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장을 양보해서 이것이냐? 저것이냐?로 가르는 이분법 사이에 있는 그대로로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가치를 개입하지말고 좋으냐 싫으냐의 문제가 아니라 생명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한 것이 있는 것입니다. 양보해서 이렇게 보더라도 이해하는데 문제가 없습니다. 생명이냐 아니냐의 문제로 두었기때문에 공생이 아니라 박멸, 없애야한다는 정말 위험한 발상이 생기는 것이 아닌가 합니다. 그것도 자본주의가 생긴이후 최근 50년동안 무지막지하게 항생제를 비롯한 박멸의 역사가 아닌가 합니다.
2) 다윈이 그랬나요? 진화론의 나무계통도의 제일 위에 영장류라고 말입니다. 적자생존을 들먹이며 그랬나요? 정말 그랬을까요? 그러면 상호부조론은 어떨까요? 나무 계통도가 아니라 산위에서 물방울(아니 샘물이어도 좋겠군요.)을 떨어뜨리면...산 아래로 계곡따라 ..바닥이 현재라고 합시다. 그러면 미생물, 식물, 동물, 그리고....모두 다 있겠죠. 우월한 것이 아니라 동 세상을 같이 생명이란 흐름을 영위하고 있는 것이 맞겠죠.
아래글은 참* 4주년 기념강연회에 모실 박병상님의 글입니다. 아직 출간되지 않았다고 하네요. 소문내지 마시고 미리 보시길..
조류독감의 길목
획득형질은 유전되는가. 대장장이 집안에서 대장장이가 나오는 걸 봐도 획득형질이 유전되는 것 같았다. 라마르크는 그렇다고 말했다. 이른바 용불용설이다. 하지만 용불용설은 부정되었다. 쥐로 집요하게 실험한 결과 그렇다고 했다. 꼬리 자른 같은 배의 쥐끼리 교배시키는 일을 60세대나 계속한 19세기 과학자는 새끼들이 여전히 꼬리를 달고 나왔다고, 실험 과정에서 쥐의 꼬리가 짧아지지도 않았다며 라마르크의 용불용설을 부정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디디티와 메뚜기 떼의 관계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저 산등성이에서 모닥불 연기 피어오르듯 날아오른 메뚜기 떼가 순식간에 농장을 덮쳐 알곡과 열매는 물론, 줄기와 뿌리까지 거덜내고 날아가버리는 재앙. 당해보지 않은 사람은 짐작조차 할 수 없는 파국을 막아준 디디티. 하지만 디디티의 효과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다시 떼로 나타난 메뚜기는 준비된 디디티에 끄떡도 하지 않은 것이다. 메뚜기가 디디티에 내성이 생긴 것일까. 아니다. 용불용설은 이미 부정되지 않았던가. 디디티가 살포되기 전, 그러니까 수천년 전이거나 메뚜기가 진화되기 이전인 수억년 전일 수도 있다. 아무튼, 메뚜기 떼 중 극히 일부 개체는 디디티 내성을 물려받아 태어났고, 그들은 디디티가 뿌려졌을 때 견뎠으며, 디디티 내성을 가진 덕분에 살아남은 개체들끼리 교배를 해 다시 떼로 출현하는데 걸린 시간은 사람의 기준으로 길지 않았을 뿐이라고 과학자는 설명한다.
다른 생각을 펼치는 과학자도 있다. 이른바 네오라마르키즘, 다시 말해 신용불용설이다. 유전자에 변화가 발생해 내성이 생겼다는 거다. 적응할 수 없는 환경에 갑자기 노출되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급격히 발생, 그 중 바뀐 환경에 이겨낼 수 있는 유전자가 선택된 결과라는 주장이다. 발암물질에 노출되면 암이나 유전병이 발생되는데 그 중 어떤 유전병은 바뀐 환경에서 유리해질 수 있다는 의미로 풀이할 수 있겠다. 디디티가 뿌려지자 견딜 수 없었던 대부분의 메뚜기는 죽었지만, 디디티에 조금 노출돼 간신히 살아남은 메뚜기 중의 일부 유전자는 돌연변이를 일으켰고, 돌연변이된 유전자 중 일부가 디디티를 이겨낼 수 있었다는 추측이다. 수많은 돌연변이 유전자 중 어떤 유전자가 디디티에 견딜 수 있는지 사전에 짐작할 수는 없다. 돌연변이가 많이 발생하면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더라도 바뀐 환경에 적응 가능한 유전자가 운 좋게 생길 수 있다. 바뀐 환경에 갑자기 노출되면서 기존 환경에 적응된 유전자를 가진 개체들이 대량으로 죽어갔어도 돌연변이 유전자를 갖춘 적은 수의 개체들이 살아남아 다시 거대한 집단을 회복하는 건 시간문제다.
