뱀발.    

2. 중간 모임이야기도 있는데, 그 생각이 책의 흔적에 묘하게 겹치게 된다. 미묘한 문제들이긴 하지만 참 다르다 싶다. 다름으로 인해 보이지 않는 것이 많다. 그리고 여전히 남자의 시선이기에 보이는 것도 있지만, 미처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더 많다. 생각이 하나같지 않은 뿐만 아니라... 

3. 국장을 지켜보며, 여러 생각이 든다. 천천히 생각을 모아보기로 한다. 60-70년대에 겪은 것이 아니라 다시보는 것도 필요한 듯싶다. 영자의 전성시대와 그 이전, 오발탄....대학생에 대한 변화를 되돌아보지 않으면 안될 듯싶다. 접힌 내용은 내일 좀더 보태고 다시 갈피를 잡아놓을 참이다. 밤이 많이 이슥하다. 

blog.ohmynews.com/booking/rmfdurrl/240014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싱어,1996, 세종서적

궁극적인 선택 ultimate choice 

1. 윤리와 이기주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궁극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선택이나 경우의 수를 다양하게 생각해놓지 않으면 안된다. 정작 행위를 하게 될 때 그 행위의 여파에 대해 깊이 생각해보지 않았으므로 다양한 선택 가운데 그래도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선택으로 인한 행위를 뒤덮으려는 합리화의 나락으로 급속히 빠져 버리기 때문이다. 순간적인 선택으로 여러 가능성을 차단하고 이미 몸은 반대편에 서있게 되는 경우가 현실이기 때문이다.) 

2. 궁극적인 선택을 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해도, 어떻게 선택해야 하는지 안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3. 도대체 무엇때문에 이짓을 하고 있는가? - 인생의 주된 목적을 달성하게 되자마자 금방 슬픔과 허전함과 상실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동시에 이들 모두가 가치 의식과 목적을 상실했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31

Derek Parfit [이성과 인간 Reasons and Persons] - 아주 최근까지 윤리에 대한 연구는 대체로 종교적인 틀 안에서 수행되어 왔다. 비종교적인 사람으로서 윤리학을 평생의 업으로 삼아 온 사람은 놀랄 만큼 적다. 그런 인물로 부처, 공자, 데이비드 흄, 빅토리아 시대의 공리주의 철학자 Henry Sidgwick을 들 수 있다. 신에 대한 믿음 그리고 여러 신들에 대한 믿음이 도덕적 사유의 자유로운 발달을 저해해 왔다. 대다수의 사람들이 신을 믿지 않고 그것을 대외적으로 인정하게 된 것은 대단히 최근의 일이다. 그것도 아직도 완전히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이 사건은 그 자체가 아주 최근의 일이기 때문에 비종교적인 윤리학은 아주 초기상태에 있다. 따라서 윤리학에서는 수학과 같은 분야처럼 우리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 어떤 점에 도달할 수 있는지조차 확실하지 않다.

종교적이지 않은 사람은 종교에 대한 회의적 태도를 윤리에 까지 확장시키는 경향이 있어, 윤리 영역을 종교적으로 보수적인 사람들에게 양보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우리 시대에 중요한 도덕적 문제는 낙태나 동성애와 같은 것들이 아니다. 오히려 도덕가들은 이것을 물어야 한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말리아에서 서서히 굶어 죽어 가는 이때 보다 부유한 나라에 사는 우리들의 의무는 무엇인가...보다 개명한 기독교인들은 교회가 성(sex) 문제에 몰두하는 것은 잘못이라는 사실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교회가 "성적인 과실이 다른 과실보다 '더 중요한'것이라는 생각에 빠지는" 잘못을 범했다고 인정한다. 오히려 가난과 같은 보다 포괄적인 문제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39

