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미니의 십년전 회상 (2) (作)
미묘한 시점, 6.3 정부의 발표가 늦춰진다. 오히려 대운하 강행이 전면에 부각하기 시작하였다. 여전히 2mb 정권은 민심을 읽지 조차 못했다. 이어지는 성명서와 촛불문화제는 방향의 가닥을 입체적으로 잡기 시작하였다. 모호한 실체없는 실체의 카이스트와 생명연의 통폐합반대 투쟁은 주요한 내부 이권보다 정부출연기관의 공공성, 공익에 대한 부분으로 투쟁방향의 진전이 있었다. 대운하를 정면에서 거부한 김이태연구원의 양심선언에 대한 노조의 자성은 내부 이익과 존폐를 넘어서 국민으로 마음을 조금씩 돌리기 시작했다.
몇차례의 자성적인 성명발표와 거리 시위가 방법이 다채로워지고 국면을 전환하면서 좀더 삶에 대한 고리를 점점 더 확보하기 시작했다. 한 연구원의 양심선언에 대한 담론은 양심을 지킬 자유와 일할 권리 사이의 담론을 만들기 시작했다. 과연 건기연을 비롯한 출연기관은 누구를 위한 연구를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연구가 되어야 하는가? 그 연구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에게 과연 어떻게 사회는 지키고 보호하고 자리를 마련해줄 것인가?
출연연의 내적성찰, 사회성에 대한 고민은 잔잔하지만 작은 논의의 흐름들을 타고 있었다. 양심적인 그룹의 지지와 성명이 이어졌다. 해당 기관의 두려움 역시 아고라를 통해 확장되는 담론의 공간에서 좀더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안들로 세분화되어갔다. 벼랑끝에 선 두려움은 작은 연대와 성찰, 일터에 대한 사회적 역할에 대한 인식의 연결로 조금씩 내부 이견이나 반발들이 조금씩 숨을 죽여가고 있었다.
누리꾼의 광장이 주제별로 진화해갈 때, 어디를 어떻게 왜 해야하는지는 집요해졌다. 휘몰아치는 한 때의 소나기가 아니라, 마치 유격전을 방불케했다. 대운하를 왜 반대해야 하는지? 반대하는 기관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10대 재벌과 유착연구관계는 무엇인지? 어떤 연구를 해야하는지? 사회적 약자와 공공을 위한 연구를 위해 어떤 연결망을 해야되는지? 대운하란 꼭지를 중심으로 깊숙히 깊숙히 논의는 꼬리를 물고 이어졌다.
여름이 지나고, 김이태연구원과 그를 지지하는 연구원, 관계분야의 지지 연구원들은 [우리가 꼭 해야만 할 프로젝트] 초안을 만들었고 열광적인 지지가 이어졌다. 마음이 흔들린 그룹들도 좀더 공적영역에 대한 연구와 자신이 하고 있는 연구사이에 대한 고백들이 아고라를 통해 논의가 깊어졌고, 정말 하고싶은 연구에 대해 대학원생들을 중심으로 확장되기 시작했다. (2.1)