한데, 메뚜기와 디디티의 관계는 네오라마르키즘과 거리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 디디티가 뿌려진 이후 메뚜기 떼 일부에 생긴 내성 유전자가 압도적 우위를 점할 때까지 걸리는 시간이 네오라마르키즘으로 결론짓기에 지나치게 짧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네오라마르키즘보다 이미 디디티에 내성을 가진 개체가 일부 존재했다고 해석하는 편이 합리적일 것이다. 사람의 눈으로 확인 가능한 네오라마르키즘은 메뚜기보다 세대의 길이가 훨씬 짧은 미생물에서 일반적이다. 한 세대의 길이가 20분에 불과한 미생물에 엑스선을 쪼이면 무수한 돌연변이가 눈에 띄게 발생한다.
부정된 용불용설이든 유전자 변이를 근거로 하는 네오라마르키즘이든, 환경이 변하지 않으면 발생할 리 없다. 안정된 환경이라면 기존 환경에 적응된 유전자가 집단에서 압도적 우위를 공고하게 점유할 것이다. 하지만 공고한 위치를 점유했던 유전자가 도저히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환경이 급격하게 바뀐다면? 그 집단은 대 혼란을 거친 후 새로운 유전자 군으로 바뀌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혹독하게 환경이 바뀌면 모든 개체가 사멸해 멸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거대한 운석이 촉발한 6500만년 전의 빙하기는 당시 2억년 동안 번성했던 공룡 무리를 1만년 만에 돌연 사라지게 했다. 거대한 공룡에게 1만년은 순간이다. 하지만 공룡보다 덩치가 작고 세대의 길이가 짧았던 생물종은 모두 사라지지 않았다. 10퍼센트의 생물종은 일부 개체들이 살아남아 대를 이을 수 있었다. 하지만 점유하는 유전자 구성은 환경변화 이전과 사뭇 달라졌을 것이다. 6500만년 전에도 미생물은 있었다. 그들은 대개 살아남았을 것이다. 미생물에게 운석이 발생시킨 환경변화의 속도는 급작스럽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으므로. 공룡에게 1만년에 해당되는 순간은 미생물에게 얼마만큼의 시간일까.
조너던 와이너는 미국의 과학 저술가다. 그는 핀치라는 새 종류의 진화를 갈라파고스 군도에서 평생 연구한 부부 과학자의 업적을 《핀치의 부리》로 흥미롭게 소개한 바 있다. 조너던 와이너는 《핀치의 부리》에서 항생제가 몸을 빠져나가는 10시간이면 미생물의 유전자는 충분히 바뀐다고 말한다. 환경변화가 극심한 갈라파고스 군도는 수백만년 전에 돌출된 화산섬이다. 가까운 남미 대륙에서 그 중 한 섬으로 우연히 들어간 핀치의 조상 종이 20종 가깝게 분화된 세월은 의외로 짧았다는 부부 과학자의 연구 결과를 소상히 소개하면서, 미생물이 항생제에 적응하는 시간은 사람이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는데 걸리는 시간에 비해 훨씬 빠르다는 걸 조너던 와이너는 이야기한다. “새로운 질병이 몰려온다.”고 경고한 마크 제롬 월터스는 《에코데믹》에서 기존 항생제가 소용없을 정도로 내성을 가진 미생물이 의학이 손볼 사이도 없이 창궐하는 묵시록적 현상을 증언한다. 두 책은 세대의 길이가 짧을수록 환경변화에 적응하는 시간이 짧다는 귀띔으로 이어진다.