우리 시대를 주도하는 정치-경제적 모델은 시민이 자신의 사익을 인생의 최종 목표로 삼는 것을 용인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부추기고 있다. 과연 이와 같은 생각이 현명한 것인지에 대해서 우리는 개인적으로든 집단적으로든 반성하지 않고 살아간다. 과거에 유토피아적인 이상이 실패했다고 해서 가치가 우리의 삶에서 사소한 것으로 전락해 버렸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단지 이론적인 차원에서 그쳐서는 안된다. 그것은 동시에 윤리적인 실천도 동반돼야 한다. 변화를 위해서는 새로운 힘이 요구된다. 우리의 삶에서 윤리가 차지하는 비중에 대해 생각을 바꾸는 것은 개개인의 삶을 변화시키기에 충분할지도 모른다.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자기 이익에 대한 편협한 물질적 이해방식을 거부한다면, 보다 넓고 보다 중요한 목적을 위해 함께 일함으로써 상호간의 신뢰감을 재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된다면 정치가들도 유권자에게 물질적 풍요를 약속하는 정책보다는 근본적으로 나은 정책을 지지할 용기를 가지게 될 것이다. 41

윤리와 자기이익

일반적인 윤리와 자기이익에 대한 생각은 윤리가 우리와 떨어져 있는 것으로, 심지어는 우리의 이익에 생각하도록 만든다. 이런 생각은 의외로 문화 깊숙이 사고방식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기독교는 옳은 생동에 대해서는 보상을, 그른 행동에 대해서는 처벌을 약속한다. 그러나 보상과 처벌을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가 아닌 다른 세계에 두어 그것을 현세적인 삶과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 이런 이분법적인 생각은 프로이트의 정신분석도 현대 경제학 근저에도 물질적인 성공만을 진정한 성공인 양 방송하고 만들어버린다.


090822  학생의 문제가 아니라 어른이의 문제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단 한번도 되묻지 않는다. 학생을 삶을 대신 사는 것만이 아니라.

관계만 생각할 뿐 그 울타리 밖은 안중에 없다. 그곳에서 개선의 여지나 또 다른 출발점이라 여기지 않는다. 또 다른 관계를 찾아나서기만 할뿐.( 여자들은 구체적인 상황에 대해 배려하는 태도를 가지고 직접적으로 반응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상황에 대한 여성의 생각은 그들이 맺고 있는 관계에 좌우된다. 277

마이더스의 손 - 황금으로 변해서 굶어죽었다.

칼뱅은  유사 이래 처음으로 종교와 일상 생활을 하나가 되게 만들었다. 자신의 일상 업무를 보다 잘 수행하면 할수록, 신의 영광을 위해 보다 많은 일을 한 것이라고 주장했기 때문이다.(그렇다면 윤리와 일상을 하나가 되게 만든다면, 삶의 가치나 선택이 다시 복권될 수 있을 여지가 있는가? 회자될 수 있는가? 삶이 좀더 가치로 나올 수 있는가?)

윤리적인 사고의 가장 근본적인 단계는 내 친구의 이익뿐만 아니라 내 적의 이익도, 내 가족의 이익뿐만 아니라 낯선 사람의 이익도 고려하는 것이다. 이 모든 사람들의 이익과 선호를 완전히 고려하고 나서도 행할 수 있는 여러 대안들 중 그 행위가 가장 좋은 것이라는 판단이 들 경우에만, 진정한 의미에서 그것을 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다. 윤리적으로 사는 것은 세계를 보다 총괄적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273-4

윤리의 최고 원리를 공유하는 두 집단간의 이견이 아니라, 윤리적인 원리에 헌신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사이의 투쟁임을 알 수 있다. 전자는 돈이나 권력이 없는 사람들에 대한 공평한 배려를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며 후자는 자기 자신의 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이다. 347

윤리를 정치보다 우선시 할 경우, 사람들은 누구를 이해 투표하고 어떤 일이 벌어지길 원하는지에 따라 평가되기보다는 지금 당장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에 따라 평가된다. 당신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 사이의 자원 배분 상태가 잘못되어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그리고 당신이 부유한 나라에 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윤리적인 삶은 사는 것은 단지 올바른 태도를 갖고 올바른 견해를 표출하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348-9 
 
 -----------------------------------------------------------------------------------

부모가 남의 아이보다 자기 아이를 더 사랑하며, 따라서 남의 사정을 살피기 전에 자기 아이의 서정을 살피는 일이 지극히 당연하다(- 내새끼를 사랑하기 마련이다-)는 점을 도외시한 책임의 원칙은 널리 받아들여질 수 없다. 그러나 그것은 부모가 남의 기초적인 어려움을 외면하면서 자기 아이에게 사치품을 사주는 일을 정당화하지는 못한다. - 이상적인 부모가 되는 일과 모든 인간은 동등하다는 생각을 실천하는 일 사이에는 절실하고 타협할 수 없는 갈등이 있다.

