지 법에 호소할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기 때문에 나는 안심하고 투자를 할 수 있다.
이런 여건을 사회가 만들어 준 만큼 거기서 큰 이득을 본 사람이라면 당연히 어느 정도는 사회에 내 놓아햐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사회적 환원이 법으로 제정된 게 바로 소득세나 상속세 같은 거고, 한 사회의 집단 내에서 암묵적으로 합의된 게 바로 기부 문화가 아닐까 싶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자들의 소비 행태를 무조건 부러워 할 게 아니라 그들에게 자선을 베풀라고 도덕적으로 요구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기부 문화가 인간의 당연한 도리로 인식될 수 있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살기 좋아지지 않을까.
기부 문화는 차치하고라도 적어도 과소비가 최고의 가치가 되지만 않더라도 지금보다는 훨씬 더 나이질 것 같다.
특히 교육 분야에서 그렇다.
책에도 누누히 나오지만 자기 아이를 최고로 키우기 위해 교육비에 엄청난 투자를 하는 것이 반드시 도덕적으로 정당한 것은 아니다.
심지어 여기 나온 기부자들은 자식의 생명과 굶주리는 아프리카 아이들의 생명마저 같은 선상에 놓고 비교하면서 혹시 내 아이에게만 지나친 애정을 보이고 있지 않은지 괴로워 한다.
우리나라 엄마들이 이 책을 읽으면 적어도 이 부분에서는 뒤로 넘어갈 것이다.
세상에 내 아이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딨냐면서 말이다.
대한민국 출산율이 아무리 정책적으로 지원을 해도 늘지 않는 결정적인 이유는 다른 무엇도 아닌 바로 교육비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애 키우는데 돈이 너무 많이 드니까 하나만 낳은 거다.
정말 애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면 아예 낳지를 않을텐데 어떤 부부든 아이는 꼭 낳으려고 한다.
더군다나 우리나라처럼 대를 잇는 걸 최고의 가치로 생각하는 나라에서 왜 애를 딱 하나만 낳겠는가?
애들 교육비에 너무 많은 돈이 들기 때문이다.
잘 키우는 건 고사하고 남들만큼만 키우려고 해도 노후 대책을 못 만들 만큼 허리가 휜다.
나 혼자 돈 안들이고 공교육에 맡겨 키우려고 해도 환경이 나와 아이를 압박해 오니 시골 가서 공동체 만들고 대안 교육 하지 않는 이상 이 미친 사교육 열풍에 휘말리지 않을 수 없다.
그러므로 해결책은 이 책에 나온 것처럼 아이들의 교육 환경에도 과소비 개념을 도입해서 자기 아이에게 최상의 교육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도 그 한계가 있어야 하고 지나칠 때는 도덕적으로 비난받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명품 열풍도 마찬가지다.
싸구려 백 들고 다니면 무시하고 연예인들이 몇 백씩 하는 가방 들고 나오면 열광하는 이 분위기가 바뀌어야 기부 문화가 확산될 수 있다.
저 연예인은 몇 백 하는 신발 신고 가방 들었다, 와 대단하다, 부럽다, 이게 아니라 쟤는 저렇게 돈을 많이 벌면서 어떻게 하나도 기부를 안 할 수가 있냐, 정말 뻔뻔하고 이기적이구나 이런 문화가 형성되야 남들 눈 무서워서라도 돈을 좀 낼 게 아닌가. 

책에는 대부호들의 각성을 촉구한다.
부자들은 워낙 돈이 많으니까 수입의 10%는 써야 하고 대부호는 아니더라도 상위 1% 안에 낄 수 있는 사람들은 5%, 그리고 중산층 이상의 부자라면 (대충 상위 10% 내외) 1%는 기부하라고 권고한다.
심지어 어떤 회사에서는 내가 기부를 하지 않겠다고 공개적으로 선언하지 않는 이상 내 월급의 1%는 기부금으로 나간다고 한다.
마치 세금을 떼듯 말이다.
이슬람교에는 구빈세라는 게 있고 기독교인도 십일조를 하지 않은가.
10분의 1도 아니고 100분의 1인데 정말 우리 모두 좀 더 의무감을 가지고 진지하게 이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봐야 한다.
그리고 책에도 나온 바지만 기부금을 받는 단체들은 반드시 어디에 이 돈이 들어가고 어떻게 쓰이는지 명확한 데이터를 보여 줘야 한다.
<히말라야 도서관>의 저자는 MS 출신인 만큼 모든 성과를 가시적으로 숫자를 이용해 보여준다.
만약 내가 기부한 10만원이 어떤 아프리카 아이의 교육비로 들어갔다고 알 수 있다면 나는 다음 달에도 기꺼이 기쁜 마음으로 10만원을 또 기부할 수 있을 것이다.
영화에도 나오지 않은가.
제목은 생각이 안 나는데 잭 니콜슨이 아내가 죽은 후 혼자 여행을 하면서 자신이 후원하고 있는 아프리카 소녀에게 편지를 쓴다.
내가 어떤 어린이의 교육을 책임지고 있다고 생각하면 이보다 더 보람있게 돈을 쓰지는 못할 것 같다.
이런 책이 나올 정도면 미국에는 기부 문화가 상당한 공감대를 얻고 퍼져 있고 그래서 <히말라야 도서관>의 저자도 그저 평범한 직장인에 불과함에도 단체를 설립하고 아시아 곳곳에 도서관과 학교를 지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제프리 삭스의 책을 읽고 절대빈곤은 나라도 해결할 수 없는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노력하면 충분히 얼마든지 없앨 수 있는 과젱미을 배웠다. 
마치 우리가 천연두를 박멸한 것처럼 말이다.
이번에 나는 이 책을 읽으면서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기부가 시민의 의무이고, 내 가족, 우리나라 국민만이 내 이웃이 아니라 멀리 떨어진 아프리카 아이들까지도 내 공동체의 일원임을 배웠다.
그러므로 아프고 병들어 최저 생활마저 누리지 못하는 그들의 비참한 삶에 나도 일정 부분 책임감을 느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정말 내가 내는 돈은 너무 작고 보잘 것 없지만 이런 작은 돈들이 모여 대부호들이 내는 엄청난 기부금과 합해져 세상을 조금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다. 
어떤 단체에 어떻게 기부를 할지 고민해 봐야겠다. 
무엇보다 소시민들의 기부금은 비록 작지만 여러 사람이 한다면 기부 문화 형성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내가 가진 기술을 이용해 육체적으로 봉사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책에는 이른 나이에 출산해 질과 항문 사이에 누공이 생긴 아프리카 여성들을 수술해 주는 산부인과 의사도 나오고, 눈을 수술해 주는 안과 의사도 나온다.
이런 일이라면 나도 큰 돈은 못 내더라도 내 기술을 이용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내가 공동체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을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겠다.
새삼 김장훈이나 신애라 같은 연예인들이 대단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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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
    from 木筆 2009-09-01 14:27 
    >> 접힌 부분 펼치기 >>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싱어,1996, 세종서적 궁극적인 선택 ultimate choice  1. 윤리와 이기주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궁극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