20분마다 분열하는 대장균을 예로 들어보자. 10시간이면 30번 분열할 것이다. 한 번도 죽지 않는다면 10시간 뒤 대장균 한 마리는 21억 4748만 3648마리로 늘어날 것이다. 신문을 50번 접어 쌓으면 그 높이는 달에 닿을 정도라고 한다. 70번 접으면 해에 이를 정도라고 하니, 72번 접으면 지구에서 해까지 길이의 4배 높이가 될 것이다. 대장균이 인체에서 72번 분열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하루면 족하다. 한 마리의 대장균이 죽지 않고 36시간 거듭해서 분열한다면 지구 표면에서 어른 무릎 높이까지 올라온다는데, 한 시간 더 분열한다면? 무릎의 8배 높이로 올라가겠지. 물론 그렇게 일방적으로 늘어날 리는 없다. 대부분 그 전에 백혈구에 잡혀먹힐 것이다. 하지만 오염된 햄버거 분쇄육에 섞여 들어가곤 하는 O157:H7 대장균처럼 맹독성이라면? 해마다 미국에서 오염된 햄버거를 먹고 60여 명의 어린이와 노인이 O157:H7 대장균으로 사망한다고 윌리엄 레이몽은 《독소》에서 밝히고 있는데, 그 대장균이 기존 항생제를 이겨내고 퍼진다면? 실태는 심각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세상에는 대장균의 분열 속도를 능가하는 미생물이 많다. 박테리아에 기생하는 바이러스를 박테리오파지라고 한다. 그 바이러스는 대장균의 분열 속도보다 훨씬 빠를 텐데, 박테리오파지보다 빨리 분열하는 바이러스도 있다. 바로 에이아이(AI)라고 알아듣기 어렵게 말하는 조류독감 바이러스다. 그 바이러스는 환경변화에 현란하게 대응한다. 사람은 백신을 만들 겨를이 없다. 백신이 완성될 즈음,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유전자는 새로워져 기껏 만든 백신을 소용없게 만든다. 물론 그 사이 환경이 변하지 않는다면 조류독감 바이러스도 그대로일 거고, 어렵게 만든 백신은 역가를 자랑할 수 있을 것이지만 환경은 바뀐다. 사람이 바꿨다. 사람에게 아주 짧은 순간이지만 조류독감 바이러스에게 충분한 세월이 주어졌다. 지구온난화를 에어컨으로 극복하려는 사람만 환경이 바꿨다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
새로운 환경에 들어간다는 것. 기존 환경에 적응된 대부분의 개체에게 대단히 괴로운 일이다.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사전 정보 없이 직장을 바꾸거나 낯선 동네로 이사가는 일은 스트레스를 동반한다. 여간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직장이나 집을 옮기려 하지 않는다. 하지만 새로운 환경이 더 좋을 경우도 있다. 새로운 환경에 접어든 많은 개체 중 일부는 뜻하지 않게 적응을 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개체는 새로운 환경에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다. 바뀌기 전의 환경에 적응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환경변화는 강도가 다양하다. 방향 또한 예측이 불가능하다. 30년 전, 요즘의 환경을 예측한 사람은 없었다. 앞으로 30년 후의 환경을 예측할 수 없다. 최고급 슈퍼컴퓨터를 동원하는 기상대는 3일 후의 일기를 정확하게 예측하지 못한다. 하물며 30년 이후의 환경을 누가 예측할 수 있겠는가. 분명한 점은 30년 전 환경변화보다 지금의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것이다. 기상이변, 지구온난화, 아토피, 듣도보도못한 질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유전자조작은 성행하고, 생태계를 파괴하는 개발은 속도를 더한다. 가축의 본성을 억압한 사육이 빚은 광우병을 이겨내지 못하는 사람은 조류독감에 견딜 수 있을까.
지구 생물종의 절반에서 90퍼센트 이상 사라지게 한 급작스런 환경변화가 이제까지 5번 발생했다고 학자들은 주장한다. 그 마지막이 6500만년 전이다. 학자들은 지금이 6번째 멸종이 진행되고 있다고 경고한다. 순전히 사람이 일으키는 환경변화 때문이다. 6500만년 전보다 멸종 속도가 빠르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은 여태 별 문제가 없다. 오히려 인구는 증가한다. 언제까지 유효할까.
