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참*가 부산스럽다. 지난 금요일 운*위도 뒤풀이가 이어진다. 맘도 열정도, 경륜도 녹아나 뒤풀이가 자꾸 길어진다. 토욜을 핑계로 더 이어진 자리. 나누다보면 늘 머리진보도 몸진보도 가슴으로 만나지 않으면 불꽃도 청춘도 되지 않는다 싶다. 자원활동의 수많은 갈래길에 어김없이 왜?라는 의문도, 따로 또 함께라는 흐름을 거스를 수 없다는 것을 느낀다. 하지만, 늘 공간들은 머리로 과식하여 서로 박자도 몸짓도 놓치기 일쑤다.
내가 좋다고 보는 독서하고, 남에게 알려야 하는 독서는 독서의 양과 방향에 차이가 난다. 어느새 엮여 내일 세미나 발제? 발표를 하는 일이 다가선다. 이런저런 일들로 챙기지 못해, 그래도 주말을 온전히 쓴다. 관련 영상이 5-6편*50분/ 책자도 미생물학-바이러스학까지 챙겨온다. 그리고 지난번에 본, 기억이 희미한 책들도 다시 빌려온다./ 내친김에 여러 파일들도 검색하여 챙기다보니 주말을 온전히 쓴다.
선물해야하는 책제목 앞에있는 서로주체성이라는 말이 생각난다. 홀로주체성이 아니라 서로주체성이라! 나르시즘이 아니라 함께주체성의 향을 풍기는 말을 참 잘 만들었다 싶다. 책은 보지 못했지만 아마 그러하리라 생각한다. 서로를 위해, 나를 향한 책독서를 남을 향하고 섞고 하는 일은 넓게할 뿐만 깊게 할 것 같다. 그러고 보면 알량한 종이꽃같은 앎들은 나의 취향으로 쓰였지? 나-너의 풍요로움을 향해 별로 쓰인 것 같지 못하다.
발길을 끊었던 정리까지 하게 된다. 인터넷네트워크의 힘이 크다. 정리는 거의 대부분 되어있다. 에이비씨등급의 자료식별만 하게되면 얼마든지 자료는 만들 수 있다싶다. 문제는 얼마나 발딛는 곳에서 섞어서 달라지느냐는 아닐까? 그 차이가 다른 마을들로 흐르는 것, 또 다른 마음길로 마을길로 생각길로 흘러가는 것은 아닐까?



뱀발.
지난 피디수첩인가 민변 20년 기념하여 한 한승헌변호사님의 말씀이 떠오른다. 20주년 격려사가 무엇이었냐 하면 "고생을 사서하자"였다. 고생을 사서하는 사람들이 지금을 만들어냈다는데 일정정도 수긍하고 인정한다. 그러면서도 덧보태고 싶은 말은 "공부해서 남주자"가 같이 떠오른다. 그리고 하나만 더 섞는다면 강준만교수가 그런 것 같은데, 기부라는 것은 내몫을 챙기고 나머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내몫을 남에게 주는 것이라 한다. 그러고 보면 그러다 보면 늘 변변찮은 생활도, 절제없는 삶도 덜 여문 하루하루가 고개숙여지기도 한다.
경황없는 와중에 여러 마음씨들이 많이 들어온다 싶다. 너무 위축되지 말면서 품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