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인생 그리고 글쓰기(ING)

1.

"만약 공자나 석가나 예수 그리스도가 아직도 살아 있다면 그 교도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행위에 대해 교주 선생이 얼마나 개탄할지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만약 살아있다면 박해받을 수밖에 없다. 위대한 인물이 화석이 되고 사람들이 그를 위인이라고 일컫는 때가 오면 그는 이미 허수아비로 변해 있다. 어떤 종류의 사람들이 말하는 위대함과 왜소함은 그들이 그사람을 이용할 때의 효과의 대소를 뜻한다. " 는 가시없는 장미는 없다. 그러나 장미 없는 가시는 많다.로 시작되는 [꽃없는 장미]의 한구절이다.

2.

[성무,(무공이 있는 황제)] - " 새로운 주의의 선전자를 가령 점화하는 사람으로 본다고 하면 상대방에게 정신적인 연료가 있어야만 불이 붙여진다....중국인에게 그런 대목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가 생겨나지 않는다. 중국 역사의 정수 속에는 실제로 어떤 사상도 어떤 주의도 포함되어 있지 않다. 그 정수는 다만 두가지 물질로 이루어져 있다. 칼과 불이다. 그리고 [왔다]가 총칭이다. 불이 북에서 오면 남으로 달아난다. 칼이 앞에서 오면 뒤로 물러난다....다른 나라를 보라. 거기서는 [왔다]에 저항한 자야말로 주의를 가진 인민이었다. 그들은 자기가 믿는 주의를 위해 다른 일체의 것을 희생하고 뼈와 살로써 상대방의 칼날을 무디게 했고 피를 쏟아 불길을 껐다. 칼과 불의 눈부신 색깔이 사라져갔을 때 비로소 밝아오는 하늘이 바라다 보였다. 그것이 새로운 세기의 서광이었다.

서광이 머리 위에 있어도 위를 쳐다보지 않으면 영원히 물질의 섬광만이 눈에 비칠 뿐이다." 



3.

사람들은 종종 중을 미워하고, 여승을 미워하고, 이슬람교도를 미워하고, 그리스도교를 미워하지만 도사는 미워하지 않는다. 이 이치를 알게 되면 중국에 대하여 대강 알 수 있다...짧은 소매만 보기만 해도 곧 하얀 윗 팔을 상상하고, 곧 전 나체를 상상하고, 곧 성기를 상상하고, 곧 성교를 상상하고, 곧 잡교를 상상하고, 곧 사생아를 상상한다. 중국인의 상상력은 이 점만은 약진적이다.

4. [창작할 때의 마음가짐] 314 


- 여러가지 일에 주의를 기울이고, 될 수 있는 한 많이 볼 것. 잠깐 보아서 쓰는 것은 완전하지 않다.
- 써지지 않을 때는 무리하게 쓰지 않는다.
- 어떤 특정한 사람만을 모델로 하지 않는다. 많이 본 것 중에서 모아서 인물상을 만든다.
- 다 쓰고 나서 적어서 두 번은 되읽고,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은 어, 귀, 문은 아끼지 않고 될 수 있는 한 삭제한다. 소설의 재료를 스케치로 줄이거나 스케치의 재료를 길게 늘이지 않는다.
- 외국의 단편소설을 읽을 것. 나는 거의 전부가 동구와 북구의 작품이었고, 일본 작품도 있었다.
-본인 외엔 아무도 모르는 형용사, 형용구 등을 제멋대로 만들지 않는다.
- '소설 작법'이라는 것을 신용하지 않는다.
- 중국의 이른바 '비평가'가 말하는 것은 신용하지 않고, 신뢰할 수 있는 외국비평가의 평론을 읽는다.
 


5.

고진감래라는 말이 있다.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보답이 돌아온다는 말이다. 그러나 과연 그러한가? 아무리 노력해도 안 되는 경우도 있다. 그런 과도한 기대와, 잘못 오해한 현실로부터 좌절이 생겨난다. 그 배경에는 자신에 대한 과신이나 과대평가가 숨어 있다. 루쉰은 그런 나르시시즘을 경계한다.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준다. 따라서 그런 현실이기 때문에 끝없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문학도 어떤 대단한 것이기 때무에 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밖에 할 수 없으므로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자신이 하는 일은 정의를 세우기 위해 대단한 것이 주장하는 따위를 그는 거부한다.

"장자가 말한 것이 있다. '수레바퀴 자국에 괸, 거의 말라가는 물에서 괴로워하는 붕어는 설 입에 침을 묻혀주며 습기를 나눈다'고 그러나 그는 말한다. '차라리 강물 속에 있으면서 서로를 잊는 것이 낫다'고.

슬프게도 우리는 서로를 잊을 수 없다. 이리하여 나는 더욱 더 사람을 속이는 일을 왕성하게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 속이는 공부를 마치지 않는다면 원만한 문장을 쓸 수 없게 되리라.....상호간에 진심을 보여주기 위해서 붓이나 입 또는 종교가의 눈물로 눈을 씻는 경우와 같이 편리한 방법이 가능하다면 물론 크게 좋은 일이지만, 아마도 이런 일이 이 세상에서는 드물 것이다. 슬픈 일이다. 엉터리 글을 쓰면서 진실한 독자에게 미안한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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