환경이 급작스레 바뀌더라도 집단 내에 유전자가 다양하다면 견디는 개체가 더러 있을 수 있다. 디디티와 메뚜기처럼. 하지만 그렇다고 기뻐할 일은 아니다. 대부분의 개체는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죽었으므로. 6500만년 전, 멸종하지 않은 10퍼센트의 생물종은 가슴을 쓸어안을지 몰라도 환경변화를 견디지 못하고 사라진 개체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없다. 1만년 전, 경작을 시작하면서 자신의 환경을 스스로 바꾼 사람은 요즘 과학기술로 만든 거대한 인큐베이터 속에서 변화되는 환경을 회피하려고 한다. 그런데 제공되는 인큐베이터는 계층마다 천차만별이다. 슬럼에 내버려져 끼니나 때우며 하루하루 견디는 빈곤층의 인큐베이터가 있고 냉난방이 자동 조절되는 초고층 아파트에서 완전 멸균된 식단을 제공받는 부유층의 인큐베이터도 있다. 어떤 계층이든 먹어야 산다. 한데 사람의 먹을거리는 환경변화 시대에 안전한가. 유전자조작 농산물은? 소와 돼지는? 닭은? 오리는? 다국적기업이 획일적으로 주도하는 그 가공식품은?
1918년 ‘스페인독감’이 세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창궐했다. 스페인에서 발생한 독감이 아니라 스페인에서 바이러스를 분리한 독감이다. 당시 1800만명이 사망했다고 알려져 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죽었을까. 영양과 위생이 열악한 환경이 원인이었다. 배설물로 질척이는 1차대전의 참호에서 많은 병사가 죽은 유럽은 희생자가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었다. 미국의 평균 수명이 10년 이상 단축되었어도 천만 명 이상이 희생된 인도에 비하면 약과였다. 흉작으로 영양이 부족해진 농촌에 독감이 퍼져 사망자가 속출하자 공포에 질린 농부들이 도시로 몰려가 슬럼을 형성했고, 슬럼에서 급속도로 퍼진 독감으로 한꺼번에 죽고 말았다는 것이다. 하천에 시체가 떠다닐 정도였다고 마이크 데이비스는 《조류독감》에서 밝힌다. 어떤 학자는 그때 세계 인구의 5퍼센트인 1억명이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스페인독감은 조류독감이었다. 다시 말해, 새가 사람에게 전한 독감이었다. 조류독감은 새에서 돼지로 전파된 후, 돼지에서 사람으로 전해질 때 치명적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조류독감이 발생한 지역의 위험반경에서 사육되는 돼지는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모조리 도살된다. 돼지가 볼 때 어처구니없을 테지만, 가차 없다.
독감은 A형과 B형과 C형, 3가지로 구별한다. C형은 흔히 감기라고 하는 독감이고, B형은 사람에게 나타나는 일반적인 독감이다. C형도 감염된 이를 힘들게 하지만 B형은 대단히 고통스럽게 한다. 그렇다고 노약자를 제외한다면 목숨을 잃는 경우는 드물다. 제때 치료받는다면 대개 낫는다. 문제는 A형이다. 바로, 사람에게 전이된 조류독감이다. 분리된 지역의 이름을 받아 홍콩A형 러시아A형과 같이 부르지만, 그건 이미 알려진 독감의 명단에 불과하다. 문제는 변화된 환경에서 새로 발생하는 경우다. 앞으로 어떤 조류독감이 가금이나 사람 사이에서 발생할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백신은 꿈도 꿀 수 없다. 늦가을의 보건소에 다량 공급되는 독감 백신은 B형을 대비한다. 발생 추이를 살핀 세계의 과학자들이 예상 바이러스에 대처해 만든 것이다. 그 백신도 실제 유행하는 독감에 정확하게 대처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못한다.
