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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도의 일기일회라는 말이 있다. 일기란 하나의 생애라는 뜻이고 일회란 딱 한번 만난다는 의미인데, 이해하기 쉽게 일생에 단 한번의 차를 달낸다고 해도 좋을 것 같다. 시작이 바로 끝, 다시하지 않는다는 뜻히다. 차를 달여내는 것은 의당 그런 행위와 같아야 한다는 얘기다. 나는 수집도 그런 것이었으면 싶은 생각이다. 아무리 낡은 물건일지라도 새로운 수용방식을 취하게 되면, 전혀 새로운 물건으로 다시 소생하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수용방식을 즉금의 수용방식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만물에 신구가 있닥 할지라도, 신구가 없는 수용방식을 취하게 된다면 늘 지금의 물건으로 바뀌게 된다. 69
사물을 보는 데는 무재주가 상책이다. 마음을 발가벗는다고 표현해도 좋다. 지식으로 무언가를 계산하면, 그 지식으로 측정 가능한 범위 이내의 용소로 말미암아 제대로 볼 수 없는 법이다. 다시말해 지식은 색안경과 같아서 그 색 이외의 색깔이 무엇인지 확인할 길이 없다. 지식이 있다는 것 자체는 전혀 아무런 지장이 없지만, 그 지식의 노예가 되고 나면 사물을 보이지 않는다. 보고 난 뒤 이해하는 습관을 붙이는 것이 가장 중요하며, 혹이라도 그 순서가 뒤바뀌면 아름다움은 모습을 감추고 만다. 70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보는 이의 마음을 잡되지 않은 순수한 것으로 만들지 않으면 안된다. 솔직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을 준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작은 자아를 드러내지 않고, 수동적인 마음을 넉넉히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털끝만한 하나의 미진도 없다면, 그만큼 사물은 거울에 잘 비친다. 충분하게 받아들이기 때문에 직관이 자유롭게 기능하는 것이다. 사상 같은 것을 한껏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금물이다. 그것은 인상을 구속해버린다. 진정으로 사물을 보기 위해서는, 지식은 마지막까지 사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식은 어디까지나 간접적이다. 보는 것과 아는 것은 매우 다르다. 108
많은 수집가에게는 취함만 있고 버림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집에는 항상 옥석이 공존한다. 이것은 이해가 얼마나 선명하지 못한 것인지를 고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추한 것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름다운 것 역시 이해하지 못하고 있음을 폭로할 것이다. 수집의 생명은 통일성이다. 이것이 왜 이렇게까지 지난한 일인 것일까. 오로지 직관적 기초의 빈곤으로 인한 것이라 생각한다. 지적개념에 기대는 자는 끊임없이 좌고우면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안과 회의가 동반하는 것은 정해진 이치이다. 모으는 것에 옥석이 교차하는 것은 숙명적인 결과다. 개념에 선택하는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잘못이다. 109
수집은 생활을 밝게 만드는 존재로 있어야 한다. 그저 가지고 노는 행위는 가장 피해야 할 일이다. 과거로 탐닉하는 것은 미래를 향한 전개를 방해하고 만다. 수집은 자신의 즐거움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것을 통해 뭔가 세계의 의미를 제고시켜야만 한다. 아무것도 인류에게 기여할 바가 없다면, 오히려 부끄러워해야 할 행위다. 그것을 단지 이기적인 흥미 차원에서 죽여서는 안 된다. 생활이 수집을 통하여 생기 있고 맑고 심화될 그런 존재로 있어야 한다. 그리하여 타인들과도 그 기쁨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수집이 단순한 개인적인 일로 끝이 나고 생활을 무기력하게, 침체로 빠져들게 한 사례가 적지 않다. 우리는 가지고 노는 것에서 살아가는 방향으로 수집을 심화시켜야만 한다. 57
낙관이나 이름에 대한 집착은 수집에 얽힌 가장 많은 병 가운데 하나다. 명성이 있어서 좋다는 관점보다도 물건이 좋으면 명성이 없더라도 좋다는 태도가 훨씬 더 낫다. 오히려 좋으니까 이름이 있더라도 아무 지장이 없다고 한다면, 이치에 들어맞는다. 무명이라서 좋다는 관점이 성립하지 않는다면 이름이 있으니 좋다는 관점도 성립하지 않는다. 좋으니까 낙관을 긍정한다고 하면 조리가 선다. 낙관이 없더라도 좋은 물건은 좋고, 명성이 있더라도 나쁜 물건은 나쁘다. 우리에게는 재명, 무명에 밀리는 일 없이 사물을 즉석에서 직접 바라보는 태도가 긴요하다. 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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뱀발.
1. 주말 일터일이 비로 취소되어 다행!스럽게 일찍 *전으로 향하다. 꼼지락거리며 가벼운 이책을 보다. 풍경학 관련하여 이름은 들었고, 도서관에서 지나치면서 아직 아니다싶어 책을 들지 않았는데 이렇게 조우하게 된다. 그래서 관련책들을 찾아보았더니 풍경학에 관한 것은 없고 접힌 글처럼 주루룩 달려나온다. 비판적인 면을 다룬 [..두얼굴]의 소개글이 있나했더니, 백지상태다.
2.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가면, 학생들이 숙제하느라 바빠 정작 그림이나 전시물에는 관심이 없다. 소개글을 먼저 읽었으니 그 전시물에 갇혀 별반 새로운 느낌이 솟아나지 않는다. 나도 그 학생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고, 근자에 들어서나 그것이 오히려 느끼는데 방해가 되어 순서를 바꾸었을 뿐이다. 그러고 나니 문득 그리워지는 전시물들이 마음에 깃든다. 그래서 발길이 슬슬 그리로 향한다. 지금도 마음이 그곳에 향하는 전시장이 몇몇 곳이 생겼다. 어쩌면 책한권읽는 것보다 강열한 느낌을 받는 경우도 종종있다.
3. 민예운동과 두얼굴에 대한 지적은 다음으로 넘기기로 한다. 우리의 일그러진 근대와 지식인이 저어해야할 부분의 경계가 고개를 내밀기도 하는 것 같다.
4. 차창밖은 얕은 비가 내리고 밤으로 향하는 농촌의 전경은 아늑하다. 그리고 내내 책을 읽으면서 수집이란 말 대신에 사람이나 사람과 관계를 병치시켰다. 위험한 발상이긴 하지만, 사람과 사람이 대면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일 역시 선입견이 필요하지 않다. 관계의 끈, 너-나의 공간을 만드는 일들이 과거에 연연해하는 것도 아닐 것이다. 지나친 오독이지만 한번 연습해보고 읽는다고 손해보는 일은 없을 것이다. 경도되지 않는다면... ... 주말 빗줄기가 짙어지고, 목련 잎도 목필도 짙어지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