가르치는 학생의 부모가 매년 고액을 들여 명문대에 다니도록 하는 것이 잘못된 일이냐고 묻는다. 나는 그만한 돈을 들여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는 일은, 그것이 자녀의 이익만이 아니라 미래사회의 이익을 위한 투자일 때에만 정당화된다고 대답한다.

우리 대부분이 가족에 대한 의무를 , 특히 자식에 대한 의무를 가장 우선시한다. 가족을 우선시하는 것은 자연스러울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경우에 옳은 행동으로 보인다. 신장 기증으로 죽을 확율은 4천분의 1인 신장기증하는 크라빈스키는 다른 시각에서 보았다. "가족을 신성시하는 것은 모든 욕망과 이기심을 합리화하는 것입니다. 내가 담배회사에서 일하는 건 돈이 좋아서야라고 아무도 말하지 않죠.' '잘 알겠지만, 나도 이런 곳에서 일하기 싫어. 하지만 애들을 돌봐야 한다고'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게 그런 식으로 변명되죠" 신장을 그대로 갖고 있는 일은 남의 생명보다 자신의 생명을  4천 배 더 중시한다는 뜻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대부분 뭔가 옳은 일을 하고 칭찬을 받거나, 못된 일을 하고 비난을 받거나 둘 중 하나라고만 여긴다. 그러나 윤리적인 삶은 그보다는 더 미묘하다...공공의 도덕 코드에 맞춰 행동했다면, 그 점에 대해서는 칭찬받을 만하다. 그 이상을 하지 않았다고 비난을 받아서는 안 된다...우리는 우리가 한 행동이 우리가 사는 세계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를 평가하고, 그에 따라 그 사람을 평가하는 윤리 문화를 일굴 필요가 있다.

국제공정분배 fair share international  5.10.5.10(오스트레일리아 애들레이드)
- 장애인들을 위해 연 총소득의 5퍼센트를 기부한다.
- 환경적으로 유해한 소비를 매년 10퍼센트씩 줄여서, 더 이상 줄일 수 없을 때까지 한다.
- 소속 지역사회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데 시간의 5퍼센트를 쓴다
- 매년 최소한 10차례씩 민주주의적 정치 활동을 한다. 가령 자신의 지역구 의원과 접촉하는 일 등.

자선의 황금 사다리 golden ladder of charity - maimondides

(1) 가장 낮은 차원의 자선은 [망설이면서 주는 것]
(2) 즐거운 마음으로 주지만 고난을 겪고 있는 사람의 필요에 적당한 만큼 주지 않는 것
(3) 적당량을 즐겁게 주지만, 요청했을 때만 주는 것
(4) 적당량을 즐겁게 아무런 요청이 없어도 주지만, 선물을 가난한 사람의 손에 쥐여줌으로써 그로 하여금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것
(5) 선물을 주된 자신으로부터 도움을 받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는 반면 받는 사람은 누가 자신을 도와주는지 아는 경우
(6) 주는 사람은 누가 도움을 받는지 알지만 도움 받는 사람은 누가 돕는지 모르는 경우
(7) 선물을 주되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누가 누구를 돕는지 알지 못하는 경우.
(8) 다른 사람들이 스스로 자력을 가질 수 있도록 돕는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이렇게 살아도 괜찮은가(ing)
    from 木筆 2009-09-01 17:35 
    >> 접힌 부분 펼치기 >> [이렇게 살아가도 괜찮은가], 피터싱어,1996, 세종서적 궁극적인 선택 ultimate choice  1. 윤리와 이기주의가 충돌할 때 우리는 궁극적인 선택에 직면하게 된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