조류독감의 표면에는 두 가지 항원이 있다. 헤마글루티닌이라고 하는 H와 뉴라미니다아제라는 N이 그것이다. 올 4월 전라북도에서 시작된 고병원성 조류독감은 H5N1이었다. 지금 세계는 H5N1 조류독감 발생에 촉각을 곤두세우지만, 문제는 H5N1로 그치는 게 아니라는 사실이다. 조류독감 내부에 존재하는 8개 RNA의 변화가 하도 빨라, 환경에 따라 다양한 표면항원을 가진 조류독감이 속속 만들어진다는 점이다. 조류독감의 변화 속도가 일반적인 DNA 바이러스의 100만배나 된다니 사람은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다. 1968년 이후 15가지의 H와 9가지의 N이 밝혀졌다. 조합하면 135가지의 조류독감이 나타날 수 있는 셈인데 그 조합은 계속 추가될 것이다. 환경에 따라 어떤 조합형이 어떤 모습으로 창궐할지 아무도 점칠 수 없다. 문제는 거기에 그치지 않는다. 두 종류 이상의 조합형이 동일 숙주에 침입할 경우, 8개의 RNA가 재배열될 수 있다는 게 아닌가. 그쯤 되면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변이는 무궁무진해진다. 세계의 관련학자들은 사람의 세포를 속주로 삼은 조류독감들이 재배열을 하여 돼지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감염되는 상태가 된다면, 사상 최악의 재앙이 발생할 것이라 믿는다. 앞으로 세계 인구의 1퍼센트가 속절없이 사망하게 될 것으로 예견하는데 대부분 동의한다.
환경변화와 생태계 파괴로 다른 생물종이 줄어드는데 반해 사람과 가축만이 늘어나는 건 좋은 예후가 아니다. 더구나 늘어나는 인구의 대부분은 슬럼에 집중된다. 가축도 마찬가지다. 사람과 가축이 늘어나는 대신 생태계의 다양성은 줄었고 생물종의 서식공간은 형편없이 협소해졌다. 가축과 농작물의 개체수는 획기적으로 늘었지만 집단 내의 유전적 다양성은 대폭 줄어들었다. 심한 경우, 수많은 개체들의 유전자가 완전히 같기도 하다. 그런 개체들은 환경변화에 이겨낼 완충장치가 없다. 사육이나 경작환경을 인큐베이터처럼 일정하게 관리하지 않는다면 일거에 몰살할 수 있다. 요즘 농업은 모 아니면 도다. 가축도 사정이 비슷하다. 그런 가축과 농작물은 보통 밀집돼 있다. 닭과 오리도, 돼지와 소도 매한가지다. 조류독감이 창궐하기 좋은 조건이다. 슬럼 가까운 곳에 밀집 사육하는 양계장이 있다면? 그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사육한 닭과 오리가 가공되지 않은 상태로 자유롭게 이동한다면? 조류독감 바이러스가 퍼지는데 걸리는 시간은 그만큼 단축될 텐데, 문제는 사람이 통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조류독감》 이후에 《슬럼》을 다시 썼다. 조류독감에 대해 공부하다 보니 슬럼의 위험성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구조조정을 강요하는 아이엠에프나 세계은행이 가난한 국가에 슬럼이 집중하게 하는데 크게 기여했다고 믿는다. 자급자족하던 미개발 국가에 개입해 비교우위 교역을 부추긴 자본은 자금지원의 조건으로 민영화를 유도했다. 국제자본이 주도하는 노동력 유연화와 플랜트산업으로 일자리와 농토를 빼앗긴 그 나라의 인구는 도시 인근의 슬럼에 모여들 수밖에 없고, 부패한 공무원과 결탁한 지역자본의 횡포로 슬럼의 환경은 열악해질 수밖에 없다. 슬럼에 모인 사람에게 화장실과 수도와 전기 사용료를 갈취하자 위생상태가 엉망이 되고 만 것이다. 수백가구의 수천명이 하나의 화장실을 사용한다고 생각해보자. 수돗물을 구입할 수 없어 빗물로 밥해먹고 허드렛물로 아이를 씻는다면 질병은 만연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여성과 아이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질 것이다. 