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이 나를 물면 

시간이란 것이 참으로 묘하지요. 안개에 가려 드러나지 않는 것도, 바래서 곧 없어져버릴 것 같은 것도 시간이 지나면 또렷이 제 모습을 드러냅니다. 어줍잖은 욕심과 수고를, 헛된 노력들을 양파껍질처럼 벗겨놓은 채, 수줍게 그렇게 자태를 드러내기 마련이죠.  어쩌면 우리가 살아간다는 것이 이상한 것들의 포로가 되어 제대로 된 관계의 그물들 속에 살아보지도 못하고 그렇게 지나치는 것인지도 모르죠. 나와 너-나의 관계도 구분하지 못하며 알아채지 못하며, 내문제인지 너의 문제인지 나와너의 경계의 문제인지 마치 내탓인지 너탓인지 나-너의 탓의 경계에 물린 문제인지. 나르시스의 매혹은 나의 주변을 볼 수 없게 만드는지도 모릅니다. 나로의 주변만 가시권에 들어올 뿐, 너를 느낄 수도 만질 수도 없는 지도 모릅니다. 

나란 양파껍질을 벗겨내는 일이, 어쩌면 너란 양파껍질을 벗겨내는 일과 비슷할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같은 것인지도 모르죠. 내것인데 마치 남의 것인양. 나를 벗겨내었던 일인지도 모릅니다. 너란 놈이 불쑥 내 옆에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비우는 자리에 조금씩 스며드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새벽이 발뒷꿈치를 성큼 물때 모임에 덥쑥 물려버립니다. 나만도, 너만도 아니고 언제부터인지도 모르지만 삶의 가장자리로부터 점점 다가온 것이겠죠. 삶의 심장으로 뚜벅뚜벅 걸어온 것인지도 모르지요. 내생각도 네생각도 아닌 것이겠죠. 아마 너-나의 어깨동무가 꼬옥 나를 안고 있는지도 모르는 일이지요. 

참*, 아***. 올라오는 길 조금 일찍 나서서 저녁을 함께하고 회의를 하며 속내를 대면하게 된다. 되돌이표의 경계를 넘는 일이 애를 쓰는 일이, 월담을 하는 일이 쉽지는 않겠지만, 나로향한 집착의 끈들이, 너로향한 확장이나 경계가 자리잡지 못하고, 섞이지 못해버려 제자리를 끊임없이 맴도는 것은 아닐런지. 나만 사는 일이 아니라 너도 넣고 살거나 너를 안고 사는 일. 덥쑥 너에게 물려, 내생각인지 네생각인지 살아보는 일도 나쁘지만 않겠지. 모임에 예민해지는 것도 모임에 물려보는 것도 그리 손해보는 일만은 아닌 것 같다. 가끔 새벽에 덥썩 물려도. 새벽에 나를 팔아넘겨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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