마이크 데이비스는 슬럼에서 발사되는 ‘스커드 미사일’을 설명한다. 화장실에 가지 못한 사람들이 배설물을 비닐봉투에 담아 집밖으로 내던지는데, 그런 비닐봉투를 주민들은 스커드 미사일로 부른다는 거다. 슬럼의 비참한 위생 상태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병에 걸렸거나 죽은 가축의 고기를 뒤섞어 만든 패스트푸드는 슬럼에 쉽게 스며든다. 값이 싸므로. 식중독까지 빈발하는 슬럼의 환경이니 조류독감이 세계로 퍼져나갈 토대는 충분히 마련된 셈이다. 아직 발생하지 않은 건 아직 운이 좋았다는 이유 말고는 없다. 하지만 언제까지 이런 행운이 이어질지 알 수 없다. 위생적인 직장과 주거환경을 고수하는 부유층과 슬럼이 없는 부자나라들은 안심할 수 있을까. 약에 의존하는 사회에서 면역은 약화된다. 농수축산물에 들어가는 항생제는 물론이고 병원에서 처방하는 항생제도 남용되는 세상에서 미생물의 항생제 내성은 갈수록 거세어진다. 대규모 개발이 도처에서 자행되면서 자연 생태계에서 사람의 세계로 스며드는 야생의 바이러스는 면역이 없는 사람을 공격할 가능성이 더욱 높아졌다. 에이즈가 그 사례다. 부유한 계층은 거대한 인큐베이터에 잠시 몸을 숨길 수 있지만, 돈벌이를 위한 각계각층의 사람과 물류가 맹렬하게 이동하는 국제 상황에서 오래 견딜 수 없을 것이다.
우리나라는 조류독감 청정지역일까. 올해 고병원성 조류독감이 전국을 휘감은 걸 보아 그리 낙관하기 어렵다. 세계 5대라 자랑했던 드넓은 갯벌은 거듭 매립되면서 협소해졌다. 전국의 갯벌에 분산되었던 철새가 몇 군데 몰려 도래하면 조류독감의 발생은 그만큼 빈번해질 것이다. 천수만을 보라. 갯벌을 매립하니 철새가 많아졌다고 너스레떠는 이가 없는 건 아니지만, 터무니없다. 밀집된 만큼 철새의 독감 바이러스가 급격히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철새가 이동하면서 떨어뜨린 배설물로 멀쩡했던 닭과 오리에 조류독감이 옮겨갈 확률도 그만큼 높아졌다. 우리도 닭과 오리를 지독하게 밀집 사육하지 않던가. 그 옆에 돼지가 밀집 사육되는 경우도 많다. 위생이 열악한 슬럼이 아직 없고 방역이 그런대로 철저한 편이지만 마냥 안심할 수 없다. 어쩌면 토착화는 시간문제일지 모른다. 게다가 조류독감의 유일한 치료제(타미플루)마저 충분하지 못한 실정이 아닌가.
국민 20퍼센트에게 동시에 처방할 수 있을 정도로 비치하라고 마이크 데이비스가 충고하는 타미플루는 스위스의 거대 제약회사인 로슈에서 독점 생산한다. 하지만 타미플루는 700가지 변형이 존재하는 모든 조류독감을 치료하는 의약품은 아니다. 환경변화를 진정시키지 않는 한 조류독감의 변형도 진정되지 않을 것이니 타미플루를 충분히 확보했다고 조류독감을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우리는 낙관할 수 있는 처지가 결코 못 된다. 여름철에 삼계탕을 집중 소비하는 우리의 문화에서 뚝배기 크기에 쏙 들어가는 닭을 획일적으로 사육하는 환경은 전혀 개선되지 않을 것이다. 지구온난화, 아토피, 식량과 에너지 문제에 대한 근본 대안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조류독감 바이러스의 변화를 막기는커녕 지연시키기 위한 환경보전도 적극 검토되지 않는다. 국가 또는 지방 차원의 노력은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오직 개발, 또 개발이다. 거듭되는 매립으로 더욱 협소해진 갯벌은 다가올 겨울에도 지친 철새를 받아야 할 것이다. 받지 않으면 더욱 위험하다. 조류독감에 감염된 철새가 마을에 내려앉을 수 있다.
최근 미국의 생명공학자 크레이그 벤터는 이산화탄소를 먹고 연료를 생산하는 이른바 ‘에너지 박테리아’를 생명공학 방법으로 만들어 보급하겠다고 천명했다. 희소식처럼 우리 언론은 보도했지만 불안하다. 앞으로 1에서 2년 내에 현재 자동차 엔진을 개조하지 않고 쓸 수 있는 대체에너지를 생산하는 박테리아를 시장에 내놓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건데, “4세대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는 햇빛, 바닷물, 이산화탄소면 충분”하다는 크레이그 벤터는 이산화탄소를 줄여 “인류가 오랫동안 살아남는데 중요한 걸음”이 될 것으로 장담했다고 한다. 결국 그는 자기 회사의 주식을 팔아 막대한 이익을 1에서 2년 내에 챙기겠다는 속내를 드러낸 것인데, 그런 시나리오가 과연 가능할까. 사람의 유전자 지도를 그리는데 앞장선 그에게 에너지 박테리아 발명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지 모른다. 하지만 그 부작용은 그의 과학은 물론이고 세계 최고 수준의 과학기술로도 제어하기 어려울 것이다.
양의 유전자를 넣은 소는 상품화에 실패했다. 소 한 마리로 우유와 고기는 물론, 털가죽까지 얻으려던 계획이었지만 실패했으니 그 황소는 조용히 사라졌을 것이다. 문제는 그 소에 들어간 양의 유전자다. 그 유전자가 다른 동물의 유전자를 오염시키면 큰일이 아닌가. 유전자조작된 그 소는 단순히 살처분해 매장하면 안된다. 소각처리해 재만 남겨야 한다. 미국에서 개발한 그 소, 어떻게 처리되었는지 알 수 없지만 아직 부작용은 논의되지 않고 있다. 캐나다에서 개발한 유전자조작 연어는 덩치가 수십배 늘었다. 그 연어는 사람이 보살펴주지 않으면 자연에서 생존이 불가능한데, 덩치가 커지는 유전자가 생태계로 퍼져나가면 어떻게 될까. 다행히 아직 생태적 부작용에 대한 논의는 없다. 부작용이 없기 때문일까. 하지만 안심할 수 없다. 유전자는 언제, 어떤 환경에서, 어떻게 발현되어 퍼져나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는 까닭이다.
종 경계를 넘나드는 조작된 유전자는 통제가 불가능하지만 소나 연어와 같은 유전자조작 동물은 사람이 통제할 수 있다. 우리나라도 1988년 난소암 치료제를 생산한다는 흑염소를 개발했다고 생명공학연구원에서 자랑했다. 이후 그 흑염소는 치료제를 시장에 내놓지 못한 채 죽었다. 아직 생태적 부작용이 보고되지 않았지만, 만일 유전자조작한 생물 자체가 사람의 통제 밖에 있다면 어떻게 될까. 그 생물이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자신의 유전자를 변화시키고, 다른 미생물과 그 유전자를 교환하는 박테리아라면 어떻게 될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생물은 그런대로 통제할 수 있다. 하지만 미생물은 불가능하다. 미생물 속의 조작된 유전자는 더욱 감당할 수 없다. 미생물 사이의 유전자 이동은 자유자재에 가깝고 그 결과는 변화무쌍하지 않던가. 크레이그 벤터의 주장처럼 ‘에너지 박테리아’는 인류가 오래 살아남는데 기여할 수 있을까.
우리는 조류독감 바이러스에게 창궐할 수 있는 길목을 내주었다. 조류독감이 만연될 토양은 이미 충분히 배양되었는데 돈벌이를 위해 과학기술을 앞세우는 사람은 도무지 문제를 주목하려 하지 않는다. 자본과 결탁한 과학기술만이 아니다. 재고가 부족해지면서 가격이 들썩이는 세계의 식량과 에너지를 투기 목적으로 매점하는 자본도 마찬가지다. 각성하지 않는다면 조류독감의 기폭제가 될 슬럼은 더욱 확장될 것이다. 스페인독감 이상의 고독성 조류독감이 다시 휩쓸고 지나가면 세계 인구는 대폭 줄어들겠지만 희생자는 주로 가난한 계층에 집중될 테고, 엉뚱하게도 닭과 오리와 돼지와 철새도 떼죽음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렇게 ‘제6의 멸종’은 앞당겨질 텐데, 자본은 여전히 주판알만 튀기고 있다. (녹색평론, 2008년 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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